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선] 보통의 연애

추억으로만 남길 것, 재회는 절대 하지 말 것.

백업 by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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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연애

w. 은월

글을 시작하기 전: 

기억을 되짚는, 정리 되어있지 않은 독백 上

처음 언니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나와 저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달라도 너무 달라서 결코 같이 무언가를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실제로 나와 언니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소위 말하면 상극의 관계였다. 나는 밝고, 외향적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지만 언니는 항상 자기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지만, 의외로 언니는 여리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세상을 숫자 따위로 이해하려 했지만, 언니는 이 세상을 글자로, 나보다 더 부드럽게 이해하려 했다. 뭐, 나는 이과고 언니는 문과니까. 그리고 나는, 나는, 언니가 항상 나에게 있어 우선순위 1위였다, 아니 어쩌면 1위보다 더 중요했다. 언니라는 사람을 그저 숫자 따위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언니가 소중했다.

언니와 나의 첫 만남도 신기했다. 내가 학교 축제 영상으로 학교 사람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고 있을 때 언니는 날 몰랐다. 그냥, 언니는 그런 축제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 처음에는 날 모른다는 말에 관심이 갔다. 순수하고 조용해 보이는 얼굴로 날 관찰하는 게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언니는 알아냈다. 내가 그 '김보영'이라는 걸. 언니는 자신이 화젯거리가 되는 걸 싫어해서 날 피했다. 그런 모습까지도 귀여워하고 남몰래 좋아했던 게 나였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피하고 쫓아다니다가 마음을 먼저 표현했던 것 같다.

언니, 저 언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말을 수줍게, 어쩌면 담담하게 꺼내자 언니는 멍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그 순간마저도 난 언니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걱정 없이 그 순간의 언니를 좋아했다. 언니는, 너무 예뻐서. 언니는 날 이내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었다. 나도, 너 좋아. 그때 상기되어있던 볼과 빨갛게 물든 귀, 그리고 추운 날씨 탓에 차갑고, 갈라져 있던 손. 그리고 날씨가 추운 걸 몰랐는지 코트를 입고 나온 언니. 그리고 타이밍이 기가 막혔던 첫 눈. 그냥,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나의 고백이었다. 그렇게 정반대의 성향인 김보영과 이 선은 사귀게 되었다.

우리의 연애에는 딱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우리가 사귀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 것. 내가 내세운 조건은 아니고, 언니가 내게 말한 조건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 조건의 의미를 잘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괜히 어린 아이처럼 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언니, 왜 비밀로 해야 해? 그... 아니다. 아니 비밀로 하면 할 거긴 한데 그냥 궁금해서. 보영아 너처럼 공감 잘 못 하는 사람은 이유 말해도 이해 못 해. 언니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돼서 희미해진 기억들 중, 이것만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왜일까, 이 조건 하나가 뭐라고 그리 명확하게 남아 있던 걸까. 추웠던 겨울날, 언니는 너무 따뜻했다.

우리의 연애는 남들과 같았다. 점심을 같이 먹고, 쉬는 날에는 놀러 다니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가서 놀다 오기도 하고. 그러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서로 입을 맞추는, 그런 보통의 연애였다. 많은 스킨십 중 언니는 유독 안아주는 걸 좋아했다. 내가 언니를 안아주는 거든, 내가 언니에게 안기는 거든 뭐든지. 항상 헤어질 때도 언니는 날 꼭 안아주고 갔다. 그게 끈적이고 더운 여름날이든, 추운 바람에 코끝이 찡해지는 겨울날이든. 언니의 포옹은 따뜻했다. 힘들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것도 언니의 포옹이었고, 기분이 좋은 날에도 항상 찾게 되고, 또 받고 싶던 게 포옹이었다. 그냥, 서로를 안고 있을 때면 느끼게 되는 그 설레임이 서로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그런 보통의 연애. 

언니가 내게 왜 자신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었다. 언니랑 있으면 편안해서. 항상 나에게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고, 나의 겉모습만 보고 친해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언니랑 있으면 어딘가 항상 편안했다. 내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언니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같이 있을 때 말이 없어도 별로 불편하고 어색하지 않은 사이. 그런 사람과의 관계가 내게 필요했는데 언니는 그걸 내게 채워주었다. 나는 그렇게 항상 내 곁에 있어주는 언니가 좋았다. 나는 그런 언니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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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짚는, 정리 되어있지 않은 독백 下

너는 언제나 밝은 아이였다. 항상 웃는 표정을 유지하고 다니고, 남들과 함께 있을 때도 항상 눈에 띄는 그런 아이. 그렇게 밝고 친화력 좋은 네가 나와 가까워지게 될 줄은 물랐다. 너는 우리 관계를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자석 같다고. 우리는 S극과 N극처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붙어다니고 떨어트려 놔도 결국 붙는 그런 관계라고. 너는 우리를 자석 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그 표현에 종종 웃음 짓고는 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우리의 관계를 사계절이라 했다. 유치한 표현 같지만, 너는 여름 같았고 나는 그 반대에 있는 겨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네가 소중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표현에 있어 서툰 아이였다. 남들이 공개수업에서 부모님께 사랑해요라 말할 때 나는 혼자 우물쭈물 거리고는 작게 사랑해요라고 말하고는 했다. 이런 나만의 표현 방식은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해 보였다. 항상 앞에서는 말을 하지 못 하다가 뒤에서 편지를 주고, 쪽지를 주는 그런 사람. 사람들은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별난 놈이라고, 감성적인데 정작 자신의 마음은 모른다고. 그런 사람들의 평가에 지쳐가고 나 자신을 점점 가두고 있을 때 너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너는 표현에 있어 거침없고 망설임이 없는 아이였다. 너는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아이였고 나는 그런 네가 부러웠다.

