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내린 세상
마르차야
전쟁이 끝나자 군수품 공장들은 차례차례 문을 닫았다. 그보다 더 ‘생산적으로’ 국재를 사용할 곳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들면 부상을 당했거나 아예 세상을 뜬 군인, 그러니까 전쟁영웅들의 유가족을 위한 지원금이라거나. 차야가 있던 곳은 그 시작을 열었다. 어느 곳보다도 규모가 작았고, 폭발물이나 총기를 다루는 곳도 아니었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마르셀은 그런 차야를 파티에 초대했다. 파티 주최 명목은 종전 기념, 애도, 기타 그럴듯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었다. 차야는 편지를 통해 한 차례 거절했다. 그러나 결국은 오게 되었다.
명사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 일반 병사가 더 많았다. 가끔 자랑스럽게 훈장을 단 장교가 눈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들 모두에게는 직업과 계급을 불문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손에서 잔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목에 참 어울리는 모양새야, 라고 차야는 생각했다.
그 시들하다는 남작은 파티 개최사만 겨우 끝내고 모습을 감췄다. 파티를 연 이름은 남작이었으나, 실제로 행사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마르셀이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온갖 표정으로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고는 멀어졌다. 그들 틈에는 마르셀이 단발적인 재미를 얻을 사람이 없었다. 딱 한 사람, 차야를 제외하고.
“왔네, 포도꽃.”
마르셀의 굽이 당당하게 뚜걱거리는 소리가 누구보다도 수수한 미백색의 행색을 한 포도꽃, 차야에게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둘의 만남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저 마르셀과 그의 부와 소비와 자신감을 피상적으로 선망하는 몇몇만이 잠시 눈길을 주었을 뿐. 그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르셀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금방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리라 여겼다.
“멘토가 꼭 오라고 하면 한 번쯤은 들어 봐야죠.”
억지로 왔다는 말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 자신의 마음에 저항하려 해본 걸지도 모르지. 마르셀은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엉뚱한 추측을 했다. 줄 것이 그것뿐이었으니 오히려 매달리게 되었다. 들고 있던 술을 우아한 몸짓으로 내려놓은 마르셀이 물었다.
“그래, 그다지 간절하게 바라지는 않았던 평화가 찾아온 기분은, 아니면 감상은 어때? 뭐든 말해봐.”
질문을 듣고 차야가 들어올린 어두운 얼굴에 화려한 조명이 들어왔다. 거의 정면으로 쪼이는 빛이 그에게서 죽음을 덜어내갔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는데요.”
그러나 파티의 주인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으므로, 그들의 토론은 결국 모든 이들의 중심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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