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소나미] Purple Haze
소닉 언리쉬드 15주년 기념(?)
2023년 5월 27일 소닉 동인 교류전 때 출품했던 소나미 회지입니다. 올해가 소닉 언리쉬드 15주년이기도 하고 어떤 걸 써볼까 고민하는 와중에 이런 이야기가 떠올라서 썼던 기억이 납니다.
원래는 15주년에 딱 맞춰서 무언가를 쓰고 싶었는데 여러가지 문제로 쓰지 못해서 행사 후 조금 지난 시점에 이 회지를 공개합니다. 교류전 때, 또 이후 통판에서 회지를 사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언리쉬드 많이 사랑해주세요
짙은 박하향이 방안에 가득했다. 테일즈가 묵는 방에는, 피클 교수에게 가져온 오래된 책과 기름 냄새가 자욱한 기계 부품들이 즐비했다. 그런 것이 가득한 공간이라면 분명 박하 향기 같은 것은 금방 그런 강한 냄새에 파묻혔을 테지만, 소닉은 그 방안에서 청량한 향기를 읽을 수 있었다. 밤에도 쉬지 않는 건 테일즈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머리는 하룻밤 사이에 꽤 많은 정보를 탐색해냈다.
“교수님 본인께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아무래도 교수님보다는 내가 더 빠르니까. 그 사이에 다른 문헌도 연구할 수 있고.”
테일즈는 가이아 신전을 탐사하는 와중에도 그는 수많은 기록들을 찾아보면서 다크 가이아의 정보를 찾아내려 했다. 그토록 오래 쌓인 이야기 속에서도, 소닉의 경우는 기록에도 없는 특수한 경우였다. 다크 가이아의 영향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면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례는 기록에 없었다.
그 중에서는 변해버린 소닉의 모습도 있었다. 기록상에는 다크 가이아가 사람들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상세히 있었지만, 생명체가 그 힘을 흡수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기록에 적히지 않았다. 테일즈는 문헌의 한 줄 한 줄을 조합해보면서 그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테일즈는 웨어호그 상태가 된 것이 —소닉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작명 센스가 칩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다시 생각했다—에그맨의 기계가 역전시킨 카오스 에메랄드의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다. 소닉은 그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카오스 에메랄드는 이상하리만치 자신과 잘 맞았으니까.
“가이아 신전이 카오스 에메랄드의 힘을 회복하는 것처럼 역전된 카오스 에너지가 너를 다크 가이아와 반응하도록 만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그럼 녀석들을 흡수하는 것도 그 탓일까.”
“어쩌면? 그래도 다행이라면, 네가 다크 가이아의 파편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다크 가이아가 깨어나는 속도가 느려진 걸지도 몰라.”
“그런 거라면, 뭐, 견딜 수 있어. 이 정도면.”
소닉은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댔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으면서도, 이내 머리 안에서 무언가에 푹 찔린 듯 고통이 느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밤마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감내해야 했고, 그 강도는 쉬는 날에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늦은 밤 테일즈의 숙소에 들른 탓도 그랬다. 도저히 잠들 수 없는 밤에, 불이 켜져 있는 몇안되는 곳 중 하나였으니까.
“무리하지 마, 소닉. 조급해지면 일을 그르는 법이야.”
“알아. 어차피 이 몸으로는 빠르게 움직이지도 못하니까.”
"가끔은 그 힘을 내보낼 필요가 있는 거 같아. 계속 쌓이면 위험해질 지도 모르니까.”
“한번 힘을 쓰고 나면, 아픈 건 좀 나아지니까. 확인해줘서 고마워.”
“만약 시간만 충분하다면, 하나하나 다 분석해보고 싶지만...... 헤헤, 미안해. 궁금한 게 있으면 죄다 알아보고 싶은 버릇은 안 고쳐지네.”
