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호코즈] 잠들기 전에, 그리고 고 나서

온천 여행은 좋은 소재입니다. 카호코즈 편입니다.

스모어 by m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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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별로 방이 나뉘고, 서로서로 온천에 들어갔다 온 뒤 잠깐 즐거운 탁구 게임을 즐겼다. 승자는 당연히, 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접점이었다. 도중에 배터리가 방전된 루리노만 없었다면 끝도 없이 이어질 뻔했다. 몇 번이고 동점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방금 씻고 나왔는데 땀범벅이 될 뻔했다.


"아, 즐거웠다!"

"으... 더워... 다시 씻고 오면 안 돼요?"

"둘이서 다녀올까?"

"아 치사해! 우리도 갔다 와요!"


잠깐 소동이 벌어졌지만 탕으로 들어갈 사람은 들어가고, 방에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기로 했다. 코즈에는 카호와 둘이서 함께 탕에 들어가기로 했다.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오래 들어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껏 흘린 땀을 씻어내기엔 충분할 것이다.


"코즈에 선배, 씻겨 드려도 되나요?"

"그럼 부탁해도 되겠니? 카호 씨 등은 내가 씻어줄 테니까."

"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탕에서 천천히  몸을 녹이면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흐릿해졌다. 하루 종일 바빴던 것도 다 거짓말인 것처럼 조용해서 심호흡 소리가 욕실 안에 울려 퍼졌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지금 이 순간을 누리고 있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함께 탕에 들어온 코즈에 역시 마찬가지인 듯 얼굴이 붉어진 채 눈을 감고 있는 코즈에가 보였다. 물이 조금은 뜨거운 걸까. 괜찮은지 물어보면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코즈에 선배는 탕 안에 오래 있을 수 있는 타입이에요?"

"글쎄... 안에서 대화하는 건 종종하는 편이니, 오래 있는 편에 속하지 않을까."

"저도 사야카 짱이랑 같이 얘기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더라고요. 역시 즐겁네요!"


싱글벙글 웃는 카호의 얼굴에 코즈에도 기쁘게 마주 웃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살짝 카호를 가렸다가 흩어졌다. 목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탕에 오래 들어가 있다는 증거였지만,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사용 시간이 앞으로 몇 분 더 남았을까. 카호가 시간을 고민하다가 문득 코즈에는 어떨지 궁금해서 코즈에쪽을 바라보았다. 코즈에는 제가 바라던 바와 같이 느긋한 표정으로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대화가 조금 더 이어졌다. 마사지 얘기를 잠깐 했고, 잠들기 전에 하는 게 무엇인지 가볍게 주고 받았다. 코즈에는 꿀이 들어간 레몬차를 종종 마신다는 카호 말에 부실에 들여 놓을 새로운 차가 늘었다며 기뻐했다.

이제 정말로 방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만큼 흐르자 카호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코즈에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코즈에 선배, 얼굴이 붉어요?"

"아... 괜찮단다."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걸까요? 얼른 나가죠"

"아니, 카호 씨 먼저 나가줄래?"

"네?"

"카호 씨 먼저... 나가도 되니까."

"네...?"

코즈에의 말에 카호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카호의 솔직한 반응에도 코즈에는 눈을 돌렸다. 탕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런데 조금 더 있고 싶다니. 혹시 잠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카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코즈에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했다. 코즈에가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목울대를 움직였다. 카호는 무심코 코즈에의 목선을 빤히 쳐다보았다.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들이닥쳐 버린 감각에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외면하려고 끈질기게 얼른 같이 나가자고 권유했지만 코즈에는 단칼에 거절하고 탕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죠... 일단 먼저 나가있을게요. 얼른 나오셔야 해요?"

"그래, 미안하단다? 곧 따라갈 테니까..."

"네! 읏챠!"

기세 좋게 일어선 카호는 뒷마무리를 하고 욕탕에서 벗어났다. 정말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걸 보니 코즈에는 홀로 남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라도 필요한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카호는 자신이 떠나가는 그 순간까지 시선을 돌린 코즈에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문을 닫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쌌다. 추위에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가벼운 물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걸어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니, 코즈에가 탕에서 나올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릴 듯했다.


방은 이미 이부자리가 정돈되어 있었다. 눕기 편해 보이는 침구들에 코즈에는 방금까지 들떴던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힐 수 있었다. 온 몸에 열이 몰려 정신이 혼미했지만 멀쩡하게 걸어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카호는 시트 끝자락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온천 측에서 미리 다 준비해두었지만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카호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카호 씨, 머리는 다 말렸니?"

