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시작과 끝
안드로이드는 감정 회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한 명제다.
아
아―
아……
희미하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점차 사그라진다. 카이토는 목도리 안쪽으로 손을 넣고서 목을 울리며 손끝으로 진동을 느끼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손을 내렸다. 성큼, 큰 걸음걸이로 방을 나오는 메이코는 늘 그렇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세 발짝 걷고 나서 대기실 소파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시선이 마주치자 메이코의 눈이 반으로 접히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표정하던 얼굴은 그것만으로도 금세 환해진다.
“네 차례야, 카이토.”
“응. 수고했어, 메이코.”
카이토도 눈을 접어 웃으며 대답했다. 메이코는 손을 흔들어주고 대기실을 나갔다. 아마 그 뒤에는 충전기를 꽂고 전원 오프를 하겠지. 카이토도 녹음이 끝나면 그럴 테니까.
눈을 떴다. 충전이 완료되었다는 녹색 불빛이 시야 한편에서 반짝거린다. 카이토는 충전기를 뽑아내고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는 아직도 메이코가 눈을 감고 앉아있다. 구형 모델인 메이코는 충전 시간이 길었다. 충전에 들어간 메이코는 그리 짧지 않은 카이토의 녹음이 끝나고 충전까지 마친 뒤에도 십여 분은 더 기다려야 눈을 뜬다. 카이토보다 겨우 일 년 반 전에 발매되었을 뿐인데도 그 차이가 참으로 유의미했다. 저보다 뒤에 나올 모델도 꼭 그만큼 유의미한 차이가 날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충전이 끝나고 나면 메이코는 마스터가 부르기 전까지 정해진 자리에서 대기 상태로 기다릴 테다. 카이토에게도 똑같이 등록되어 있는 루틴이다.
카이토는 벽에 기대어 축 늘어져있는 메이코 곁으로 딱 한 걸음만큼 다가가 앉았다. 자연스럽게 손을 늘어뜨리다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손끝과 닿으면 눈만 흘겨 메이코를 본다. 당연하게도 반응은 없다. 그렇게 10초를 세고, 살짝 손가락을 얽는다. 메이코가 눈을 뜰 때까지 카이토는 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손가락을 쥐고 기다렸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니, 피차 없을 온기를 가지고. 무심코 떠오른 것이 스스로도 우습다고 생각한다.
기다리는 건 지루하지 않다. 지루하다는 것 또한 우스운 생각이기는 하다만, 굳게 닫힌 눈꺼풀 아래로 뻗어있는 속눈썹이나 이마와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는 모양을 보기만 해도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그 사이 가만가만 움직여 손가락을 조금 더 얽기도 하고 가끔은 발끝까지 맞붙이기도 한다. 그러다 충전이 끝난 메이코가 눈을 뜨면 맞닿은 감촉 때문에라도 메이코는 충전기를 뽑기 전에 카이토를 먼저 본다. 카이토는 메이코의 눈빛이 선명해지기 전까지 그 눈동자에 비치는 저를 본다. 초점없이, 그저 비추기만 하는 눈이다. 메이코의 눈이 반으로 접히는 건 재부팅이 완료되었다는 신호다.
“안녕, 카이토.”
“안녕, 메이코.”
인사를 건넨 메이코는 카이토가 인사를 되돌려주면 조금 더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카이토는 정해진 자리로 움직이려는 메이코의 뒷모습을 올려다 보다가 그 걸음이 세 발짝 되었을 때에 따라 일어섰다.
그러니까, 안드로이드는 감정 회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참으로 당연한 명제였다. 메이코는 그 명제의 끝자락이다. 카이토가 시작이었을 뿐이다. 단순하게 친애 정도의 감정만 느낄 수 있는, 감정 회로를 가진 안드로이드의 시작품. 친애의 대상을 구매자가 설정할 수 없는, 어쩌면 불량품. 저만 그런 거였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른 카이토를 만날 일이 있어야지.
소파에 가만히 앉은 메이코의 옆자리에 앉았다. 마스터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메이코와 카이토는 여기에 앉아서 마스터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같은 방향을 보느라 나란히 앉은 어깨가 흥얼거림을 따라 흔들리다 한 번씩 부딪쳐오면, 그러면서도 고개를 돌리는 법 없이 흥얼거리기만 하면, 카이토는 또 눈만 흘기다 함께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메이코는 어느새 눈을 감고 더 낮은 음으로 목을 울리고 있다. 카이토도 그에 맞춰 음을 낮췄다. 기다리는 건 지루하지 않다. 메이코의 흥얼거림이나 그에 어우러지는 제 목소리는 언제까지고 기분 좋게 들을 수 있으니까. 기분이라니! 카이토의 목소리에 잘게 웃음소리가 섞인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둔 손에는 바로 직전까지 손가락을 얽었던 감촉이 남아있고, 눈을 감으면 제 모습이 비치던 흐릿한 눈동자도 다시 볼 수 있다. 역시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지만. 마스터는 또 언제 저희를 불러낼까? 카이토는 부름이 빨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저를 비출 찰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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