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생일 연성

하나도 안 변했구나

케이터 다이아몬드 드림

* 24년도 케이터 생일 기념 글.

‘역시 주말이 생일인 건 좋네.’

 

케이터는 북적북적한 제 생일 파티장을 보며 한쪽 입꼬리만 슬쩍 올렸다.

아침부터 수업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고,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운이 좋은가.

여기저기서 받은 선물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은 그는 마지카메의 스토리로 상황을 보고하려다가, 뒤에서 불쑥 나타난 그림자에 사진을 보정하던 손을 멈추었다.

 

“선배, 여기 계셨네요.”

“앗, 아이렌.”

 

자신을 찾아온 것은 고물 기숙사의 감독생이었다.

아까 전, 하츠라뷸의 후배들과 함께 와 축하해 주고 선물까지 주었으니 굳이 또 자신을 찾아올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 따로 볼일이 있는 걸까?

다른 후배라면 몰라도, 똑 부러진 아이렌이라면 곤란한 일로 자신을 찾아왔을 가능성은 적다. 그렇기에 케이터는 편한 마음으로 상대를 마주 보도록 몸을 돌려 앉았다.

 

“나 찾았어? 무슨 일이야?”

“교외에서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만나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손님?”

 

교외에서 왔다니. 학교 밖에서 굳이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과 구면일 텐데. 왜 자신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을까.

혹시나 하여 메일함과 메신저, 마지카메의 DM까지 확인한 그는 저도 모르게 의심의 눈으로 후배를 바라보았다. 아이렌이 제게 나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만, 다른 이들과 합심하여 무언가 깜짝 선물을 준비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까.

‘밖에서 손님이 온 척 자리를 비우게 한 후, 깜짝 카메라 같은 짓을 벌인다.’ 어쩌면 이런 시나리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케이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어디 있는데?”

“기숙사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데리고 들어올까 했는데, 저는 하츠라뷸 학생도 아니니까 함부로 들이긴 좀 그런가 해서…….”

“아하.”

 

저게 사실이든 아니든, 나가볼 가치는 충분하다.

기운차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후배의 등을 부드럽게 도닥여 주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금방 가볼게! 온 김에 맛있는 거 먹고 가!”

“감사합니다. 그럴게요.”

 

정중하게 인사하는 아이렌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서는 케이터는 혹시나 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게 생일 축하의 인사를 건네거나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은 있지만, 특별히 분주해 보이는 이들은 없는 걸 봐선 어쩌면 제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그저 가정 중 하나에 그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누군가가 찾아온 걸까?

 

‘누구지? 설마, 누나들은 아니겠지?’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 학생 외에, 제게 말도 안 하고 찾아와 생일을 축하할 사람이 얼마나 있던가. 만약 있다 하더라도, 여기까지 찾아오기는 힘들 텐데. 차라리 아무도 없는 편이, 아이렌이 자신에게 장난을 친 쪽이 가장 현실적인 결말 아닐까.

그렇게 호기심 반 의구심 반의 마음으로 기숙사 건물을 나선 케이터는 우두커니 정문 앞에 서 있는 인물을 발견한 후, 그대로 얼어버렸다.

 

“아, 왔다!”

 

정원에 있는 장미 미로 쪽을 힐끔거리다 말고 제가 기다리던 이의 등장을 눈치챈 손님은, 양손을 허리에 얹고 씩 웃었다.

 

“안녕, 케이터. 생일 축하해.”

 

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소녀는 분명 제가 아는 인물이다. 다만, 여기에 있는 게 이상할 인물이라는 게 문제였다.

케이터는 제가 무언가 잘못 본 건 아닐까 싶어 두 눈을 거칠게 비빈 후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브, 블라섬?”

 

그 놀란 얼굴이 만족스러운 건지, 블라섬은 라임 색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어깨를 쭉 폈다.

 

“흠. 꼭 귀신이라도 본 표정이네.”

“안 놀라게 생겼어!? 어, 언제 온 거야?”

