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진화랑뎁진] 자고 일어나니 개가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니 개가 된 진과 데빌. 그리고 둘에게 하루종일 시달리는 주인 화랑의 이야기. 꾸금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거 안나와요... 지금은.

뭔가... 자꾸 날 건드린다. 툭... 툭툭... 약하게 치는 것 같더니 점점 더 강하게 내리치는 힘에 결국 진은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화랑일까...? 어제 밤에 자기를 너무 괴롭혔다고 일어나자마자 나한테 투정 부리려는 걸까... 싶었던 진은 눈을 뜨자 보이는 검은 형체에 흠칫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보인 건... 검은색의 커다란... 개였다. 개...? 뭐지? 화랑이 새벽에 일어나서 개라도 데리고 온건가...? 근데 분명 난 몸을 일으켰는데 왜 시야가 이렇게 낮은거지...? 영문을 몰라 진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하, 이제서야 깨어난 건가. 익숙한 목소리가 마음 속이 아닌 바로 옆에서 들려오자 흠칫 고개를 든 진의 눈에 그제서야 제 앞의 검은 개의 눈이 들어왔다. 붉은색,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개는...

" 데빌? 설마, 어째서... "

" 그건 내가 묻고 싶은거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깨닫지도 못한 모양이군 "

" 내 모습? 내 모습이 어떻길래... "

데빌의 말에 그제서야 진이 제 모습을 살폈다. 고개를 내리자마자 보인 건 검은색의... 짐승의 발. 어...? 진이 왼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자 검은색 개의 발도 똑같이 흔들렸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번이고 확인한 진은 깨달았다. 설마... 나도 개가 된거야...? 거기에 나 뿐만 아니라... 데빌까지? 진이 데빌을 바라보았다. 진이 당황한 것과 달리 데빌은 이미 체념한 것인지 아니면 예측이라도 한 것인지 꽤나 침착해 보였다. 하, 붉은 눈을 한 개의 입에서 한숨과도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 정말 어이가 없군. 내가 언젠가 나만의 육체를 가지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설마... 이런 미천한 짐승의 몸이 될 줄이야 "

" 지금 그 말은... 너도 왜 이렇게 된건지 모른다는 뜻으로 받아드려도 되나? "

" 그래, 이런 몸이 될 바에는 계속 너의 육체에 깃들어 있는게 낫다. 그나저나... "

데빌의 눈이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한 체 깊은 잠에 빠진 화랑에게 향했다. 거짓말 좀 더해서 송아지만한 크기의 검은개가 천천히 화랑에게 걸어가 머리 맡에 앉았다. 어제 밤 자신이 좀 많이... 괴롭혀서인지 이런 소동이라면 진즉에 알아채고 일어났어야 할 화랑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래도 어제 내가 수건으로 대충 닦아주고 하의는 입혀줬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상반신 나체로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옆으로 누운 체 정신없이 수면을 취하고 있는 화랑을 보던 데빌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혀를 내밀어 화랑의 볼을 길게 핥아올렸다. 으응... 두껍고 넓은 혀가 볼을 핥아올리자 간지러운 것인지 화랑의 입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어번 더 화랑의 볼을 핥던 혀가 이번엔 화랑의 입술을 핥아올렸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용납할 수 없었던 진이 순간 눈을 번뜩이더니 그대로 데빌에게 달려들었다. 뭐하는거야, 네놈...! 자신에게 달려드는 진을 피해 가볍게 침대 밑으로 내려온 데빌의 뒤를 쫓아온 진이 그대로 데빌과... 말 그대로 개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침실에 개 짖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왈왈, 왈! 크르릉, 왈! 그리고 아무리 피곤하고 깊게 잠들었다 해도 이런 개 짖는 소리에 깊게 잠들리가 없었던 화랑이... 눈을 떴다.

" 네놈, 화랑한테 무슨 짓이야! "

" 하하, 그렇게 소중하면 아예 감금하고 밖으로 꺼내지 않는게 어때? "

" ...내가 잠이 덜 깼나... 왜 개새... 아니 멍멍이 2마리가 보이냐... "

으으... 험한 단어를 뱉으려다 삼키고 대신 순화된 단어를 낮은 신음과 함께 내뱉으며 몸을 일으킨 화랑의 몸에 감겨있던 이불이 스르륵 내려가자 들어난 상체에는 어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붉은 키스마크와 잇자국, 그리고 손자국으로 얼룩덜룩한 화랑의 모습에 진이 황급히 다가가 제 몸으로 화랑의 상체를 가리고 막으며 마치 그를 지키듯 섰다. 화랑, 괜찮아? 목만 돌려 화랑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지만 화랑은 말없이 진과 데빌을 번갈아가며 바라볼 뿐이었다. 진이 다시 한번 더 화랑에게 말을 걸었을 때 화랑은.