너는 내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너가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순간부터 나의 표현은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좋아해, 라고 말한 적이 언제적이었더라. 기억을 되짚어봐도 누군가에게 내 의지로 좋아한다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너는 내게 바라는 게 없었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런 나를 항상 귀엽다며 토닥여주었고 내가 너에게 표현할 때까지 항상 기다려주었다. 말이 더 부끄러워서 내가 찾은 방법은 몸으로 표현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널 항상 안아주었다. 안아주는 게 내 최선이라서. 그 이상은 너무 버거워서. 나는 내가 사랑을 주는 건 버거웠지만 너의 사랑만큼은 넘쳐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랑 속에서 헤엄치는 게 행복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네가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 연애의 조건이 있었다. 우리의 연애를 비밀로 할 것. 이건 유명한 네가 연애하는 걸로 남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길 바라는 내 마음이었다. 혹시, 혹시, 혹여나 우리가 헤어졌을 때를 대비해 그냥 미리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판단한 내 작은 배려였다. 그때는 이 이유를 말하기 어려워 그냥 둘러댔다. 그리고 난 그걸 후회하고 있다. 그냥, 속는 셈 치고 말해줄 걸. 우리의 연애를 비밀로 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줄 걸. 그렇지만 네게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게 사랑이라 생각했다. 

보영과 선은 사귀었다. 그래, 과거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고 손을 맞잡고 다니던 그런 연인 사이. 남들과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굳이 남들의 연애와 달랐던 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둘의 성격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사람들이 서로 정반대인 사람끼리 만나면 좋다, 좋다, 결국 잘 맞는다 하더라도 말은 말일 뿐 현실은 달랐다. 현실에서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과 사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을 의미했다. 내가 아무리 상대를 사랑해서 그 사랑으로 그나 그녀를 이해하려 해도 결코 이해하지 못 하고 그저 어설프게 넘어가는 게,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성향이었다. 김보영과 이 선은 제 3자가 보더라도 딱 알 수 있었다. 저 둘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이를 테면 김보영은 감정이 메말라 있는 사람이었다. 표현을 잘 하는 것과는 별개로, 감정과 공감능력에 있어 메말라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 해서 그것 때문에 언쟁이 오고가고는 했다. 보영이 남의 말에 왜?라는 질문을 달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쟤 이과라서 그래. 맞아, 쟤 공대생이잖아. 신소재공학과도 저렇게 딱딱한 거였어? 나도 어제 알았어. 존나 어이없네. 쟤 저래서 남자친구는 사귀겠어? 그니까 난 쟤 왜 인기 많은지 모르겠음 레알. 보영은 이런 수군거리는, 뒤에서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으며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저런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면 어차피 나랑 볼 사이도 아닌데 뭐, 하고 넘기고는 했다. 이 정도로 김보영은 감정에 메말라 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그녀의 애인 이 선은 보영과 정반대였다. 표현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서툴렀다. 보영에게 마저도 연애 초반에 좋다, 사랑한다, 예쁘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잘 꺼내지 못 했으니. 이런 선은 누구보다도 남들의 반응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그니까 좋게 말하면 남들 반응에 신경 쓰며 자신과 타협하려는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예민한, 그니까 그녀의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랄맞은 성격이었다. 하도 남들의 시선에 예민한 성격 탓인지 선은 보영과 사귈 때도 항상 눈치를 봤다. 그렇게 불안하게 연애를 했지만 보영이 보여주는 사랑 하나에 웃고 금새 잊고는 했다. 선은 남들 시선에 신경 쓰지않는 보영이 좋았다. 그리고 그 둘이 잘 맞았다. 