“방금. 아휴, 아침부터 온다고 고생했다고. 학원장이 화형대 사용을 허가해 줘서 금방 이동하긴 했지만, 외출 준비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품에서 허가장으로 추정되는 종이 하나를 꺼내 보이며 조잘조잘 떠드는 블라섬은 움직일 기미가 없어 보이는 케이터의 코앞까지 성큼성큼 다가왔다.

제 학교에 ‘마법의 거울’이 있듯이, 블라섬이 재학 중인 코벤 유니버시티 칼리지에는 ‘불살의 화형대’라는 마도구가 있다. 연료도 없이 푸른 불꽃이 항상 타오르는 그 화형대는 불길에 몸을 맡기면 어디든 데려가 준다고 하던가. 그러니 금방 이동했다는 말은 이해하겠으나……. 겨우 자신을 만나러 오는 일에 학교의 중요 기물을 이용해도 되는 걸까?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케이터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어떻게 허락받은 거야?”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볼일이 있다고 하니 보내주던데?”

“정말이냐고…….”

 

정말 저렇게만 말했는데 허가해 준 거라면, 코벤의 학원장은 꽤 시원시원한 성격이거나 완전 화끈한 성격인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그쪽 학원장과 크로울리가 친해서 허가해 준 걸지도 모르지만……. 지금 중요한 건 얼굴도 잘 모르는 타학교 학원장의 심리가 아니지.

 

‘안으로 들이기엔 보는 눈이 좀 많지?’

 

케이터는 자신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을 눈치채고 애써 웃어 보였다.

마치 놀림거리를 찾았다는 듯 저 의기양양한 미소들을 보라. 심지어 먹잇감을 찾은 맹수들처럼 웃는 녀석들 사이에는, 블라섬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쭈뼛거리며 말 걸 기회만 노리는 놈들도 있지 않은가.

결국 케이터는 일단 자리를 뜨기로 정하고 블라섬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 잠깐 기다려 줄래? 나가서 점심이라도…….”

“응? 아냐. 무리하지 마. 생일파티 중일 텐데 자리를 비우기도 좀 그럴 거 아냐? 난 얼굴 보고 선물 전해주러 온 게 전부니까. 굳이 시간 비워주지 않아도 돼. 잠깐 이야기하고 가면 되는 거지.”

“뭐?”

“온 김에 현자의 섬 구경도 하고. 학교 구경도 하다 가면 되니까. 괜히 나 때문에 욕먹으면 나도 불편해.”

 

지금, 진심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제가 눈치 볼까 봐 이렇게 금방 가겠다고?

제가 아는 블라섬 플루멧이라는 아가씨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든 시간을 내라고 조를 타입이지 이렇게 남부터 배려해 주는 경우가 잘 없었는데.

뜻밖의 배려에 혼란스러워진 케이터였지만, 그는 덥석 저 제안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먼 길 온 상대가 미안해서라도, 자신 때문에 휴일의 반을 날린 블라섬을 그냥 보낼 수 없었으니까.

 

“아니, 그래도 멀리서 왔잖아!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데?”

“그럼 케이크나 하나 내어주던가.”

“…….”

 

그걸로 된 건가. 정말로?

입을 우물거리며 고민하던 그는, 결국 뒷걸음질로 기숙사 건물 안으로 향했다.

 

“잠깐. 우리 사감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응, 다녀와.”

 

하지만 이대로 블라섬을 두고 가기엔 불안하다. 분명, 제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다른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거 같으니, 최소한의 보안은 해두고 가야겠지.

유니크 마법을 써 또 한 명의 자신을 만들어 둔 케이터는 후다닥 안으로 달려가, 리들에게 간단명료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지인이 찾아왔다고?”

“응. 연락도 없이 와서 나도 당황스럽지만, 잠깐 야외 테이블에 머물렀다 가도 될까? 금방 돌아갈 거야.”

 

평소의 여유는 보이지 않는 케이터의 언행. 약간 붉어진 귀 끝. 그리고 지나가는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어느 마법사 양성 여학교의 이름까지.

