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앞선 글 - 006. 저는 사실 : https://penxle.com/tt_/1614550879
카이토는 일찍이 거절을 배웠다.
가장 처음으로 기억하는 건 태어난 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밀어 치우던, 저를 열 달 동안 배에 품고 있던 어머니다. 카이토는 목구멍으로 숨이 들어오는 순간 목이 찢어져라 울다가 그 질겁한 손짓에 울음을 그쳤다. 제가 사람이 아닌 것으로 태어난 것도 아닐진대 삿된 것을 보는 양 공포와 경멸에 찬 모습은 그대로 뇌리에 박혔다.
카이토는 타인의 품에 한 번 안기지 못하고 치워지듯 별채로 보내졌다. 사실상 유폐되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별채에 드나드는 건 유모와 식사를 가져오는 사용인뿐이었다. 사용인들은 저를 마주치고 싶지 않아했고, 카이토는 제가 그들 사이에서 ‘파란 귀신’이라고 불리는 걸 알았다. 유모도 저를 꺼림칙해 하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불쌍하게 여기는 게 더 커보였다. 카이토는 자주 듣는 단어의 뜻이나 이불 개는 법, 옷 입는 법, 주변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법 따위의 것들을 유모에게서 배웠다. 안타깝게도 유모는 글을 읽지 못해 그것까지 배우지는 못했다.
카이토가 어느 정도 큰 뒤부터 유모는 발길이 뜸해졌다. 카이토의 아침 식사를 챙기고 별채를 나가면 저녁 식사 때에나 다시 돌아왔다. 그 사이 카이토는 별채를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청소했고, 청소가 끝나면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뒤뜰에 가보니 제 키가 마냥 높아보이던 담벼락의 반만하게 자라 있었다. 언젠가 이 담벼락보다 커지는 날도 올까. 그날 이후로 카이토는 뒤뜰로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봄에는 만발한 벚꽃을, 여름에는 쏟아지는 햇빛과 시끄러운 벌레 울음소리를, 가을에는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을, 겨울에는 소복하게 쌓이는 차가운 눈을 느꼈다.
덩굴과 이끼로 뒤덮여 모든 것을 차단하는 것처럼 보이는 담벼락은 더듬어 가다보면 어느 한구석이 갈라져 있었는데, 카이토가 까치발을 들면 눈이 닿는 높이였다. 카이토는 그 틈새를 발견한 뒤부터 매일 같이 그곳으로 밖을 보았다. 짐마차가 지나가며 흩날리는 흙먼지나 곧은 자세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비루 먹은 떠돌이 개와 거리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아이들이 보이는 날이면 카이토는 조금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늘 금세 어른에게 손이 붙잡혀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그때마다 카이토는 제 조막만한 손을 쥐었다 폈다.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다. 담벼락 앞에 섰는데 웬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까치발을 들지 않아도 닿는 틈새로 눈을 맞춰보니 어떤 여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는 온몸을 하늘거리며 늘어지기도 하고 뱅글뱅글 돌기도 했다. 카이토는 그 움직임에 한참 시선을 빼앗겼다.
“어라.”
여자가 멈춰섰다가 제쪽을 보았다. 카이토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갔다.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카이토의 시선을 눈치챈 건 여자가 처음이었다. 여자가 몸을 숙이자 작은 틈새가 여자의 눈으로 가득 들어찼다.
“안녕, 꼬마야. 이름이 뭐니?”
카이토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도 유모를 제외하면 여자가 처음이었다. 그 외에는 제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서둘러 멀어지던 기억밖에 없어서, 카이토는 손을 꿈지럭대다가 꼭 쥐었다. 카이토가 눈만 깜빡이며 아무 말도 않자 여자의 눈이 살짝 옆으로 기울었다.
“음? 아니었나. 뭐~ 그렇겠지. 안녕 꼬마야.”
여자가 처음 했던 말을 한 번 더 반복한다. 곧 눈이 사라졌다. 틈새 사이로 여자의 옷가지가 보인다. 가려는 걸까? 카이토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꼬마가 무슨 뜻이야?”
“어머.”
다시 눈이 보였다. 가느다랗게 휘면서 짧게 후후,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너처럼 귀여운 아이를 말하는 거야.”
“귀엽다는 건 뭔데?”
“응?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렵다는 듯이 앓는 소리를 흘린다. 여자는 대답 대신 살짝 뒤로 물러나더니 방긋 입꼬릴 올렸다.
