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아무말해요

그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

일상맞남?_시야와세의

바람에 갈색 머리칼이 흩어졌다.

“오늘은 생각보다 서늘하구먼…….”

그에 따라 흩어지는 목소리의 주인은 시야와세, 여기서 조금 떨어진 해변가 식당의 사장이자, 직원이자, 홀서빙 아르바이트였다. 뭐, 그래. 직원을 구하지 못해 전부 맡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직 할부가 남은 자신의 애마에 꼼꼼하게 산 짐을 넣고 있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뭔가 빠진 것 같은… 아.”

계란을 빼먹었군. 허리를 펴며 한숨을 쉰 그는 주머니에 지갑이 잘 있음을 확인하며 다시 마트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 오늘, 그의 마지막 평온이라는 것을…….

*

망설임 없이 마트에서 계란 코너를 찾던 그가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질적인 냄새가 그의 코끝을 간지럽혔기 때문이다. 그는 의문을 해결하고자 근처의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마침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이라, 유니폼을 입은 직원을 찾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저기요. 혹시 여기서 가스 냄새….”

순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를 찢을 듯한 폭발음과 함께 뒤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폭발의 여파로 바닥을 구른 그가 삐― 하는 이명을 애써 무시한 채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눈 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아수라장, 그저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맞았다.

“이게, 이게 뭔 일이여……!”

“불이야!! 불이야!! 다들 대피하세요!!”

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시선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멀었다. 제기랄, 귀가 맛갈 정도라니. 제 옆에 있었던 직원도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부딪히기라도 했는지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대피하세요! 출구는 저쪽입니다! 손님도 대피하세요, 어서! 여긴 위험합니다!”

그러나 시야와세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넘실거리는 화염 속, 살려달라며 울고 있는 아이들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화염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절한 여인이 있었다. 시야와세는 직원에게 손짓해 우선 여자를 끌어와 안전하게 둔 후 직원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부터 대피 시키세요. 아이들은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예?!”

직원의 놀란 소리를 뒤로하고 시야와세는 팔로 최대한 얼굴을 가린 채 불속으로 뛰어들었다.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만을 보고 뛰어들어온 그가 발견한 것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는 아이들과.

“괜찮남? 다친 데는 없고?”

“아저씨…! 엄마가… 엄마가……!”

“무서워요……. 살려줘요, 살려주세요……!”

…자신의 뒤에서 무너져 퇴로를 막아버린 건물의 천장이었다. 시야와세는 짧게 혀를 차고 아이들을 안아들어 불길이 적은 곳으로 내달렸다. 가만히 있기에는 이 장소도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쪽은 주차장으로 나가는 뒷문이 있으니 이 방향으로 나가면…….

“…제기랄.”

그러나 신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폭발의 영향이 컸는지, 아까 함께 무너진 건지, 화마를 피해 쉼없이 달려왔건만, 이미 잔해로 가득해 뒷문으로는 갈 수 없었다. 이러다간 질식하겠군. 괴롭게 숨을 쉬는 아이들을 잠시 내려다보던 그는 발걸음을 돌려 2층으로 향했다.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뿌연 연기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보니 여기도 글렀다 싶었는지 시야와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불길이 미치지 않은 3층으로 내달렸다. 며칠 전, 이 마트에서 친해진 직원에게서 3층에 직원 전용 테라스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곳이라면 실내처럼 유독가스에 갇히진 않을테니, 아직 살 길은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3층, 테라스의 육중한 유리문을 열고 아이들을 내려준 뒤, 불길이나 가스를 최대한 막으려 문을 닫고 다서야 그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과한긴장에 근육통이 생길 것 같고, 불길이나 잔해를 억지로 뚫고 들어오느라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글서글하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 내는 시야와세라고 하는디― 다들 삼촌이라고 부르제. 느그들은?”

서로 쏙 닮은 아이들은 서로를 보며 눈치를 보다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최수연…….”

“혁이에요……!”

쌍둥이인가보구먼. 거의 동시에 이름을 말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심시키던 시야와세의 주머니에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야와세는 잊고 있었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안심한 듯 웃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용케 안 떨어뜨렸구먼. 엄마나 아빠 번호 알고 있는 사람?”

“저요!”

“나도 알아!”

아이들은 연결해줄거냐는 듯이 시야와세를 올려다봤다. 그 모습에 시야와세는 상황에 맞지 않는데도 웃음을 터트리면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탁 트인 곳의 벤치에 앉혔다. 그리고는 잠금을 풀고, 핸드폰을 그 고사리 손에 건네주며 번호를 누르게 시켰다. 이내 저 멀리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제 가슴팍만큼 오는 유리난간에 몸을 기댄 시야와세는 주의를 끌듯이 손을 흔들었다. 스피커폰으로 돌렸는지 저 멀리서 잠시 연결음이 들려오고 기진맥진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엄마다!”

“엄마아…….”

혁이라고 소개했던 남자아이가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트렸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보였던 여자아이, 수연 또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자 시야와세는 아이고… 앓는 소리를 내며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그, 아까 가게 안에 있던 사람인디요. 아이 둘 일단 다 무사하고요.”

“뭐라고요……? 세상에,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지금은 어디에…….”

“그것이…….”

시야와세는 짧은 시간 있었던 일을 전화기 너머로 전했다. 전화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이를 어쩌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전화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소리를 들은 시야와세가 아이들을 챙기며 소리에 집중했다.

“00대 소방관입니다. 현재 불이 난 마트 앞에 집결해있습니다. 3층에 계신 것, 맞습니까?”