"코즈에 선배!"

카호는 시트를 놓고 코즈에 품을 향해 걸어왔다. 껴안아 달라는 듯한 몸짓에 코즈에가 두 팔을 벌리면 그 안에 쏙 들어오는 게 여느 때와 같았다. 이런 아이를 두고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니, 오토무네 코즈에. 속으로 가볍게 자책했다. 카호는 평소와 달리 부드럽지만 상큼한 냄새가 풍겼다. 이곳 온천의 샴푸를 썼으니 코즈에도 분명히 같은 향이 나고 있을 테지만, 카호는 카호만의 체향과 어우러져 더욱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강하게 껴안고 있으려다가 축축한 기분이 방해를 했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카호와 코즈에의 어깨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카호를 품에서 놓아준 다음 서둘러 드라이기를 찾았다.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마른다며 투정 부리는 카호를 가볍게 질책하고 손에 드라이기를 쥐어줬다. 카호는 제 손에 들린 드라이기와 코즈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드라이기를 코즈에 쪽으로 넘겼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드라이기를 받아든 코즈에는 카호의 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코즈에 선배가 말려주시면 안 돼요? 이 자세로."

 카호는 머리를 가지런히 모으더니 코즈에쪽으로 등이 보이게 뒤돌았다. 그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에 코즈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아직 차가운 기운이 여실한 머리카락은 손가락으로 빗어내리기도 힘들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네에~"

카호의 대답을 들으며 드라이기 전원을 켰다.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걸 확인한 다음 세기를 조금 줄여 두피부터 천천히 말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말라가는 두피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 카호가 기분 좋은 듯이 콧노래를 불렀다. 뜨겁지 않느냐 묻는 말에 다 괜찮다고 답해서 코즈에가 제 손목에 바람을 쐬어 보고 온도를 조절했던 건 비밀이다.

"자, 끝이란다. 앞으론 제때 제때 말릴 것."

"와~ 감사해요, 코즈에 선배! 이번엔 제가 말려드릴게요!"

"응? 나는 이미 어느 정도 말리고 왔는데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코즈에 선배는 저보다 키가 크니까 앉아주실래요?"

"그, 그래... 카호 씨가 하고 싶다면야..."

정수리까지 꼼꼼하게 말려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코즈에 선배니까요!

카호의 말에 코즈에가 순순히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았다. 온천에서 빌려준 유카타를 조심스럽게 정리하고 앉으니 정말로 여행을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호는 이번에도 신이 난 듯이 콧노래를 불렀고, 코즈에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말려주었다. 부드러운 손길과 적당히 따뜻한 바람은 피로를 모두 녹여주는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 했던 번뇌 따위 모두 사라진 기분에 코즈에도 슬슬 감기는 눈에 주먹을 꼬옥 쥐었다.

"어라, 코즈에 선배~"

"아... 카호 씨."

"헤헤, 기분 좋으셨어요? 방금 잠들 뻔 했죠?"

"응... 조금은 부끄럽네."

"그러면 이르지만... 이만 잘까요?" 

카호의 말에 코즈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자각이 있으니 더 몸에서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유카타라서 다행이다. 평소 입는 잠옷보다 품이 넓어 소매로 얼굴을 가리기 쉬웠다.

카호는 다시 시트를 잡고 제 마음에 드는 곳에 이부자리를 놓았다. 따뜻한 햇살이 들어올 것만 같은 위치에 이불을 옮기고 나서 각자 어디에 잠들지 정하기로 했다.

코즈에는 두 명분의 요가 딱 붙어있는 모습에 남몰래 숨을 들이마셨다.

"아, 저 잠버릇이 심할 수도 있어요... 아, 어떡하지."

"괜찮단다? 이전에 합숙도 했었잖니."

"그때는 별일 없었지만... 오늘 만약 몸부림이라도 치면... 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그런 카호 씨가 싫은 것도 아니고..."

"코즈에 선배~!"

코즈에의 말에 카호가 안심했다는 듯이 웃었다. 코즈에도 상냥하게 웃고 나서 조심스럽게 잘 자리를 선택했다. 딱 붙어있는 이부자리에 다시금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 조금 긴장했으나 카호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탕에 들어가서도 한참을 대화했지만 이야깃거리는 끊이질 않았다. 카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코즈에도 그 말에 다 답해주고 싶었으니까. 언제 졸음이 쏟아졌는지도 모를 만큼 열심히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코즈에가 아니라 카호가 먼저 눈을 끔뻑였다.  