둘은 대학생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김보영이 21살, 이 선이 22살 때 만나기 시작해 지금은 보영이 27살 선이 28살이 되어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캠퍼스 내에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점심을 같이 먹곤 했던 둘이. 과제에 지쳐 무작정 서로의 집에 찾아가서 위로를 받았던 둘이. 돈이 때로는 없어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대신하곤 했던 둘이. 이제는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그니까 대학생이었던, 청춘 밖에 모르던 둘은 이제 사회에서 비좁은 자리나마도 인정받는 구성원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본론으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저 둘이 헤어진 건 한 달 전 쯤의 얘기다. 한 달 전, 그니까 1월에서 2월 그 언저리의 시기. 김보영과 이 선은 막 6년이 되어가는 커플이었다. 그러니까 장기연애를 하고 있는 평범한 연인이었다. 현실의 장기연애는 둘이 생각해오던 이상적인 장기연애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둘은 얼마 전부터 느끼곤 했다.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장기연애라 함은 이것이겠다. 서로의 집의 비밀번호까지 다 알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조금은 모자란 모습을 보여도 익숙한 듯 넘어가는 그런 분위기. 익숙한 사랑 속에 드문드문 있는 설레임. 그런 연애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것이었고 실상은 많이 달랐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이곳저곳 유명하다는 곳들을 다니며 웃고 사진 찍고는 했다. 음식 하나에 웃음이 나오고 걷기만 해도 설레이던 그 시기. 남들의 눈을 피해 볼에 입을 맞추고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서는 괜히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얘기를 하며 걷던 그 시절. 그런 시절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필름은 이미 빛이 바랬고, 새롭게 쓰는 필름은 너무나도 단조로웠다. 만나는 곳은 거의 정해져있다시피 했다. 둘의 회사 사이 딱 중간 지점쯤 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동네 카페. 그 카페에서 둘의 회사가 끝날 때쯤 만나 커피를 마시고 가끔씩 저녁을 같이 먹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누가 먼저 만나자, 라고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 필요도 없이 일이 끝나면 카페에 앉아 각자 커피를 시켜 마시고는 집에 가는 게 둘의 일상이 된 것이다.

둘은 이제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학교에서 조금 알아주던 김보영도,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던 이 선도. 항상 카페에 먼저 와있는 건 선이었다. 선은 먼저 자리에 앉아 자신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먼저 시켰다. 보영이 어차피 조금 늦을 텐데, 얼음 녹으면 별로니까. 나름의 배려였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에 말 없이 할 수 있는 배려. 그렇게 핸드폰으로 무의미한 것들을 찾아보고 그런 것들에 피식대며 웃고 있다 보면 선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보영이 오곤 했다. 보영은 그럼 익숙하게 자신의 것을 시켜 받아와서는 선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면 둘이 오늘 회사가 어땠는지 얘기하다, 각자의 핸드폰을 보다가 정확히 35분이 지난 시점에서 헤어졌다. 서로 미련없이, 그냥 집 조심해서 가, 라는 말과 함께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 그게 장기연애의 숙명이었다. 약간의 지침이 있어도 견디고 정으로 함께하는 것. 사랑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지 않아도 감수하고 교제를 계속하는 것.

둘이 헤어지게 된 것에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조금 지쳐서. 더 이상 설레임이 느껴지지 않아서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까. 둘은 이미 삶에서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회사가 끝나고 난 뒤 보는 것 말고는 서로 데이트할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추운 날이든 더운 날이든 잡고 다녔던 손은 이제 다한증이라서, 추워서, 찝찝해서. 많은 이유를 둘러대며 잡지 않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둘이 헤어질 이유는 충분했다. 헤어지는 날도 평범했다. 그냥 일주일 중 기분이 그나마 평범한 수요일, 헤어지기 전. 선이 보영에게 헤어짐을 고했다.

"보영아."

"응 언니."

"우리 헤어질까."

보영은 선의 말에 고개를 돌려 선을 바라보았다. 선은, 많이 변해있었다.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헤어짐을 말하는 순간 마저도 평온했다. 아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긴 했다. 오래 사귀었기에 알 수 있는 선의 목소리에서 우러나오는 불안함, 떨림, 그리고 지금쯤 미친 듯이 뛰고 있을 언니의 심장. 보영은 선의 말에 가만히 있었다. 선은 끝까지 보영을 배려했다. 헤어지자, 가 아닌 헤어질까, 로 보영에게 의사를 물었다. 보영은 그런 선의 질문을 곱씹다가 선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만약 싫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답하려고 했어?"

"...그럼 계속 사귀는 거지."

"그러다가 시간 되면 같이 동거하고 결혼하고?"

"우리는 결혼 어려운 거 알잖아."

"그냥 하는 말이지."

보영의 말에는 이상하게 날카로움이 묻어있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그냥 질문이 날카로웠다. 이별의 순간까지 보영은 이성적이었다. 선도, 보영이 할 법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보영은 선의 결혼이 어려운 걸 알지 않냐는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이 언니도, 나 닮아가고 있구나. 다시 찾아온 정적에 보영은 또다시 생각했다. 그냥, 짧게나마 헤어진 뒤 우리의 앞날 뭐 이런 것들. 보영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선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몰래 시간을 확인했다. 아, 지금 이 차 안 타면 다음 열차 올 때까지 10분 기다려야 하는데. 

"그래, 언니 말대로 하자."

"보영아 날씨 추워, 따뜻하게 입고 다녀. 먼저 간다."

"언니 잘 가."

고마웠어. 보영은 떠나는 선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별의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시시했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마지막 포옹도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연애의 결말이었다. 보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자신의 집에 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게 김보영과 이 선의 연애의 결말이었다. 뻔하디 뻔한 그런 결말.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알아서 가는 그런 연애. 보통의 연애.

보영아, 나는 가끔씩 그런 의문이 들어. 우리가 이 길의 마지막에서 서로를 사랑하기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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