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우드워드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2023.02.28

국가 폭력 및 학살에 대한 언급과 일부 묘사가 존재합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가 가히 집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는 10년 전 싱클레어 시클라멘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악몽으로 밤을 지새웠던 어느 평범한 날의 일이었다.

기억이 돌아온 이후, 그는 많은 밤을 악몽과 함께 보내야 했다. 그면서 그가 아닌 존재가 있었다. 그가 저질렀으되 그가 저지르지 않은 행동이 있었다. 그의 것이면서 그의 것이 아닌 죄악이 있었다. 

한 서류가 있었다. 아니, 서류‘들’이 있었다. 그가, 메리 우드워드가, 머글 태생 등록위원회가 심문이라는 명목하에 고문을 가하고,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고, 합법적이고도 지극히 행정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앗아가고, 주변인들을 고통에 빠지도록 만들었던 사람들의 이름이 담긴 서류였다. 그 앞에서 애원하고, 빌고, 울부짖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침을 뱉고, 욕설을 하고, 끝내 말을 할 기운조차 사라졌던 사람들의 목록이었다. 

매일 밤, 매일 밤 그 서류들이 꿈에 나왔다. 등록위원회의 로고가 박힌 종이에는 그의 서명이 쓰여 있었다. 그는 그 서명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목숨을 좌지우지했다. 어떤 경우 그는 그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했으나 ―그리고 욕을 듣고, 애원을 듣고, 분노를 보고, 절망을 보았으나― 많은 경우에 그들은 그저 이름으로 존재했다. 그렇기에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의 보가트에는 얼굴이 없었고, 그는 영문조차 알지 못한 채로 리디큘러스 주문에 실패했다.

그의 악몽은 곧 그가 가진 기억 자체였다. 이번 생의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는 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살해당하느니 살해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차별받느니 차별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밑에서 깔리느니 위에서 깔아뭉개기를, 압제당하느니 압제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메리 우드워드와 다르게 그는 사람의 존엄을 믿었다. 선을 믿었다. 평범하게 선량한 사람, 어쩌면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그 기억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 그 자신이라는 것을. 처음에 그는 메리 우드워드를 부정했다. 메리 우드워드는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코 메리 우드워드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메리 우드워드와 관련된 모든 단어들을 거부했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배신자, 앞잡이, 의장 메리 우드워드는 죽었고, 내 앞에 남은 것은 아무 잘못 없는 내 친구 뿐이라면…  그럼 나 마릭 나비드는 누구를 원망하지?

그는 그가, ‘메리 우드워드가’ 가한 가해의 희생자를 보았다. 필사적인 부정은, 모든 변명은 그 존재 앞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그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많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각자 줄 수 있는 답은 달랐다. 이안은 그들의 죄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는 우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루는 자신이라면 원망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 스프링은 중요한 것은 미래의 의지라고 했고, 비앙카는 용서와 원망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말했다. ‘메리’에 의해 짓밟힌 이들만의 몫이라고. 그리고 당신, 싱클레어 시클라멘은… 

누군가는 아니라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네가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죄를 전부 떠안는 게 옳을진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종종 악몽을 꾸더라도 죄책감에 침몰하지 마. 감히 주제에 행복해도 되냐고 자문하는 대신,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줘. 네 이름은 마리아야. 메리가 아니라.

 

그는 이전 생의 싱클레어 시클라멘을 기억했다.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았던 사람. 한때의 친구, 어쩌면 동료였을지도 모르는 이를 향해 너를 배제하겠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던 사람. 그렇기에 당신은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해 보였으나― 이번 생의 당신은 말했다.

혼자 있는 건 참 외롭더라. 어떻게 그걸 견뎠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는 당신의 죽음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했다. 이전의 삶에서 메리 우드워드는 전장에서 죽었다. 이번의 생에서 당신과 그런 대화를 나누기에는 제 기억만으로도 벅찼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과 그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당신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신, 싱클레어 시클라멘은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죽이려 했던 마음 그 자체고, 후회의 잔재이기도 하지만 온전한 사람이라.