테일즈가 머리를 긁으며 베시시 웃었다. 소닉은 숨을 크게 내쉬며 손을 흔들었다. 테일즈도 손을 내보이자 소닉은 얼굴에 호선을 그려보았다. 그는 밤의 모습에서는 웃는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싫었다. 한번은 거울을 보면서 이리저리 입을 움직여보지만, 금세 드러나는 날카로운 이빨이 웃음을 다 망쳤다. 무언가를 내보이고 싶지 않을 때 짓는 웃음이 지금만큼은 먹혀들지 않았다. 웃음 같아 보이지 않는 웃음이 그의 얼굴에 남았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조차도 진심으로 짓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샤마르의 밤은 찬 기색이 역역했다. 검푸른 털로 둘러진 몸으로도 금방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보다도 내려간 기온에 그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다. 아무도 없는 길가에서 소닉은 기지개를 펴기도 하고, 준비 운동을 하기도 하고, 길 끝에서 끝까지 팔을 어디까지 펼 수 있는지 늘려보기도 했다. 조금 남아있던 졸음마저도 이제는 다 깨었고, 머리에선 아직도 바늘처럼 쿡쿡 찌르는 느낌이 남아있었다. 몸을 움직여 조금 차오르는 숨이 그의 얼굴 주위로 하얗게 번졌다.
“소닉, 오늘은 쉬는 날이야?”
멀리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분홍색 고슴도치가 보였다. 에이미 로즈는 손을 가득 모으며 금방 소닉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고개를 기울이며 웃음 짓는 에이미를 보면서 소닉은 입 안에 고인 말이 헛나갈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응. 잠깐, 바람 좀 쐬러 왔어.”
“밖을 보니까 네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더라고. 그래서 와 봤어.”
“그냥 몸 푸는 거였는데...... 그럼 내가 팔 늘리는 거까지 봤겠네.”
“그거야, 예전에 날 구해줘 놓고 부랴부랴 자리를 피했을 때도 봤는걸.”
소닉은 스파고니아에서 사람들이 다크 가이아에게 홀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 사이에 에이미가 휘말렸지만 카메라 플래시 덕분에 모두를 구할 수 있었다. 그때는 어떤 마음 때문이었는지 에이미를 피하기에 바빴지만, 곧 에이미는 알게 되었다. 피클 교수님에게 다크 가이아의 영향을 들은 것도, 자신이 한번 생각을 바꿨던 이가 소닉인 것도. 그 뒤에 만났을 때 에이미는 사과했지만, 소닉의 표정에는 약간의 실망감이 보였다. 그가 밤의 모습에 익숙해지기는 했어도, 처음 그를 보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는 괴물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 마련이었다. 언제나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에이미는 줄곧 생각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나 단단하게 그를 지켜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몸은 괜찮아? 낮에 볼 때도 그렇게 좋지는 않아 보여서.”
“괜찮아. 쉬지 않고 달렸더니. 하루 쉬면 괜찮아지겠지.”
“보시다시피, 털 때문에 춥지는 않아.”
“다행이다. 낮에는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뭐, 덥다 싶으면 달리면 되니까.”
“좋겠다, 소닉은.”
둘은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한시가 바쁘다는 이유로 둘은 기회가 있어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언제나 소닉은 급하니까, 라고 에이미는 생각했고 소닉은 일이 모두 끝난 다음에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하나라도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 얼굴을 볼 일이 없었을 테지만, 피클 교수님을 따라온 것이 에이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스파고니아보다는, 샤마르에서 훨씬 더 소닉은 모습을 보였으니까.
“샤마르는 밤이 추우니까. 낮에는 견딜만해도 밤에는 기온이 확 내려가.”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안 나오는구나...... 콜록—!”
에이미가 잔뜩 기침했다. 드레스 한 벌로 추위가 막아질 리 없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지만, 그의 앞에는 그 한 벌조차 입지 않은 고슴도치가 있었다. 곧 에이미에게 한 생각이 스쳤다.
“말했잖아. 춥다고.”
