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day
실패한 서프라이즈 파티에 대하여.
생일 축하해!
어쩌면 이 글을 보고 있을 저를 긍정해주었던 분에게 바칩니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https://youtu.be/Dxa2Vq1FSIs?si=NsolfpXV4EUspuqh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던 이안은 감은 눈을 뜨고 생각했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그러니까 이 며칠은 날짜를 뜻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미치자 침대 옆에 있던 달력을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하지가…. 그렇게 중얼거리다 달력에서 발견한 단어를 보고서 이안 해리스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인리수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릴 적엔 신경 쓸 수 없었던 그의 생일. 그의 입을 빌려서 말하자면 태어난 날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왔느냐와 지금 살아가는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했지. 그 말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비슷한 생각을 하면 했겠지.
그럼에도 하지가 어째서 중요하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욕심이었다. 그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 부분에서 자신과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굳이 그걸 말하며 이야기를 해보진 않았으나, 만약 있다면 챙겨주고 싶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그에게 마음과 몸을 허락한 이후로 당장 닥쳐온 다급한 문제와 직면한 이안은 삐걱거리는 허리를 붙들고 몸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 시간, 강한 햇볕과 다르게 다소 습한 공기에 창문을 열던 이안은 눈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돌아오기 전에는 환기를 끝내고 에어컨이라도 틀어두는 게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연어는 있고, 다른 재료는…. 조금 부족한가? 장을 좀 보고 와야겠는데, 안 들킬 방법이 있나? 시간이 걸려도 돌아가야하나…. 이안 해리스는 한 번 생각을 하면 멈출 줄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그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정하려니 끝도 없이 늘어지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어느순간 정신을 차리고 마음 속으로 정한 순서를 되짚었다.
1. 미리 연어 손질 해놓기
2. 청소 해놓기
3. 부족한 재료 장 보고 케이크랑 샴페인 구매하기
4. 선물 구매하기
요컨데 저 순서대로 된다면 별 탈 없을 것이다. 굳은 결심을 한 이안은 곧 냉장고에 있던 연어를 꺼내 익숙하게 토막내었다. 부위에 따라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지만, 오늘의 전채 요리로 샐러드를 할 예정이라 소분한 연어는 다시 냉장고에 넣고, 자른 부위에 남은 가시를 제거했다. 그 후에 가볍게 소금을 뿌려 물기를 빼내고, 다시 소금과 후추를 뿌려 포장한 뒤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청소는 보통 그도 도와주는 편이라 크게 손이 갈 것은 없었으나 눈에 거슬리는 몇 가지를 치워낸 후 먼지를 닦아내는 것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청소까지 마무리하고서 가벼운 외출복을 입고서 밖을 나가니 덥고 습함에도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메인메뉴 재료와 각종 재료를 구매하고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케이크와 샴페인, 겸사겸사 그가 좋아하는 맥주도 사고, 꼭 모든 게 잘될 것 같은 기분…. 모든 게 완벽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선물에 대해서는 무엇을 주고 싶은지, 자신도 정할 수 없기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어쩌지?
그런 생각에 옷 가게도 여러 곳을 돌고, 장신구 가게까지 돌고 돌아 고른 것이 결국은 머리끈이다. 붉은색 끈, 그의 눈 색을 닮았고, 또한 자신에게 의지를 맡기고 떠난 것이 남겼던 유일한 색. 그가 마음에 들어할지 아닐지는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끈을 주고 싶은 건 역시 붉은색이 주는 강한 인연에 대한 마음을 그가 알아주길 바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한참이나 그런 생각을 하던 이안은 포장이 잘 된 것을 가방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그가 오기 전까지 앞으로 2시간.
요리 준비는 미리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정리했으니 문제 없었다. …생일치고는 너무 대충인가? 이안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고개를 내젓고 식탁보를 얹어 깔끔한 분위기의 파티를 준비했다. 양동이에 얼음을 채우고 샴페인을 넣어 시원하게 만들고, 환기가 다 된 후에야 창문을 닫고 적당한 온도로 에어컨을 틀어두었다. 그가 오기 전에 일단 샤워도 하고…. …모처럼이니 조금 기분을 낼까? 싶어 옷가게에 들렸을 때 산 적당한 원피스도 입고.
“아가씨, 다녀왔어.”
그가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괜스레 쭈뼛쭈뼛 다가가니 자신과 마주한 그가 고개를 잠시 까딱이다가, 곧 웃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붉어져서는 무어라 말을 뱉으려하니 신발을 벗고 들어온 그가 성큼성큼 다가와 대뜸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되려 놀라 눈을 크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니 그가 여상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이것 참. 당장 데이트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놀, 놀리는 거죠?”
“아니? 진심인데. 아가씨가 지금 그만큼 노력한 게 보이는데 나라고 노력을 안 할 수는 없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성실한 듯 성실하지 않고, 섬세한 듯 섬세하지 않다. 늘 종잡을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에게 보내는 진심을 믿기에 달리 말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일단, 저녁 먹고요….”
“현관부터 맛있는 냄새가 나더라니, 일단 먹어볼까?”
그 후부터는 분위기는 자연스러웠다, 함께 식사하고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고…. 잔에 샴페인을 담아 가볍게 마시고, 그 뒤엔 역시 맥주가 더 취향이라며 웃어버리는 그에게 맥주를 가져다주고. 별 문제 없었다, 적어도 이안 해리스의 계획에서 틀리는 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 포장된 선물을 그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오, 생일 선물? 이런 것까지 준비할 줄은 몰랐는데.”
“…제가 생일 선물이라고 말했나요?”
“아니, 아가씨라면 어쩌면 준비할 것 같아서 대략 눈치는 챘지~.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아니, 아니! 다 알면서, 다 알면서…!”
나름 몰래 준비한 건데! 억울한 심정이 목 밖까지 튀어나온다. 얄미워서 숨기려던 선물을 그가 잽싸게 손으로 잡아챈다.
“그래도 이건 내 선물이잖아, 다시 가져가는 건 반칙이지. 안 그래, 아가씨?”
“…몰라요!”
“그런데 이거, 풀어봐도 괜찮아? 꽤 궁금하거든. 나를 생각하면서 골라준 선물이 가장 궁금한 법이지.”
세모눈을 하고 그를 노려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포장을 아주 빠른 속도로 풀어낸 그가 머리끈을 보고 오, 하는 감탄을 내뱉었다. 그 감탄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곁눈질로 그를 살짝 보면 올라간 입꼬리가 보인다. …마음에 들었을까? 아니면 어떡하지.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도 의심하고야 마는 자신의 성정에 조금의 한탄을 하고.
“고마워, 나 당장 써도 될까?”
“…그렇게 마음에 들어요?”
“응, 아가씨랑 같은 색이잖아. 제법 마음에 들어, 우리가 함께 걸어간다는 뜻이 담긴 것도 같고. 고민하고 고민한 티도 나는데, 내 말이 틀려?”
“…맞긴 해요, 값진 선물보다는 당신이 좋아할 걸 고민했는데. …역시 아직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도 당신과 내가 함께 걷기로 한 이후로 맞이하는 당신의 첫 생일이니까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너무 늦었는데, 아니…. 당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해서 늦은 거지만, …생일 축하해요. 당신은 태어난 날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저는…. 조금 달랐거든요, 나와 함께할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내년에도 또 축하해줄게요.”
그런 말을 하며 애써 그와 다시 시선을 마주치니 어느새 머리끈을 선물해 준 것으로 바꾼 그가 활짝 웃는다.
“그 말, 잊지 말고 내년에도 해줘. 기대할게,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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