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헌] Ghost

백업 by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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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

W. 은월

"도헌이 형 오늘 훈련 안 왔어요?"

"아, 너 모르는 구나? 오늘 그날이야."

선선한 가을바람에 빨갛게, 태양처럼 물든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흩날리는 감성에 젖는 계절인 가을의 어느 날 도헌은 훈련에 빠졌다. 스켈레톤 국가대표인 도헌은 성실하기로 유명해서 훈련에 빠지는 날이 하루도 없었는데 1년에 딱 한 번, 빠지는 날이 있었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얼마 전 선수촌에 들어온 어린 국가대표 후배는 주위의 선수들에게 물었다. 물었는데 분위기가 그닥 밝지 않아 조금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이고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선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조금 침울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도헌의 사물함에는 선수들이 넣은 흰 국화가 있었다.

도헌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그래,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다. 그니까 이미 끝나버린, 되돌릴 수 없는 관계 말이다. 도헌의 애인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이재현이었다. 훈훈한 외모에 큰 키로 인기를 끌었던 사람. 그리고, 애인 도헌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게 대해주고 어쩌면 가족보다도 큰 사랑을 주었던 사람. 재현과 도헌은 조용하게 5년간 만난 연인이었다. 다른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명하다는 곳에도 가보고, 사랑을 나누는 그런 관계. 이런 관계가 깨질 거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재현은 도헌에게 항상 사랑해준다 말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어본 건 처음이어서 재현이 도헌에게 준 사랑은 너무나 소중했다. 가끔씩은 이 사랑에 무뎌질까 두려워 힘든 적도 있었다. 재현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 때마다 도헌의 옆에서 말해주었다. 헌아, 나는 너가 내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이 없어. 근데 하나만 지켜줘, 너도 날 사랑해줘. 난 그거면 돼,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거. 재현의 이런 위로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고 눈물로 적셨던 날들도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 때는 그렇게 좋았는데 이제는 가슴을 관통하고 아파온다.

재현은 도헌의 친구이자, 애인이자, 멘토였다. 항상 도헌이 무언가 하고 싶다고 하면 군말 없이 함께 해주었고 함께 웃었다. 그리고 힘들 때 항상 옆에 있어주고 안아주고, 따뜻한 포옹으로 도헌을 감싸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국가대표 생활을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써 그의 멘탈 관리나 피드백 등을 항상 해주던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도헌의 곁을 떠난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왜 이렇게 빨리 자신의 곁을 떠나는지 원망스러웠다. 사망 사유가 교통사고였다. 길을 건너는데 덤프트럭에 치여서,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다 병원에 이송되고 끝내 죽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병원에서 오는 전화를 듣고 급하게 달려갔지만 보이는 건 싸늘한 재현의 시체였다. 재현이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자신에게 웃어줄 것 같아서 무서웠다.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도 안 난다고 했던가. 꿈만 같아서 재현의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았던 것 같았다. 도헌이 눈물을 흘린 건 통화 기록을 빼곡히 채운 재현의 기록을 봤을 때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해주던 사람이 이제는 사라졌으니 이제는 어떻게 버텨야 할지 두려웠고, 무서웠다. 재현이 원망스러웠다. 날 두고 가면 난 어떻게 살라고, 나쁜 놈.

재현이 죽고 하루는 펑펑 울었던 것 같았다. 진짜 하루종일 울어서 먹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그 순간에도 원래였으면 재현이 달려와 죽이라도 먹여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비참해졌다. 하루하루 비참해지는 자신의 꼴을 보니 역겨웠다.

도헌이 일상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데까지 걸린 시간은 두 달 남짓 걸린 것 같다. 사실 재현을 완전 잊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재현이었다면 자신을 잊고 새로운 더 좋은 사람과 예쁜 사랑을 하라고 했겠지맘 사랑하는 사람이 재현말고 없는데 그걸 이룰 수 있겠는가. 도헌은 재현이 자신에게 주었던 반지를 항상 하면서 재현을 마음 한 켠에 소중히 두었다. 

도헌은 재현의 묘가 있는 공동묘지에 찾아갔다. 재현의 이름을 찾고는 흰 국화를 두었다. 재현 묘 주위의 잡초도 조금 뽑고 씁쓸히 웃었다. 도헌은 이내 재현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형, 나 왔어. 형이 떠난지 벌써 2년이네. 시간 빠르지? 형한테 한번 반말해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그냥 반말해도 되지? 형 그거 알아? 나 이제 전보다 훨씬 실력 늘었어. 이제는 세계 랭킹도 올라갔고 메달도 더 많아졌어. 형한테 보여주려고 했는데 까먹었네, 나 진짜 왜 이래."

"아 그거 알아? 나 아마 형보다 좋은 사람 못 만날 것 같아, 아니 있더라도 안 만날 것 같아 난 형이 내게 준 사랑이 너무나도 커서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그런 건지 참 헷갈려. 난 형 아직도 사랑해, 형을 어떻게 잊어. 형도 참 꽃다운 나이에 갔다는 생각이 들어. 근데 나는 만약 다음생이라는 게 있다면 우리는 꼭 만날 것 같아. 형, 난 형이 많이 보고 싶은데 참으면서 살아가. 난 형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서 나중에 형 곁에 갔을 때 안 부끄럽게 살아갈 거야."

"형 나 이제 가야되겠다. 오늘 형 보러 와서 좋았어. 조만간 시간 나면 또 올게. 사랑해."

도헌은 보이지 않는 재현에게 살짝 손을 흔든 다음 떠났다.

If I can't be close to you

I'll settle for the ghost of you

I miss you more than life.

- Justin Bieber _ 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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