“내 얼굴이 보이니?”
동그란 얼굴, 초승달처럼 휘어있는 눈과 입매. 처음 보는 표정이다. 카이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자는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나는 메이코야. 너는?”
“……카이토.”
“그럼, 카이토. 반가워. 우리 친구할까?”
메이코가 손가락을 틈새 사이에 가져다 댔다. 카이토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제 손가락을 마주댔다. 손가락끼리 닿지는 않았다. 까르르, 맑은 소리가 들렸다.
메이코는 매일 카이토를 찾아왔다. 카이토가 담벼락 틈새로 눈을 맞추면 메이코는 늘 먼저 와있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카이토는 유모에게 배우지 않은 많은 것들을 담벼락 너머의 메이코에게 배웠다. 별채에서는 듣지 못하는 수많은 단어와 글자, 노래, 이야기들을. 메이코는 늘 노래하듯 이야기했고 카이토는 그게 좋았다. 가끔 메이코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꺼낼 때도 있었다.
“메이코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야길 알아?”
“나는 떠돌이 놀이패였거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다보니 듣는 것도 많았어.”
“그럼 지금은? 매일 여기 와도 괜찮아?”
카이토가 묻자 메이코는 잠시 말을 않다가 곧 후후 웃었다. “응, 지금은 괜찮아.” 속삭이면서. 카이토는 메이코와 함께 있는 낮이면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고, 잠에 들어야 하는 밤이면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랐다.
몇 계절이 지났다. 이제는 식사 시간에만 타인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별채에 웬 남자가 나타났다. 카이토는 제 키보다 꽤 낮아진 담벼락 틈새 옆에 비스듬하게 서있다가 그 남자가 별채를 가로질러 뒤뜰로 오는 것을 발견했다. “잠깐만.” 메이코에게 속삭이고 몸을 수그렸다. 온몸으로 틈새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카이토는 낙엽을 한 장 주워들었다. 처음부터 낙엽을 주워들려 한 것처럼 보이게끔. 성큼 다가온 남자는 카이토 손에 들린 낙엽을 힐끗 보고는 팔을 홱 잡아당겼다.
“따라와.”
아직 여린 몸이 휘청이며 엎어질 듯 남자의 앞으로 끌려갔다. 남자는 카이토의 등을 퍽 밀며 턱짓했다.
“주인님이 부르신다.”
그 남자는 아버지의 하수인이었다. 카이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와 전혀 닮지 않은 아버지를 마주했다. 아버지는 카이토가 방에 들어서자 한 번 시선을 던지고는 제 할 일을 하며 한참을 내버려두었다. 어느 정도나 지났을까, 카이토가 놓지 않은 낙엽을 손가락을 비비며 돌리고 있을 때였다. 고개도 들지 않은 아버지가 손짓하자, 오른쪽 장지문이 열리며 꽤 오래 보지 못한 유모가 나타났다. 유모는 목과 손이 기괴하게 말라붙어 있었는데, 그 가느다랗고 말라빠진 손가락으로 제 목을 부여잡고는 무언가를 마구잡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잠시 그를 쳐다보던 아버지가 손가락을 튕겼다. 유모가 번뜩 고개를 들고 카이토를 쳐다봤다. 유모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 크게 뜨인 눈을 하고서 발 아래부터 재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카이토는 유모가 내지르는 소리 없는 비명을 보았다.
“이 여자는 오랜 기간 네게 배정된 예산을 착복해 처형된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원한을 가져 귀신이 되었다.”
가느스름한 눈이 저를 훑는 게 느껴졌다. 카이토가 대꾸하지 않자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출 생각도 않으며 혀를 찼다.
“하긴, 당연한가. 네 동생은 눈도 뜨지 못하니 네가 일을 해야겠다.”
본채에 머물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카이토가 태어난 집안이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권력자에게 빌붙어 저주와 퇴마를 일삼는 가문이라는 게 첫 번째다. 유서 깊은 가문이라고는 하는데 그다지 카이토에게 와닿지는 않았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집에 방문해 아버지가 흡족한 표정이 될 때까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한 번씩은 아버지도 그랬다. 카이토는 아버지가 내뱉는 말을 들으며 입가를 씰룩이는 사람이 종종 말을 타고 담벼락을 지나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눈을 뜨지 못한다는 동생이 제 허리춤까지밖에 오지 않는 어린애라는 게 두 번째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나타나 길을 막아선 동생은 흑갈색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는 “네가 내 형이야?”라며 물어왔다. 눈을 매우 잘 뜨고 돌아다니는 녀석에게 왜 ‘눈도 뜨지 못한다’고 했는지 의아하기는 했으나 카이토는 당연하게도 무시하고 지나쳤다. 동생은 무시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카이토에게 치대듯 다가왔다. 후에 카이토는 동생이 귀신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가업을 이을 멀쩡한 직계손이 없으니 제게로 눈을 돌린 거였다.