“예에. 3층인데, 마트 입구 쪽으로 서 있고 난간이 유리라서 보이실 겁니다. 손 흔들겠습니다.”

시야와세는 통화를 이어가면서 손을 크게 흔들었다. 어깨에서 흐르는 피가 낯설으면서도 익숙했다.

“위치 확인 했습니다. 지금 사다리차가 오고 있으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그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통화는 계속 연결해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야와세는 그제야 제대로 한숨을 내쉬며 욱신거리는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엄마!!”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이 벌써 3층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닫은 문 새로 연기가 스물스물 기어나오고,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것을 시야와세는 몸소 알고 있었다.

“위험하겠는디…….”

시야와세는 유리문 너머에서 넘실거리는 불길을 보며 떨고 있는 아이들을 안아들었다. 평생 불길에서 도망쳐 보는 경험이 얼마나 되겠나, 싶냐마는. 기억나는 과거를 합친다면야 꽤 많은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이들을 안고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켰다. 경황이 없어 아이 중 아무에게나 들려준 핸드폰에서 소방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제 말 들리십니까? 지금 어디 계십니까?”

“들어온 입구로 연기가 새어나옵니다. 그쪽에서 최대한 떨어지는 중이고……”

쨍! 하는 소리가 시야와세의 먹먹한 귓가를 때렸다. 젠장, 생각보다 더 빠르잖아. 시야와세는 식은땀을 흘리며 불길에 잠식되어가는 곳을 노려봤다.

“나가 이럴 줄 알았지. 언제까지 버텨야 합니까!”

“앞으로 5분 뒤에 사다리차가 도착합니다!”

“그 때까지 못 기다려! 밑에 완충 쿠션 부탁합니다!”

“예?! 무슨 짓을 하시려고… 선생님, 들리십니까? 선생님!”

시야와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폈다.

“이제와서 로프를 만들기엔 글렀고… 아.”

시야와세의 눈에 밧줄이 들어왔다. 분명 이 건물, 외벽 페인트 작업 중이었지. 작업자가 두고 간 로프를 본 시야와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이거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밧줄을 당겨보고 아이들에게 묶어준 그는 수건 대신이라도 하라는 듯 아이들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 들려줬다. 조금 좁다싶이 앉은 아이들이 불안하게 시야와세를 올려다봤다.

“아저씨… 이제 어떻게 해요? 우리 죽어요?”

“떼끼! 이놈아, 나이도 어리믄서 함부로 죽는다는 소리 하는 거 아녀. 밧줄로 잘 묶어놓긴 했는디, 혹시 모르니까 줄 꽉 잡고 있어야 한다? 알긋제?”

아이들의 긍정을 기다릴새도 없이 시야와세는 로프를 난간의 기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내려다 본 2층은 벌써 바깥으로 불길을 내뿜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 조심히 한 번 가 보자고!”

시야와세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잠시 물리고 유리창을 걷어 차 내려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한번에 내려가면 위험하겠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라도 하는 듯 시야와세는 밧줄을 몸에 두르고 아이들을 내려보낼 준비를 했다.

“기양 엘레베이터나~ 그려, 놀이기구 타는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여. 눈 깜짝할 새에 내려갈테니께 무서워 할 거 하나 읎다. 알긋제?”

아이들은 불안한 듯 시야와세를 보면서도 다리를 조금씩 움직여 허공으로 내딛었다. 시야와세는 그를 응원하듯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면서 그렇지, 그렇지. 하고 말했다. 마주한 시선이 조금씩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어느 정도 팽팽하게 내려갔다고 생각해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행스럽게도 아래에서 준비하던 소방관들이 아이들을 받아낼 수 있어서 시야와세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등 뒤엔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화염, 앞엔 불안해보이는 밧줄 하나. 핸드폰 또한 아이들과 함께 내려보내니 그의 주변은 그저 화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소리 뿐이었다.

“돛대보다 높을랑가……. 비슷한 거 같기도 허고.”

그냥은 위험하려나.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시야와세는 그립다는 듯 멀거니 웃음지었다. 오싹오싹하구먼. 실없는 소리와 함께 웃음을 터트린 그는 밧줄을 묶어둔 난간을 한번 더 확인하고 자신을 잡아먹을 듯 넘실거리는 화염을 마주한 뒤 그대로 밧줄을 타고 곡예하듯 빠르게 바닥으로 향했다. 안전하게 아이들을 내려주던 속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빠른 속도였다. 열기나 무게 때문에 밧줄이 끊어져 바닥으로 추락하기는 했지마는, 바닥에 미리 깔려있던 완충 쿠션 덕분에 안전하게 떨어질 수 있었다. 몸의 여러군데가 그을리고, 옷도 없어 상흔이 그대로 보이는 몸이었지만 그는 웃으며 사람들의 부축을 받았다.

“선생님!!”

“들것 가져아, 얼른!”

“하이고, 마……. 몇 년 만에 이런 짓거리를 해보나…….”

내가 이번 생에서 스물 다섯 해 살았으니까… 삼십년만인가. 시야와세는 들것에 실려가면서도 무의식에 빠져드는 듯 중얼거렸다.

“계란… 사야하는디.”

그 말로 끝. 시야와세는 피곤한 눈을 감아내려 의식을 어둠 속으로 떨어뜨렸다. 아마 오후쯤엔 병원에서 깨어나며 차 안의 신선했던 식재료에 골머리를 썩겠지만, 지금의 그는 과거의 향수에 잠겨 오랜만에 편하게 잠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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