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도] Follow me, Watson!

2020 빽도 탐정AU


EP. 1 Finding Fourth Force (1) 

안녕! 나는 남궁백흠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큼큼, 약간 부끄럽긴 하지만... 난 탐정이야. 아주 유-명하지. 이 근방에서 탐정 백흠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셜록홈즈? 에이, 그 사람은 한물갔지. 이젠 백흠의 시대라고! 

어, 그래. 안녕. 나는 임도원. 왓슨이야. ...아니, 아니. 왓슨이 아니야. 이건 다 쟤가 시켜서 그런거고, 원래는 퇴마사야. 귀신을 보고, 한을 풀어주는 일을 주로 하는데... 잠깐 저 탐정의 조수로 일하고 있어. 절대, 절대로 내 본업은 아니야. 

“ 임도원!!!! “

“ 아 왜; 또 무슨 일인데? “

“ 빠, 빨리 와봐 큰일 났어 지금!! “

“ 또 고양이가 귀엽네 이지랄하면 죽는다. “

“ 아니라니까!!! “ 

 화살같이 쏟아지는 목소리에 임도원은 머리를 말리면서 거실로 나왔다. 아직 날아가지 않은 물기에 온몸이 젖어 축축했는데, 자신의 룸메이트이자 고용주, 백흠의 부름에 말리지도 못하자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신경질적으로 거실에 고개를 들이민 도원이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물었다. 

“ 뭔데 그래? “ 

“ 저거 봐봐. “ 

시리얼에 푹 담갔던 숟가락을 입에 문 백흠이 TV를 가리켰다. 덩달아 도원도 고개를 돌렸다. TV에서는 한창 호랑이 캐릭터가 그려진 시리얼의 광고가 짜짜잔~하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 기업에서 런칭했다 아주 대차게 말아먹은 브랜드였다.

“ 저게 뭐. “ 

“ 내가 먹는 시리얼이랑... 똑같은 거야. “ 

“ 그래서 어쨌는데. “

“ 나랑 닮았어!!! “ 

룸메이트의 밑도끝도 근본없는 소리에 도원이 얼굴을 왕창 일그러뜨렸다. 

" XX.... "

" 아니 도원아! 이거 좀 봐봐. 원래 호랑이였는데 인간으로 바뀌었다니깐? 게다가 슈퍼히어로라잖아, 이게 말이 돼? 저거 그냥 호랑이귀 달린 인간 이라고! 이거 살아있는 나 표절 아니냐?? “ 

“ 아침부터 헛소리하지 마라, 빡치게... “ 

~ 시리얼! 어흥! 지금 바로 전화주세요~... 따위의, 눈치 없게 계속 흘러나오는 노래는 어디 표절한 것마냥 익숙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뭐가 또 궁금하다고... 도원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룸메이트라는 놈은 지가 호랑이 닮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지 않나, 본업도 바쁜데 왓슨이라며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때려치우고 그때 이직했어야했어... 눈물이 찔끔 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무엇하랴, 이미 지나버린 기회를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도원은 머리나 말리기 위해 돌아섰다. 

결국 뽀송뽀송하게 나온 도원은 식탁에 앉았다. 그는 우유를 붓기 직전의 시리얼을 한 숟갈 퍼먹고, 그 위에 우유를 부으며 식탁에 펼쳐진 신문을 훑었다. ...은행 강도사건, 모 정치인 뇌물수수, 모 연예인부부 결별하다... 사람이 많은 만큼,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는 도시답게 신문의 헤드라인은 항상 자극적인 것들로 가득했다. 

“ 도~원~아 ~~~ “ 

 먼저 일어났던 백흠이 팔랑거리며 다가왔다. 히죽히죽 웃는 모습은 난리 치던 방금과는 다르게 무척 신이 난 것 같았다. 

“ 왜?  “ 

“ 점심 먹고 시간 있어? “ 

“ 뭔데, 무슨 일이야? “

“ 헤헤. “ 

 그가 바보같이 웃을 때, 도원은 한시라도 빨리 내빼야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스멀스멀 다가온 백흠이 도원의 앞을 가로막았고, 빠르게 체념한 도원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 이거 봐봐. “ 

- 안녕하세요, 의뢰를 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 ..의뢰? “ 

“ 근 한 달 만에 의뢰가 들어왔지!! “

와하학! 들뜬 백흠이 팔을 번쩍 들고 거실을 뛰어다녔다. 도원은 메시지가 의심스러웠지만,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내렸다. 단정하면서도 동글동글한 폰트의 메시지가 화면을 절반가량 채우고 있었다.

- 찾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신문에 내셨던 광고를 보고 연락드려요. 뭐든지 다 해결해주신다 하셨지요? 

-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XX일 1시 모 카페 안쪽 테이블, 괜찮으신가요? 

