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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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원

BGM. The Black Keys - Weight of Love

 

키르잔.

너는 우리의 손금과 손마디가, 살갗과 뼈마디가 맞닿았던 최초의 순간을 기억하니. 서로의 말초가 속눈썹이 얽히는 것과 같은 속도, 그리고 경도로 다가와 존재를 맞대던 그 순간을 말이야. 우리가 하나였던 만큼 둘이고, 둘인 만큼이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돌이킬 수도 없이 입증되었던 바로 그때를 말이야.

그 순간은 우리를 살라 먹으러 찾아온 불결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천억 개의 태엽 장치─평범한 사람들은 시계라고 불리우는 이것으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이해해 보려고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에 삶을 더욱 비천하게 만들 뿐이지─속으로 파고들어 그것들을 고요히 멈추었던 말단의 순간과 완벽히 일치하고 있단다.

그리하여 거듭 살게 하는 불이 삶과 죽음 사이로 파고들었을 때에, 형제여. 

글쎄 내가 너와 닿아있지 않았겠니?

그래서 나는 느낄 수 있었지. 불이 네 빈 뼈 안으로 스며들고 그 안에서 날갯짓하는 천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말이야. 내가 네 손을 쥔 마디에 더욱 힘을 주었다고 느꼈다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란다.

잡아보니 실로 조각가의 손이더구나.

오래전에 살았던 조각가들은 나무나 돌을 깎고 쪼갤 때에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무언가, 이 세상에 응당 존재해야 하는 것인데 약간의 착오로 바깥이 아닌 안편에 숨은 모양으로 존재하게 되어버린 무언가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꺼내어 환한 세상에 내어놓는다고 설명하면서 그들의 예술 활동에 숭고함을 부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단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그가 어떤 뜻으로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지만─쉽게도 잊어버린 것을 보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나 보지─너를 만난 이후에는 종종 그 일화를 떠올릴 때가 있어.

조각가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한 가지가 더 있는데,─물론 이것 또한 누가 말해준 것이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그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려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찰나의 영광을, 비통을, 아름다움을, 또 사랑을 그 자리에 영원히 붙들어 놓고자 하는 필멸자의 애상을 원동으로 하여 정과 망치를 들어 올린다는 것이었다. 그것까지 떠올리고 나서는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지.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네가 보고자 하는 천사는 어떤 연유로 네 뼛속에 살게 된 것일까. 기어코 그 안에 든 것을 바깥으로 꺼내어 두어, 찰나에 지는 꽃처럼 부질없는 사랑과 미를 영원의 형태를 가진 것으로 빚어 붙들어 놓는다면, 네 혼백의 속에는 과연 무엇이 가득 들어찰까.

질문에 대한 답은 나로서는 알 수도 없는 것이고, 고단한 갈망을 지닌 너로서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일 테니 우리는 몰이해의 수준에서도 나란히 놓여 동일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둘이었지. 불에 그슬려 피도 살도 머리칼도 남지 않아 완전한 잿더미로 돌아가 한데 뭉친다고 해도 둘. 기댈 어깨도 잡을 손도 마주 볼 눈도 필요했으므로 둘이어야만 했던 둘.

 아,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기원*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 구름이 불을 뿜고 하늘 너머 높이 솟은 산이 모든 권능을 상징하던 시절, 모든 사람이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를 가지고 태어나던 시절. 그들이 한 번에 보고 읽고 말하던 시절. 모두가 완전함을 지니고 태어나던 그때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다지. 팔을 뻗어 누군가를 끌어안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므로, 사랑을 모르는 소년소녀들은 그저 완전했고 또 그랬으므로 오만했다고 전해진단다. 그러니 신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두려웠겠니. 우리를 짓눌러 죽이려는 것과 같이 반으로 나누어 평생 서로를 찾아다니도록 저주를 걸었지. 그러한 결핍으로부터 사랑이 태어났다는 전승이니, 제법 온당한 설명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허망함은, 공허는, 외로움은 모두 네가 너고 내가 나라는 사실로부터 비롯하여.

그러나 우리는 여기 이 자리에 손을 맞잡고 서 있으며.

 

자, 불이 다가오는구나. 눈을 감고 저울을 든 천사(Καιρός)가 사랑을 들고 찾아오기를 기다리려무나. 그의 날갯짓 소리는 아주 가볍고 고요할 것이니까 입은 다물고 귀는 기울이는 편이 좋을 거야. 걱정은 마렴. 그들이 우리를 두 쪽으로 갈라두어 영원토록 만나지 못하도록 검은 칼로 땅을 절단하고 하늘을 갈라 우리가 저항하다 다리 잘린 고래들처럼, 자유를 앗긴 거인족들처럼 토막 난대도, 금과 납으로 빚은 화살이 시위에 매겨지는 한, 불어오는 서풍에 파도와 포말이 함께 일어나는 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 Hedwig <Origin of Love> 변형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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