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 | when you became the sun
소닉 더 헤지혹 동인 회지
2023년 4월 제4회 오락관에 출품했던 회지입니다.
슈퍼 소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테드 창의 '이해' 단편의 패러디로 시작했고 때문에 그에 대한 레퍼런스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회지 공개보다 먼저 올라왔던) 후기를 참조해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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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 위를 덮은 얼음을 주먹으로 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다가 혹시나 하는 희망이 다시 몸을 위로 이끌지만, 두꺼운 얼음 층은 흔적 하나 나지 않았다. 몸은 느려지고, 잡을 것 하나 없이 밑으로 추락한다. 곧 정신은 희미해지고, 터질 듯 숨을 움켜지고 있던 폐는 그 기능을 포기한 채,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물을 들이마시고야 만다. 이내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을, 물에 녹아 사라지는 느낌을—
저 밑의 얼음물, 부유하는 소리들, 라임색과 맑은 초록색
소닉은 거센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어떤 손이 자신의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지금까지 계속 누워있었어.”
소닉은 심장이 가슴을 뚫을 듯 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뇌를 직접 때리듯 눈앞이 흔들렸다. 숨을 들이키며 폐부에 액체가 가득 차들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그 기억은 너무도 강렬하여, 죽음이라는 경험을 체험하는 것 같았다.
“테일즈. 또 같은 꿈이야. 얼음물에 떨어진 거.”
“차도가 있는 거야. 네가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넌 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있었으니까.”
테일즈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두 갈래의 꼬리가 리듬에 맞춰 흔들렸다. 소닉은 이불을 치우고 똑같이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무의식적으로 그의 꼬리 하나를 붙잡아 베개처럼 안았다.
“처음에는 너도 겨우 기억했어. 차근차근 뭔가 돌아오는 기분이야.”
“다행이야. 조금, 불안한 감은 없지는 않지만.”
“일단,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로도 충분하잖아?”
“알았어. 지금은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얘기할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알려줘.”
“Okay, buddy. 걱정하지 마.”
소닉은 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으면 저번의 꿈이 이어질까,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바로 떠올리지는 못하지만 온통 익숙한 느낌이 듦에 안심했다. 그는 다시 잠을 청하려 이불을 덮고 웅크렸다.
악몽이 되풀이되었다. 눈을 감으면 언제나 위에는 얼음뿐이었다. 소닉은 몇 번 잠에서 깨어난 이후에는 아침이 올 때까지 생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조차 없었던 자신은 정말로 괜찮아지고 있는지, 한참을 생각하며 날을 지새웠다.
다음 날 소닉은 작업실에 놓인 소파에 누워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닉은 테일즈가 무언가 검진 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 생각했다. 테일즈가 다가오자, 소닉은 자세를 고쳐 앉고 어젯밤의 악몽을 털어놓았다.
“꿈이 계속 반복된다고... 그런 적, 예전에는 있었어?”
“있었을 리가. 애초에 나, 나쁜 꿈 같은 건 안 꾼다고.”
“뇌가 돌아오는 기억에 적응하고 있는 걸 거야. 뇌가 네 기억에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야.”
테일즈는 펜에 달린 라이트로 소닉의 동공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소닉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며칠 전 기억이 돌아왔을 때를 떠올린다. 이제껏 느꼈던 적이 없는 미시감이 모든 곳에서 시선을 역으로 흘러와 찔렀다. 그는 테일즈의 얼굴도, 그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기억들이 여러 조각을 흩어져 그 끄트머리를 잡을 수 없었다.
“테일즈, 네가 말한 대로 지금 꾸는 꿈이 내 마지막 기억이겠지?”
“일단 그 전은 기억해? 여느 때처럼 에그맨을 저지하러 가는 길이었지.”
“그래. 그게 아니면 내가... 무슨 일이 생길 일은 없으니까.”
“그러다가, 슈퍼화가 끝나고 나서 네가 얼음 속으로 떨어졌어. 우리가 찾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어.”
“그 다음에는, 그 꿈 대로겠지.”
“아마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했어. 네가 살아있기는 했지만, 다른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네가 깨어났는데, 그때의 너는 아예 백지 상태였어.”
“거의... 죽었다 살아난 거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테일즈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곧 컴퓨터 옆에 있는 프린터에 수십 장의 인쇄물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좀 지루하겠지만 이 검사지, 모레까지 다 해놓아야 되.”
“Why? 나 아직, 제대로 생각하는 것도 힘들다고.”
“그래서 그러는 거야, 소닉. 네가 멀쩡한지 확인하려면.“
“알았어, 알았어.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소닉은 테일즈에게 인쇄물과 펜을 넘겨받았다. 방금 전 동공을 비출 때와 똑같은, 버튼을 누르면 뒷 꽁무니에 라이트가 켜지는 펜이었다. 몇번 버튼을 누르면서, 그는 검사가 끝나면 어떤 곳으로 달려 나갈지 생각하면서 다락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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