- 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 이게 얼마 만이지? “

“ 한 달이지, 한 달. 자그마치 한 달! “

“ 이제 좀 집세 걱정좀 덜겠네. “ 

“ 그럼! 프사보니까 돈 많은 사람 같던데. 수고비도 짭짤하게 주겠지? 이제 탐정 백흠과 왓슨 임도원의 이름이 뉴파라(뉴파라다이스, 백흠과 도원이 거주중인 도시의 이름)에 널리 알려질 날도 멀지 않았다는 말씀! “ 

그래, 이들은 탐정이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고, 공권력이 아닌 스스로 범죄자를 뒤쫓으며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이는 그들! 어디 유명한 액션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들은 사건해결외에도 이것저것 잡다한 문제를 해결해주고 고용비를 받는, 뉴파라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뉴파라에서 탐정은 제법 먹고살기 좋았다. 뉴파라의 치안은 지자체에서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탐정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데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에게도 곤란한 일을 처리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능 해결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흠이 존재하듯이, 분명 뉴파라에는 또 다른 탐정이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유명했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대외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특징은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덧입혔고, 덕분에 탐정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는 추세였다. 

그러나 인기에 비해 탐정 면허를 받는 일은 몹시 어려워, 실제로 활동하는 탐정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큼 더 환상에 빠지기 쉬운 법. 게다가 퍼진 몇몇 유명 탐정들의 일화는 뉴파라 탐정들의 위상을 드높였다. 어느정도였냐하면, 시골에서조차 뉴파라 탐정은 지나가던 개미 발바닥 먼지까지도 찾아낸다고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원과 백흠은 그런 아주, 유-명한 탐정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어르신들을 부축해드리거나 잃어버린 반지를 찾는 게 다였다. 탐정 면허를 따면 뭐하나, 신문에 광고라도 내는 게 일상인데. 심지어 요즘은 건너편에 파출소가 들어서 별로 문젯거리도 없었다. 도원의 본업이 원래 탐정 조수가 아닌 퇴마사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퇴마사로서 제법 유능한 도원과 열심히 알바를 뛰는 백흠덕에 둘은 배를 곯진 않았지만, 풍족하진 않았다. 백흠이 아무리 기다려도 일거리는 들어오지 않아, 결국 백흠은 온갖 알바를 전전하며 발로 뛰는 수밖엔 없었다. 도원은 도원대로 백흠은 백흠대로 슬슬 지쳐갈 무렵, 바로 오늘 아침에서야 의뢰인이 나타난 것이었다. 

" 그럼 알아서 볼일 보고 이따 12시 50분에 만나는 거다? ㅇㅋ? "

" 좋아. "

백흠은 잔뜩 신나서 콧노래를 불렀다. 이럴 때가 아니라 미리 고기를 사놔야겠다며 그는 우당탕탕 집을 나섰다. 도원도 나가기 전까지는 할 일이 있는터라,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

" 저.. "

" 의뢰인이세요? "

" 네, 탐정님 맞으시죠? 앉아서 얘기할까요?"

" 아... 네! “ 

말끔 단정한 머리, 구김 하나 없는 깨끗한 옷과 고운 손, 정리된 손톱. 기껏해야 백흠의 절반정도 올까 말까 하는 의뢰인은 차림새 자체만으로도 귀티를 풍겼다. 그는 둘을 발견하고 수줍은 듯 웃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 잘 쳐줘야 중학생정도 되어 보였다. 

" 부자야? " 

" 으응,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 

도원은 보자마자 백흠에게 작게 속삭였다. 미적지근한 대답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도원은 음료수를 주문한다며 뒤로 빠졌다. 한껏 빼입고 온(단정하게 꾸몄다는 말이 더 가깝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흠은 맞은편에 앉았다. 차분한 눈매와 입꼬리가 예쁜 의뢰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제가 연락을 드린 이유는... 탐정님께서 찾아주실 게 있어서예요. “

“ 찾을 거요? “ 

 설마 고양이나, 휴대폰이나, 그런 건 아니겠지. 벡흠은 그런 의뢰라면 이제 질색이었다. 

“ 그러니까... 음.. “

“ 말씀하세요. ”

" 아, 그러니까.. "

 의뢰인은 말을 꺼내기를 주저했다. 눈을 제대로 못마주치는 모습이 약간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잠시 보여줬던 어른스러운 모습에 비하면 의외였다. 백흠은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도원이 딸기와 녹차스무디, 그리고 초코프라페를 내려놓고 나서야 차가운 유리잔 겉면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던 의뢰인이 말했다. 

“ 네 번째 힘을... 찾아주세요. “ 

“ ? “ 

네 번째 힘? 