“그러긴 하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
에이미는 뒷짐을 지며 웃었다. 곧 얼굴을 소닉 쪽으로 내민 채 웃었다. 에이미의 표정을 바라보며 소닉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에이미는 소닉에게 뛰어들었다. 그를 품에 안은 채 얼굴을 비볐다.
“지금 소닉이면, 엄청 따뜻할 거니까!”
“아, 이거 놔! 갑자기 그렇게 달려들면—”
소닉은 당황하며 팔을 휘저었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에이미의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소닉은 에이미를 밀어내고 싶은 마음과, 그대로 두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교차함을 느꼈다. 예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그는 에이미에게 알 수 없는 향을 맡았다. 눈이 풀어지고, 이상한 느낌이 몸을 휘감았다. 소닉은 그것을 낯설게 느끼면서도, 그 기운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을 가르던 팔이 멈췄다. 소닉은 조심스럽게 에이미를 안았다. 처음 손톱이 닿을까 에이미의 등에 손을 올려놓은 정도였지만, 이내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에이미에게 나는 냄새가 더 짙게 소닉의 코에 닿았다. 생각이 풀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기분이 편안해졌다. 여태까지 그를 잠에 설치게 했던 아픔이 사라짐을 깨닫고는, 소닉은 팔의 힘을 더 실어 에이미를 끌어안았다.
에이미는 힘이 들어간 소닉의 팔에 당황하면서도, 이내 그에게 감긴 채 품 안에서 포근함을 느꼈다. 그의 몸을 둘러싼 털 때문인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진 기분이었다. 곧 몸에 닿은 귀에서 소닉의 박동을 들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그의 몸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에이미는 소닉의 품에 달려들면서, 한 번도 그에게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분명 고슴도치도, 기분이 좋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는데, 어쩌면—
정신을 차린 소닉은 살짝 에이미를 밀어냈다. 에이미는 그의 숨이 조금 달뜬 것을 알아차렸다. 평소의 그라면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애써 피어오르는 감정을 숨기려 했을 테지만, 소닉은 진정되지 않은 숨을 들이키면서 혼란스러웠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붉은 색이 감돌고, 얼굴이 뜨거워지자 그는 고개를 휘저으며 표정을 고치려 했다.
“소닉?”
“아, 에이미. 그렇게 갑자기 달려드니까......”
소닉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두운 곳에서 그의 눈이 밝은 녹색으로 빛났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표정을 감추려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온통 당황스러운 기색뿐이었다. 그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에이미는, 소닉이 잠깐 동안 자신을 품에 안았던 것을 생각했다. 이내 에이미의 얼굴도 잔뜩 붉어졌다.
“그나저나, 추운 건 괜찮아?”
“괜찮아, 소닉. 굉장히 뜨거워지기는 했는데......”
“그러니까. 갑자기 열이 올라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에이미는 소닉의 어깨에서 심홍색 안개가 피어오르는 걸 보았다. 그것을 지켜보려는 찰나에 곧 안개는 사라지고, 그는 환하게 빛나고 있는 소닉의 눈을 바라보았다. 소닉 또한 에이미의 눈동자가, 달빛에 반짝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빛을 띄지만 다른 느낌을 가진 두 눈이 마주쳤다. 한참이나 서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시선을 맞추다, 소닉이 먼저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면서 깨졌다. 차가운 바람에도 오히려 더 뜨거워지는 얼굴을 식히려 에이미가 손으로 얼굴을 비빌 때, 소닉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에이미. 먼저 가볼게.”
소닉이 팔을 쭉 뻗어 멀리 사라지는 방향을 한참 바라보면서, 에이미는 자신이 어느 환상에 휘말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떤 안개에 뒤덮여 소닉이 제멋대로 뒤엉킨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까 싶어 에이미는 팔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모든 게 현실이라는 것에 더 놀라하면서 에이미는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소닉이 간 방향을 계속 바라보았다.
