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연장의 댓가

아셀린+카발레타

눈을 떴을 때는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다만 익숙한 피냄새와 푹신한 감각이 느껴졌다. 등에 닿는 감각이 아니었으면 분명 다른 걸로 착각했을 것이다. 에스피아가 기어코 나를 살렸구나, 같은. 물론 이 상황에서도 잘린 팔과 다리는 여전했지만서도. 그렇지만 붕대가 감겨 있었다. 죽지는 않았구나. 하지만 자신을 이렇게 데려다가 치료해줄 사람은 없지 않나. 카발레타는 머리를 굴렸다. 뭘까. 누구일까.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걸까. 카발레타의 머리가 급하게 돌아갔다. 도망갈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한 쪽 다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니, 아니지, 기어서라도 도망치는 게 맞나? 상체를 일으켜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인기척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기에는 익히 아는 얼굴이 보였다.

“……네가 여기로 데려온 거야?”

“응.”

“왜?”

“이유가 필요해?”

붉은 눈동자가 카발레타를 응시한다. 자신도 같은 계열의 눈동자건만, 저 눈동자는 역시 마주할 수가 없다. 아셀린 메리안.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에스피아 에리도트의 파트너이자, 코드네임은 ‘메리’인, 뒷골목의 공포의 대상. 그리고 동시에 사람을 살렸는데도 이유는 없는 놈. 아셀린은 늘 그랬다. 행동 하나하나가 충동적이었던 탓에 그에 따른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친 새끼. 그렇기에 더 꺼려진다고 해야할까. 생명을 앗아가는데 마땅한 죄책감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생명을 살리는 것에도 무게를 부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어야 가능한 행동. 따지고 든다면 에스피아보다 훨씬 더 했다. 아셀린에게 자신을 살린 이유를 캐묻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것을 묻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알기에, 카발레타는 입을 열었다.

“됐어……. 에스피아는?”

“당연히 살아있지. 설마 내가 죽였을까봐?”

“죽었으면 했는데 말이지.”

“파트너를 죽이면 몇 년 동안 괴담처럼 이야기가 떠돌 걸.”

“너 그런 거 신경 안 쓰잖아. 그리고, 그런 곳 아닌 거 알거든?”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바빠 가십거리가 퍼지지도 않는 곳. 퍼지지 않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에서나 그런 것이지 그곳을 벗어나면 언제나 죽음의 위기에 닿아있다. 그것을 경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경이 곤두서느라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 외에는 전부 잊어버리고 흘리게 된다. 카발레타는 그 생태계를 잘 알았다. 그러니 아셀린이 저렇게 말하는 것이 어이 없을 수 밖에. 아셀린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카발레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응시하려고 했으나, 시야가 흐렸다. 선명하게 보일 줄 알았더니. 눈도 멀쩡하지 않은 건가……. 카발레타는 속으로 혀를 찼다.

“만들어줄까.”

앞에 생략된 주어를 알고 있다. 다만, 우습게도 저 말은 물음이 아니다. 카발레타가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고 묻는 말. 아셀린은 자신을 잘 아는 것처럼 굴었다. 실제로는 자신의 행동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러나 가장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저 말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 이번만큼은 아셀린의 확신이 맞다는 것. 카발레타는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댓가는.”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저거 충동적으로 살린 거 맞다니까. 이 세계에서 기브 앤 테이크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걸 생각하지 않고 목숨을 살려준데다 의체까지 만들어줄까, 하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그냥 호의라고 생각해도 된다. 말한 대상이 아셀린이니 정말 댓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하지만 댓가라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건 계속 자신에게 빚으로 남아 돌아다닐 것 같아서. 당장 지금 청산하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에서 그런 걸 생각했을리가. 카발레타가 어떤 시선을 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셀린은 오랫동안 침묵하다 한 마디를 뱉었다.

“생명을 빚진 거잖아.”

“……그렇지.”

“그럼……. 나한테 가르쳐줘.”

마찬가지로 주어는 없는 말이다. 그러나 카발레타는 주어 없는 말을 알아들었다. 자신은 알아낼 수 없는 범위에 대한, 평생토록 이해할 수 없는 분야를 알려달라고. 아셀린은 태생적으로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가르쳐달라고 하는 것은. 아셀린이 언제부터 ‘섞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그건 짐작할 수 없지만 아셀린은 언젠가부터 자신을 기워내기 시작했다.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섞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향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누군가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카발레타였으므로….

“목숨의 댓가가 너무 영구적인 거 아냐?”

“네 의체들도 영구적일 거잖아. 주기적으로 점검도 받을거고. 그걸 생각하면 괜찮은 댓가라고 생각하는데.”

카발레타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의체 제작자, 주선부터 해줘. 다 만들어진 뒤에 가르쳐줄테니까. 아셀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리가 온전하지 않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에 제작자를 이쪽으로 부르겠다고 했다. 그걸 들으며 생각했다. 얼마가 들까. 아셀린은 그 비용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지만, 카발레타는 머리에서 비용을 굴렸다. 눈 하나만 해도 얼마인데, 팔과 다리……. 절반 남은 팔과, 전부 다 날아간 팔. 그리고 제대로 나간 다리. 얼마일까. 돈 정도는 아셀린이 내주겠지만서도. 이걸 정산하는데 아셀린이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려주는 게 수지타산에 맞는 걸까.

고민해봐야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생각이 계속 카발레타를 잡아먹었다. 얼마 들었는지 솔직하게 물어볼까. 이상한데서 솔직했고 이상한데서 솔직하지 않았으니, 이것도 숨길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물어보긴 해야지. 비용 절반 정도는 자신이 대야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죄책감에 짓눌렸대도 일은 열심히 해왔다. 이런 곳에서 홀로 지내는 것은 죽을 확률을 더 높인다는 걸 알면서도, 아셀린과 에스피아와 엮이기 싫어 일부러 혼자 지냈다. 의미 없었지만.

“얼마야?”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신경 안 쓰게 생겼어? 내 일인데 그 정도는 알아야지.”

“네가 날 가르쳐주는 거면 돼.”

“……뭘 알고 싶은 건데?”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 아셀린이 말하는 ‘사람’이 무엇인지 뻔했다. 거부감이 들었으나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생각보다 괜찮기는 했다. 짜증나게도……. 그래. 어쩌겠나.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사람인데 발이라도 핥아야지. 그러나 카발레타는 곧 이어 그것을 크게 후회했다. 저 망할 자식에게 이런 걸 알려주면 안됐었는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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