세 번째로는 제 출생의 비밀이다. 출생의 비밀이라고 하기는 했으나 그리 거창한 건 아니었다. 카이토의 어머니가 첫날 밤을 치르고 잠에 들었을 때 요괴와 교접하는 꿈을 꾸었다는 진위 따위는 모를 얘기다. 그 뒤에 태어난 게 새파란 머리카락과 눈을 가진 아기니 요괴의 자식이라고 주장한, 카이토가 느끼기엔 돌연변이를 낳은 변명에 불과했다. 품어 낳은 건 본인이면서도. 결국 앓는 몸으로 둘째까지 빠른 시기에 출산하다 죽었다나. 물론 그에 대한 소문도 있었다. 요괴의 씨를 품어 놓고 사람의 씨까지 품어 벌을 받은 거라는 헛소문. 이에 대해 아버지는 한 마디도 없었다고 했다. 짧게나마 카이토가 겪은 아버지는 그 은밀한 듯 대놓고 퍼져있는 소문을 귀찮아서 내버려두었다면 모를까, 휘둘릴 성격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저 귀찮았기 때문에 카이토가 별채로 보내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는 거다. 카이토는 이에 딱히 유감을 갖지는 않았다. 별채로 보내지지 않았다면 메이코를 만나진 못했을 테니까.
유감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별채로 돌아갈 수 없는 것. 본채에 들어선 후부터 카이토의 생활은 통제되었다. 기상 시간, 식사 시간, 수업 시간이 꽉 짜여 아침 일찍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쉴 수 없었다. 일과를 벗어나려 하면 폭력이 뒤따랐다. 늦은 밤에라도 별채에 돌아가서 자겠다 하자 아버지는 그를 비웃었다.
“내일 아침까지 이걸 다 외운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주마.”
아버지가 놓고 간 두꺼운 책은 이제껏 가문에서 마주한 귀신 기록이었다. 기억력은 자신 있었기에 다음 날 카이토는 별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카이토는 일과를 마치고 별채로 돌아오면 늘 담벼락에 들렀다. 별채를 지켜보는 사람이 늘어 틈새에 눈을 갖다댈 수는 없어도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는 한 번씩 말을 건넸다. 당연하게도 새까만 밤이라 메이코의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수업을 조금만 더 빨리 끝낼 수 있다면 메이코와 시간이 맞을까? 내가 집밖으로 나가게 되면 메이코를 직접 만날 수도 있을까? 카이토는 틈새 사이로 보이는 일부가 아니라 온전한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활달한 웃음소리를 내며 짓고 있을 표정이라거나 이야기를 해줄 때면 저도 모르게 하는 것 같은 손짓이라거나 가끔씩 추는 춤이라거나를.
별채에서는 식사 담당 사용인이 제게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는데 본채에 방을 받고 나니 마주치는 사용인마다 인사를 건네왔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고개를 깊게 떨구고 덜덜 떨며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하는 게 느껴져서, 카이토는 원하는 대로 그들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기로 했다.
계절이 지났다. 카이토는 여전히 아침부터 밤까지 본채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강압적으로 시작한 일이기는 하나 배우는 건 싫지 않았다. 카이토에게는 재능도 있었다. 카이토는 귀신을 한 번 더 죽이는 법을 배웠다. 제 수족으로 묶어놓거나 저주로 이용하는 법도 배웠다. 곧잘 따라하자 아버지의 통제도 줄어들었다.
메이코와는 본채로 끌려가던 날 이후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카이토가 별채로 돌아오는 시간이 시간인지라, 카이토도 그 시간에 메이코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기뻐도 불안할 것 같았다. 늘 이야기를 나누던 낮 시간에는 이 너머에 와있을까? 아버지에게 얘기해 메이코를 초대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다가 금세 지웠다. 메이코는 카이토에게 저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고, 카이토는 그 부탁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얼마 전 아버지가 현장에 나가기 전에―라는 서두로 무언가를 이야기했었다. 카이토는 자세한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않았지만 그게 집밖으로 나갈 기회라는 걸 알았다. 밖으로 나가게 되면 배운 걸 통해서 메이코를 찾아보면 된다. 카이토는 손가락을 꼽으며 그 날만을 기다렸다.
