[조슈프라] 편지

모든 곳에 존재하는 듯한 너를 사랑하는 프라우 레망.

편지

 

부제: 모든 곳에 존재하는 듯한 너를 사랑하는 프라우 레망.

 

 

 

 

 

안녕? 조쉬.

안녕? 조슈아. 

안녕? 조슈아 레비턴스. 

안녕? 조슈아 레비턴스 특임대장.

 

이 문장들을, 그러니까 아주아주 오래된 유적의 벽으로 아로새겨진 이걸 바라보고 있을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끼적이는 이 문자들은 점차 희미해져가는 고대의 언어로 짜여져있어서, 이걸 우연히 발견한, 혹은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된 너의 의아해하는 표정이 상상돼. 보나마나 장갑을 깊게 낀 손끝으로 문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갸우뚱거리고 있겠지. 덕분에 낡고 늙은 유적의 가루가 비명처럼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이걸 읽고 있을 나의 조슈아. 새겨진 문자 하나하나를 찬찬히 해독해가는 네가 미치도록 궁금해. '네가 / 현재 / 존재하고 / 있는 / 시간선' 에는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일을 하며 성장했는지, 지금 당장은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성과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지, 나는 당연하지만- 잘 모르겠어. 그래서 처음에 네 번씩이나 안녕을 건넨거야.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프라우 레망의 기억에 남아있는, 조슈아 레비턴스의 다양한 순간들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두 불러봤다는 소리야.

 

사실, 몇 가지 더 기억에 저장된 호칭들이 있어. 하지만 그것들은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쿠키의 부스러기 같은 것이어서 내 맘대로 생략해버렸어. 멋대로 굴어서 미안해. 이 부분에 있어선 나를 용서하지 말아. 근데, 왜 사과를 하는지가 궁금하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편지의 마지막에 써줄게.

 

일단 이것부터 해보지 않을래? 지금 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을 맞춰볼게. 

 

 

 

프라우가 누구지?

 

이건 당연히 땡!

 

 

 

프라우가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이것도 땡!

 

 

 

프라우가 대체 이걸 왜? 

 

역시 땡!

 

 

 

정답은 이거야. 

 

 

 

프라우가 언제 이런 걸 썼지?

 

딩동댕!

 

 

 

내 말이 맞지?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어. 난 너를 잘 알아. 거짓말을 할 때면 귓불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잖아. 것 봐, 너 지금도 귓불을 건드리고 있잖아. 하하.

 

있잖아. 안녕, 나의 귀여운 조쉬. 

 

인사를 또 하는 이유는, 지금 이 문자들을 읽어내고 있는 너에 대한 호칭이 '나의 귀여운 조쉬' 인 시간선인 걸 내심 바라고 있기 때문이야. 너를 '나의 귀여운 조쉬' 라고 부를 수 있었던 시간선이 어떤지 알고 있어? 당연히 알고있어! 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는데. 

 

하지만 아닐수도 있으니 좀 더 말을 얹어본다면, 그 시간선의 너는 어느 소박한 이층집의 작은 방에서 태어났어. 하늘과 구름이 눈부시게 따스했던 날이었지. 아담한 마당엔 작은 꽃들이 한껏 모여 피어있고. 그렇게 평화가 우수수 떨어지는 곳. 피비린내와 갑옷의 쇳내와 무기들이 엇갈리는 소리가 부재한 곳. 묵묵한 평화가 가득한 시간선. 네가 아프지도 않고 고통받지도 않는 시간선.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간선. 

 

그래서 지금의 나는 바라고 있는 거야. 당장 이걸 읽고 있는 네가 평화로운 시간선 위에 올라탄채여서, '나의 귀여운 조쉬' 라고 망설임없이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인거야. 슬슬 내 뜻을 이해할 수 있겠어?

 

그럼에도, 나는 슬픈 마음이야. 사실 '나의 귀여운 조쉬' 는 오래된 고대의 언어를 해독하는 법 같은 건 절대로 모르거든. 당연한 거 아니야?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성장해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을 '나의 귀여운 조쉬' 가 낡고 헐어빠진 고대의 언어를 해독하는 방법을 어찌 알겠어? 참나.

 

그래서 나는 아픈 마음이야. 이 편지가 온전히 너에게 닿기를 윈하면서도, 동시에 원하지 않아. 네가 나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통받고 피를 보고 전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야. 그럼에도 다시금 불러본다. 나의 귀여운 조쉬.

