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언니!”

쾅 하는 소리 장렬했으나, 그보다도 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얼마나 컸냐면, 심처에까지 다 들릴 정도였거든. 이에 늘어져있던 월녀가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소리 소문 없이 들고 나는지도 모르게 다녀가는 제자와 달리, 명경은 온 달에 내가 왔노라 선포하듯이 나타나곤 했다.

“우리 누이 일어났나?”

월면에 착지하는 소리 들린 지 얼마나 지났다고, 금세 벌컥 장지문 열리더니 성큼 들어서는 칠 척 장신의 적귀가 눈 번득이며 궁주를 찾았다. 월녀는 그만 뒤로 풀썩 넘어가 도로 누워버리고 말았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명경아….”

“내 이러고 있을 줄 알었다. 유성지 고것 그만 들여다보고 좀 일어나소.”

휘적휘적 들어와선 월녀 팔 붙들고 일으켜 세우니, 맥없이 딸려오는 게 꼭 종이인형 같다. 명경은 흘끗 백은색 눈 굴려 반짝이는 별 잔해 가득 담긴 못 응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근래에 환난에 휘말려 죽어버린 사슴 일족 큰 따님 마지막 모습 담겨있다. 월녀 사랑 과분하게 받았음을 익히 알지. 아는데, 죽어서까지 귀한 마음 소진케는 못 하리라. 명경은 성신으로서 권능으로 못에 가득 들어찬 유성들 빛 꺼트리고 거기에 한 술 더 떠 검으로 휘젓기까지 했다. 맺혀있던 상이 완전히 와해되었다.

“너 어찌 알고 올라왔어.”

월녀가 그 처분에 불퉁한 낯 고수하고서 묻는다. 너는 대체 어떻게 내가 침잠할 적에만 귀신같이 알구서 찾아와. 도무지 비탄에 빠지게 두지를 않는다. 이에 명경은 저 이제 귀신 맞다며 낄낄 웃기만 하고. 월녀는 결국 마루 짚고 일어서 흐트러진 의관 추슬렀다. 동생이 제 기분 짐작하여 작심을 하고 광한전에 올라와 눌러앉으면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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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전서도 가장 높은 누각에 올라서면 계수나무 꼭대기가 발아래 있고 별 박힌 하늘이 사방 천지에 펼쳐진다. 섬토들이 주안상 봐준 보람 없게도 성신 월신 난간에 나란히 걸터앉아 하늘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경이. 부리나케 달려와 주어 고맙기는 한데……. 세상에 너만큼 내 추태 자주 본 이가 또 없을 것이다. 내가 아주 부끄럽거든.”

“잉… 글치만 나 아니면 또 뉘에게 보이려구?”

벙글거리며 되묻자, 받아칠 말이 궁하기는 하다. 맞다. 이 애랑은 처음 본 시점부터가 꼴사나운 시절이었다. 그러니 기분을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비추이는 성질이 아니더라도. 월녀가 입맛 다시며 허공 갈라 장죽 꺼내들자, 저가 1승 기록했음을 기민하게 눈치 챈 동생이 마구 웃어주었다. 그래, 웃어라 웃어. 나 웃게 하려고 애 많이 썼는데 이 정도를 못 보아줄쏘냐. 이내 장죽에 불이 붙고, 게서 흘러난 연기가 누각 위로 흩어졌다.

“최초의 인연부터 최후의 인연까지 흐름 끝 보고 갈 수 있을까.”

“하여간 누이 욕심도 많아. 다감해 그런 줄은 내 알지마는, 그거 병이다?”

“어허. 세상 인연이 모다 내 손안에 있었다? 내가 무엇을 보아오며 살았는지 알어잇.”

“그러니까 그게 자만이래두.”

코웃음 치는 의도가 격하에 있지 않음을 알기에 월녀는 장죽 휘두르지 않고 다만 어깨로 곁에 앉은 녀석 팔뚝을 툭 밀어 건드렸다. 동생이 또 과장스레 몸 꾸겨 가며 익살스런 소리 내 주었다.

“그래, 내 인연만큼은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 이번에도 네가 옳다. 이게 당최 무슨 역설인지.”

역설인지 이치인지는 모를 일이나 월녀는 거기 맞서느라 온 마음이 너덜너덜해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마음만 있다면야.

“명경이.”

“으으이.”

“결국 남는 건 진심이란다. 그걸로 관계 엮고, 그걸로 인연 엮거든? 설령 파탄 나도 마음만은 남는다. 정말이야.”

“이잉, 옳은 말이겠지. 누가 하는 말인데. 근데 그거 괜히 타박 같소, 누이… 기분 탓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