" 진, 이 자식은 어디 간거야... 야, 니들 진이 데리고 왔어? "

" 화랑, 나야 나! 진! "

" 아오, 멍멍 소리 시끄러워... 너 목청 좋은 건 알겠는데 조용히 해, 조용히 "

" 하하, 지금 우리의 말은 그에게는 개 짖는 소리로 들리나보군 "

그 말을 듣고 진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지금 자신과 데빌의 말은 화랑에게는 모조리... 개 짖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그럼 나와 데빌이 대화가 되는 건... 서로 개가 되었기 때문인가...? 아, 내가 진이라는 걸 화랑에게 어떻게 전달하지..? 진이 저도 모르게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자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화랑이 손을 들어 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마음 약해지게 낑낑거리기는... 그나저나 너 사람 말도 잘 알아듣고... 똑똑한가보다? 그나저나 진짜 진, 이 자식은 어디로 갔...

" 왈왈! "

" 야, 좀 조용히 하라니까... 진! 야, 진! 너 어디있냐! "

" 왈왈! "

" 아니 좀 조용히 해...! 야, 진! 너 어디... "

" 왈왈왈! "

" ...잠깐 "

" ...... "

" 설마... 진? "

" 왈왈! "

" ...잠깐만... 네가 진이면 저 녀석은... "

화랑의 눈이 여전히 침대 밑에서 얌전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또 다른 검은 개에게 향했다. 절대로 개한테 있을 수 없는 붉은색 눈이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색 눈, 저 눈을 보면 생각나는 녀석이 있다. 에이, 설마... 설마... 데빌...? 입술을 달싹 거린 체 잠시 주저하던 화랑이 혹시나 싶은 마음에 부른 이름에 붉은 눈을 가진 개가 조용히 짖었다. 화랑이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제 이마를 강하게 내리치며 고개를 숙였다. 와... 미치겠다... 나 지금 꿈 꾸는거 아니지? 이거 현실이지? 화랑의 중얼거림에 진이 마치 현실이라는 걸 알려주듯 몸을 움직여 화랑의 다리를 딛고 볼을 길게 핥아주었다. 제 볼에 축축하게 닿아오는 혀에 다시 고개를 든 화랑이 손을 들어 다시 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 남은 한손으로 제 볼을 강하게 꼬집었다. 아프다... 아픈 거 보니까... 꿈은 아니네... 하아... 화랑이 슬쩍 개로 변한 진을 바라보았다. 검은 색의 장모종으로 보이는 커다란... 개. 음, 셰퍼드 닮았네... 검은색 장모종 셰퍼드. 전체적으로 순한 얼굴의 진을 보던 화랑이 어느새 침대를 돌아 반대편으로 다가온 붉은색 눈을 가진 셰퍼드를 바라보았다. 이쪽은 데빌이라 그런가... 좀 무서운 얼굴이네. 이렇게 확연하게 다르다니 진짜... 웃기네. 무의식 중에 화랑이 손을 들어 데빌의 머리도 살살 쓰다듬었다.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화랑의 손길을 거부할 줄 알았던 데빌은 의외로 얌전히 화랑의 손길을 받아주었다. 잠시 그렇게 양 손으로 두 커다란 개들을 쓰다듬던 화랑이 다시 낮게 한숨을 쉬고는 비척비척 침대에서 일어섰다.

" 일단... 씻고 정신 좀 차리고 상황 파악 하자... 진, 데빌. 둘 다 얌전히 기다려, 알았지? "

그 말에 두 커다란 검은색 개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화랑은 순간 굳었다가 이내 비척비척 욕실로 들어갔다. 그런 화랑의 뒷모습을 보던 진이 고개를 돌려 데빌을 바라보았다. 데빌이 마치 웃는 것 처럼 이를 잠깐 들어내더니 이내 터벅터벅 침실을 나가는 걸 본 진이 하아,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고는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았다. 일단 화랑의 말대로 얌전히 기다릴 생각이었다. 어차피 개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으니까.