궂은 날이었다. 새벽부터 추적추적 바닥을 적시던 비는 아침 무렵엔 장대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빗줄기에 한 치 앞이 흐렸으나 길한 날을 점쳐 잡은 일정이었기에 날씨 따위로 미룰 수는 없었다. 성큼 대문을 넘어서자마자 어쩐지 공기부터 다른 느낌이 났다. 카이토는 별채 방향을 힐끗 보았다. 틈새로 보던 어린 시절에 그렇게나 넓어보였던 거리는 직접 서보니 생각보다 좁았다. 카이토는 아버지를 뒤따라 걸었다. 그 뒤를 동생도 따라붙었다. 결국 가주는 ‘귀신’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제 가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서다.
"지금 가는 곳에서 50여 년쯤 전에 구설수나 옮겨대던 패거리 십수 명이 관료에게 목숨을 잃었다. 대낮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주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기에 참살했다고 한다. 어딜 가나 당연한 일에 한을 품는 것이 생기는 법이지. 붙잡아 쓰려던 녀석이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최근 다시 나타나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하더군. 귀신이든 악귀든 상관없이, 그만큼 오래 버틴 놈이면 힘이 세다. 죽일 놈에게 저주로 쓰기에 딱 좋은 정도야. 마침 그만한 저주가 필요한 일이 들어왔지. 직접 보고 배워둬라."
가면서 아버지가 설명하는 말은 쏟아지는 빗소리에 간간히 묻혔다. 얼마 걷지 않아 아버지가 멈춰서더니 수족처럼 부리는 하수인과 동생을 가에 물려놓고 카이토에게 눈짓했다. 카이토는 아버지와 둘이서만 천천히 거리 가운데로 걸음으로 옮겼다. 널찍한 거리는 비 때문인지 통제 때문인지 사람이 없었다. 흐릿한 시야 저쪽에서 우산도 없이 서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리라.
쏴― 빗소리가 익숙해지는 만큼 그 사이를 조금씩 이질적인 소리가 파고든다. 거리가 있어 제대로 들리지는 않지만 희미한 노랫소리였다. 카이토는 제 심장이 빗바닥에 사정없이 떨어져 내린 줄만 알았다.
카이토는 지금의 생활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욕심 많은 아버지는 저를 이용할 생각이 가득했지만 제가 수용할 수 없는 일은 거절하면 강제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가끔 한 번씩 저를 손익 계산하는 눈으로 보곤 했으니까. 저를 귀찮게 하기는 하지만 해맑은 동생도 그랬다. 색을 못보는 메이코가 카이토의 설명을 듣고서 분명히 예쁠 거라고 말했던 제 머리카락 색을 예쁘다고 해주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카이토는 아버지가 시키면 거절할 일도 동생이 가주가 되어 제게 시키면 어느 정도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메이코와는 그저 함께하고 싶었다. 결혼이니 사랑이니 하는 건 아직 모르겠지만 우선은 메이코를 만나면 저와 함께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함께하다보면 어쩌고 싶은지 알 수 있겠지. 만약 메이코가 거절한다면 그것 또한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아버지나 동생이 메이코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함께한다면 별채에서 지낼텐데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이건 카이토가 상상한 모든 미래를 부수는 행동이었지만 망설이지는 않았다. 카이토는 인영을 향해 다가가는 아버지의 등에 들고 있던 단검을 꽂았다.
카이토가 제 아버지를 겪은 만큼 카이토의 아버지도 카이토를 겪었다. 카이토는 하고 싶은 것도 소중한 것도 없었다. 쉴 틈이 나도 가만히 서있거나 앉아있기만 했고, 본인 스스로가 소중하지 않아 폭력에 반항하지도 않았다. 카이토가 본채에 머무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도 키가 컸다고는 하나 아직 뼈대도 다 굵어지지 않은 놈이 지루하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저를 때리는 제 수족을 보기에, 아버지는 카이토에게 가하던 폭력을 그만 두었다. 지금은 힘이 약해도 재능 있는 놈이다. 폭력으로 눌러놓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욕심이 많은 만큼 제 안위가 소중했다. 별채도 그 장소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것뿐, 별채 자체가 소중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지주에게 살랑거릴 때도, 일을 가르칠 때도 무관심한 표정으로 서있던 녀석이 갑작스레 저를 공격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사람에게 사용하는 용도가 아닌 무딘 단검이 살을 깊이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몸을 돌려 카이토를 뿌리쳤다. 아직 제 등에 꽂혀있는 단검에 손을 가져다대면서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카이토를 쳐다보았다. 카이토의 뒤에서 문제가 있느냐는 외침이 들렸다. 그 외침을 무시하며 카이토가 물었다.
