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방

제가 기른 가장 귀한 것을 앗아가지 마시옵고

天使狩獵 by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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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기 위해서 엄마는 정말 많이 아파야 했어.

그래서 생각했지. 사랑은 아픔이구나.”

도쿄 스미다구의 목조주택, 세 뼘 너비의 이층 방 창문을 열면 고가도로 아래로 수은처럼 반짝이는 스미다강이 보입니다. 수상버스가 인공섬까지 사람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그 강 건너에는 일본의 정신적인 성지, 센소지 사찰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깥의 이야기. 내 세상은 육평 반의 다다미방,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배나무가 있는 안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미닫이창을 열고 나와 툇마루 아래로 다리를 대롱대롱 늘어뜨려 볼 수도 있겠지만, 겨울엔 금지입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내진 설계도 제대로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조금 더 작았을 때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세상의 빛을 본 순간부터 내 심장 판막과 심실엔 무언가 결함이 있었습니다. 내 순번 이전에 첫울음도 못 내보고 차례로 절명한 형과 누나가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어느 정도 감수한 일. 나는 포기하지 않는 두 분 덕택에 무균실의 인큐베이터에 안치되었습니다.

이듬해, 첫돌을 넘긴 제 손목에 어머니가 묶어준 것은 붉은 실이었어요. 남은 붉은 실은 집 안뜰 배나무 가지에 묶어두었다고 합니다.

“오래오래 살아야 해, 지면 안 돼.”

엄마는 제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일부러 엄하게 말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음, 죄송해요.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어요…….

어린아이의 하루는 어른에 비하면 몇 배는 길게 느껴져서, 소아병동의 시간은 영원 같았습니다. 심전도계의 전극을 붙일 때는 너무 차갑고 섬뜩해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매번 흠칫 놀랐어요. 침대맡에 쌓아둔 동물 인형, 알록달록한 별이 매달린 모빌, 아주 부드러운 촉감의 담요, 씹지도 않았는데 침에 녹는 푹 익힌 야채들, 바이털 사인과 의료 기계들의 얽힌 전선들.

저는 어리광을 부리는 편은 아니지만, 너무 많이 아플 때는 침대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괴물이 튀어나와 저를 채갈 것이 두려워서(유아가 할 법한 상상입니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이불을 꼭 덮어달라고 엄마에게 당부했어요. 캄캄한 밤에 어머니는 주삿바늘에 관통된 내 손등 위에 아주 살짝, 깃털만큼의 무게로 그분의 손을 겹쳤습니다. 왜일까, 그건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요.

다행히 괴물이 나를 잡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처럼 란도셀을 메고 소학교에 입학한 날엔 정말 뛸 듯이 기뻤어요. 네, ‘뛸 듯이’. 친구들처럼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고, 운동장 언저리만 맴돌았어도 즐거웠던 나날입니다.

고작 그 정도로 만족했기 때문일까요? 몰래 아이스를 나눠 먹고 파래진 혀를 엄마에게 숨겼기 때문일까요? 고학년이 되자 가만히 앉아 있었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곧잘 눈앞이 뿌예지면서 어지럽고, 그리고 마침내 시커먼 괴물의 정수리가 복도 창문으로 보인 날, 나는 그만 수업 시간에 졸도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소학교 본관 1층 신발장에 넣어둔 새하얀 운동화도 그대로 둔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전날 친구들과 헤어지며 내뱉은 “마타네またね”가, 그렇게 “사요나라さようなら”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든 인사가 작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평범하게 건강하게 살아가려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는데도 어머니는 슬퍼하시지 않았습니다. 가물가물한 중에 이 말이 귓가에 흘러 들어왔습니다.

‘약할 때만 내 아이 같아서….’

그 후로는 아주 안전한 가옥의 이층 방에서만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천체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의료기기들 사이 광학 망원경이 생겼고요. 접안렌즈를 통해서 본 별, 여름 축제 때 스미다강 위로 터지는 불꽃, 어찌나 아름답던지. 날개가 달린 친구도 만들었습니다.

