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춤출 수 있는 세계 | 2023.02.17
주문을 맞은 채로 입을 벙긋거리다 다문다. 너에게 다가가려던 걸음을 그대로 멈춘다. 뻗은 손을 다시 주먹쥐어 내린다. 마치 동작 그만 주문에라도 걸린 것만 같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내가 그래도 되는건지조차 짐작이 되지 않아서, 그렇게 그 자리에 있는다.
그리고 피니테. 잠겨있던 목소리가 돌아온다. 나는 그것이 허락이라도 된 것처럼 너에게 다가간다. 네 앞에 선다. 한쪽 무릎을 꿇는다. 고개를 파묻고 훌쩍이는 네 모습을 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행동이 싫다면, 곧바로 이야기해줘.”
세워두었던 무릎을 마저 꿇는다. 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너를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나의 죄과를 안다. 네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안다. 그러므로 마치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서지는 것을 대하듯이, 그렇게 나는 너를 안는다. 아주 살포시, 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만 네 어깨에 고개를 묻는다.
“미안해. 너무 늦게 깨달아서. 마지막에서야 너를 떠올렸어. 기억이 돌아온 뒤에는 혼란스러웠어. 그래서, 너무 늦어버렸어.”
나직한 목소리는 마치 머나먼 과거에서 온 것처럼 텅 비어 있다. 모든 것이 돌아오기 전, 네가 마리샴이 아닌 마릭이고 내가 마리아가 아닌 메리였을 적, 우리가 이렇게 뒤섞여 혼란스럽지 않던 시절에 내가 그러했듯이.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메리 우드워드로서 네게 건네는 사과이다.
“…미안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포옹을 푼다. 그 사이 네가 고개를 들었을지, 여전히 훌쩍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너를 바라본다. 짧지 않은 침묵이 흐른다.
“…있잖아, 샴. 내가 예전에 마담 에스메이에 대해 이야기했던 거 기억 나?”
내가 마리아였던 때, 네가 마리샴이었던 때, 우리가 뒤섞이지 않았던 또 다른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뀐 세계 속에서 나는 너에게 마담 에스메이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고는 했다. 어떻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는지, 내게 무엇을 알려주었는지, 그 사람과 함께하며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래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예전에 내가 그랬었지. 선생님은 언제나 학생들 하나하나의 문제에 신경을 기울이셨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그걸 도울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셨다고. 그런데 내가 그 때 이야기하지 않은 게 있던 것 같아.”
사실,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담 에스메이의 친절함은 분명 소중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책과 뉴스와 신문과 미디어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이 가지는 선의, 교훈적인 말들, 따뜻하면서도 헌신적인 사랑, 언제나 친절한, 그래서 우리와는 다르고 우리는 따라갈수조차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것이 아니었다. 안 그런가? 중요한 것은―
“선생님은 상냥하신 분이었지만, 자신을 잃어버리면서까지 모두에게 헌신하는 사람은 아니었어.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야. 톰 브라운이 선생님을 계속해서 괴롭혔을 때, 선생님은 학교와 학부모에게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셨어. 브라운은 정학을 먹었지. 모든 게 그림처럼 풀리진 않았지만, 적어도 선생님은 보호받았고, 브라운은 좀 더 자신의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되었어.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양 손으로 당신의 손 하나를 붙잡는다. 부드럽게 그것을 감싼다.
그러니까 이것은,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로서 네게 하고 싶었던 대답이다.
“사람에게 친절한 것과 너 자신을 소모하는 건 달라. 상냥한 것과 네게 일어난 일을 덮어두는 건 달라. 나는 네가 싸우기를 바라는 게 아니야. 다시 한 번 너를 세상과 맞서는 최전선에 서라고 밀어붙이려는 게 아니야.”
나는 네가 지난 번의 마릭 나비드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세상이 끔찍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은 적이었고, 세상이 바뀌어야한다고 믿는 유일한 친구는 죽어버린 그 삶을 또다시 견디기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네가 이번 생의 마리샴 나비드로 사는 것 역시 바라지 않는다. 네 말대로 그 어떤 순혈주의자에게도, 슬리데린에게도, 이종족 차별주의자에게도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고 넘어가던 하루하루를, 지난번보다는 상냥한 세계 속에서 더 많은 친구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네가 어디있는지는 알 수 없는, 너를 소모해서 다른 이들을 구하는 삶을 살기를 요구하고 싶지 않다.
…한 때는 네게서 샴의 모습을 찾았다. 그 친절하고 다정한 나의 친구를 다시 보고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너를 소모시켜가며 만든 것이라면, 그 친절이 너를 갉아먹고 있었다면.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릭 나비드. 너는 나를 구할 필요 없어. 나는 두 번 다시 그 때의 메리 우드워드로 돌아가지 않아. 악의의 손에 쥐어진 인형, 세상이 겨누는 칼날이 되지 않아. 나는 배웠어. 내가 수치라고 생각했던 것, 오점이라고 믿은 것, 그래서 메리 우드워드는 영원히 묻고 싶어한 것들은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걸. 그건 수치가 아니었어. 오점이 아니었어. 낙인이 아니었어. 그것을 알게 된 이상, 지난번과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아. 그건 세상이 ‘마리아’에게 친절했기 때문이 아니야. 네가 나에게 상냥했기 때문이 아니야.”
물론 친절은 중요하다. 다정은 소중하다. 헌신은 고귀하다.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손을 붙잡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환대가 있어야 사람이 될 수 있다. 싸움 안에서도 상대를 설득하고, 분노 아래에서도 희망을 가지며, 포기하지 않고 두드려야만 돌아오는 응답이 있다. 변화란 그렇게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 둘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어짐이, 변화가, 분명 다른 결말을 맞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마담 에스메이가 한 말을 떠올린다.
내가 유쾌할 수 있는 이유는 내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하고 싶은 것을 해.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힘들고 지치더라도 견딜 수 있는 거야.
한 사람을 바꾸는 것은 중요하지. 세상을 바꾸는 것 역시 그만큼이나 중요하고. 너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단다. 하지만 잊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게 있어. 정말 모든 것이 더 나아지고, 모두가 행복해지더라도, 그렇게 한 사람이 바뀌고, 한 집단이 바뀌고, 한 세계가 바뀌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게 모두 무슨 소용이겠니?
“네가 노력하길 바라지 않아. 네 스스로를 쥐어짜길 바라지 않아. 괜찮지 않은 걸 괜찮다고 넘어가길 바라지 않아. 그냥 이야기해줘. 솔직하게. 내가 무서우면 무섭다고, 꼴도 보기 싫다면 꼴도 보기 싫다고, 저리 가길 원한다면 저리 가라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용서하기 싫으면 용서하지 마. 모르겠다면 모르겠다고 해. 원망하고 싶은 만큼 원망하고, 힘든 만큼 힘들다고 말해.”
마땅히 해야 할 용서 같은 것은 없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구원은 없다. 설사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네게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너와 같은 편에 서서 싸울 거야. 네가 내게 친절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 없이. 그것은 내 의무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해. 그러니까 나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하지 마. 나를 위해 그 어떤 노력을 할 필요도 없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네가 ‘해야만 할 것 같은 것’ 말고.”
나는 네가 춤출 수 있는 세계를 바란다. 웃을 수 있는 세계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나의 세계가 아니다.
“네게 바라는 건, 그것밖에 없어.”
너를 향해 웃어보인다. 어쩐지 눈가가 시큰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목소리가 젖어있다는 걸 너는 눈치챘을까?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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