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즈

계획

투비 백업

“영광이네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1황녀의 호위기사께서 반역자의 딸을 도와 잔당처리를 해주신다니.”

“빠르게 끝내면 너도 타국 생활 여기서 끝내고 돌아올 수 있잖아.”

“그래도 나름 이곳의 황제께서 신경 써주시고 계시거든요. 그 외의 귀족들도.”

“여기서도 귀족 생활하고 있다는 뜻이겠구나.”

우후후, 민서현은 가볍게 웃었다. 하긴 자신을 초대한 장소를 본다면 아무래도 천대는 받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귀족 취급 받는 걸 보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고. 소세리는 제게 내어진 찻잔을 바라보았다. 곱게 자란 것치고 이 정도면 나름 선방인가. 이것도 늘어지면 아마 제 앞에 있는 여자는 제 신경을 긁겠지. 마주한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지만 소세리는 갖가지 정보로 인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민서현도 알고 있을테지.

“경께서는 그 여자의 명령이라면 전부 듣는 인형 같단 말이죠.”

“난 그래도 내 일가족을 버리지는 않거든.”

“살기 위해서라면 당연한 선택 아닌가요?”

생존에 가족이 방해된다면 치우는 것이 맞답니다. 말을 끝내고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웃고 있는 얼굴. 자신이 살아있기 위해서라면 가족마저도 배척하는 여자. 민서현은 그런 존재였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하지는 않지만…… 소세리는 초록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운명이 꼬인 사람치고는 생기 있고 맑은 눈동자. 다만 순수한 악의로 점철되어 있는 눈.

“내가 아는 누구보다 네 생존 의지가 아주 강해, 너는.”

“아하하! 칭찬 고마워요~. 이렇게 칭찬에 헤픈 사람일 줄은 몰랐는데.”

​“하아……. 됐어. 너, 남은 잔당 위치들은 다 알고 있나?”

“알고 있어요. 그도 그럴게, 그 당시 ‘우연히’ 살아남은 것들은 저도 똑같이 우연히 살아남은 줄 알고 저를 반역의 주축으로 삼고 있답니다.”

​“하지만 죄다 배신하실 예정이고.”

민서현은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하지만 소세리는 알고 있다. 저 웃음이 긍정의 의미라는 것을. 처음부터 소속된 모든 이들을 죽여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그게 민서현 답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다르게 생각한다면 민서현이 계획을 세워두었다는 소리겠지. 그것에 협력하면 된다. 최소 몇 년은 생각하고 있었건만, 그보다는 적을지도 모르지. 얼마가 됐든 간에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는 기간은 실종, 그렇게 처리가 될 예정이었다. 레피드가 뒤집어지겠지만 뭐 어때. 우리 황녀님께서는 늘 태연하실텐데.

​“그래서 말이에요, 계획에 협조해주셨으면 하는데. 당신도 이건 비슷한 생각일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얘기가 빨라서 좋네. 당연하지. 협력할 예정이야. 그러니까, 최대한 상세하게 알려주고……. 내가 필요한 일이 있을 것 같다면 잘 써먹어. 그러려고 보내진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그랬다가는 당신이 모든 걸 정리하게 될 수도 있는 걸요.”

“네게는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닌가? 빨리 한시라도 고향 땅을 밟고 싶잖아. 네 생존에 방해되는 이도 없을거고.”

“눈치가 빨라서 흠이라는 말, 들어본 적 많죠?”

“하지만 누구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는 못하지.”

너 같은 사람이 아니면. 대외적으로 지내는 이들이 워낙 편하게 지내어 자각이 안되는 편이다만, 일단 소세리는 공녀의 위치였다. 그 외에도 2지부 기사단장이기도 하고…… 1황녀의 비호를 받고 있기도 하고.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소세리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소세리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간에 사람들은 겉으로는 넘기고는 했다. 소세리가 죄다 알아챌 수 있다는 건 모르는 채로 말이지. 어쨌건 그렇기에 소세리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 거의 없었다.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사교계에서는 없었으니까.

​“어쨌든……. 너한테 잠깐의 족쇄를 채워놓고 싶은데, 동의할 생각이야?”

“그거 저한테 선택권 없잖아요? 뭐든 간에 편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아직은 반역자의 딸이라는 위치니까.”

민서현의 말에서 뼈를 느꼈으나, 소세리는 가볍게 무시하고 작은 상자를 꺼냈다. 장신구를 담는 상자. 민서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눈치챘다. 작은 귀걸이. 천선정이 자신의 휘하에 두는 사람―정확히는 간부파의 사람들에게―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로 쓰는 것. 보석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저건 천선정의 마력으로 만든 것이다. 마력으로 만든 보석. 흔하지는 않지만, 천선정은 그 흔하지 않은 것을 간부파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사용했다. 제 마력으로 만든 것이니 어떤 영향을 주든 자신 자유기에.

하지만 가지고 있는 마력의 흐름에 따라서 천선정의 마력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 했을 때 천선정은 그것조차 버티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이 끌어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던가. 민서현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레피드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요주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유야 당연하게도 레피드를 떠난지는 꽤 오래 되었으니까. 19살에 망명하여 프리지아에서 몸을 위탁한지가 7년이다. 당연히 레피드에 대한 정보가 흐릿할 수 밖에.

“직접 할래? 아니면 해줘?”

“그런 서비스까지 해주시나요? 의외네요.”

​“원래 절차는 천선정이 직접 한다는 거 알려줄게.”

​아, 하긴. 본래 천선정의 마력에서 나온 것이라면 본인이 직접 해주는 형태겠지. 어쩐지 상상하니까 소름이 돋긴 하는데……. 민서현은 보석 상자에 담겨있던 귀걸이를 잡은 뒤, 제 왼쪽 귀에 걸려있던 귀걸이를 빼고 천선정이 준비한 것을 걸었다. 귀에 닿자마자 천선정의 마력이 민서현의 몸을 지배했다. 탁한 기운이 몸을 한 번 훑더니, 다시 귀걸이에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부터 자신은 천선정에게 감시 당하는 몸이 되었다. 뭐, 직접 연락도 할 수 있으니 나쁘지는 않겠지.

​“기분 나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건 아니네요.”

“천선정의 마력과 어느 정도 잘 맞는 모양이지.”

​“기분 나빠졌어요.”

알 바인가. 소세리는 용건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더 할 얘기가 없다. 거처 같은 경우에는 유링마가 구해다줬고, 설령 거처가 없대도 야영이나 바깥에서 지내는 것은 익숙하므로 상관 없었다. 귀족이라 곱게 자랐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실종 처리 해놓고 돌아와서 일처리 하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환멸하던가 경멸하던가……. 어째 좋은 생각은 들지 않네. 그동안 봐온 인간 군상이 있으니 당연하지만서도.

어찌됐던 소세리는 민서현의 저택을 나왔다. 한시라도 같이 살면 좋을텐데, 아무래도 저쪽이나 이쪽이나 불편한 건 매한가지일테니까. 그러니 민서현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 소세리는 시선을 돌렸다. 이제 임무를 해야할 시간이다. 자세한 계획은 나중에 얘기하더라도, 지금은 초석 정도는 다져놔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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