"잘 자렴, 카호 씨."

코즈에는 수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린 카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야기를 하느라 어느새 가까워진 상태였다. 옆으로 돌아누운 카호는 두 손을 꼭 쥔 채로 잠에 빠졌다. 더는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코즈에도 슬슬 몸이 나른해지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카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카호를 바라본 상태로 자세를 틀었다. 조그마한 사심으로 카호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리기도 했다. 푹신푹신한 이불에 덮혀 한껏 달아오른 체온이 기분 좋았다. 코즈에는 손을 놓기 싫어 손가락으로 손등도 쓸어보고, 살살 손바닥이 보이는 틈에 손가락을 넣기도 했다. 그러면 카호가 자연스럽게 주먹 쥔 손을 풀고 코즈에의 손을 잡아왔다.

원하던 자세를 만들어 만족스럽게 눈을 감으려고 했는데 카호가 살풋 인상을 쓰더니 끙끙대는 소리를 낸다. 혹여나 악몽이라도 꾸는가 싶어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니 카호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후후, 카호 씨도 참..."

원래라면 코즈에를 끌어당기려고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되지 않아 낑낑대는 모습에 코즈에는 몸에 힘을 빼고 카호가 하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제 품에 파고든 카호를 내려다보면 그 귀여운 얼굴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자꾸만 무언가를 찾는 듯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결국 코즈에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마도 잘 때 인형 같은 무언가를 품에 안고 잠드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침대에 올려두었던 커다란 인형이 떠올랐다. 카호가 소유하고 있는 인형보다 조금 큰 코즈에를 제 품에 가두려고 바스락거리는 바람에 코즈에는 숨이 막혔지만, 굳이 벗어나거나 발버둥치지 않으려고 했다. 오히려 마주 앉아주려고 등쪽으로 팔을 뻗으려고 했다.

"응? 카호 씨...?"

카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세를 잡았을 때, 느껴지는 감촉만 아니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자세였는데.

카호가 어느 정도 볼륨이 있다는 건 의상을 만들면서 눈치 챈 사실이다. 매력적인 몸매는 춤을 출 때도 춤선을 부각시켜 주니 상당히 긍정적인 요소다. 그럼에도, 지금은.

착각인줄 알았다. 그저 얇은 옷으로 인해서 제 마음 속의 삿된 감정이 이상하게 발현한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카호가 움직이면서 살짝 풀린 오비로 인해 보이는 건.

"카, 카호 씨... 이대로라면 잠들 수 없는데도..."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잘 때에는 속옷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코즈에는 속옷을 입지 않는 것보다 나이트 브라를 차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다. 다양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코즈에는 무심코 카호가 자신과 같으리라 생각했다.

카호가 평소에 어떤 복장으로 잠드는지 몰랐던 게 패착이다. 말랑말랑하고 따끈따끈한 맨살의 감촉이 한부분만 다소 딱딱했을 때.

오토무네 코즈에는 어둑어둑했던 방안을 조용히 밝히는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으응~ 눈 부셔... 아, 벌써 아침인가..."

여행을 왔으니 평소보다 늦잠을 자도 괜찮을 텐데. 통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너무 강력한 탓에 카호는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원래라면 느껴지지 않을 따끈따끈한 체온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옆자리를 확인했다. 분명히 처음 잠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코즈에가 완전히 몸을 굽히고 자신의 품에 안겨 있었다.

와, 코즈에 선배도 이렇게 자는구나.

분위기상으론 언제나 정자세로 잠들 것만 같았다. 분명히 어제도 잠에 빠지기 전에는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카호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스르륵 눈이 감겼을 때 어렴풋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니 당연히 정자세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코즈에는 카호 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 살짝 흐트러진 모습을 하며 잠들어 있었다.

"우와..."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었다. 유카타는 쉽게 흐트러지기 쉬운 옷 중 하나였고, 그래서 옆으로 돌아누운 코즈에의 옷깃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래로 향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카호는 서둘러 입을 막았다. 물론 잘 때 브래지어를 차고 자는 사람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이런 디자인일 거라고 생각 못한 게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야하네..."

카호는 조금만 더 아침을 만끽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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