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큘러스 전력

얼음

레이디버그 439회 전력

선명한 햇빛이 내리는 날. 완벽한 기상캐스터의 자질을 갖춘 오로라 보레알이 데뷔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같은 이유에서 햇빛을 만끽하는 대신 양산으로 피부를 보호했다. 쏟아지는 빛은 스튜디오의 조명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기대해서였을까. 패배에 대한 절망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쓰라렸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질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당해.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떳떳할 만큼 노력했고 그만큼 실력이 있다고 자부했으니까. 내 노력과 실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건 너무 부당한 일 아니야?

엘리베이터의 차가운 벽에 기대 화를 식히려고 했을 때,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부당하고말고. 당연히 네가 기상캐스터가 되었어야 해.

순식간에 머리가 차가워지고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 기상캐스터로 오로라 보레알을 뽑지 않은 모두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햇빛이 너무 세게 내리쬐서 그래. 오운을 끌어 와서 태양을 가리고, 태풍을 몰고 와서 공기를 차갑게 식히자. 다들 차가워진 머리로 다시 생각해 봐. 누가 가장 완벽한 기상캐스터인지.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밝은 태양이 두꺼운 구름을 갈라내고 있었다. 임무 완수! 파리의 영웅들이 주먹을 맞부딪혔다. 그리고는 다가와 양산을 주워 내게 건넸다.

“언젠가 당신이 하는 일기예보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응원할게요, 오로라.”

“…고마워요.”

기억이 명확하게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생각했던 게 아니라, 눈앞에 얼음을 갖다 대고 세상을 왜곡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 귓가에 찾아왔던 것은 믿고 싶은 거짓말을 속삭이고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 힘을 주는 악마였다.

이번에는 쨍쨍한 햇빛에도 양산을 펴지 않았다.

맑은 시야 안에 햇빛을 내려받는 파리가 들어왔다. 아마 이 안에 나를 응원해 준 사람들도 있겠지. 내 표수는 상대를 이기기는 역부족이었지만,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더 열심히 해서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이 나를 뽑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얼음은 완전히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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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진솔한 늑대

    헉쒸 세상에 맙소사!! 시엘님 이번 전력 연성 '얼음' 너무 좋아요 8ㅁ8!! 오로라의 시점에서 바라본 1화는 뭔가 색다르면서 인상적이에요!! 역시 우주최고 빠와존잘 시엘쨔마!! 이번 전력 연성도 너무너무 최고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