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에 대한
간단한 고찰_호타루비의
어항. 명사. 물고기를 기르는 데 사용하는, 유리 따위로 모양 있게 만든 항아리.
어항의 사전적 의미는 물고기를 기르거나 잡는데 사용하는 것이라 한다. 사전은 인간들이 쓰고 정리한 것, 아마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거의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나는 사전을 덮었다.
“어항이라…….”
어느 둥근 모양의 유리를 떠올린다. 그 안에 있는 것은, 과연 단순한 물고기인가. 혹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런 건, 내가 생각한 인간들이 아니야……! 내가 생각한 육지가 아니야!!!’
…우리들의 동족인가.
나는 종종 그들을 떠올린다. 구하지 못했던 인명들을, 그들을 유흥거리 삼았던 악인들을, 바다 깊은 곳에서 육지에 대한 환상을, 공포를, 증오를 가지고 태어날 아이들을.
“하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었지. '인간에게 먼저 다가가 알아가자고.'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어인섬 외곽,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는 나쁜 어인도 있다는 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인간의 상냥함을, 육지의 따스함을 믿었다. …친구가 인간에게 잡혀가고, 나 자신이 살해당할 뻔 했어도. 육지의 책을 전해주거나, 납치 당할뻔 했을 때 구해준 인간이 있기에. 나는 아직도 인간을 믿고 있다.
“타루비 대령님, 슬슬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네.”
부하의 말을 듣고 읽던 책을 정리한 후에 오늘의 일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샤본디 제도의, 천룡인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귀족의 호위, 라고 들었다. 임무를 수행할 주요 인원은 나와,
“표정이 안 좋아보이십니다, 대령님.”
“별로요. 아르타 중령이야 말로 어젯밤 서류 때문에 제대로 잠을 못 주무신 건 아니십니까?"”
“알면 커피나 한 잔 사주십쇼…….제기랄, 이러다 해적이 아니라 서류한테 죽겠어.”
절친한 친우이자 믿음직한 부하, 아르타 중령. 그는 내가 인어라는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인간 중 하나였다. 이동 중, 듣는 귀가 없어졌다 싶으면 아르타 중령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찜찜한 기분이 들어.”
“갑자기 말입니까?”
“갑자기 말이지. …거지 같은 소문도 들었고.”
“왜요, 변태적인 성향이라도 있답니까?”
“뭐, 그런 것도 있고. 그거만이라면 대―충 흘려버리는데 말이야.”
아르타 중령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기 주저할 때의 그는 항상 저렇게 자기 나름의 고민을 한 뒤에 입을 열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며 그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드디어 결심이 선 듯 머리를 헝클었다.
“이상한 수집욕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대령님.”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 가 아니잖아…….”
그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는 대강 알고 있다. 아마 소수민족을 노예, 혹은 수집품 정도로 보고 있다는 소리겠지. …내가 추구하는 정의에 반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것을 무너뜨리면 내가 원하는 이상을 향해 갈 수 없으니. 나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르타 중령.”
“매번 그 소리지. …지금이라도 아프다고 하고 빠져, 대령님.”
“소문이 와전 되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의외로 취급은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소중한 수집품이니까,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아주 소중히 대해지고 있으면 그나마 나은 것이라며 자신을 속였다. 눈 앞의 친우는 미간을 구겼다.
“또, 또, 거짓말하지. 또.”
“예리하시군요. 역시 동물……계 능력자.”
“당신 지금 그냥 동물이라고만 하려고 했지, 응?!”
“도착한 듯 하니 슬슬 나가보죠.”
“말 돌리기냐, 임마!”
말이 좀 거칠기는 해도 그는 상냥하다. 인간치고는 솔직하고, 강하며, 약자의 입장을 제대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능력에 비해 아직도 중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 어서오십쇼. 믿음직한 해군분들.”
갑부, 그 이상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이 우리를 반겼다. 그러니까 이름이…….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드핸리아 님. 이번 강도 사건으로 심려가 크셨겠죠. 이번 일은 성공시켜보이겠습니다.”
“예, 예, 해군분들만 믿겠습니다. 아, 임무를 맡으시려면 지켜야 할 것을 아셔야할텐데…….”
