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휴가
여유롭게 보내보자고_시야와세의
그 날도 평범한 여름 휴가철의 하루였다.
“아~ 이번 여름 휴가에서 제일 잘 한 건 이 가게 온 거라니까요? 여기 이렇게 맛있는데 왜 인기가 없대?”
“개장한지 한달 밖에 안 됐고― 이런 시골꺼정 누가 온댜?”
“에이, 그래도!”
시야와세는 손님인듯한 여자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배낭여행을 온 여행객으로, 길을 잃어 우연히 가게를 발견하고 들어왔다고 했다. 바 테이블에 앉은 손님과 시시덕거리면서 떠들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시야와세는 곧 커피 두 잔을 내려와 하나는 자신이, 하나는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달그락 소리가 조용한 가게 안을 채우고 그녀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커피 마실 줄 알제?”
“어? 저 커피 안 시켰는데요?”
“내 마실 거 내리는 김에 내렸으니께 그냥 마셔~ 오랜만의 손님인디 디저트까진 내와야 하지 않겄남?”
순박한 시골청년처럼 웃는 시야와세에게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와! 서비스 장난 없네? 나만 알고 싶다! 사장 오빠 최고~!”
“오빠는 무신, 삼촌이라고 불러야~.”
시야와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늦었는디, 돌아가는 거 괜찮겠남? 휴가철이라 그런가 요 근래 이상한 놈들이 많이 꼬여… 나가 산책 나가믄서 들여다보고 있기는 헌디……. 아니다. 바래다줄꺼나?”
“에이, 가게 안 지키고요?”
“손님도 없는디, 뭘.”
“내가 홍보 해준다니까?”
“느만 알고 싶담서?”
“에이, 그건 그냥 하는 말이지, 뭐!”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보면 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흐르는 법이다. 커피가 바닥을 보이고도 한참동안이나 대화를 하던 그녀가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일정만 아니면 좀 더 있는 건데~.”
“어이구, 그러다 눌러 살겄어?”
“아, 삼촌한테 시집이나 갈까?”
“어디 가서 경을 칠 소리 말어.”
어느새 같은 동네 사람처럼 친해진 그녀를 시야와세는 그녀가 한사코 거절했음에도 걱정이 된다며 아는 길까지 배웅을 했다. 저 멀리 뉘엿뉘엿 노을이 지기 시작하고 그 것을 배경삼아 돌아온 시야와세는 나이를 먹은 아저씨마냥 느지막히 뒷짐을 지며 자신의 가게로 향했다.
“허이고… 오랜만에 떠들었구먼.”
손님은 없어도 가게를 지키기는 해야하니까. 그런 이유로 시여와세는 가게 앞 파라솔 아래 벤치에 앉아 턱을 괴고, 자신이 만든 무알콜 칵테일을 한잔 마시고 있었다. …손님은 커녕 사람 그림자도 몇 없었지마는,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였다.
그렇게 찾아온 저녁시간, 여유롭게 저녁을 즐기러온 가족을 한 팀, 달큰한 데이트 중인 손님들을 한팀 받고 나니 시간은 흘러 가게를 닫을 시간이 되었다. 조급하게 굴어도 사람은 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시야와세는 내일 장사 준비까지 끝내고 나서 가벼운 산책 겸 밤의 해변가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역시 바닷바람이 최고구먼… …응?”
저 멀리에서 심상치 않은 고함이 들려왔다. 퍽 즐거워 보이진 않는 목소리들에 시야와세는 발걸음을 옮겨 소란의 중심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것, 좀 놓으시라고……!”
“아, 술 한 잔만 하자니까~ 어? 왜 빼고 그래~!”
아, 아까 즐겁게 놀았던 여성이 생판 모르는 처음 보는 놈한테 끌려가고 있었다. 심지어는 손찌검까지 하려는 모습이어서 시야와세는 급히 달려가 그 남자의 손을 잡았다. 격리하듯이 두 사람의 사이를 막고 그녀를 등 뒤로 숨겼다. 술에 취해 보이는 남자를 똑바로 노려보면서 시야와세는 말했다.
“뭔 일이여.”
“넌 또― 뭐야!”
그 남자는 술에 취해 분간도 못하는 지 중간에 난입한 시야와세에게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뺨을 맞고 비틀거리던 시야와세를 본 그가 허세에 가득 차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비리비리하게 생긴 게 말이야! 또 터지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고―.”
입 안이 터졌나, 나도 다 죽었구나. 시야와세는 하하! 웃음을 터트리다가 빙그레 웃으면서 상대를 마주했다.
“뭐, 뭐야. 한 대 맞더니 미쳤어?”
“내는 말이여, 법을 무진장 잘 지키려고 한단 말이여. 우짜믄 안 걸릴까 고민하고 있었는디 이래 먼저 쳐 주니, 웃음이 안 나올리가 있남?”
“이 자식이……!”
