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우드워드

조금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몰라.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직접적으로 언급됩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가 아직 메리 우드워드일 적의 이야기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주어진 또 한번의 기회.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 기회 속 세상은 많은 것이 달랐다. 어떤 이는 평화로운 가정을 얻었다. 어떤 이는 인간다운 삶을 얻었다. 어떤 이는 더 나은 생활을 얻었다(물론, 모든 것이 그러하듯 어떤 이는 정 반대의 것을 얻었다). 이전의 세계에서 우리가 가졌던 후회가 뭉쳐 만들어진 것만 같은 곳. 누군가에게는 꿈, 누군가에게는 악몽, 그럼에도 어느 면에서나 지난 세계보다 나았던 이 세계―

그 안에서 메리 우드워드는, 한 사람을 얻었다.


안녕하세요, 메이시 선생님.

마담 에스메이라고 부르렴. 선생님은 그렇게 불리는 게 좋더라.

에스메이 코델 메이시. 런던 근교에 위치한 공립학교에 갓 부임하게 된 신임 교사. 그는 여러 가지로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가장 먼저, 생김새. 백인들로만 이루어진 ‘새하얀’ 공간 속에서 그가 가진 짙은 갈색 피부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띄었다. 새까만 머리, 그만큼이나 어두운 눈동자, 인도계나 파키스탄 쪽으로 오해할 법한 특유의 이목구비까지. 누군가는 그런 그를 가리켜 ‘파키’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가 ‘집시’ 쪽은 아니냐고 수군댔다. 그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들과 그를 구분하는 첫 번째 지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태도. 그에게는 어쩌면 신임이기에 보일 수 있는 열정이 있었다. 학교의 많은 교사들은 더이상 아이들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아이들을 포기하고, 그들이 무엇을 하든 방관하거나 무신경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그들이 하는 전부였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사정을 알고, 그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하고자 애썼다. 다른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넘어가자고, 빠르게 끝내버리자고 할 때에도 그는 나섰고, 물러서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기 희생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이들의 폭언에 맞서서 단호하게 자신을 지켰다. 필요하다면 강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그 누구와도 싸워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모든 과정에 있어서 유쾌했다. 그것이 남들과 그를 구분하는 두 번째 지점이자, 가장 큰 차이였다.

그리고 세 번째 ―이것은 두 번째 차이와도 연결되는 것인데― , 비록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한 사람에게만큼은 중요했던 사실.

그는 그 학교에서 메리 우드워드에게 다가간 최초의 사람이었다.

네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중요해.

세상은 끊임없이 네게 말할 거야. 너는 약하다고, 다르다고, 그래서 나쁘다고, 더럽다고, 불결하다고, 무시받아 마땅하다고.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더럽고, 불결하고, 수치스러운 게 아니야.

세상은 너를 무서워 해.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짓밟으려 들지. 네가 가진 것을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그 무엇도 네게서 그것을 빼앗아갈 수는 없단다.

제 능력을 말하는 거예요?

아니, 너의 존엄을 말하는 거야.

네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지, 그것은 오롯이 네게 달려 있어. 하지만 선생님은 마리아란 이름도 메리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해.

내 첫 제자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마리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작은 언제나와 같았다.


메리 우드워드의 할아버지는 여전히 과거가 주는 유산, 뿌리로부터 오는 긍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여전히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메리 우드워드의 어머니는 여전히 사회의 기준을, 세상의 폭력을, 거기에 맞추어 자신을 깎아내릴 것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그는 그것을 충실히 따랐으나, 그럼에도 세계는 그를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번 생의 메리 우드워드에게는 또 다른 한 명의 어른이 있었다. 

같은 모멸을 공유하는 사람. 폴란드 계집애, 집시 쓰레기, 파키 자식. 