아, 알 것같다. 이 쎄한 느낌. 나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그는 우리에게 '수집품'을 보여주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아르타 중령 또한 눈치챈 듯 미묘하게 표정이 굳어있었다. 나는… 그럭저럭 익숙했다. 그렇기에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드핸리아의 뒤를 따랐다.
“예고장에 쓰여진 건 오늘 밤 12시 정각. 나의 목숨과 함께 수집품들을 전부 가져가겠다고 하지 뭡니까―. 경호는 쓸만한 사람으로 용병을 구했지만, 나의 수집품들이 훔쳐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서…….”
드핸리아는 계단을 올라가며 떠들어댔다. 말하자면 해군은 제대로 믿을 수 없지만 물건 지키기 쯤이야 잘 하겠지, 하는 심리일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렇게 최상층, 물건이 있다던 방에 다다르면 하인인듯 보이는 자가 문을 열었다.
“어떠십니까! 나의 아름다운 수집품들이!”
예상은 했지만, 결과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참담했다. 얼핏 정말로 인형인 것처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어여쁜 인간 아이, 양다리를 벌릴 수 있을 만큼 벌려 움직이지도 못하게 족쇄를 달아놓은 족장족, 공중에 수갑을 찬 채 걸려있는 수장족, 움직일 수도 없는 작은 새장에 갇혀있는 소인족, 몸을 한껏 움츠린 채 공포에 떠는 눈으로 내려다보는 거인족, 그리고…….
“이것이 가장 특상품이지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미모의 남자 인어!”
친구.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바다를 닮은 색의 지느러미, 그 때 잡지 못했던.
“클리드…….”
“예?”
“저희 대령님께서 자알 지켜주신다고 하십니다. 스읍, 그나저나 이 많은 ‘사람’을 지킨다고 하면… 당신까지 챙길 여유는 없을텐데, 슬슬 네 자리로 돌아가는게?”
아르타 중령이 드핸리아를 사나운 눈으로 노려봤다. 명백한 축객령에 드핸리아는 불쾌하다는 듯이 방을 나갔다. 철컥, 하고 바깥에서 문을 잠구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자잘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르타 중령이 문에 등을 지고 허리춤의 검을 세운 뒤 검에 기대듯 앉았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아르타 중령.”
“됐습니다. 아는 사람이지? …인사나 해.”
빌어먹을. 거지 같은 예감은 맨날 들어맞고 지랄이야. 아르타 중령은 험한 말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그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어항에 갇힌 친우에게 다가갔다. 그는 어항속에서 잠시 입을 뻐끔거리더니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날 알아? 인간 중에 내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을텐데.”
“클리드, 그러니까, 어, 넌 날 미워하겠지만… 나야, 호타루.”
“호타루……. …울보 겁쟁이에 사고뭉치 호타루?”
“응, 울보에 겁쟁이에 사고뭉치 호타루.”
그는 지금의 내 모습에서 과거를 찾으려는 듯 멍하니 보고 있다가 스르륵 유리 안으로 가라앉더니 물거품을 낼 정도로 웃음을 터트렸다. 질책받으려나, 생각했었는데. 그는 튀기듯 물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말했다.
“역시 돌고래라 그런가? 많이 컸다? 성격은 다 죽었으면서.”
“넌 여전하네.”
“그야 난 원래부터가 작은 물고기니까! …그래서?”
“응?”
“여기 왜 온거야. 그 망할 놈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왜, 도둑 안 맞게 잘 지키라고 하든?”
아무것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허리에 둘린 가죽때문에 완전히는 나갈 수 없는 어항에 상체를 걸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맞춰 살아남으려면 너같은 녀석도 있어야지.”
“클리드, 나는.”
“아냐, 아냐. 너도 너 나름의 생각이 있는 거겠지. 겁먹거나, 자기 목숨만 살리려고 인간인 척 하는게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넌 어렸을 때부터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질책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애는 여전히 그때와 같이 상냥했다. 그는 나와 달리 힘겨운 세월을 보내야했을 텐데. 울컥, 눈물이 솟아나올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어어? 뭘 고개를 숙이고 그래, 그때 잡혀간 일 때문에? 에이, 그거 네 탓 아니야! 울지 마, 인마!”
