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원현주] 그 새벽에

2021 부식잉크 End_2 그 새벽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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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주는 떨어뜨린 담배꽁초를 짓이긴다. 타들어 가는 꽁초가 무참하게 찌그러지고, 또 꺼내든 담배에는 불이 들이밀어진다. 탁, 탁, 불꽃은 잘 붙지도 않는다.  불붙은 담배를 현주는 가만히 빨아들인다. 폐속까지 삼키는 연기는 물감마냥 허공을 물들인다. 깔깔한 연기를 흘려보내며, 몹시 타들어 간 담배는 아래로 던져놓는데, 발밑에는 그런 식으로 타다만 담배들이 수북하다. 

그는 거의 온종일 부둣가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두 갑을 모조리 피우고도 두 갑을 더 사 온 그는 아예 라이터까지 여러 개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있었다. 꼬고앉은 다리를 바꾸며 담배를 버리고 던지고 불붙이는 일련의 과정들은 무척 여유로웠으나, 담배의 재를 툭툭 치는 손은 위태롭게 떨렸다. 

...

새벽녘, 현주는 방황하듯 지방 끝자락으로 내려왔다. 부둣가 마을의 구멍가게에서 소주병을 닥치는대로 집어 든 그는 취객의 길바닥 객사보단 차라리 흡연이 낫다는걸 깨달았다. 죽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으니까. 그러나 객사 직전까지 피우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건 꺼내 드는 담배가 세 갑을 넘어가고 난 이후였다.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현주는 그 생각을 단숨에 지웠다. 흰 담배에 묻어나는 핏자국에 지워졌다. 차마 죽을 염치도, 죽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고장 난 총이랍시고 머리에 쐈다간 죽기는 커녕 가장 끔찍하게 숨을 멎을 수도 있었다. 

어제까지로 금연 5년 차인 예현주는, 뉘엿뉘엿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담뱃갑에서 남은 담배 모두를 몽땅 꺼내 들었다. 입에 물고 동시에 불붙이고 시은 충동이 뇌를 쑤셨다. 이미 한 개비만 입에 무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으나 이성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뒤였다. 태양 빛이 완벽하게 반사되어 금빛 눈이 멀 듯이 반짝이고, 찰나에 스친 정신을 붙잡은 현주는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멀쩡한 담배들이 타다만 것들 아래로 후두둑 굴러떨어졌다. 현주는 고개를 들었다. 옅은 금안에 다홍빛이 들어왔다. 어떠한 사심도 생기도 의지도 없는 온전한 석양만이 눈동자에 담겨, 빛살들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게 뭐 하는 건지. 현주는 혀를 차며 수북한 더미들을 둑 아래로 쓸어버렸다. 다시 담배를 살 수도 있었지만, 이성을 붙잡은 현주는 엉거주춤 자리에 주저앉았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들이 없었다. 온통 엉망진창이다. 하나같이 멍청한 행동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꼴이었으니까. 진작에 내쳤어야 하는 놈을 들인 것부터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 눈을 보지 말았어야지. 시체들 사이에서 영롱하게 빛날 때부터 버렸어야 하는 거였다. 현주는, 새파랗고 가장자리가 닳고 닳은 말을 다시 씹으면서, 달랑 뒤로 누웠다. 

시간은 매캐하게 타들어 간다. 영원히 빛나며 불타오를 무스펠의 불꽃처럼, 잿더미가 자신을 불사르며 꺼지다가 다시금 타오르는 불꽃이 나오지 않도록 현주는 꾹 눌러 삼켰다. 입안을 바싹바싹 마르게 하는 것들을 축축한 목구멍으로 가로막자, 불꽃은 다시금 흐르는 불이 되어 작은 틈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현주는 팔뚝으로 눈을 덮었다. 파문이 일어 뭉그러진 가슴에서는 흐르는 불들이 빛살을 타고 옷깃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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