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와 춤을

[오즈도로] 케이크

마법사와 춤을 오즈 X 도로시

덕질용 by 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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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즈. 잠깐 일어나 볼래요?"

오즈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반쯤 떴다. 어두컴컴했던 방에 불이 들어왔고, 사정없이 자신의 눈을 찔러댔다. 눈을 몇 번 문지른 오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일로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푹 잔 듯 온 몸이 개운했다. 도로시는 방 안의 테이블에 자그마한 케이크를 올려 두고, 초를 꽂았다.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도로시와 마주 본 오즈는 반쯤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웬 케이크입니까? 언제 사다 두셨어요?"

"어, 어제 근처 가게에서요. 웬 케, 케이크냐뇨. 오즈, 오늘 크리스마스잖아요."

포크와 작은 접시를 건네며 도로시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창가로 시선을 돌리자, 아직 한밤중인 듯 밖은 새까맸다.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눈이 좀 많이 내린다는 것 정도. 이미 길가에 쌓인 눈 위로 커다란 눈송이들이 흩날렸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뭘 했더라.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오즈는 도로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지, 지금은 열두 시예요. 크리스마스가 되, 되자마자 오즈랑 케이크를 먹고 싶었어요."

"... 잘 먹을게요."

"자, 잠깐만요. 불을 붙이고..."

초에 불을 붙이고 방 전등을 끈 도로시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의자 끄는 소리만이 방을 울렸고, 일렁이는 촛불에서 나오는 따뜻한 빛이 둘 사이를 비췄다. 둘 다 어린아이처럼 말없이 촛불을 바라보다가, 촛농이 흐를 때 쯤 도로시가 자신도 모르게 촛불을 불었다.

"... 오, 오즈랑 같이 불려고 했는데. 흐, 흐를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누군가랑 같이 케이크를 먹는 건 처음이네요."

"아, 아뇨. 오즈도 불어요."

"예? 저는 그냥 먹어도 괜찮은..."

"아뇨! 기, 기다려봐요."

다급하게 새 초를 꺼낸 도로시가 이미 녹은 초를 빼고 그 자리에 새 초를 꽂았다. 오즈는 그 과정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케이크를 함께 먹자며 깨운 것도, 이렇게 초를 꽂아주는 것도 처음이라. 그는 괜시리 코가 시큰거리는 듯해서 콧잔등을 만지작거렸다. 피처 생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었지만, 오늘 같은 날에 옛 기억에 잠겨 궁상떨고 싶지는 않았다. 도로시가 허둥대며 성냥을 긋고, 초에 불을 붙였다.

"오, 오즈. 빨리 불어요."

활짝 웃는 도로시의 재촉에, 오즈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촛불을 껐다. 흰 연기가 흔들리며 날아갔고, 초 냄새가 났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초에 바람을 부는 자신. 함께 케이크를 먹을 도로시. 따뜻하고도 포근한 겨울날의 밤. 오즈는 포크를 들었다.

"... 즈! 오, 오즈! 빨리 일어나요!"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울먹거리며 자신을 깨우는 도로시였다. 눈을 후비는 듯한 쨍한 전등 빛을 본 오즈는 그만 허탈함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그렇지, 꿈이었구나. 크리스마스까지 며칠이 남았더라. 느릿느릿 물 먹은 솜 같은 상체를 세우자마자 명치에 뭔가가 부딪쳤다. 컥 소리를 내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그마한 갈색 케이크 하나가 보였다. 케이크 판에 맞은 명치가 쓰라렸지만, 커피 향이 기분 좋게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도로시는 오즈의 손에 케이크 판을 쥐여주고는 초를 꽂았다. 불이 잘 붙지 않는 성냥을 몇 번 긋고 불을 피운 도로시는 초에 불을 갖다 댔다. 그리고는 신난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오, 오늘은 오즈 생일이잖아요."

"... 네?"

"초 노, 녹겠어요. 빨리 불어요. 아, 자, 잠시만요. 불 좀 끄고."

허둥대며 불을 끈 도로시는 박수를 치며 허접한 노래를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오즈. 생일 축하합니다. 촛농이 떨어질깐 노심초사하며 빠르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끝낸 도로시는 팡파레를 터트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되지 않아, 오즈는 한참을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도로시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마, 마음에 안 들어요? 나, 나는 그냥... 오즈 생일을 추, 축하하고 싶었어요."

오즈에게서 케이크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둔 도로시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오즈를 껴안았다. 자, 잠깐만요. 오즈가 당황한 듯 손을 휘청거렸지만, 도로시는 신경 쓰이지 않는 듯 팔에 더 힘을 줬다.

"새, 생일 축하해요. 서, 선물은 없지만."

"... 아뇨, 고맙습니다."

"내일은 크, 크리스마스니까. 같이 마, 맛있는 거 먹어요."

"네. 그러죠."

누군가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게 얼마 만이더라. 아니, 이런 적이 있던가. 오즈는 따뜻해진 눈가를 한번 문지르고 애써 눈물을 참았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별로 안 추운 것 같네요. 중얼거리며 포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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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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