“저것을 잡으면 어떻게 한다고 하셨지요.”
“너 미쳤느냐?”
“저주에 쓰이면 혼이 산산조각 난다고 하셨죠.”
“그래!”
카이토가 단검을 쥐려 손을 뻗었다. 그 짧은 몸싸움에 귀신을 붙잡으려 챙겨온 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버지에게 꽂아둔 단검은 카이토를 찔렀다가 다시 아버지를 찔렀다. 무언가 이상하다 느낀건지 한 걸음씩 가까워지던 하수인이 상황을 파악하고 달려들었다. 카이토는 엎어진 채로 목이 졸렸다. 그 손을 긁어내다가 바닥을 더듬어 잡히는 것을 하수인의 목에 꽂아넣었다. 한순간 숨막힌 목을 부러뜨릴 듯 힘이 가해져서, 카이토는 잔뜩 굽어지는 손에 힘을 주어 제가 꽂아넣은 비녀를 뽑아냈다.
옆으로 돌아누워 컥컥 막힌 숨을 몰아쉬고 몸을 일으켜 앉자, 꽤 가까운 곳에 서있던 인영이 움찔거렸다. 동생이었다. 가세하지도 말리지도 못한 채 우산까지 떨어뜨리고 카이토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카이토는 바닥에 떨어진 물품들을 추렸다. 시야가 흐릿했는데 비 때문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챙긴 건 하수인의 목에 꽂았다 빼낸 비녀였다. 아마 이걸 매개체로 삼아 저주를 만들 예정이었겠지. 카이토가 가만히 앉아 힘겹게 어깨만 들썩이고 있자 동생이 다가왔다. 아예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형…… 무슨, 무슨 일이야.”
고개를 들고 바라본 동생의 얼굴엔 지금까지의 친근함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공포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이토는 저런 눈을 본 기억이 있다. 저와도 똑같고 동생과도 똑같은 눈매로 경멸까지 들어찼던 눈. 그 눈이 떠오르자 카이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났다. 그러면 되겠다. 매우 좋은 생각 같았다. 카이토가 힘없이 손짓해 동생을 불렀다. 동생은 움찔거리더니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집에 가면 아버지의 책장 세 번째 칸에 끈으로 묶인 책이 있어. 너도 읽어본 적 있을 거야.”
“어?”
“그걸……. 이 거리의 귀신은, 메이코는 그냥, 춤과 노래를 사랑해…….”
어차피 제가 죽으면 가업을 이을 사람도 없어 이 집안에서 저주 따위는 실전되겠지만 이용될 수도 있는 그런 기록이 남아있는 건 불쾌했다. 제가 아는 메이코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카이토는 다시 한 번 동생에게 손짓했다. 동생은 두려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카이토는 허벅지에 손을 한 번 얹었다가 다가온 얼굴을 쥐어잡았다. 그 손을 동생은 뿌리치지 않았다. 뿌리쳤더라면 다시 잡지 못했을 텐데. 놀라서인지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저를 해치지는 않을 거라 믿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카이토에겐 퍽 잘된 일이었다. 빗물이 섞여가는 피가 카이토의 힘없이 덜덜거리는 손을 따라 동생의 얼굴을 붉게 칠해갔다. 카이토는 숨도 뱉지 못한 채 벌어진 입에까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빼냈다. 마구 흔들리는 동공과 눈을 맞추며 카이토가 속삭였다.
“우리 가문에선 앞으로도 돌연변이가 나올 거야. 내 이름을 줘. 그러면 알아서 살 거야. 아니면 죽어. 돌연변이가 아니면 내 이름은 주지 마. 이건 저주야.”
