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안녕, 나의 구원

EAND by M0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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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https://www.youtube.com/watch?v=9lBfaE8GCjM

가장 어두운 시간대는 언제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정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이 제일 짙은 시간은 해가 뜨기 바로 직전이다. 떠오르는 태양이 강렬한 만큼 어둠 역시 짙어지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빛과 어둠이 만나는 이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말이다. 저 멀리 있는 그것에게 목을 맡기기 전까지 나의 선택이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으니까.

 눈 앞에 앉아 있는 자크 씨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평온하고, 부드럽다. 긴 손가락으로 감싸인 잔에서는 향긋한 찻잎의 냄새가 난다. 며칠 전 자크 씨를 위해 식자재를 사러 갔을 때 집어 든 허브차였다. 씁쓸한 맛과는 달리 상큼한 향이 올라오는, 흔히 말하는 어른의 맛이라는 종류이다. 꽤 마음에 들었는지 자크 씨는 나에게 차의 종류를 물어본 후 리그와 아카데미의 책상 서랍에 이 차를 두고 매일 한 잔씩 우려 마셨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아, 우리가 앉은 테이블 위에는 자크 씨의 손에 들린 잔이 전부였다. 차를 마시는 소리가 외롭게 들리는 조용한 방 안.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의 깍지를 더욱 세게 쥐고 내 앞의 자크 씨를 가만히 바라본다.

 "역시 콜사 씨가 내려 준 차의 맛이 제일 좋네요."

 침묵을 이기지 못한 자크 씨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의 무시가 딱히 상관 없는 듯, 자크 씨가 다시 찻물을 한 모금 삼킨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말을 건다.

 "해야 할 일이었어요."

 "누가 그러길 바랬는 줄 알아?!"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참을 수 없었다. 나에게 밝은 빛을 보여준 존재가, 나의 앞에서 어둠을 사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온 힘을 다해 빛을 향해 나아가 보였는데 나의 발치에는 새카만 그림자가 달라붙어 있었다.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그것을 올바르다고 말하는 저 사람은 정녕 자크 씨가 맞을까?

 "나의 과거야.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었다고."

 "그 일이 알려지면 보울마을의 관장직 자격 뿐만이 아니라 예술가인 콜사 씨의 명성에 돌이킬 수 없는 흠집이 나는데도요?"

 "그렇다고 더러운 짓에 손을 대...? 그게 자크 씨의 '올바름'인가?"

 터져나오는 말을 전부 내뱉자, 거칠어진 숨에 손 끝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또 과호흡이 올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친절한 자크 씨라면 지금 이쯤에서 내가 진정할 수 있도록 손을 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나의 입 위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다정한 손길이 닿아 있었다.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쳐냈다. 꽤 세게 쳤는지, 손바닥이 아파온다. 과호흡 따위, 올 테면 오라지.

 "콜사 씨... 지금 숨을 고르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하, 그것 때문에, 아픈 건, 지금 내 심정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로 큰일 난다고요!"

 아아, 부드러운 입술이 나의 입을 틀어막는다. 숨을 나눠서라도 도우려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아무래도 어둠은 빛을 삼키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를 살리고 싶은 자크 씨의 행동은 오히려 나를 죽이고 있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다. 체육관 관장으로서, 예술가 콜사로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크 씨가 저지른 비리는 리그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일이다. 자크 씨가 사천왕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는 덮이지 않을, 더럽고 지저분한 내용이 적힌 문서를 집어 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자크 씨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 바보같이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크 씨가 나를 위해 저지른 비리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위원장인 테사는 눈치가 빠르고, 청목은 유능하다. 언제 밝혀질지 모르는 죄를 끌어안은 채 나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자크 씨의 얼굴은 내 몸에 대한 걱정으로만 덮여 있다. 가증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비애(悲哀)를 느낀다.

 "내일 기자회견을 하겠어. 그건 내 죄야. 내가 책임져야 해."

 "콜사 씨...!"

 "정답은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오답은 있다고 생각해, 자크 씨. 이건 옳지 않아."

 "한 번만... 한 번만 눈을 감으면 돼요... 딱 한 번만... 눈을 뜨면 새로운 해가 뜰 거에요. 새로운 날은 새로운 색으로 가득할 거고, 새로운-"

 나는 등을 돌렸다. 가장 빛나던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추락했고, 산산이 조각난 빛을 반사하며 밝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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