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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키모] 달과 연인

MOMMO by M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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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주관적 캐릭터 해석으로 작성된 글로, 캐주의 해석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유례없는 평안. 고요한 밤의 풍경. 키모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찌푸렸다가 살포시 웃었다. 오늘 밤에는 달이 더 크게 보일 거래요. 귓가에 속삭이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달빛에 비친 색이 다른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반짝거렸다.

키모는 제 어깨 너머로 잠든 연인을 바라보았다. 한 번 잃었던 기억 때문일까. 챙겨야 할 식구가 많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운명이 쥐어 준 삶의 무게가 무거워서일까. 제게 다시 이런 존재가 생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흐트러진 잿빛 머리칼을 살살 넘겼다. 매끈한 미간에 살짝 빗금이 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어린 티가 나네."

자신을 만나기 전부터 고생했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앳된 느낌이 있었다. 특히나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에 들어 있을 때면. 얼굴을 만지고 싶은데, 단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키모는 제가 일어난 자리에 다시 조용히 누웠다.

그리곤 파고든 이불 아래로 드러난 하얀 상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잠에 빠져 뒤척이면서도 연인은 키모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쿵, 쿵, 쿵. 일정하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그가 여기에 살아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찬 이 감정을,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까.

수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이름 한 자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가까운 친우도 있었다. 그리고 한때 인생의 절반을 내어줬던 이도 떠나보냈다. 세상이 영웅이라 칭송하는 키모였지만 사실은 겁이 났다. 쥔 것을 빼앗기는 것이, 세상의 일부를 잃는 것이,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그래서 다시금 인생 한자리에 자리를 트고 앉은 사람이 못내 불안했다. 그가 제게 주는 위로와 안식과는 별개로. 그것은 잃어본 자의 이유 있는 불안이었다. 백. 운백. 백아. 소리 없이 이름을 부르며 키모는 불안한 감정을 뱃속 깊이 눌러 넣었다. 몸을 웅크리며 잠든 품을 더 파고 들었다. 더 움직이면 제 기척에 예민한 연인이 깨어날 것을 알았지만.

"...키모."

"......."

"못 잤어요?"

잠에서 깨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유독 낯설게 들렸다. 키모는 대답 없이 백의 등으로 팔을 둘렀다. 맨 가슴이 서로 맞닿았다. 더운 체온이 느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백은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또 잠이 안 와요?"

"...아니."

키모는 고개를 들어 백을 올려다봤다. 걱정이 묻어나는 눈가를 한 번 쓸어주니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백은 할말이 많은 눈치였다.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도, 젖은 키모의 눈가를 알은 채 하지도 않았다.

"달이 밝아서, 잠이 깼어."

"아......."

키모에게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먼 밖으로 흩어졌다. 키모도 등을 돌려 누워 창밖을 바라봤다. 거짓말 조금 보태 창문만 한 달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이 시릴 정도의 밝은 빛. 목덜미에 따뜻한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

"그러게. 정말 밝네요."

"응."

"키모, 그거 알아요?"

저 달이 200년 만에 관측된 가장 큰 달이래요. 아까 낮에 키모를 기다리면서 신문을 봤거든요. 차분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잔뜩 엉켜있던 머릿속이 한 가닥씩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백은 그런 존재였다. 아니 되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운명과 사명에 짓눌려 짧은 웃음 한 절조차도 무겁던 삶에 내린 부슬비. 말라비틀어진 정신 위로 내려앉은 촉촉한 안개비. 제 이름 세 글자를 잊지 않게 하는 유일한 존재. 키모는 제 배 위로 올라온 커다란 손에 손가락을 걸었다. 가볍게 쥐어오는 압력이 좋았다.

"200년 주기로 저런 커다란 달이 뜬 대요. 정확하진 않아도, 대체로."

"그렇구나."

아까 길가에서 만난 실린이 그러더라고요. 예전에도 이렇게 큰 달을 본 적이 있다고. 나이가 들어 보였으니, 아마 200년 전 그 달을 말하는 거겠죠? 천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키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긋한 목소리에 한 걸음 도망쳤던 잠이 코 끝에 아른거렸다.

"200년 뒤, 또 저렇게 밝고 큰 달이 뜰 때도..."

"......."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당신과."

유한한 삶에 영원을 약속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키모는 알았다. 지난 그의 삶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

하지만, 백이라면 그런 바보 같은 약속을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키모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밤새가 멀리서 우는 소리와 손에 잡힌 따뜻한 체온, 둥둥 등을 울리는 묵직한 심장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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