하지만 그 뿌리에 기댈 수도 없는 사람. 메리에게 폴란드는 그저 할아버지의 땅이었다. 에스메이는 인도도, 파키스탄 출신도 아니다. 로마니¹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으며, 거기에 소속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럼에도, 그 사실에 굴하지 않는 사람. 무너지지 않는 사람. 자신을 깎아내리지도, 버리지도 않고 그 앞에 당당히 선 사람. 맞서 싸우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유쾌했던 사람.


메리 우드워드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존재한다고. 여기서 가해자는 힘을 가진 자다. 피해자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다. 가해자는 살인자다. 피해자는 살해당하는 자다. 아무도 서로를 돕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의 방관 속에서 서로를 죽인다. 서로에게 죽는다. 가해자는 차별하는 자이며, 피해자는 차별당하는 자다. 가해자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차별은 영원하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피해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매번 짓눌리고, 짓밟히고, 창문에 돌을 맞고, 길거리에서 욕설을 듣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직장에서의 차별을 받고, 모든 크고 작은 모욕과 멸시를 마주하는 삶. 피해자의 삶. 약자의 삶. 힘 없는 자의 삶. 거기에는 그 어떤 명예도 긍지도 없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자신보다 아래의 사람을 만드는 것. 오직 그 뿐.

그러나 에스메이는 알려주었다. 가해자가 가지지 못하는 것. 힘 있는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 오로지 짓밟히고 짓눌리는 자 안에서만 빛나는 것, 그렇기에 고귀한 것. 그는, 그들은,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인간성. 사람됨. 존엄함.

멸시당하기에 고귀하다. 억압당하기에 존엄하다.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들은 그 누구보다 사람인 존재이다. 

나치가 지배하던 독일의 유대인들에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니? 흑인들, 퀴어들, 여성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짓눌릴 뿐이라고 생각하니? 하지만 그렇지 않아.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지켰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그들을 도왔지. 세상과 맞서서 싸워 온 수많은 역사를 생각하렴. 결국 누가 추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는지 생각하렴. 누가, 승리했는지 생각하렴. 

우리가 고귀하고 존엄한 이유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가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알기 때문에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해. 서로를 이간질하고, 부추기고, 자꾸만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우리가 두렵기 때문이야. 너와 나 같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무서워서.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이거든. 그들이 우리를 부정할수록, 내몰수록, 짓밟을수록, 더욱 사람이 되거든. 

그러니 이 사실을 기억해 주렴. 

그래, 메리. 어쩌면 세상은 우리를 환영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단다.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짓밟을 수는 없어.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어른들 중 그 누구도, 그에게 그렇게 말해준 적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에게서 폴란드만을 보았다. 어머니는 그에 대한 반발로 그를 영국인으로만 기르려고 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마리아 소볼레프스카 우드워드, 메리 우드워드 자신이어도 충분하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폴란드인도 영국인도 아닌 이방인인 그와 함께해줄 사람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이방인인 것이, 약자인 것이, 세상 밖으로 내몰린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문제는 그것이 잘못되었다 말하는 세상에 있음을, 그리고 그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그 순간 순간은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이야기해준 사람도.

에스메이를 통해 배운 모든 것은 그에게 낯설었다. 생소했다. 난해했다. 어려웠다. 그럼에도, 어쩐지 그는 그것이 옳음을 알았다. 그것은 어쩌면 메리 우드워드로서의 삶이 그에게 남긴 한 가지 유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불사조 기사단이 가르쳐 준 것. 그들의 승리가 증명한 것.

그렇기에 그는 달라진 세계 아래에서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가 되었다. 열등감을 통해 남들을 바라보지 않고, 비뚤어진 우월감으로 스스로를 달래지 않고, 자신보다 아래에 둘 사람을 찾지 않은 채로 살 수 있었다. 그렇게 호그와트에 들어갔고, 그렇게 당신들을 만났다. 그렇게 조금씩 메리 우드워드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지금 당신 앞에 서 있게 되었다.


“… 그런 이야기야.”


¹ 일반적으로 '집시'라고 불리는 유랑민족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표현. 롬인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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