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

푸드드 하고 홰치는 소리가 광한전 앞마당을 울린다. 그러나 검은 깃 몇 개 떨어진 것 말고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다만 날렵하게 무복 갖춰 입은 청년 하나가 포석 위에 내려설 뿐이다. 평소와 다른 적막이 객을 감싼다.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청년은 토도돗 지나가는 옥토 달랑 들어 올려 안고서 묻는다.

“낭랑께서는?”

안즉 수행 끝마치지 못한 어린 녀석이라 바동거리면서도 제 주인 가장 안쪽 심처에 계신다 대답은 착실했으므로 고이 보내주고, 청년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들어서건 등 하나 켜 두질 않아 어두컴컴하다. 그는 광한전이 언제 이런 모습이 되는지 알고 있었다.

“스승님?”

복도를 성큼 질러 가장 안쪽 후원과 닿은 방에 이르러서야 청년, 규성은 스승을 찾을 수 있었다. 낭랑은 치장조차 내던지고 마루에 엎어져 물 대신 은하 괴어있는 샘 표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규성은 그 꼴을 잠시 응시하다가, 아무 말 덧대지 않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장죽 주워들었다. 스승께선 허공 찢어 장죽 꺼내고 넣을 줄 아는 분이시니, 나동그라져 있다는 건 집어던졌거나 떨어뜨리고 줍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그는 은하샘 넘겨다보지 않기 위해 몸을 틀고 낭랑에게로 다가가 공손히 장죽 내밀었다. 감히 스승이 마음 준 정인 함부로 엿볼 수 없음이고, 그에게 변고 생겼다면 또한 그 처한 상황 함부로 넘겨다볼 수 없음이다.

뒤늦게 제자 응시하는 스승이 있다.

“…또 죽었다, 규성아.”

앞도 뒤도 맥락도 없이 스산한 내용의 말이 툭 튀어나왔다.

“잠시 눈 돌린 사이에 죽어버리는 꼴 더는 보고 싶지 않으니 제법 강성한 신령으로 가렸는데도.”

깊은 한숨 쉬고 낭랑은 제자가 받쳐 든 장죽 탁 뺏어들었다.

“어찌… 다른 신령과 분쟁이라도 생기셨던 겁니까?”

제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낙뢰였어.”

장죽 깊게 빨아들이고 연기 뱉으며 낭랑이 답했다. 턱짓으로 샘 가리키는 것이 직접 보아라 하는 의미라, 규성은 마루 끝까지 나아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몸을 숙였다. 은하 아래 비추이는 하계의 풍경이 여즉 번쩍거리고 있었다. 번개, 또 번개. 보아 알고 있던 풍경의 재림이다.

“스승님, 이건…….”

“내게 묻지 않아도 너 알고 있으면서 또 그런다.”

원체 성실한 제자라, 알던 것이든 스스로 깨친 것이든 간에 일단 덮어놓고 스승에게 확언 받는 규성의 습관을 두고 낭랑은 종종 손사래를 치곤 했다. 작금의 계시 앞에서도 똑같다. 좀 전까지 제자 앞에서 보이던 추태를 잊은 것처럼 망월이 다시 일어났다. 합삭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달이 차오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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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필요한 행장 챙겨 오너라 하고 제자를 물리니, 광한전 심처에는 다시 궁주 혼자 남았다. 어차피 보는 이도 듣는 이도 없겠다. 일어났으되 앉은 자세 몹시 비딱하고 저도 딴에 채비한다고 머리칼 땋아 내리면서도 투덜거림이 장하다.

“비녀는 대체 다 어디로 갔담, 아잇, 엉켰잖아! 얘. 누가 빗질 좀…”

저가 내던져놓은 건 모르쇠, 설마 은하샘에 빠졌을까 고개 내밀어보더니 와중에 손가락 구부려 갈퀴질하던 머리카락 툭 걸리니 왈칵 짜증이라.

“…섬토 괜히 다 물렸네….”

허나 시시비비 따져보면 혼자 있겠다며 꼬장 부려놓은 자신 탓이다. 말미는 맥없이 사그라들었다. 덩달아 바쁘던 손길도 점차 느려지더니 결국엔 멎고 말았다.

“아…, 지긋지긋하다.”

연이란 거, 정말 지독하지 뭐야. 이걸 뉘에게 따져 물을 수 있을까. 갈 곳 없는 원망이 오늘도 광한궁 은하샘 밑바닥에 한 자락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