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즈

무제

230111 투비 백업

​​건조한 금색의 눈동자가 제 목에 올려진 손을 향했다가, 이내 제 위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사실 능력을 쓰면 되는 일이라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고 해야하나. 애초에 굳이 능력을 쓰지 않아도 천선정이 동요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뻔히 보이니까. 평소에 소세리의 ‘눈’으로 보는 천선정은 늘 절제되어 있고, 스스로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했다. 그런데, 지금은? 티가 날 정도로 동요하고 있다. 아마 천선정의 표정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겠지. 볼 수 없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는 일이 거의 없는데. 소세리는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일렁거리고 있는 검은색의 형체들. 천선정에게서는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지금 천선정의 감정을 읽으면 머리가 엄청나게 아파지겠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저를 제압한 뒤에, 목 위에 손을 올려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목이라도 조를 줄 알았더니만 또 그건 아니고. 어쩌면 목에 손을 올리고 난 다음에야 아차싶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걸 수도 있지.

천선정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니, 소세리는 한숨을 쉬고 제 목에 올려진 손을 떼어냈다. 의외로 반항하는 건 없고, 힘도 세게 주지 않고 있다. 그러면…… 바로. 시야가 훅 뒤집히고, 어느새 천선정의 형체가 제 밑에 있었다. 이제서야 제정신을 차린 것인지 서서히 진정되어 가는 것이 눈으로 보이기에 소세리는 서늘한 눈으로 천선정을 쳐다보았다. 잘하는 짓이다. 그렇게 중얼거리자 천선정이 어색하게 웃었다.

“악몽이라도 꾸셨나봐?”

잠도 안 자는 놈이. 말을 하지 않고 삼켰으나 천선정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리라. 천선정은 정말 어색한 표정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따지고보면 악몽이 아니라 환각에 더욱 가깝지만 말이지. 소세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천선정은 가끔, 아니 자주 환각을 보았다.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라 현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 당시에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환각을.

그동안은 정신력과 약으로 버텨왔다. 옆에서 천유성과 윤혜현이 원망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여놓고 뻔뻔하게 구는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모두가 죽을 일도 없었을텐데, 우리도 살아있었을텐데……. 가족을 죽이고도 뻔뻔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거구나, 내 사랑스러운 남동생은.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급하지 않다면 환각인 것을 알기에 그저 넘겼고 중요한 일이 있다면 약을 삼켰다. 어떤 때에는 약물이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알약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몸이 망가질 거야. 누나의 다정한 걱정이 들렸으나, 그 또한 환각임을 알았다.

환각을 제대로 처리할 생각도 안 하고 몇 년―천선정의 체감일 뿐이니 실제로는 더 길 것이다―을 버텼다. 몸은 몰라도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 소세리와는 동거하고 있으니 자주 마주치는 일이 없기에 숨기는 것은 쉬웠다. 그저 방 안에만 있으면 되었으니까. 다만, 오늘의 일은 계산 외였다. 소세리가 일찍 귀가하는 것도, 자신의 정신이 이렇게까지 한계로 몰려있어 소세리에게 달려들 줄도 몰랐고. 물론 소세리는 자신을 제압하고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반응했지만. 여전히 무감한 금색의 눈동자에는 의외로 경멸의 시선이 들어 있지 않았다. 이건 그나마 좋은 걸까…….

“……악몽보다는 환각. 자봤자 시간 낭비라서.”

“말했으면 방법 정도는 찾아줬을 걸.”

​“우리가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

“그럴 사이가 아니라고는 해도, 이건 아니라고 보는데. 만약 네가 폭주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천선정은 결국 시선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아니라고 본다라. 언제부터 이런 사소한 것들을 서로 이야기 하고 살았다고……. 오늘 같은 변수만 없었더라면 분명히 몰랐을 거면서 말이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들킨 순간부터는 서로 신경 쓸 수 밖에 없겠지. 그런 관계니까.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 가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정작 무언가 하나 알아내면 왜 말하지 않았냐 따지면서 이것저것 도와주는, 그런 관계.

“어떻게 버텼냐.”

“대충 예상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상태가 안 나아지지.”

본인도 이런 상황이 된다면 비슷할 거면서 말이지. 물론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신경을 거스르기에는, 그런 건 아니고 괜히 입을 열어서 일이 귀찮아지는 건 사절이라. 소세리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약이라도 구해다주려는 걸까. 천선정은 상체를 일으켜 세워 바닥에 앉았다. 옆에서는 아직도 천유성과 윤혜현의 환각이 보이고 있다. 아까 소세리에게 제압당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떠들고 있었던가. 이제는 거의 일상이라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던 건데.

아, 머리가 아파온다. 약의 부작용인지 뭔지… 가끔 이런 식으로 두통이 일 때가 있었다. 잠깐 아픈 머리를 두고 있자, 소세리가 방 안에서 나왔다. 손에는 약을 쥐고서. 한가득일 줄 알았는데. 몸상태를 배려해준걸까. 아니, 평소의 자신의 취급을 생각하면 그건 아닐테고. 그냥 그것 밖에 없었나보다, 천선정은 멋대로 결론냈다.

​“억제제.”

“이런 식으로 통제한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닥쳐. 소세리가 거칠게 말하고는 약통을 천선정에게 던졌다. 천선정은 그것을 가볍게 받았고, 약통을 열어 입에 알약 하나를 씹어먹었다. 효과는 좋은 모양이네, 순식간에 환각들이 사라진 걸 보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닐테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천선정은 눈을 깜빡였다. ……헛소리만 안 한다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는데 말이지. 하하. 어색한 웃음이 잠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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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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