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랍

백업 by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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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팔년도 AU 

이재현은 이상했다. 모두에게 다정하게 대해서 주변 사람들 모두가 착하다고, 사위로 삼고 싶다 말하는 이재현은 이상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는 친절했지만 나에게만은 불친절했다. 다른 사람이 부탁했으면 다정하게 웃으며 해줬을 것을 나에게는 무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이런 이재현이 싫었다. 이재현은, 정작 나와 어렸을 때부터 만났으면서 나에게는 불친절했고, 또 나에게만 불친절했고,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이재현이 나보다 형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렸을 적 서울 어느 작은 동네 골목에서 만난 이재현은 그때도 차가웠다. 이재현과의 첫 만남은, 구렸다. 내가 그저 어린, 세상 물정 모르는 일곱 살이었다 하더라도 구렸다. 겁나게 구렸다. 이 골목에서 처음 보는 또래에 반가워 손을 흔들었건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눈빛과 언짢아하는 표정이었다. 그게 지금 고작 여덟 살 된 애가 보일 수 있는 표정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그런 이재현에게 많이 실망해 집으로 곧장 돌아왔던 걸 기억한다. 거지 같은 표정을 짓고서. 

그러나 이재현은 다른 사람에게는 겁나, 아니 존나 다정했다. 어린 애인데도 싹싹하고 예의 바른 게 보기 좋다며 골목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학교에 가서도 인기가 무지하게 많았다. 욕도 안 쓰는 바른 생활 어린이 이재현이 내 앞에서만큼은 오지게 욕을 썼다. 말이 끝날 때마다 씨발 씨발 이러질 않나, 나를 부를 때는 새꺄 빙신아 이러질 않나. 하여간 이중인격이에요. 오늘도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야 박도헌 저기, 저거 가져다줘."

"어떤 거?"

"내 마이마이 새꺄."

이재현은 오늘도 내 방에서 만화방에서 빌려온 만화책 한 권을 읽으며 내게 또 부탁했다. 내가 부탁할 때는 안 들어주면서 지 부탁은 아주 잘 부탁한단 말이지. 나는 투덜대며 이재현의 가방에서 마이마이를 찾았다. 웬열, 돈 없다고 나한테 겁나 찡찡대더니 결국 샀네? 나는 마이마이를 둘러보며 이재현한테 물었다. 어차피 대답은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예상한 채. 근데 이재현은 마이마이를 산 게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가 본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선은 책에다 계속 고정하고 말했다.

"형이 돈 모아서 샀다."

"형 같은 소리 하네."

"야 너도 하나 사. 캡 좋음."

"허, 나는 너랑 다르게 돈이 없어요 돈이. 형은 부잣집 아들이라고 돈 펑펑 쓰죠 아주 그냥."

"야 병신아 부잣집 아들이었으면 진작에 마이마이 하나 샀지. 부잣집 아들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그리고 내 마이마이 내놔 새꺄."

나의 계속되는 반박에도 불구하고 이재현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책만 계속 넘겼다. 아, 이재현 겁나 싫어. 이런 이재현이 다른 사람한테는 웃으며 걱정해주니까 내가 미치겠어 안 미치겠어. 이재현은 내 손에서 마이마이를 툭하고 빼앗아 갔다. 나를 흘겨보고는 이내 이재현은 노래를 들었다. 나는 그런 이재현이 재수 없어 빤히 쳐다보다가 가방에서 내가 빌려온 책을 하나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의 첫 문장은, 이재현 같았다. '인생이란 아이러니'. 나는 큭큭 웃고는 이재현 옆에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재현은 내가 누운 걸 보고는 내 귀 한 쪽에 이어폰을 꽂아주고는 다시 이재현처럼 뻔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귀에서는 변진섭의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여간, 이재현을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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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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