케이터와 트레이의 대화를 통해 알음알음 블라섬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던 리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일을 축하하러 온 손님이니 괜찮겠지.”

“고마워! 아, 그럼 케이크도 한 조각 가져갈게!”

 

금방 표정이 밝아져서 자신은 거의 먹지도 않은 케이크를 크게 한 조각 잘라 가는 케이터의 행동은 번개처럼 빨랐다. 서두르는 그를 본 트레이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더니, 같이 마실 차 두 잔을 준비해 쟁반에 얹어 주었다.

 

“우린 괜찮으니, 좋은 시간 보내도록 해.”

“뭐야, 트레이.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무슨. 아까 지나가다가 봤어. 네 여자친구가 온 거잖아?”

 

‘대체 언제 본 거야.’ 속으로만 그리 중얼거린 케이터는 실없이 웃은 후, 차가 쏟아지지 않게 조심해서 밖으로 나섰다.

제 분신은 블라섬과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본체가 온 걸 보곤, ‘임무 완료!’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기숙사 안으로 가버린다. 구경꾼은 여전히 득실거리지만 여전히 다가오는 이는 없는 환경에 만족한 그는, 얼른 블라섬을 데리고 평소 ‘아무 것도 아닌 날’의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오래 기다렸지? 여기 써도 된다고 허락받고 왔어. 자, 먹어.”

“와!”

 

이 장소가 마음에 든 걸까.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은 블라섬은 티 세트와 케이크를 사진으로 남긴 후, 냉큼 케이크를 맛보았다.

 

“음, 맛있다~! 가게에서 팔아도 되겠는데?”

“그래? 많이 먹어. 원하면 더 가져다줄게.”

“정말? 고마워. 그럼, 사양하지 않고…….”

 

행복한 얼굴로 단 걸 먹는 블라섬의 옆모습이 사랑스럽다. 얼굴이 곱상한 건 어릴 때부터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단순히 예쁘다고 표현하기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감상이었다. 외견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는. 친근하고, 마음이 놓이고, 그렇지만 두근거리는. 그런 낯선 감상.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자신을 놀라게 해놓고 태연하게 케이크를 먹고 있는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일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니까, 한 6, 7년 전쯤 일이었던가. 아버지 일로 자주 이사 다니는 바람에 딱히 초대할 사람도 마땅치 않고 주말이라 같은 학교의 아는 얼굴들도 다들 다른 일로 바쁜 생일날. 아침부터 가족들과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던 자신은 잦은 이사 탓에 남들 같은 생일파티를 할 수 없다는 점에 서운함을 느끼고 종일 저기압인 상태로 자리만 지켰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즈음.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알고 지낸 친구……, 그래, 블라섬이 대체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이동해 온 건지. 그나마 어른에 가까운 나이인 제 큰오빠와 함께 자신을 찾아왔었지.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 생일 축하해, 케이터.’

 

먼 비행에 피곤해져서 눈이 감기는 와중에도 꿋꿋이 생일 선물을 내밀던 블라섬에게 제가 내어줄 수 있던 건, 격렬한 환영 인사와 고맙다는 말. 그리고 케이크뿐이었지.

아, 그래도 그때보단 지금이 덜 놀라운 거 같기도 하다. 그때는 정말, 제 또래 친구가 찾아와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다. 아무리 저쪽 큰오빠가 그 당시 17살 정도라고 해도, 아직 미성년자인 애들 둘이서 겨우 자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다니. 큰오빠 쪽은 블라섬의 고집에 못 이긴 것 반, 제 누나들 얼굴 보기 위한 목적 반으로 온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선물도 전해주고, 참 즐거웠지.

 

‘생각해보면 하나도 안 변했구나, 이 애는.’

 

제게도 혈육을 제외하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 오랜 인연이 하나쯤 있다. 그게 얼마나, 자신을 미소 짓게 하는지.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든 케이터는 케이크에 열중하고 있는 블라섬의 옆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찰칵. 익숙한 셔터음에 돌아보는 얼굴은 또 너무나도 깜찍해, ‘하하’하고 웃은 그가 한 번 더 촬영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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