소닉이 신전 앞에서 마주한 상대는 망치를 다루는 녀석이었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금방 힘이 돌아와 망치를 이리저리 휘두르지만, 녀석의 뒤에 세워진 석상을 부수자 녀석의 스윙은 한껏 어설퍼졌다. 그 모습을 보다가 그보다 망치를 훨씬 잘 다루는 고슴도치를 생각하고 소닉은 웃음을 지었다. 쓰러져가는 다크 가디언에게 몇 마디 툭 내던졌다.
"망치 휘두르는 게 그렇게 어설퍼서. 너보다 훨씬 망치를 잘 쓰는 애를 알고 있거든? 좀 배워야겠는데.”
소닉은 다크 가디언과의 전투가 싱겁게 끝난 것이 아쉬웠다. 몸에 힘이 감돌고, 흥분이 도저히 떨쳐지지 않았다. 크게 소리를 쳐도 진정되지 않았다.
“소닉, 지금 너무 들뜬 거 같아. 이미 적은 다 처치했어.” 칩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다가왔다. 멀리서도 거친 숨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미안, 싸울 때면 조금 정신을 놓게 되네.”
그 사이에 신전 주변을 둘러싸던 푸른 기운이 그의 안으로 들어가자 소닉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곧 쓰러져 컥컥대는 그에게 칩이 다가왔다.
”소닉! 괜찮아? 갑자기 주변에서 에너지가......”
“컥— 허억— 괜찮아지고 있어. 조금만, 시간을 줘.”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거 같아. 정말로 괜찮은 거야?”
“괜찮다니까. 조금...... 힘에 부쳤을 뿐이야.”
소닉의 눈이 형광으로 밝게 빛났다. 다크 가이아는 지금은 그의 몸에만 영향을 끼칠 뿐이었지만, 소닉은 아직 말끔한 정신에도 그것이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힘을 붙잡아두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어떤 신적인 존재보다 더 강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어떨 때에는 평범한 생명체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그의 몸이 서서히 힘에 부치고 있었다.
“사실, 다크 가디언에게서 소닉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연관이 있을까?”
“샤마르의 가이아 신전은 달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다고 들었어. 이 녀석도, 달 에너지가 다크 가이아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거니까. 나한테도 같은 영향인 게 아닐까?”
칩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것에 안심하며, 소닉은 흩어져가는 생각을 붙잡았다. 자세를 고치고 일어난 그는 칩에게 다시 말했다.
"일단 카오스 에메랄드를 되살리고 돌아가자. 그게 목적이었으니까.”
천천히 신전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칩은 소닉 또한 카메라 플래시를 받은 사람들처럼 구마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싶었지만, 지금은 소닉의 뒤를 쫓을 뿐이었다. 팔을 바닥에 끌면서 걷는 소닉에게서, 칩은 어깨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았지만, 금방 소닉을 쫓느라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샤마르의 시가지로 돌아오자마자 테일즈가 급하게 날아왔다. 소닉은 금방 마을이 심각한 상태로 변했음을 알아차렸다.
“테일즈, 무슨 일이야? 마을이 왜 이렇게......”
“다크 가이아 녀석들이 마을까지 온 거 같아. 처음에는 사람들을 홀리더니 이번에는 직접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했어.”
“젠장, 내가 없는 사이에......”
“일단 홀린 사람들은 카메라로 치료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대피시켰어. 에이미가 녀석들을 물리치러 가기는 했는데 에이미가......“
테일즈가 손을 휘저으며 이리저리 설명을 하는 동안에도, 멀리서 다크 가이아의 졸개들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에이미’에서 말을 흐리자 소닉이 재차 물었다.
“에이미, 에이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하, 하아. 녀석에게...... 홀린 거 같아. 계속 너를 찾으면서 가만히 서 있어.”
소닉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옆에서 허둥지둥하는 칩을 뒤로 하고 소닉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금방 테일즈가 그를 막았다.
“아직 들을 게 있어. 에이미에게 카메라 플래시가 통하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아주 강한 빛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 토네이도에 달린 조명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알았어. 금방 뜯어서 올게.”
“그럼...... 그 동안에 나는 시간을 벌게. 칩, 옆에서 테일즈를 도와줘.”
