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메이 연성100제

009.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KAIMEI by TT

메이코는 빌라 앞에 서면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현관문 가까이 다가가서도 한 번 아닌 척 둘러보고, 문을 열기 전에는 문이 잘 잠겨 있었는지 본다. 출근 전에 끼워두었던 작은 종이 세 조각이 전부 그대로 있다면 문을 연다. 들어서서는 불을 켜기 전에 귀를 한 번 기울인다. 웅웅,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라든가 닫힌 창문 너머로 나는 바깥의 소음이 들린다. 발소리를 죽이고 거실까지 걸어가며 건드리기 쉬운 곳에 둔 물건들을 살펴본다. 모두 그대로라면 그제야 오늘 하루도 무사히 흘러갔다는 안도감이 퍼진다.

문단속을 제대로 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불을 켠다. 요 며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보니 엎어져도 될 바닥을 보자마자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도 식사는 챙겨야 했다. 자잘한 게 남기는 했지만 잠을 줄여야 할 일은 어제부로 끝났고 내일은 휴일이니 맛있게 먹고 푹 잘 생각이었다. 메이코는 퇴근길에 찾아본 레시피를 핸드폰 화면 위에 띄웠다. 혼자 살게 되고나서 꽤 긴 시간 외식 생활을 해왔었는데, 집에서 식사를 챙기게 된 뒤부터는 어쩐지 외식이 입에 맞지 않게 됐다. 직접 하게 된 요리가 꽤 즐겁기도 했다.

오늘 만들 요리는 미트볼 감자 그라탕이다. 메이코는 감자를 깎아 깍둑썰기로 자르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손질해둔 브로콜리와 버섯을 흐르는 물에 한 번 더 세척한다. 다른 재료가 더 있어도 좋겠지만 미트볼이 있으니 이정도면 괜찮았다. 삶은 감자를 잘 으깬 뒤에 브로콜리와 버섯을 넣고 우유를 부어 섞었다.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출근 전에 냉장고로 옮겨두었던 미트볼을 꺼냈다. 며칠 전에 남은 고기를 싹 긁어 만든 미트볼도 오늘 먹으면 끝이었다. 미트볼을 모두 올리고, 붉은 토마토소스가 보이지 않게끔 치즈를 골고루 뿌려준다. 이제 전자레인지에 한 번 더 돌리면 완성이다.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 식탁보를 깔고 앞접시와 수저를 놓았다. 그라탕에 뿌릴 후추와 파슬리통도 꺼내놓고 잠깐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파란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하던, 시선이 마주치면 무해하게 웃는 남자. 인사를 건네며 자잘한 일상 이야기를 늘어놓고 물어보던 남자. 최근에는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며 조심스럽게 번호를 물어보던 남자. 메이코는 볼을 붉히며 번호를 알려주었었다.

띵―, 완료음이 들렸다. 메이코는 그릇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고 후추와 파슬리를 뿌렸다. 숟가락으로 한쪽을 푹 떠올리자 치즈가 주욱 늘어났다. 버섯과 브로콜리가 섞인 고슬고슬한 감자는 달달했고 치즈가 짭잘했다. 행복한 맛이다. 곧 계약이 만료되니까 다음에 이사를 갈 때는 오븐이 설치된 집을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요리 폭이 조금 더 넓어지겠지. 조그만 걸 하나 사도 괜찮고.

뒷정리까지 마치고 나서는 깨끗이 씻은 뒤에 어제 일을 마치고 묶어둔 쓰레기봉투를 내다놓았다. 나온 김에 짧게 산책을 했다. 중간중간 챙겨나온 초콜릿을 까먹으면서 쓰레기통이 보이면 바로 버렸다. 요 며칠 비슷한 시간에 마주치는 게 반가웠는지 산책 나온 강아지가 아는 척을 했다. 민망스러워하는 주인에게 초콜릿을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메이코는 빌라 앞에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복도에서는 제 집앞을 한 번 보았다. 문을 열기 전에 종이 조각을 확인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에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 집에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었다. 메이코는 환하게 웃으면서 집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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