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침과 창살
디오신 2 페인 토막글
모닥불이 딱딱거리며 붉게 타올랐다. 앙상한 뼈로 구성된 손은 무심하게 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불 속에 던져넣는다. 오늘의 불침번은 페인이었으므로-그에게 잠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잠시 밀어두자- 그가 움직이는 작은 소음 외에는 동료들의 곤히 잠든 숨소리만이 캠프를 채웠다. 페인의 검은 눈구멍은 불꽃을 반사하지 않았고, 대신 그의 보석이 영롱하게 빛났다. 낮 동안 거친 물살처럼 흐르던 모험의 자취와 달리 고요한 풍경이었다. 이때에 해골의 속내가 어떤지 누가 신경쓰겠냐마는, 어쨌든, 그는 모처럼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가 깊은 감옥에서 기어나온지도 한참이었다. 목에 걸려 있던 주박은 깨졌고, 귀찮은 일을 방지하기 위한 가면도 되찾았다. 원치 않는 동료가 셋이나 생기기도 했다. 페인은 그 이전을 생각해본다. 반역으로 체포되었을 때, 깊은 감옥 속에 홀로 던져졌을 때, 바깥으로부터 천둥 같은 비명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 영겁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온기와 호흡을 지닌 거죽이 사라져 그가 구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때를 생각해본다. 영원의 이름을 지닌 일족은 쉽게 죽지 않았다. 이전의 모습을 잃을지언정, 근원이라는 심지를 간직한다면 말 그대로 영원히 살 수도 있었다. 페인은 처음 그가 그의 뼈대를 마주한 날을 떠올렸다. 오, 드디어 바닥을 드러냈군. 하찮은 감상만이 어둠 속에서 떠돌았고, 시간이라는 창살 속에 갇힌 학자는 희끄무레한 빛을 바라보았다. 탈출에 대한 갈망보다 바깥을 향한 궁금증이 더 컸다. 일평생 의문의 고치 속에서 살던 이는 연약한 껍질이 낡아 떨어진 후에도 호기심의 실을 자아냈다. 일족은 어떻게 되었지? 장막은? 그 일곱 명은? 초침이 소리 없이 움직이고, 모래가 쌓인다. 헐거워진 주박을 벗어던지고 햇빛 아래로 나왔을 무렵에는 낡은 초침이 빼곡하게 그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었다. 일족의 번영을 예상하던 낙관은 해일처럼 몰아닥친 시간 앞에서 허물어졌다.
옛날이었다면 그가 세상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군림과는 달랐다. 궁금해하고, 들여다 보고, 법칙과 불문율을 찾아내어 지식의 천 위를 수놓았다. 지금도 물론, 그는 세상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과연 세상에 그의 보금자리였던 곳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페인은 다시 마른 나뭇가지를 불 속에 던져넣고 숯을 뒤적여 불길이 타오르게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먼 곳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답이 머무르는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건,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정말로 오롯이 홀로 남았음을 증명받기 위해서. 최후의 영원임을 선고받기 위해서.
상념을 깨트린 건 졸음에 겨운 발소리였다. 그의 동료 비슷한 화신들 중 가장 바보같은-물론 페인의 의견이다- 자가 깨어나 눈을 비비고 있었다. 페인은 손가락 뼈를 까딱거렸다.
“더 자.”
“너도 피곤하면 쉬어야 해….”
신의 화신은 잠꼬대 같은 소리를 섞어 대답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페인은 그가 다시 텐트로 돌아가는 걸 지켜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동료들은 가끔 그가 언데드라는 걸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아니면 쓸데없는 걱정이 많거나…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마도.
시간을 가로지른 학자는 쌓여 있던 낡은 초침을 하나 둘씩 집어 정리한다. 그가 뼈만 남았거나 말거나, 그가 몇 천년간 갇혀 있었거나 말거나, 그의 보금자리가 모조리 재와 먼지로 돌아갔거나 말거나, 삶은 흐르고 있었다. 그에게 남은 의무라고는 살아가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포기할 생각일랑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때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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