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와 춤을

[오즈도로] 불면

마법사와 춤을 오즈 X 도로시

덕질용 by 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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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기억을 찾으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습니까?"

"가, 갑자기요?"

"지금 못 자고 계속 뒤척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오즈는 도로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캄캄한 어둠이 깔려 있었지만, 눈이 적응된 탓에 서로의 표정 정도는 볼 수 있었다. 간만에 괜찮은 숙소를 잡았건만, 어째선지 도로시는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 이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뒤척거리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다. 도로시는 구부렸던 등을 펴고 똑바로 누웠다. 다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그, 그냥 오늘따라 잠이 안 와서요. 그러는 오즈는 왜 아직까지 아, 안 자는 건데요?“

"... 그러게요. 여튼, 뭘 먼저 하실 겁니까?"

"꼭 뭐, 뭔가를 해야 하나요?"

"괴로워하시면서도 계속 기억을 되찾고 싶어 하시니까요."

"저, 저는 기억을 찾아서 꼭 뭐... 뭔가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냥... 저를 되찾는 거 자체가 목적이에요."

"그러십니까."

오즈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로시는 늘 그랬다. 우드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유물을 통해 본 기억으로 인해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꿋꿋이 기억을 되찾고자 했다. 허수를 만나고, 우드맨과 마주하고, 분노와 감성과 싸우며 도로시를 걱정하는 날은 늘어갔다. 그래도 도로시는 정말 용감한 사람이었기에. 오즈가 말을 아끼자 도로시는 말없이 오즈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 오즈는... 제, 제가 기억을 되찾고 나면 뭘, 하실 건데요?"

"저요? 글쎄요. 집에 돌아가서 잘 먹고 잘 살겠죠? 아, 겸사겸사 마법사 만나면 제 저주도 풀어주세요."

"그, 그건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요."

"마법사가 저주도 못 풀면 그게 마법사입니까. 돌팔이지."

"도, 돌팔이..."

"아직도 잠이 안 오십니까? 무슨 일 있으신 거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오즈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 도로시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도로시는 말 없이 침대에 앉아 오즈를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내려간 눈썹과 흔들리는 눈동자. 미세한 차이였지만 오즈의 눈에는 잘 보였다. 얕게 한숨을 내쉰 오즈가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다른 기억이 돌아왔어요?"

"그, 그건 아니고..."

"그럼요?"

"그냥, 가, 가끔 두려워서요. 기억을 당연히 차, 찾고 싶지만... 가끔씩은, 찾고 난 후가 두, 두려워서."

그, 그치만 기억은 반드시 찾을 거예요. 도로시가 나지막이 덧붙이고는 오즈의 눈치를 살폈다. 오즈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어도 두려운 날이 없을 수는 없죠. 이해가 갑니다."

"그, 그런가요."

"네. 모든 기억이 좋기만 했던 건 아닌데, 사람인 이상 어떻게 안 무섭겠어요? 그래도, 잠은 주무셔야 내일도 떠나지 않겠습니까."

꽤나 오래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방 안에서 빛나고 있는 건 오즈의 왼쪽 눈임에도, 도로시의 양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어릴 적에 만났던 도로시. 기억을 잃은 후 처음으로 만난 도로시. 폭풍을 막아내는 도로시. 기억을 찾고 폭주하는 도로시. 웨딩드레스를 입은 도로시. 우드맨에게 죽으려는 도로시. 잘린 세계에서 자신을 찾는 도로시... 자신이 아는 도로시의 모습이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법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마법 같은 건 없다고 말한 자신에게 마법을 보여준 도로시. 그때의 도로시는 정말, 찬란하게 빛나서...

"도로시. 양은 세봤습니까?"

"야, 양이요? 세봤는데 잠은 여전히..."

빡. 오즈는 망설임 없이 도로시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박았다. 추억에 잠겨 감성에 젖어있고 싶지는 않았다. 도로시는 이마를 문지르며 억울하단 듯 소리쳤다.

"가, 갑자기 뭐예요!"

"이제 잡생각은 그만하고, 이마 문지르면서 주무세요. 내일 출발 안 할 겁니까?"

"그건, 마, 맞지만... 오, 오즈. 이마에서 피 나는데요."

"무시하세요. 저도 잘 겁니다."

오즈는 도로시를 눕히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저, 저 숨 막히는데요. 도로시의 중얼거림을 가볍게 무시한 그는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 도로시의 반대편을 바라보고 누웠다. 얼마 가지 않아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정작 자신은 잠이 오지 않았다. 폭풍을 막아내던 도로시가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한참 뒤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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