마리아가 ‘메리’가 아닌 것처럼, 싱클도 ‘싱클레어 시클라멘’이 아니라고, 비록 과거의 기억이 우리를 잠식할지언정 ‘마리아’가 살아있는 것만큼이나 ‘싱클’도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그는 그때 온전한 대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침묵과 끄덕임, 고맙다는 인사가 그가 했던 전부였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때였고, 죄책감과 부정이 뒤얽혔던 때였다. 해야만 하는 결심이 있었다. 외면해서는 안 되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러나 두려웠다. 당신의 말에 기대버리고 싶었다. 당신이 이번 생의 싱클을 택했듯이, 그도 마리아로 남고 싶었다. 어쨌거나 마리아와 메리는 다르니까. 그의 이름은 마리아이지 메리가 아니니까. 그런 이유로. 

하지만 당신과 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에게는 이 문제가 과거의 후회, 깨뜨려 버린 도자기 인형, 그와 동시에 부수었던 마음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극복과 나아감에 대한 대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렇게 풀어가기에는 그를 쫓아오는 것이 있었다. 넘어서기에는 그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는 것이 있었다.

이제는 안다. 그때,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가 한 잘못이 무엇인지. 어떤 부정은 그 자체로 가해였다. 어떤 시간은 극복되어서는 안 되었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망각되어서는 안 되었다. 어떤 화해는 이루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박제된 시간 안에 갇힌 존재, '그가' 그 시간 안에 가둔 존재, 결코 그와 화해할 수 없는 존재를 외면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 입을 막아버리고,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것을 의미했다. 

20년동안 내가 겪은 일을 곰곰 생각한 후, 나는 사회적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용서와 망각은 부도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자연적인 시간 의식은 실제로 상처 치유의 생리학적 과정에 뿌리를 두고, 사회적인 현실 이미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 때문에 도덕의 바깥에 있을 뿐 아니라 반도덕적인 성향을 지닌다.¹

그러므로, 그는 메리 우드워드를 부정해서는 안 되었다. 그 존재를 잊어서도 안 되었다. 메리 우드워드의 삶은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의 삶만큼이나 그의 것이다. 그의 생을 이야기할 때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의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그 생에서 메리 우드워드를 배제할 수는 없다. 

이 민족은 스스로 끝내지 못한 12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독일 청소년은 괴테나 뫼리케, 폰슈타인 남작에 의지할 수 없고, 블룽크, 빌헬름 셰퍼, 힘러를 배제할 수 없다. (…) 독일적이라는 것이 마티아스 클라디우스의 후예라는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나치당 소속 서정시인 헤르만 클라디우스를 조상의 대열에 끼워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²

그는 메리 우드워드다. 그에게는 머글 태생 등록위원회의 탄생부터 그의 죽음까지 7년, 그가 수장이 된 뒤부터 계산한다면 5년의 시간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가 스스로 끝내지 못했던, 끝내지 않았던, 그래서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렸던 그 나날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 모든 죽음과 폭력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는 당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통합해야 했다.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끊임없이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것을 결코 망각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그의 책장에 놓인 수많은 책들이 뜻하는 바였다. 그가 언젠가 훌쩍 떠나버리는 여행의 의미였다. 당신이 싱클레어 시클라멘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는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메리 우드워드를 받아들인 방식이다.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어. 하나같이 피로 얼룩진 과거가 있는 곳이었지. 어떤 나라에서는 비밀경찰이 한밤중에 문을 부수고 사람들을 잡아갔고, 어떤 나라에서는 전국민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신고하게 만들었어.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가두는 수용소가 있었고, 그들을 고문하는 건물이 있었고, 그들을 죽이고서 흔적을 없애버리는 소각장이 있었어. 