“응! 금방 가져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칩이 허리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소닉이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을 때 그의 발밑으로 보라색 덩어리가 날아왔다. 수많은 졸개들이 그의 주변에 흩어져 연기로 사라졌다. 곧 물이 흐르는 수로 위로 첨벙첨벙 발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앞에서 망치를 들고 있는 에이미가 보였다. 어깨 위로 보라색 연기가 피어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에이미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소닉을 확인하자마자 대뜸 그 앞으로 다가와 해머를 휘둘렀다. 겨우 몸을 피하며 소닉은 방금 전 싸웠던 다크 가디언을 생각했다. 녀석의 어설픈 솜씨에 비해서, 에이미는 훨씬, 훨씬 더 실력이 좋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게 큰 악재로 작용하지만.
소닉은 잇따른 공격을 그저 피할 뿐이었다. 팔을 뻗으면서, 에이미의 공격이 다른 곳을 향하지 않도록 적당히 속도를 늦추었다. 틈을 타 망치를 그 손에서 빼앗으려고 시도했지만, 번번히 에이미가 무기를 다루는 능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뿐이었다.
그 탓에 소닉은 에이미의 망치를 모두 피할 수 없었다.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는 배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정통으로 맞은 곳은 없었지만, 공격을 피하다 쓸리고 부딪힌 상처와 구석구석 해머에 빗맞은 곳에서 출혈이 생겼다. 쉽게 지치지 않는 그에게도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혀오고 몸이 떨려 왔다. 빙의한 다크 가이아의 힘 때문인지 에이미는 지친 새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소닉에게도 한계가 부딪혀올 때, 테일즈의 꼬리가 회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소닉. 배터리가 없어서 엔진 자체를 동력으로 만드느라 늦었어. 이것만 연결하면......”
“얼른, 해 줘...... 막 지쳐버린 참이거든.”
함께 조명을 들고 있는 칩이 끙끙거리며 라이트에 전선을 연결하자 강한 빛이 나왔다. 때를 놓치지 않고 에이미에게 조명을 비추자, 에이미를 감싸던 보랏빛 연기가 그의 몸밖으로 빠져 나왔다. 소닉은 팔을 뻗어 쓰러지는 에이미를 붙잡았다. 그의 손 안에 있는 에이미에게 다친 흔적은 없었지만, 다크 가이아에게 빙의된 영향으로 의식은 없는 상태였다.
곧 에이미가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타이탄이 둔기를 들고 서 있었다. 곧 그의 주변에 조그만 졸개들이 연기를 내며 나타났다.
“감히 에이미를...”
소닉에게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이내 몸 전체를 감싸 피어올랐다. 그의 눈이 밝은 파란색으로 빛났다. 그가 으르렁거리며 손톱을 세웠다. 곧 하늘을 향해 거세게 울부짖었다. 그의 동공이 가늘게 수축되었다. 거칠게 내쉬는 숨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 하얀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칩, 테일즈. 에이미를 잘 봐줘. 지금부터는...... 아무것도 못들을 거 같으니까.”
그가 지금껏 얻었던 다크 가이아의 조각들과 가이아 신전에서 얻었던 달 에너지가 한 번에 푸른 불꽃을 내며 타올랐다. 이성이 희미해지고, 앞에 있는 거대한 타이탄에게 차오르는 분노가 그의 몸에 가득히 차올랐다. 그가 단전에서 끌어올린 울부짖음이 도시 전체에 울렸다.
소닉은 타이탄이 산산조각 날 때까지 수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조각나, 그가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부서질 때까지도 그는 화를 삭일 수 없었다. 곧 그를 감싸던 푸른 불꽃이 사라지고, 잘게 조각난 다크 가이아의 파편이 한순간에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눈앞이 흐렸다. 순간적인 분노로 차오른 아드레날린이 몸에서 빠져나가자 통증이 몸을 짓눌렀다. 숨을 겨우 들이키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반하게 몸에 들어온 다크 가이아의 파편이 그에게 다시 격렬한 두통을 안겨줬다. 그는 무릎을 꿇고 숨을 헐떡거렸다. 희미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눈앞까지 찾아와 자신의 안위를 묻는 형상이 아른아른 눈에 스쳐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달조차 구름으로 눈을 가리고 그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닉은 지금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달에게조차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에이미, 다친 곳은 없어?”