좁은 어항에 갇혀 꼬리조차 흔들지 못하는 친구가 도리어 날 위로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
“그래서? 우리 울보를 보좌해주는 인간인가, 그쪽은?”
“보좌는 아니고, 가끔 얼굴 보고 같이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지.”
“아~ 그렇구만. 그래서 이 광경을 보고 느낀 거 없나?”
“납치범이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라면 방관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중인데.”
“뭐? 하하! 이거 화끈한 친구네. 해군은 그런 짓 하면 짤리지 않아?”
“책임은 대령님이 질텐데 뭐.”
“어, 호타루~ 대령까지 올라간거야? 짜식. 육지 음식 먹고 싶다고 찡찡대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다가온 아르타 중령이 쉽게도 클리드와 친해졌다. 아마 그 나름의 상냥함이 클리드에게 전해진 걸지도 모르지. 나는 그를 두고 방에 갇힌 여러 사람과 대화를 시도했다.
“해군 본부 대령…….”
“호타루비 대령이지? 알고 있어, 소수 종족들 사이에선 유명하다고.”
“어인이었던가……. 어쩐지 우리를 잘 챙겨주더라.”
“아~ 따분해.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데? 영영 여기에 묶여 있어야하나? 풀어줄 수 있으면 풀어달라고. 최소한- 저쪽의 인간 아이는 말이야.”
수장족의 남자는 손가락으로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안녕?"
"…앨리스."
“앨리스? …나가고 싶니?”
“사우스블루, 바바르티아, 항구에서 다섯번째 집. 도와주세요.”
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에 있는 전원,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꼭 내보내주겠습니다.”
한쪽에서 거인족의 상태를 살피던 아르타 중령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대령님,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어?”
“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대체 당신 목숨이 몇개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나라고, 하나!”
“한 번 태어난 목숨. 내 정의에 따라 약자들을 구하는데에 쓴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아르타 중령. 책임은 모두 제가 질테니, 당신은 아무말 없이 계셔도 됩니다.”
“하, 나 진짜……. 당신 내 성격 알면서 그러는 거지.”
제기랄. 아르타 중령은 한숨을 내쉬더니 벽 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세워 앉았다.
“불침번. 피곤해서 잘 겁니다. 15분 뒤에 깨우십쇼.”
안 깨우면 안 일어날지도 모르고. 아르타 중령은 덧붙이며 눈을 감았다. 아마 무엇이 일어나든 눈 감아주겠다는 소리겠지. 나는 그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는 상황을 살폈다. 범인이 예고한 시간은 앞으로 20분 남짓.
“약속 시간을 지킬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천장에서 뚜껑이 열리고 고개를 내민 것은 이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 내려 내 목에 단검을 들이밀었다. 아르타 중령은 한쪽 눈 만을 뜬 채 내 모습을 응시했다. 아마 내 목에 칼이 들이밀어져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해군? 그 망할 뚱땡이는 해군도 부릴 수 있는 건가. …붉은 머리에 장신, 하얀 머리에 흉터… 아, 그래. 유명하시잖아, 댁들. 내가 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뭐, 자신 있나봐?”
“별로 자신 있을만한 실력은 아닙니다만. …어디 소속이십니까?”
“알아서 뭐하게. 목숨을 위협받는 주제에 심문?”
“당신 말따마다 제 뒤에 계신 분은 만만치 않은 실력자라, 안심이 되지 않으면 베어버리실 것 같거든요. 절 협박할 여력이 되신다면, 이 분들을 데려가시는 게 수지에 맞으실텐데요.”
은발의 습격자가 가만히 보고 있더니 내 목에서 칼을 치우며 말했다.
“뭐야, 당신들 해군 아냐?”
“해군 본부 소속 대령 호 타루비 입니다.”
“마찬가지, 중령 아ㄹ… 아니, 먼저 네쪽을 까야하는 거 아냐? 신원이 확실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 못 보내.”
아르타 대령은 매서운 눈으로 습격자를 바라봤다. 습격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속을 풀어주며 말했다.
“내 고용주는 혁명군이야. 의뢰서는 진작에 태웠고, 뭣하면… 그쪽의 누님한테 물어보던가.”