" 네 번째 힘이요? " 

 도원이 반문했다. 헉, 하고 잠시 사색이 되었다 우물쭈물하던 백흠은, 설마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 <제트스카이2: 돌아온 영웅>의 그... 네 번째 힘... 이요? “ 

“ 아, 알고 계시네요. 다행이다. “ 

“ 그게 뭔데? “

“ SF 메카닉 애니메이션인데 요즘 인기 많은 거. “ 

도원은 나중에 알았지만, <제트스카이> 시리즈는 전투기를 모델로 한 메카닉 주인공이 일족의 부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지도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찾아야 하는 힘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각각의 힘은 새로운 착용슈트로 발현되었다. 의뢰인이 말한 네 번째 힘또한 그중 하나로, 제작사에서 출시한 네 번째 변신슈트 모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라고 시리즈 애청자 백흠이 말했다.)

어쨌거나, 제법 전문가 포스를 풍기는 백흠이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 그거 완전 비싼 건데.... “

“ 얼만데? “

흘깃 의뢰인을 바라본 백흠이 탁자 아래로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3만원? 아니. 그럼? ———만원. 생각보다 큰 금액에 도원도 당황스럽게 눈을 깜박였다. 그쯤되면 잃어버리기도 쉽지 않은 금액이었다. 의아해하는 두 쌍의 눈이 의뢰인을 향하자 그는 민망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 사실... 제작사에서 공고가 떴어요. 초판한정 네 번째 슈트 조립키트를 판다고. 동생이 그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꼭 갖고 싶다 그래서 생일선물로 사줬는데... 택배 지부에서 첫 번째 시리즈랑 헷갈렸는지 엉뚱한 곳으로 보내버렸대요. “ 

“ 본사에 문의는 해보셨어요? “ 

“ 네, 해봤는데... 담당자 실수라고 조사는 해보겠다는데, 연락이 없네요. “ 

“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데 연락이 없다고요? “ 

“ 으음.... “ 

 대화를 가만 듣던 도원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 부모님께는 알리셨어요?   

“ 사, 사실... 부모님 몰래 사준 거라서... 말씀을 못드렸어요. 부모님 돈을 훔치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

용돈을 다 털었어요, 라며 흐리게 덧붙인 그는 멋쩍게 웃었다. 잃어버린 장난감을 찾는데 탐정을 고용한다는 발상부터, (용돈을 다 털었다지만) 실제로 구매를 했다는 사실까지 의뢰인의 배경을 쉽게 짐작할 수 없었으나 백흠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백흠은 등받이에 몸을 뉘었다. 처음 들었을 땐 그냥 그저 그런 물건찾기 의뢰인 줄 알아 내심 실망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시종일관 어른스러운 태도, 동생을 떠올리는 의뢰인의 얼굴에 맺혀있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며 백흠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통장내역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 결국 백흠은 자세를 바로 하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찾아드리면 될까요? “ 

“ 다음 주까지 가능하실까요? 그때쯤이면... 어머니가 오실 것 같아서요. “

“ 그럼 다음 주까지 찾아드리고, 틈틈이 연락드릴게요. 연락은 주셨던 곳으로 드리겠습니다. “ 

“ 네, 감사합니다. 선금은 적힌 계좌로 보내드릴게요. 20만원 맞지요? “ 

“ 맞습니다. “  

  의뢰인이 손목시계를 두어 번 두드리자 입금을 알리는 소리가 띵, 울렸다. 핸드폰으로 입금을 확인한 백흠과 도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흠은 기쁜 티를 살짝 감추지 못했다) 의뢰인도 조그만 몸으로 일어났다. 

카페를 나온 셋은 앞에서 인사했다. 가볍게 고개 숙이고, 저 멀리 멀어져가는 의뢰인의 주위로 덩치 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정장을 빼입고 있어 거리의 시선이란 시선은 다 잡아놓고 있었다. 가만 지켜보던 백흠은 덩치들에 가려 의뢰인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을 무렵 휘파람을 불었다.

“ 완전 부잣집 도련님이네? “  

“ 부러워? “

“ 당연하지! 돈 걱정 안 하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

2인 가구의 가장이 슬프게 소리쳤다. 

“힘들면 얼른 돈 벌어야지. 자, 일하러 갑시다 백씨. “ 

부업으로 그 가구를 먹여 살리는 수입원도 말했다. 

“ 나 백씨 아닌데! “

“ 그래그래 알았다, 얼른 가자 백씨네 고용주.“ 

도원은 성큼성큼 내디디며 훌쩍 멀어져갔다. 백흠은 그런 도원이 매정하다 투덜거렸으나, 막상 몸은 성실하게 움직여 발을 맞췄다.

 아직 풀리지 않은 추위에 봄은 쌀쌀했다. 얇은 코트를 챙겨입은 백흠도, 목티를 단단히 입은 도원도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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