방에만 있으니 게을러질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에요. 환자에게도 철저하게 지켜지는 일과가 있습니다. 눈을 뜬 직후에는 체온과 혈압과 맥박을 측정하는 시간, 정량의 식사, 30분의 스트레칭, 원격 진료, 정해진 자료와 영상을 통한 학습, 당과 염분 보충을 위한 간식, 한 시간 이상의 낮잠, 어머니가 허락한 책을 읽고 과제를 하는 시간, 저녁 식사는 1층에서 세 가족이 함께, 목욕과 위생 관리 시간, 화장실에 가는 시간, 쉬는 시간(이때 별을 관측했어요.) 이상의 스케줄이 전부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의 마지막, 어머니는 데운 물 한 컵과 흰 알약을 받친 나무 쟁반을 들고 제 방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제대로 삼켰는지 입안을 손가락으로 꼼꼼하게 헤집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잠이 쏟아졌으므로 저는 호출 벨을 든 채 누웠습니다.

저는 방 안에서 중학 과정을 마쳤습니다. 제 성적은 도쿄도 내 유수한 고등학교를 노려볼 정도로 좋았다고 합니다. 일대일 수업을 받는 데다가 오로지 방 안에서 굴리는 것이라고는 머리뿐이니 치사하다고 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집안 생활이 답답하지도 않으냐고 물어본다고 하신다면, 저는 그 이전에 훨씬 좁은 곳에 갇혀서 지냈기 때문에 익숙해요. 언제 멈춰버릴지 모를 동력에 의존하는 데다가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않는, 원망스러운, 몸이라는 감옥에.

이때쯤에는 과제 외에도 흥미 본위로 따로 검색하거나 열람하는 자료가 많았던 시기입니다. 정말 우연이었어요. 들키지 않게 제 손으로 열람 기록을 지운 것도 처음이지만, 제가 본 내용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2047년 신 교토시의 우스유키자카 학원 문화제에 대한 보도와 나노머신이라는 신기술. 공개된 영상에서는 모두가 희망에 차서 웃고 있었습니다. 저를 비웃는 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대체 뭘 했느냐고, 미래도 기적도 짓밟아온 건 다름 아니라 저였으니까요.

저치고는 뚜렷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심장이 아팠습니다. 날개 달린 친구가 나를 추동질했습니다. 그렇게 한 가지 생각이 마음을 온통 헤집어놓도록 둔 채 며칠을 보내고, 입안을 뒤적거리는 손가락을 피해 수면제를 솜씨 좋게 숨긴 밤.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설치고 나서 내가 할 일을 깨닫자 망설임이 없었어요.

매일 먹어야 하는 약과 보조제를 건너뛰는 일부터 시작해서, 어머니의 감시가 소홀해지는 틈을 노려서 방과 현관을 연결하는 계단을 쉼 없이 오르내리는 행동을 너덧 번 반복하면 사지가 덜덜 떨리고 폐가 찢어질 것처럼 아픕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몸을 질질 끌면서 기어 올라갔습니다. 이를 악물어도 맑은 침이 새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나중에 보면 눈의 실핏줄이 터져 있습니다. 이렇게 심박수를 급격하게 높였다가 싸늘한 물로 목욕하는 일을 반복했어요.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 몸이 망가져야 어머니도 나를 고립시킬 명분을 잃을 테니까요.

마침내 제가 의식불명에 빠진 날, 사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요. 그날도 어머니는 제 손을 겹쳐 잡고, 부서질 것 같은 목소리로 고요하게 속삭였습니다.

“사라지지 마, 제발.”

그 말을 입속의 알약처럼 굴리면, 혀끝에 텁텁하고 씁쓸한 가루를 남깁니다. 꿀꺽 삼키고 나면 눈물이 나올 것처럼 쓴맛. 모조리 소화한 줄 알았지만, 혀를 내밀어서 확인하면 혓바닥에 유해 같은 가루가 몽글몽글하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말입니다.

그사이 내 몸은 조금씩 자라났습니다. 이제는 자라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멈춰있었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어요. 손끝을 맞대어 문지르거나 구두코로 바닥을 후비는, 내 말단이 제대로 거기에 있는지 확인하려던 습관도 사라졌습니다. 때문에 군더더기 같은 동작도 사라졌어요.

한차례 파괴되었던 나에게는 살풍경한 학원의 모습조차 아름답습니다.

‘사라지지 마’라는 말은, ‘살아, 지지 마’처럼 들리기 시작했어요. 어느 쪽이 더 어려운 일일까요. 사라지지 않는 것과, 살아내는 것 중에서.

이제 그 말은 내 혈액 속을 순환하는 주문. 내가 아직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 가호를 불어넣어준 사람 또한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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