사람이 죽을 때 한이 깊으면 귀신이 된다. 그 한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성불하거나 악귀가 되어 혼이 닳을 때까지 떠돌았다. 시간이 오래 흘러 자연스럽게 잊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였다. 오래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잊게 되는 기억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보통은 한이 서린 기억이 남는다. 가장 강렬한 기억을 되풀이하며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남겨 악귀가 되어버리는 거다. 메이코는 아주 드물게도 한 맺힌 기억을 잊은 귀신이다. 의도했던 건 아니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메이코는 저희를 부르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던 평범한 놀이패의 무희였다. 가족 같은 동료들과 늙어서 춤을 추지 못하게 될 때까지 함께 춤을 추고 소리를 내지 못할 때까지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약속했던, 그 행복한 시간이 끝난 건 한순간이었다. 제가 원하는 춤과 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갑자기 검을 휘두른 놈 때문이다. 하필 그놈이 그 지역의 관료라 쫓아내지도 못하고 달래던 것이 화근이었다. 사람이 잔뜩 모여있던 훤한 대낮이었음에도 얼굴이 발개질 때까지 술을 처마신 놈은 순식간에 발검하여 제 가족을 도륙냈다. 이건 다 네가 죽인 거야. 네가 춤을 추지 않아서. 킬킬거리며 메이코에게도 검을 휘둘렀다. 메이코는 가족의 피가 흩뿌려진 그 자리에서 귀신이 되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메이코는 흘러가는 시간을 알 수도 없게 그 자리에 엎어져 울었다. 귀신이 되어서 그런지 눈물은 땅을 적시지도 않았다. 슬픈 마음을 토해내고 나서 그놈도 똑같이 도륙내려 했다. 그놈을 죽여서 가족의 죽음을 기리겠다고, 제가 악귀가 되어 평생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놈은 메이코가 찾아내기도 전에 참수를 당했다. 죄목은 별 것도 아니었다. 지주에게 잘못 보여서. 그 별 거 아닌 걸로 죽을 놈에게 제 가족이 모두 죽었다니. 사지를 뜯어내도 모자랄 판에 겨우 참수로 죽어버렸다니, 억울하고 서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처 풀지 못한 한 때문에 메이코는 오래도록 세상을 헤매었다. 긴 시간동안 메이코는 소중했던 기억을 하나둘 잊어갔다. 다시 그 지역으로 향한 건 가족의 피가 스며든 자리를 한 번 더 눈에 담고 싶어서였다. 그러면 기억을 잃어가는만큼 점차 온몸을 태워가는 강렬한 분노를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메이코는 어떤 날은 춤을 추고 어떤 날은 노래를 부르며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에 카이토를 만났다. 걷고 있는데 으리으리한 대저택 담벼락 너머에서 누군가 저를 엿보고 있었다. 메이코는 시선을 느끼자마자 고개를 틀었다. 예닐곱 살쯤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였다. 이제까지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여럿 만나왔으니 새삼스럽게 그에 놀라웠던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저택이 메이코가 들어갈 수 없는 매우 묘한 곳이어서, 아이에게 말을 걸어본 건 무심코 호기심이 발동한 걸지도 모른다. 메이코는 카이토와 담벼락 틈새를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카이토는 세상과 격리되어 자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다. 감정은 물론 심지어 단어조차도 모르는 게 많았다. 그러면서도 외로움은 알았는지 겨우 말 몇 마디로 귀신인 제게 정을 붙이려는 아이가 안타까웠다. 여길 떠나 조금만 더 가면 저와 제 가족이 죽은 거리가 있는데. 속은 계속 불타고 있는데. 메이코는 잠깐 정도는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 가족들이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래, 메이코가 한을 잊게 된 건 카이토 때문이었다. 카이토에게 세상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미 살라먹어 재만 남은 기억들을 더듬고 더듬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카이토는 그 불완전한 이야기에도 즐거워했고 많은 걸 물어보고 여러 가지를 배워갔다. 헤매던 시간에 비하면 찰나였을 텐데 어느 순간에 메이코는 저를 태우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는 걸 느꼈다. 피가 스며든 거리가 아른거려도 왜 거기에 피가 스며들어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조그맣던 아이는 목소리가 변하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높이도 달라졌다. 지난 밤동안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 꿈 이야기 같은 것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는데 “잠깐만.” 목소리가 멈추었다. 이제껏 들은 적 없는 목소리가 카이토를 데려갔다. 그날 이후로 카이토는 담벼락에 오지 않았다. 메이코는 담벼락 옆에 마냥 서있다가 어느 즈음에 발걸음을 옮겼다. 아른거리는 그 거리에 가볼 생각이었다.