다시 휘둘러오는 주먹을 가볍게 잡은 시야와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남자에게 말했다.
“정신 꽉 붙잡아라. 기절하면 입 돌아간다.”
스산한 말에 상대가 의문을 뱉기도 전에 시야와세는 무릎으로 상대의 명치를 가격했다. 상대는 그 짧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죽은 거 아냐?”
시야와세는 그 말에 쪼그려 앉아서 남자를 내려다 봤다. 남자는 컥, 컥 소리를 내면서도 시야와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녀, 아직 안 죽었구먼.”
그는 조금 다행이라는 말투로 말했다. 이 나이부터 빨간 줄 그일 수는 없으니까. 쓰러진 남자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악에 받쳐 물었다.
“진짜, 당신. 뭔데……!”
“나?”
시야와세는 잠시 고민하더니 웃는 얼굴로 쓰러진 남자의 뺨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삼촌.”
대화를 이어갈 생각은 아니었는지 시야와세는 멍하게 서 있는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쫓아올까 싶어 중간중간 뒤를 살피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포기했는지 그 남자는 사라져 있었다. 그는 가게에 돌아와 불을 켜고 여자를 의자에 앉혔다.
“다친데는 없남?”
“응…….”
놀란 듯 눈물이 터져 눈이 부여있는 그녀에게 시야와세는 한숨을 쉬며 얼음으로 찜질팩을 만들어주고 적당히 시원한 물을 건냈다. 별빛만이 비추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가게 안은 환히 밝아 얼핏 대낮같기도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당연한 걸. 차 끊겼는디, 숙소가 근처인겨?”
“아니… 밤 바람이 좋아서 산책가다가 조금 멀리 와 버려서…….”
“고생이었구먼.”
훌쩍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가게 안을 돌아다닌다. 그러고 보니 글 쓰는 사람이라고 했나.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제 방을 빌려주자. 시야와세는 몸을 일으켰다.
“내는 아직 차가 읎어. 가게 차리느냐고 다 써서. 근처에 잘 데도 없고……. 그러니께 오늘은 여서 자.”
“…테이블 붙여서?”
“방에서, 인마.”
시야와세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적혀있는 문을 가리켰다. 작지만 매일 깔끔하게 정리는 해두니 하룻밤 자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삼촌은 어디서 자게?”
“내는― 따로 잘 데 있다.”
시야와세는 바깥의 해먹을 떠올렸다. 아, 간만에 시원한 밤바람을 자장가 삼아 잘 수 있겠군. 벌써 그립고 기쁜 생각이 든다. 그래,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여자가 농담처럼 말했다.
“사실 다른 데서 자려고 나 방에서 자라고 한 거 아냐?”
“들켰네, 들켰어~. 내는 자러 가야겄다~.”
시야와세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가게 안에 구비된 담요를 챙겼다.
“아, 쓰다 불편한 거 있음 말 혀~ 바로 앞에 있을테니께.”
“진짜 말투 어르신 같아……. 당신 몇 살이야?”
“스물넷.”
“뭐야, 내가 더 많잖아!”
“어이쿠, 누님이었구먼.”
시야와세는 낄낄 웃으면서 후다닥 바깥으로 나갔다. 아, 조금 다사다난했지만 그래도 좋은 하루였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삐그덕거리는 해먹에 편히 몸을 뉘었다. 파도 소리가 잔잔하니 마치 자신을 재우는 자장가같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다음 날. 여자는 아침에 점심까지 제대로 챙겨먹고 나서야 가게를 나섰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던가, 시야와세는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그녀를 배웅하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 또 언제 놀러올런지.”
안 오려나.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섭섭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지나, 한달 뒤.
“사장님~!”
“예~! 갑니다!”
어째서인지 가게는 대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오죽 바빴으면 혼자로도 충분했던 가게를 버틸 수 없어 아르바이트까지 구했겠는가. 가게가 잘 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어 손님에게 물어보니 유명 작가가 여행하면서 쓴 책 중에 죽기 전에 먹으러 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적었다더라.
“어쩐지 사진을 잔뜩 찍어가드만.”
시야와세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손님 중 몇몇이 말도 안 했는데 삼촌이라 부르는 것을 보니 아마 그 때의 일을 책에 썼나 보지. 그는 괜히 쑥쓰러워져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렇게 숨돌릴 틈 없이 바쁜 하루가 지나고 저녁 노을이 뉘엿뉘엿 져 어둠이 깔릴 무렵,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을 때에 문에 매달린 종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마감 했는디―.”
“어, 뭐야. 오늘은 일찍 닫아? 한달 전만 해도 심야 영업 하지 않았나∼?”
익숙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만큼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야, 유명한 작가 누님 아녀?”
“아, 그렇게 부르지 마~!”
그녀는 여전히 스스럼없이 굴었다. 시야와세 또한 그랬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떠들며 시간을 보냈고, 그 날의 가게는 한밤중이 될때까지 꺼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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