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 드림

[라하아젬] 품에 안기던 것

라하벨 함유된 라하이리

실낙원 by 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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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하브레아 + 아젬 유사 가족 및 사제 드림글이며,
라하브레아 × 빛의 전사(중원 휴런 여성)을 포함한 드림 설정이 과다 함유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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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하브레아!”

한동안 듣지 못했으나 언제나 그랬듯 맑은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렸다. 라하브레아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머리를 가린 후드가 벗겨진 것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그보다 머리 두 개는 작을 법한 하늘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달려와 그에게 뛰어오르며 안겼다.

그를 받아내며 뒤로 넘어지려는 몸을 뒤로 한 발 물려 지탱한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품에 안긴 이를 땅에 서게 해주고 넘어간 후드를 다시 씌워 주었다.

“무슨 일이지, 아젬.”

“반가워서요. 대의사당이나 연구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당신을 만나는 일이 워낙 귀해야 말이죠. 보고 싶었는데, 좀 더 반가워해 주면 안 돼요?”

어리광 섞인 투정을 부리는 이에게 꾸중이나 반가움 섞인 말 대신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가닥을 귀 뒤로 넘겨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는 듯 다시 그녀가 품에 기대었다가 떨어졌다. 검은 가면 아래로 푸른 눈동자가 반달 모양이 되었고, 드러난 입가 또한 호선을 그리며 그녀의 행복이 얼마나 큰지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 여기에 조금의 에테르를 더하면 이곳은 그녀의 행복이 형상화된 창조물로 가득 차겠지.

라하브레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입꼬리를 올린 채 후드 위로 아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차를 내어줄 테니 함께 가자며 그녀를 동행했다.


그리고 라하브레아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한때 맞은 편에 앉아 아모로트를 떠나 본 것들을 이야기하고, 그중 라하브레아가 관심을 보일만한 것들을 보여주던 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손님용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으면 항상 그 순간이 떠올랐고, 그것은 살아있지도 않은 몸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가져왔다.

푸른 꽃잎이 떠있는 찻잔을 보던 라하브레아는 그 기억을 씻어내듯 잔을 들어 내용물을 한 모금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복도로 나갔다.

한때 사람들이 지혜를 나누던 속삭임은 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환영 도시이니 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 적막함이 유독 더 아팠다. 오직 그의 발소리만 적막하게 울리던 가운데, 등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라하브레아. 여기 있었군요.”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의 시작이었던 이의 목소리에 놀라 뒤돌아보았던 라하브레아는 그곳에 서 있는 푸른 머리의 제자를 보았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으니 그가 다가왔고, 라하브레아는 저도 모르게 팔을 살짝 들어서 또 달려들 이를 받으려 했지만, 제자는 뛰어들어 안기는 대신 거리를 두고 멈추었다.

그제야 라하브레아의 시야에 불완전한 시대의 영웅이 들어왔다. 자신의 소유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 목에 걸어주었던 목걸이가 푸른 빛을 내고 있었다.

“제가 혹시 뭘 잘못했나요?”

"……아니다. 죽음에서 불완전하게 돌아온 탓인지 환각을 보았을 뿐이야.”

빛의 전사는 그가 어색하게 들었던 팔을 내리는 것을 보고는 몇 걸음 다가와 앞에 섰다. 라하브레아 자신이 조금 더 다가가 손을 뻗는다면 품에 끌어안을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마주 보고만 있으니, 눈동자를 굴리며 시선을 피하던 이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안아달라고 해도 될까요?”

라하브레아는 대답 대신 내렸던 팔을 들었다. 그제야 푸른 불꽃이 그의 품에 걸어와 안겼고, 라하브레아는 그의 몸을 조심스레 껴안고 제 어깨에 머리를 얹은 이에게 얼굴을 기대었다. 원래의 모습이 아직은 떠오르지 않아 마지막으로 빼앗아 썼던 몸을 육신의 형태로 창조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옛 기억과의 괴리감이 지나치게 커서 어색하기만 했다. 그렇다 하여 이 육신을 키만이라도 돌려놓자니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어둡고 적막한 복도에서 작은 창염을 끌어안고 있던 라하브레아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충동적으로 뱉었다.

“너는 누구지?”

“네?”

“……너는 누구냐고 물었어. 왜 네 목소리를 들으면 다른 이가 떠오르는지 모르겠군. 분명히 너는 너인데, 왜…….”

그의 품에 안긴 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라하브레아 자신의 목소리에 섞인 원망 때문일지도 몰랐다. 주워 담기에는 늦은 질문이라, 등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품에 더 끌어당긴 라하브레아는 고개를 더 숙였다.

“왜…… 내가 바라는 결말을 위해, 변함없던 각오를 위해 대립하고 끝내 결별한 이가 떠오르게 하는 거지? 너는 대체 누구냐. 베르니체, 대답해.”

“……저는 저예요. 베르니체 이레네. 당신과 에메트셀크, 엘리디부스의 적수.”

“그것을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나.”

이번에는 그녀의 팔을 붙잡은 채 품에서 밀어냈다. 품에 안겨있던 이가 힘없이 밀려나며 라하브레아의 얼굴을 마주했다. 표정을 가릴 가면이 없어 그대로 드러난 얼굴은 비탄에 젖어 있었다. 어쩐지 시야가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제가 저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제가 저라면, 당신은 저를 버릴 건가요?”

