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즈

천세

제목 없고 대충 낙서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너랑은 안 엮여.

전부 다 알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삶이 지나더라도 서로 진득히 엮일 수 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내뱉었다.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 말을 왜 내뱉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겠지. 자신의 태도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도덕성과 완벽히 어긋난 것들이 가득했으니까. 예전이었다면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라도 뗐겠지만, 지금은 그러는 것도 불가능했다. 천선정은 이미 인간들과 오래 지내며 자신의 기준이 많이 어긋났다는 것을 학습했기에.

그리고 천선정이 기준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고 한 소리를 얹었던 것은 소세리였다. 제정신이야? 미친놈……. 그 정도에 불과했지만, 소세리는 꾸준히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도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이 나오면 그때는 말을 얹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내뱉었지. 그리고는 더는 말을 꺼내지 않고 지나갈 뿐이었다. 천선정은 그게 어디서 기인됐는지 알았다. 불쾌감이나 본능적인 거부감. 어쩌면 둘 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따지자면 소세리는 감정적인 편이었기에.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꽤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봤자 결론은 늘상 ‘조금 더 효율적인 쪽을 택한다’였지만. 천선정은 그것을 우습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렇게 결론 내릴거면서, 도대체 왜 고민을 하는 건지.

─너처럼 최소한의 고민도 안 하고 사는 것보다는 낫지. 계속 생각한다는 건 결국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니까.

─고찰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무엇이 바뀐다고.

제가 한심하게 보는 것을 알아챈 것인지, 언젠가의 소세리는 그렇게 말했었다. 당연하게도 천선정은 이해하지 못하여 되물었지만. 소세리는 천선정의 말에 태연히 대꾸했다. 멈춰있는 것보다는 나아가지 않더라도 고민하는 게 낫지. 고민만 하는 게 아니라 나아가는 게 가장 좋겠지만……. 소세리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그렇지만 천선정은 소세리의 말 뒤에 붙을 말을 알았다.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는 말. 물론 지금 상황이 정말로 따라주지 않기는 했다. 나아가고 싶어도 지금으로서는……. 하고싶은 것을 하다가는 내쳐질 것이 분명하니 차마 그럴 수 없었겠지. 그러나 소세리는 늘상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만들어둔 족쇄에 매여 움직일 수 없는 사람.

동정해본 적 없다.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천선정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 사람이 일을 망치게 할 것인가. 그것이었으므로. 소세리는 생각보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류였다. 필요하다면 제 감정을 감출 줄은 알지만, 그렇더라도 매번 고민하여 스스로를 갉아먹는 작자. 천선정의 입장에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냥 주어진대로 살면 편한 것을, 굳이 그렇게 해야할까…….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면서도 매번 고민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것들이 ‘타인을 위한’ 방향이었다. 정이 많다. 그럼에도 선은 착실하게 긋고, 공사구분이 확실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이.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이거 납득 못 해.

소세리가 처음으로 천선정에게 한심하다거나 경멸의 빛을 내비치지 않고 명확히 거부의 의사를 표현한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려와 실험하는 것까지 눈 감았던 주제에, 그 이상 나아가는 것은 거부했다. 실험체를 망설임 없이 ‘폐기’하는 것도 망설임 없었으면서. 그 모순이 어이가 없어 결국 헛웃음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태도에 소세리는 더욱 화를 냈고. 그러나 늘상 소세리의 태도에 의문을 말했던 천선정도 그때만큼은 다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자신의 태도와 선택이 상당히 많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어긋난 계획. 그러나 이행해야만 했던 것. 그 결과가 아주 처참해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천선정은 이행했었다.

─……너는, 타고난 능력을 봉인할 수 있지.

누가 보아도 ‘지쳤다’라고 할 수 있는 듯한 모습. 천선정은 그것에 시선을 두지 않고, 소세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리스크가 큰 행동을 굳이…….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소세리가 원한다면야. 부작용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천선정은 조용히 소세리에게 손을 대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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