소닉은 남은 이성을 짜내어 말했다. 그는 숨을 내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소닉이 타이탄과 싸우는 사이에 깨어났던 에이미가 축 늘어진 그의 팔을 어깨에 메었다.
“일단 안으로 데려가자, 테일즈. 소닉의 상태가 안 좋아.”
테일즈도 반대쪽 팔을 멘 채 소닉을 부축했다. 둘의 부축을 받아 소닉의 다리가 겨우 움직였다. 칩이 까만 연기가 새어나오는 조명을 들고 그 뒤를 쫓았다.
“괜히 나 때문에, 소닉이 다쳤어.” 에이미가 소닉의 곳곳에 난 상처를 눈으로 확인하며 말했다. 테일즈는 그 옆에서 에이미가 조금씩 울먹이는 소리를 들었다.
“너 때문이 아니야, 에이미.” 소닉은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기억했다.
소닉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소독약 냄새를 느꼈다. 머지않아 팔 쪽에 따가움을 느끼고 이를 악 물었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소독 솜이 팔 전체를 훑을 때까지 표정을 찡그렸다.
“다친 데가 너무 많아, 소닉. 테일즈에게 구급상자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준비성 하나는 철저하니까.”
“온몸이 상처투성이야. 붕대가 모자라서 옷감을 좀 썼어.”
에이미는 소닉의 가슴에 천을 묶었다. 하얀 붕대가 붉게 물들어 축축했다. 소닉의 몸을 둘러싼 천이 꽉 묶여 그를 압박했다.
“테일즈에게 들었어. 녀석들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응. 그래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나는 해머로 몇 마리 정도 처치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안나.”
“그 사이에 큰 녀석이 너에게 들어간 거야. 네 망치가 마음에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리고 나서는, 널 다치게 했어.”
“아니야. 너한테 맞은 건 몇 군데 없어.”
“그걸 따지는 게 아니잖아, 소닉.”
에이미는 구급상자를 내려놓고 소닉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소닉은 고개를 돌려 에이미와 눈을 맞추었다. 흐렸던 시야가 또렷이 돌아왔다.
“분명 빈틈을 보인 건 내 실수가 맞지만, 그때 사람들을 구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다크 가이아 얘기는...... 교수님께 들은 거 빼고는 잘 몰랐으니까.”
에이미는 소닉의 손가락을 손에 쥐었다. 평소와 다르게 그의 손은 굉장히 커서 에이미의 손으로는 손가락 몇 개밖에 잡지 못했다. 손톱이 날카롭게 자란 손을 바라보던 에이미는, 자신의 뒤로 소닉의 반대쪽 손이 감싸는 것을 느꼈다.
소닉은 손을 뻗어 에이미를 붙잡았다. 거대한 손은 에이미를 한 번에 감싸기 충분했다. 자신의 위에 에이미를 앉히고는 소닉은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에이미는 귀에 닿은 가슴에서 다시,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전에 소닉이 자신을 갑자기 안았을 때 들었던 소리와 같았다.
“아까 말 못했었는데.” 소닉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에이미는 느낄 수 있었다.
“네게서, 좋은 향기가 나.”
소닉의 다른 쪽 손이 에이미의 가시를 헤집었다. 어깨 쪽으로 에이미의 머리를 끌어당기고는 한참동안 꽉 붙잡았다. 그의 흔들리는 숨소리에서 에이미는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몸 안이 울리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소닉이 자신을 힘을 줘 가득 끌어안았던 적이 없었기에, 그의 심장 또한 요동쳤다. 소닉에게 옅은 밤 냄새가 났다. 차갑고 가라앉는 느낌이 털 끝자락에 서렸다. 한참을 끌어안던 소닉이 조금 격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미, 네가 다치는 게 싫어.”