“내가 너를 버리기에는 이미 넌 내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이 고통의 원인만 알면, 그 고통이 함께하더라도 곁에 두어야 만족할 수 있을 정도지. 하지만 원인 모를 고통이라면, 널 곁에 두어야 할 이유보다 내쳐야 할 이유가 더 커져. 그러니 말해!”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팔을 쥐었음에도 그녀는 대답을 망설였다. 버려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 또한 그를 버리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에는 이 잡념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전처럼 목표가 뚜렷하게 존재하지도 않고 그저 다시 일어설 때를, 혹은 완전히 추락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그 고통을 잊어버릴 다른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강압적으로 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라하브레아는 그를 압박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이가 끝내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그 침묵은 답을 주느니 차라리 버려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당신의 아이이자 제자였던 마지막 아젬, 이리스의 혼을 계승한 자예요. 그녀의 모습과 성향, 그 외의 모든 것을요.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오롯이 제 것이에요. 믿어줘요, 라하브레아.”

라하브레아는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손이 힘없이 떨어지고, 눈물을 머금은 푸른 눈을 바라보던 그는 심연 깊은 곳에 파묻힌 기억을 찾아냈다.

아젬이 회의장을 박차고 떠나던 날, 그는 어릴 적부터 그녀를 돌보면서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보았다.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절망. 눈앞의 푸른 불꽃은 그것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하브레아는 그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힘겹게 손을 들어 그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렇다면 더욱 너를 내칠 수 없군. 너를 수단으로 삼아야겠어. 엘리디부스가 너를 꺾거든 나는 너의 혼을 취해 곁에 둘 테다. 그리고 세상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별의 미래를 위해 그녀를 되살려 별의 미래를 위해 영원한 형벌을 내릴 거야. 그러니 더더욱 내 곁에 머무르도록 너를 붙잡아 두겠다.”

“……네.”

이것은 핑계인가, 아니면 원망 가득한 진심인가. 라하브레아 자신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품에 안긴 이는 가늘게 떨며 라하브레아를 붙잡지도 않고 그대로 조용히 울고만 있었다. 차라리 소리 내어 울거든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할 텐데, 그러지 않으니 그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품에 끌어안은 이를 더 강하게 안는 것뿐.

복도가 적막한 탓인가, 분명히 침묵한 채 우는 이의 소리가 너무나 크게 울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잡념에서 완전히 깨어난 라하브레아는 펜을 내려놓고 책상에서 일어섰다. 창문에 비친 그의 모습은 아씨엔의 것이 아니었다. 환상 도시에 머물며 과거의 모습을 떠올린 그는 이제 본래의 모습을 취한 채 그 도시에 서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을 베르니체에게 보여준 것은 떠올리고서도 한참 뒤였지만, 베르니체는 불편해하거나 마음을 접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더 기껍게 받아들였지. 어쩌면 그것이 아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모습이 어떻든 그는 그저 라하브레아일 뿐이라며 안기던 이를 떠올린 그는 슬쩍 웃음을 흘리고 연구실을 나섰다.

복도는 그녀가 아젬의 혼을 계승한 자라는 것을 알았던 날처럼,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적막하기만 했다. 씁쓸한 미소를 짓고 걸음을 옮기던 그를 맑은 목소리가 불러 세웠다.

“라하브레아!”

그토록 사랑하는 창염이 그를 부르며 복도 저 편에서 달려와 그에게 안겼다. 그것을 익숙하게 받아내며 휘청이는 몸을 바로 세운 후에야 그녀를 내려준 라하브레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러다 넘어지니 조심…….”

말하다 말고 어떤 느낌을 받아 고개를 들었던 라하브레아는 그녀가 뛰어왔던 곳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그가 천천히 걸어 와서야 가슴께에 걸린 가면이 검다는 것을 알았고, 후드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하늘빛인 것을, 가려지지 않은 눈동자가 푸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 좌를 부르기도 전에 방긋 웃은 자가 달려와 안기려는 듯싶더니 라하브레아에게 닿는 순간 사라졌다. 라하브레아는 그를 받아주기 위해 들어 올렸던 손을 힘없이 내리고 자신을 끌어안은 이를 다시 안아 주었다.

“왜 그래요?”

“……아니야. 잠시 환각을 보았어.”

“엘리디부스나 에메트셀크를 불러줄까요?”

걱정 어린 물음에 고개를 저은 라하브레아는 미소를 짓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길렀던 아이이자 제자인 무지개의 혼과 유지遺旨를 이은 자를 사랑해도 되는 것일지, 처음에는 수도 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 환생한 이상 다른 인격체이니, 괜찮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가끔 에메트셀크가 썩 좋지 못한 표정을 짓지만, 그거야 혼을 보는 처지에서나 그런 것이지 인격체를 따지자면 딱히 신경도 안 쓰기에 라하브레아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차라도 한잔하겠느냐.”

 “네, 기꺼이요.”

그녀가 보내준 선물 같은 이에게 그녀에게 하던 것과 같은 제안을 하며 왔던 길을 돌아 걷는 라하브레아의 곁에, 옛 무지개 대신 작고 푸른 불꽃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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