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앞날 볼 방도가 없구나.

청운 위에서 월녀가 한탄했다. 해와 별이 저물었으므로 하늘이 일주하지 못한다. 와중에 달이라고 무사할까. 역산이며 참위가 다 무슨 소용이랴. 인세에 남은 인연 또한 한 줌이다. 굽이굽이 이어져 유수 되지 못하리라. 기어이 마음 가진 이들 중 살아남는 자 없을 것이다.

길사에는 갑자 전에 세워진 월녀의 목상과 정안수 담아두는 달항아리가 있었다. 월녀는 청운 흩어 가볍게 항아리 앞에 내려섰다. 안쪽 들여다보려는데, 등 뒤에서 사박거리는 발소리 소곤거리는 목소리 들려왔다.

“누이. 항아님께 뭐 빌어?”

“너랑 나랑 평안하구 마을 우물 마르지 않기만 빌지.”

“낭군 달라 안 빌구? 묘정선녀님, 안 될 연도 이어준다던데. 내 보기에 거야말로 누이한테 꼭 필요한 신성이다.”

“이놈 자식 못하는 말이 없다. 진짜.”

듣기에 오누이인데, 생긴 모양은 다르다. 한쪽은 큼지막하게 둥근 귀 팔랑거리고, 다른 한쪽은 비늘과 두툼한 꼬리 살랑거리는구나. 한 박자 늦게 월녀는 그네들을 기억해냈다. 묘정이란 신위 강성하던 때에 길사에서 매듭지었던 종족 다른 꼬마들이다. 길사에서는 여전히 그 이름이 우세한 모양이다. 헌데 갑자가 지났는데 여태 저만큼밖에 자라지 못했다고? 아니, 아니다. 그 애들이 아니구나.

깨달음 얻은 월녀는 신성 흩어 사그라뜨리고 허리 굽은 노파의 모습으로 현현했다. 누군가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한 듯, 다가오던 아이들이 저만치서 우뚝 서는 것이 느껴졌다.

“치성 드리러 왔구나.”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을 걸며 월녀가 달항아리 앞에서 비켜났다. 오누이는 눈치를 보다가 제단으로 다가와 길어온 맑은 물 쏴아 하고 항아리에 부었다. 그 모습 보며 월녀가 짐짓 모르는 척 또 참견했다.

“인연 바라는 거면 달님 말고 까막새 찾지.”

“아… 비사비령이요?”

동생 쪽이 비어버린 물동이 바닥에 텅 내려놓고 목덜미 긁적였다.

“용하신 것 알지요. 근데 저희는 그냥 내내 살펴주신 분 찾는 거여요.”

이어 누이 쪽이 받아 답했다.

“저희 엄니압지도 선녀님이 엮어주셨대요.”

동생이 덧댄 말에는 순간적으로 찔리는 바가 있어 월녀는 답하는 목소리 가다듬어야 했다.

“그래?”

“반대 많았거든요. 근데도 이뤄진 거 다 옛날에 왕림하신 선녀님 덕분이랬어요.”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영원히 모르는 사람 되는 건 싫어요.’

나이 어린 것들일수록 미래 종잡기 어려운 까닭이 이것이다. 더 많은 분기점, 다양한 기회, 갈래. 너희 제대로 엮였구나. 때때로 굽어볼 때마다 재미 진진하게 본 보람이 있었어.

“저희 누나 이 나이 먹도록 여태 정인 없으니까, 선녀님한테 빌면 인연 내려주시겠지요?”

동생이 읏차 제단에서 내려오며 노파에게 묻는데, 아마 고견 청하기보다는 그저 누이 놀리기 위함이라. 이에 누이 역시 발끈해서 동생 녀석 뒤통수 따악 쥐어박으니 보기에 몹시 귀여웠다.

“아, 진짜. 너 자꾸 이럴래! 할머니, 죄송해요!”

노파는 몸 가벼워졌다고 뛰어서 내려가는 두 아이 그저 웃음으로 배웅했다. 반가운 인연의 결실 목도하여 기분 퍽 나아진 고로, 녀석들 어두울 발밑 달빛으로 밝혀주고 무섭지 않도록 두꺼비 울음소리 뒤따르게 해준 것은 덤이다.

월녀는 이제 가득 찬 항아리 안을 굽어보았다. 구름일랑 없음에도 수면에 비친 달빛이 흐리다. 광한전 불이 꺼진 탓일 게다. 긴 한숨이 항아리의 남은 공간을 채웠다. 이제 너희 앞날이 보이지가 않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어떤 권능으로 너흴 엮어주지.

•͙✧⃝•͙

월녀, 다시 청운에 올라타 하늘로 향한다. 그리고 되뇐다.

홍진 세상, 마음만 있다면야. 찢기고 깨지고 바스라져서 딱 한 자락, 아니 한 톨만 남는대도. 그것 아낌없이 내 줄 나와 받아줄 너만 남아있다면야.

그렇다면 월녀는 그 장면에서 고개 돌리지 못한다. 사랑이란 대개 그녀 자신이 행해온 모양 따라 모순이고 사사가 통렬히 지적했듯 자해이지만…. 하고 싶지 않다고 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자행에 있어 숱한 역성 발휘하나 결국엔 이치인지라 순리를 역행하지 않으므로.

그것이 장구한 세월 이 땅 위에 사람이 살아온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모여든다…. 익히 알다시피, 월녀는 진심 앞에서 무력하다.

허면 나는 저 운로 밟아야겠구나. 나 없더라도 너희 마음 주고받아 연 엮어낼 줄 알게 되면 좋겠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달 환하게 밝혀야지. 너희 마음에 답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