“아, 배달된다던 게 그쪽이었구나?”
족장족의 여자가 다리를 주물럭거리더니 말했다. …혁명군이었나. 정말 혁명군이 맞나?
“당신이 혁명군이라는 증거는 있으십니까?”
“뭐, 증거는 없는데. 혁명군이라는 증거를 여기저기 가지고 다닐 수는 없잖아. 아, 한가지 있긴 하지. 거기! 나 줄거 있지 않아?”
“언제 찾아가나 했다.”
습격자는 여자에게 전보 벌레를 던졌다. 자신을 혁명군이라 밝힌 족장족의 여자는 그것을 익숙하게 받아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누군가가 연락을 받더니 톡, 톡,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모스 부호……. 아르타 중령."
“말 안해도 하고 있어.”
아르타 중령은 잠시 두 사람의 통신을 듣더니 그럼에도 의심가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당신들이 혁명군이라고 떠드는 건 잘 알겠어. 제기랄, 어쩐지 얼굴이 익숙하더니……. 그래도.”
“아르타 중령이 저 정도까지 말하면 맞는거겠죠. 믿겠습니다.”
“…그걸로 믿는거야?”
“우선은 시간이 촉박하니까요. 다른 분들도 준비는 끝낸 모양이고.”
“하아, 이번에도 시말서 행이구만…….”
“고생이 많아― 중령 양반.”
클리드가 습격자에게 안겨 다가왔다. 그의 허리는 탈출하지 못하게 꽉 죄어 놓았던 가죽의 자국이 남아있었다.
“클리드.”
“난 갈거야. 바다든 땅이든. 자유로운 곳이면 어디든. 아, 혹시 총 있어? 아니면 휘두를 수 있는 둔기.”
“폭탄은 있는데.”
습격자가 말했다. 폭탄?
“폭탄은 왜 필요하십니까?”
“거인족 친구가 나가기엔 입구가 너무 좁아서. 뭐……. 밖에 지원은 와 있으니까 안에서 터트리기만 하랬어.”
내 의뢰는 거기까지야. 하고 말한 습격자가 나에게 클리드를 안겨줬다. 클리드는 어딘가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내 손으로 부수고 싶은 게 있어.”
저 어항말이야. 꺼낼 때 깨지 말라고 부탁했거든. 클리드는 담담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그를 안아들고 어항의 앞으로 걸어갔다.
“내 발은 안 되려나.”
“어쭈, 꼬리 힘 세다고 자랑을 하지? 뭐, 좋아! 어인과 인어의 슬픔을 담아서… 차버려!”
나는 그 목소리를 신호로 꼬리에 무장색을 둘러 어항을 걷어 찼다. 쨍그랑, 하고 어항은 볼품없이 깨져버렸다.
“이렇게 쉽게 깨질건데. …이렇게 날 오랫동안 붙잡아두고 있었단 말이지.”
“클리드.”
“응?”
“내가, 열심히 할게. 우리를 잡는 모든 어항을 깨트릴게, 클리드. …다시는 너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뭘 말하나 했더니.”
클리드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다 손을 뻗어 내 볼을 쭉 잡아 늘리더니 입을 열었다.
“울보 겁쟁이에 사고뭉치 호타루!”
“그게 내 이름은 맞지만, 클리드… 아파…….”
“좋아, 좋아. 이제 좀 우리 애 같네. 난 자유롭게 떠날거야. 인간이 날 가뒀지만 네가 어항을 부숴줄 걸 믿고, 나도 인간을 믿을거야! 그러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말고, 무리 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해.”
“…고마워.”
“고맙기는.”
클리드는 그 고운 얼굴로 웃음지었다. 아르타 대령이 짐짓 비장한 얼굴을 하고 다가오길래, 나는 잠시 수장족의 사람에게 클리드를 넘겨주고는 서로 마주해 무기를 꺼내들었다.
“우리도 변명하려면 상처 하나는 있어야겠지 말입니다, 대령님?”
“아프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아르타 중령.”
서로의 검이 서로의 어깨에, 옆구리에 상처를 낸다. 직후, 우리가 있던 방의 한쪽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소란 후 드핸리아가 달려왔을 때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해군 두 사람과 산산조각 난 어항만이 그 방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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