나는 그 모든 공간에서 나 자신을 봐. 메리 우드워드를 느껴. 머글 태생 등록위원회에서 내가 서명했던 모든 서류, 선고했던 모든 판결, 내렸던 모든 명령을 기억해. 그것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도. 나는 그걸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어. 내가 저지른 일의 희생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는 한, 어쩌면 그 모두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폭력의 희생자를 만났다. 세계가 그것을 지우는 방식을 보았다. 그들은 잊히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원한을 품고 세상에 침묵한 채 손가락을 치켜들고 버티³었다. 외치는 방식은 제각기 달랐다. 어쩌면 바라는 것도 모두 달랐다. 단지 그들은 말했다. 

기억해라. 우리의 원한을 받아들여라. 사과하고,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하고, 동시에 결코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라. 갈등을 덮으려 하지 마라. 과거를 지우려 하지 마라.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도 말하지 마라. 

망각하지 말 것, 부정하지 말 것, 외면하지 말 것.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은 독일인이 아니며, 그 민족에게 어떤 충고도 할 수 없다. 나는 기껏해야 어렴풋하게나마 민족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다. 그 공동체는 자신들의 가장 깊은 굴욕의 날에 행했던 것과, 예컨대 고속도로처럼 무고하게 보이는 것까지 비난하는 민족공동체이다. (…) 독일민족에 의한 정신적인 파기, 단순히 책들뿐 아니라 12년간 행해졌던 모든 것의 파기는 부정의 부정일 것이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긍정적이고 구원적인 행위이다. 그것을 통해서만이 원한은 주관적으로는 위로받고, 객관적으로 쓸모없게 될 것이다.⁴

“사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아마 그걸 결정하는 건 내 몫이 아닐 거야. 그래서 나는 일단, 잊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해.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해야 하니까. 언젠가 너는 내가 메리가 아닌 마리아라고 했지. 하지만 설사 네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모든 피해에 책임이 있어.”

그는 알고 있다.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은 주제넘은 것이다. 그에게 들을 의무는 있을지언정 말할 권리는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최소화되어야 마땅하다. 단지 그럼에도 언어가 치솟을 때가 있었다. 외침을 참지 못할 때가 있었다. 망각을 강요하는 흐름은 너무나도 강대하다. 그 역시도 거기에 때로 휩쓸리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돌려졌다는 좋은 핑계가 있었고, 볼드모트라는 더 거대한 악이 존재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불편하다.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의 말은 부분적으로 맞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부정하고자 하는 유혹에 휩싸인다. 그만두고자 하는 충동에 시달린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되돌려지기 전에, 너는 나를 배제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었지. 내가 네게 이 모든 걸 말해주는 이유는 그때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야. 네가 기억해 주길 바라. 이전의 너는 대의를 위해 친구를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었어. 지금의 너는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싸우지. 나는 지난 삶에서 우리가 보낸 모든 시간에도,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에도 네가 나를 지금 친구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아.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네 친구로서.

내가 잊으려고 할 때마다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줘. 도망치려 할 때마다 붙잡아줘. 나에게는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해줘. 괜찮지 않다고, 이야기해 줘. 그 모든 건 전혀 괜찮은 게 아니라고.”

그는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의 마지막 외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들어야 할 것은 희생자의 목소리다. 알려져야 할 것은 희생자의 언어다. 증언되지 못하는 이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어쩌면 당신은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신은 기억할 수 있다. 지난 생의 당신은 많은 것을 보았다. 그로부터 많은 이들을 보호했다. 그러니 어쩌면 당신에게는 말할 자격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희생자에게 증언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압제자가 입을 여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했다. 침묵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다. 덮어서도 안 된다.

지난 생이었다면 그가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10년 전이라면 당신이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싱클이면서 동시에 싱클레어 시클라멘인 당신에게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인 것 만큼이나 메리 우드워드야. 내게는 죄가 있고 책임이 있어. 그러니 내가 감히 입을 열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 버리지 않도록 도와줘.”


본문의 모든 각주 달린 문장의 출처는 장 아메리, 죄와 속죄의 저편, 안미현 역, (필로소픽,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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