 

흠. 좋아.

 

언젠가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이 '언젠가' 는 너의 과거일수도 있고, 현재일수도 있으며, 미래일수도 있어. 나는 네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너무나도 다채로운 시간선을 이리 밟고 저리 밟아와, 이 이야기가 너의 어느 시간선에 속해있는지 확언은 못하겠어. 하지만 기억이 흐릿하다고 해서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 건 아니야. 이건 마치 그런 거야. 머릿속의 거대한 사거리 한 가운데에 선 어느 사람의 고장난 수신호 같은 거야. 그런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

 

언젠가 네게 물었지.

 

조슈아!-이것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이 질문속에서 나는 너를 조슈아 라고 불렀다-, 태어났던 곳으로 되돌려준다고 했지. 그럼 나도 되돌려줄 수 있어? 근데 태어난 곳이 어딘지 몰라도 괜찮을까?

 

너는 고개를 저었어.

 

난 그렇게까지 대단한 초능력자는 아닌데.

 

그래서 다시 물었어. 

 

그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는 되돌려줄 수 있어? 

 

너는 굉장히 의아해하는 눈빛이었어. 대체 그런 걸 왜 묻느냐는듯.

 

나는 말을 이었어. 

 

내가 제일 행복했던 곳으로 되돌려줄 수 있어? 

 

넌... 아무 말이 없었지.

 

조쉬. 나의 조쉬. 나의 사랑하는 조슈아. 내가 왜 이 오래된 벽 위로 문자 하나하나를 새겨가고 있는지, 많이 궁금할 거야? 물론 여기까지 해독해왔다는 가정하에. 하지만 나의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 있는 시간선의 너라면, 속으로는 질문이 한가득이면서도 나에겐 단 하나의 의문부호조차 드러내지 않을 걸? 

 

그래서 과거일지 현재일지 미래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와 나, 그러니까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선 위의 나는 조쉬 네가 이 오래된 편지를 발견했을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을지, 드문드문 읽다가 그만 두었는지, 아니면 아예 읽어낼 생각조차 하질 않았는지 나는 영영 알 수 없겠지. 

 

하지만 뭐래도 좋아. 겨자씨만큼의 가능성라도 존재한다면 나는 수백번이고 수천번이고 수만번이고 너만을 위한 문자들을 먼지투성이의 벽에 새겨. 그러니까 이걸 읽고 있다면, 그래서 오래된 시간 여행자인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아주 작은 신호라도 좋아. 알아버린 너를 내가 눈치챌 수 있게해줘. 나와 마주치는 순간 귀걸이의 끝을 살짝 건들여서 말이야. 그 찰나의 작은 반짝임에서 내가 안도할 수 있게 해줘. 확신할 수 있게 해줘. 날 기쁘게 해줘.

 

내가 그랬지. 왜 멋대로 굴었다- 라고 했는지. 왜 사과를 했는지 이유를 말해준다고. 이것 역시 서글픈 마음이야. 가끔 너의 이름이 '조슈아' 가 아닐때가 있었어. 전혀 상상이 안 가지? 하지만 가끔의 시간선에선, 내 눈앞의 너는 조슈아 인데, 조슈아! 라고 부르면 너는 조슈아 가 아니라고 대답하곤 멀어지곤 했어. 네가 아닌 너는 더 이상 네가 아니기 때문에 부스러기 라고 표현한 거야. 너무나도 미안해. 그랬던 시간선 속 이명의 너조차도 조슈아 너임을 인정했어야 했는데. 나는 대체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이제 난 벽 위로 문자를 새기던 손을 거두어야 해. 하고 싶은 말들은 차고 넘치지만, 아무래도 시간을 바삐 걷는 나는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수가 없거든.

 

고대의 유적 위로 함부로 갈겨낸 나의 것들을 네가 읽어내지 못하길 바라며. 그러나 동시에, 잠시뿐일지라도 귀걸이의 끝이 흔들려 반짝이길 바라며.

 

모든 곳에 존재하는듯한 너를 사랑하는 프라우 레망.

 

 

 

추신. 

 

네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반짝반짝 빛나면 좋겠다. 

찬란히 아름다우면 좋겠다. 

그 어느 시간선 속에서라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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