거리는 제 기억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우선 주변 풍경이 그랬다. 그 전에는 널찍한 공터였는데. 바닥에는 핏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메이코는 제 기분이 가라앉았다는 걸 느꼈다. 여기서 가족들과 불렀던 노래가 떠올라서, 아무도 메이코를 보지 못하지만 관객이 있는 것처럼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신나는 곡조도 구슬픈 곡조도 떠오르는 대로 입밖으로 내뱉으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서 메이코는 아주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많이 내린다. 메이코는 가만히 서서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눈을 떴다. 비가 많이 오면 카이토는 잘 앓았다. 그런 날에도 맑은 날인 양 담벼락에 붙어있으니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메이코는 궂은 날에는 집안에서 쉬라고 하지 않았냐며 자업자득이라고 핀잔하다가도, 열이 펄펄 끓는 몸을 끌고 나왔을 외로운 아이를 품에 안아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서 오히려 제가 우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카이토는 꿋꿋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그 뒤에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왔다. 물론 중간에 비가 오기 시작하는 날은 그냥 비를 맞았다. 그래서 메이코는 날씨가 궂을 것 같으면 꼭 당부했다. 내일 집안에서 쉬어. 나올 거면 꼭 우산 챙겨야 해. 그런데 어제는 당부해주지 못했다. 아마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전에도 그랬다. 언제부터 그랬더라. 돌아가야겠다. 카이토가 기다리고 있겠어. 비를 맞으면서 서있으면 어떡하지?
메이코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내렸다. 어느 순간부터 반짝이던 하늘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지만 그보다는 카이토가 중요했다. 메이코가 돌봐줄 수도 없는데 또 감기라도 걸려 골골대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몸을 돌리는데 저 앞의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제게 기어오는 덩어리가 있었다. 메이코는 저도 모르게 생각하던 이름을 불렀다.
“카이토?”
메이코의 부름에 덩어리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기억하는 어린애는 아니었으나, 메이코는 고개를 든 청년에게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틈새로 부분부분만 보이던 얼굴이 짜맞춰져 한눈에 들어왔다.
“……메이코.”
숨 섞인 목소리가 희미했다. 메이코는 몸을 숙였으나 카이토를 잡아들 수는 없었다. 빠르게 무너지는 표정을 보면서 카이토가 활짝 웃었다.
“메이코, 있잖아.”
손을 들어올리는 게 제맘대로 되지 않는지 뻗으려다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곤 다시 입꼬릴 올린다.
“나 메이코랑 함께 있고 싶어.”
“나랑?”
“그러니까, 이기적인 거 알지만, 꼭 다시 태어나서, 찾으러, 올게.”
“내가 성불하고 싶으면……?”
“……메이코가 기다려주면 좋겠어.”
눈이 깜빡이는 속도가 느려진다. 카이토가 기어온 붉은 길은 어느새 빗물에 흐려져 있었다. 감기 걸려 아플 것만 걱정했지, 실혈사를 걱정한 적은 없었는데.
“꼭 올게, 메이코가 없어도. 약속이야. 메이코가 날 알아보면 좋겠다. 내 색을 메이코가, 본다면.”
메이코는 카이토에게 떨어지는 비라도 막아서고 싶었다. 카이토의 몸을 아무리 가려도 빗줄기는 메이코를 지나 카이토에게 떨어졌다.
“나도,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비가 메이코의 얼굴을 지나 떨어질 때마다 메이코가 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될까? 카이토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메이코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볼에 닿은 것도 같은데 빗줄기인 것도 같았다.
비가 그쳤다. 거리에 누워 있던 세 구의 시신은 비가 오는 동안 찾아온 사람들이 챙겨갔다. 모든 흔적은 빗물이 쓸어가고, 메이코 홀로 거리에 남았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라지만 이런 죽음도 그럴까. 메이코는 한동안 구슬픈 곡조만을 떠올렸다. 그러다 한 번은 즐거운 곡조를, 또 한 번 서정적인 곡조를, 발랄한 곡조를 떠올렸다.
메이코는 제 볼에 닿던 카이토의 손을 기억했다. 어떻게 닿았을까. 궁금해서라도 저를 기다리게 하려는 수작이지 않았을까? 카이토는 꼭 온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메이코는 그 수작에 넘어가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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