“그렇게 다쳐놓고, 말하는 게 그거야?”
“내가 다치는 건 괜찮아. 근데—”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에이미가 얼굴을 파묻은 어깨가 뜨거웠다. 소닉은 에이미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울먹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털이 젖어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소닉은 다시금 코를 스치는 향기에 정신을 잃었다. 그가 그토록 향 하나에 그렇게 반응을 한 적은 없었다. 지극히 강해진 후각 때문에 그런 것인지, 어떤 요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자신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다크 가이아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생각처럼 말이 나오지 않고, 숨기고 싶던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그게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았다. 과장되고 작위적인 감정이 아닌, 진짜로 느끼고 있는 감정을 말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에이미는 다시 그의 어깨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았다. 들은 대로라면, 소닉 또한 다크 가이아의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소닉은 말끔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어 보이지만, 그가 보이는 반응은 평소와 매우 달랐다. 다크 가이아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도록 한다지만, 소닉이 흘리고 있는 기운은 부정적인 것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에이미는 소닉의 품에서, 순간마다 바라왔던 것을 생각했다. 만약 소닉이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말해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저 가정일 뿐이었지만 금방 심장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소닉은 그 보랏빛 안개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의 출처를 보았다. 불투명한 시야에서 일렁거리는 건, 의외로 간단하면서 어려운 감정이었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소닉은 생각했다.
그런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소닉은 전혀 알지 못했다. 에이미라면. 에이미는 자신이 애써 피하려한 그 감정을 휘젓고 흔들어 놓았다. 그가 아무리 폭풍의 눈 속으로 피해서, 그것을 저 바깥으로 밀어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밀려들어오는 것은 잦아드는 불길에 다시 나무를 던지는 스스로의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이 파도를 타고 끌려나왔다. 헤엄을 치지 못하는 그답게 생각 또한 저항할 세도 없이 물결을 타고 흘러갔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야자수가 가득 자란 초원을 달리다 마주친 시선까지 거슬러 간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오래된 기억부터, 다시 거꾸로 흘러가는 해류에 다시 휩쓸려 지금으로 돌아갔다. 그저 과거를 스쳐지나갔을 뿐인데도, 소닉의 머리는 이리저리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담아두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에이미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애석하게도 다크 가이아가 그에게 빨리 털어놓으라고 재촉하는 감정은 그러한 것이었다.
에이미는 마음을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 감정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소닉이 지금까지 보았던 에이미는 그랬다. 그런 행동에 넌지시 말을 돌려 피한 적은 많았어도, 소닉은 지금까지 한 번도 진심으로 뭔가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에이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몇 가지 떠올렸고, 애써 입 밖으로 내는 걸 참았다 생각했지만, 그건 두려워서 피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 파도가 두려웠다. 처음에는 발끝을 적실 정도로 일렁였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덮칠 정도로 높은 파도가 다가왔다. 그는 술을 매개로 고백을 하는 사람들마냥, 다크 가이아의 영향을 빌려 에이미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부끄러워지면, 그저 다크 가이아에게 홀려서 말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에이미의 조금 촉촉해진 시선과 닿았다. 문득 그 녹안이 거울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소닉은 그것이 어떤 신호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빛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게, 어딘가에서 말하는 운명이 아니면 어떤 것인지.
그렇게 서로의 눈을 바라본 채로 멈춰 있었다. 길게 뱉어낸 숨을 다시 삼키면서 소닉은,
"에이미,"
그 파도를 마주하기로 했다.
“테일즈! 왜 소닉한테 못 가게 하는 거야!”
“진정해, 칩. 오늘은 둘이 있게 놔두자.”
“칩도 소닉이 걱정된단 말이야......”
“괜찮을 거야. 일단은 내일까지 기다려보고......”
“둘이 뭔가 있는 거지? 정말로 뭐 있는 거지!”
“칩, 진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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