" 맛있어? 토토한테 가끔 만들어주던 생식인데... 니들 입맛에도 맞는지 모르겠다 "

욕실에서 씻으면서 복잡한 머리 속을 깔끔하게 정리한 화랑의 결론은 일단 데빌에 대해 가장 잘 알 것 같은 진의 엄마인 준에게 연락을 해보자였다. 후아, 여전히 뻐지근한 허리를 부여잡고 샤워를 마친 화랑이 옷을 갈아입고 준에게 연락을 넣은 후 침실을 대충 정리하고 - 이런 건 보통 진의 역활이었기에 화랑이 한 침실 정리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지만 - 거실로 나와 거실 한복판에 얌전히 앉아있는 데빌에 헛웃음을 한번 짓고는 냉장고를 열어 각종 고기와 야채를 꺼내고 만들어 준 즉석 생식 식단은 진은 물론이고 다행스럽게도 데빌의 입맛에도 잘 맞은 듯 둘은 모두 접시에 코를 박고 잘도 먹어댔다. 그래도... 사람이었는데 다짜고짜 사료 사와서 먹일 수는 없으니... 화랑이 제 앞에 놓인 샐러드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두 사람... 아니, 두 마리의 개를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같은 한 배에서 태어난 개인 줄 알겠네... 아, 비슷하긴 한가...? 근데... 돌아오긴 하는 걸까...? 괜히 걱정되는데... 깨작깨작 포크로 샐러드만 뒤적거리고 있으니 그런 화랑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진이 가볍게 짖었다.

" 화랑,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

" 음? 먹으... 라는거지? 진짜 의사소통이 안되니까 이건 좀 불편하네... "

포크를 내려놓고 일어난 화랑이 두 멍멍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바라보다 작게 중얼거렸다. 근데 니들... 개 주제에 잘생기긴 했다. 사람이었을 때 외모가 어떻게 된 게 개가 되어도 그대로 남아있냐? 신기하네. 화랑이 양손을 들어 다시 두 멍멍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나, 어릴 적에 개를 키워보고 싶었거든. 근데 이렇게나마 진짜 개를 키우게 되니까... 조금 신날지도...? 애써 기분을 업 시키려는 듯 웃어보이는 화랑에 진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화랑의 몸이 기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진을 보던 데빌은 앞발을 들어 화랑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성격 다른 두 놈 답게 위로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네 , 라고 생각하던 화랑이 제 집에 울리는 벨소리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밖에 있던 사람은.

" 안녕, 화랑군. 진은? "

" 아, 준씨. 바로 와줘서 고마워. 두 녀석들 지금 방금 막 식사 끝났는데 "

반갑게 웃으면서 마주한 사람은 진의 엄마인 준이었다. 지금 진과 화랑은 야쿠시마에 머무르고 있었고 가까운 곳엔 준과 카즈야가 함께 사는 집이 있었다. 물론 왕래를 하면서 지내는 건 준 뿐이었고 카즈야는 단독으론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가끔 준에게 붙잡혀 쇼핑이나 산책에 동참하는 정도였다. 뭐, 그것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화랑은 생각하긴 하지만. 여하튼 화랑의 안내를 받아 준이 거실로 발을 들인 순간 그녀에게 달려든 건 역시나 진이었다. 쌩하니 달려 그녀의 발치로 온 진이 끙끙거리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어머나, 그런 진에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던 준의 시선이 향한 건 화랑의 다리 뒤에 숨어 자신을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데빌이었다. 카자마의 힘은 생명을 기르고 마를 정화하는 힘. 데빌은 자신과 숙주인 진이 분리된 지금 그녀가 자신을 정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데빌의 머리를 화랑이 다시 손을 뻗어 살살 쓰다듬었다. 괜찮아, 너도 진의 일부잖아. 그런 짓 안할거야. 그 말에 데빌의 경계가 조금 누그러진 걸 본 준이 작게 웃으며 진의 몸을 이곳저곳 만지며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

" 에, 문제 없어? "

" 응, 신체에 딱히 이상도 없고 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의 기가 이상하다거나 한 것도 아닌걸 "

" 그럼 대체 왜 개로 변한거야? 그것도 둘이 분리되서... "

" 글쎄... 데빌도 조금은 놀고 싶었던게 아닐까? "

" 준씨... 그거 결국 준씨도 모른다는 말이지? "

그 말에 화랑 뿐만 아니라 데빌조차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멍멍이 주제에 표정으로 말을 하다니 화랑은 기가 막혔지만 그 준조차 모른다고 하는 거 봐서는 뭔가 사악한 일로 인해 둘이 갈라져 개가 된 건 아닌 것 같았다. 뭔가 아자젤이 수작 부리는 거였으면 준씨가 바로 알았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화랑이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정신을 차리고보니 제 무릎 위에 올라와 있는 데빌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너, 진짜 네가 수작 부린 거 아니지? 화랑의 물음에 데빌의 입에서 나온 건 한숨 소리였다. 한숨이라니, 이 자식이. 어이가 없어진 화랑이 하아, 허탈한 숨을 내뱉고는 그래그래, 네가 인간도 아니고 멍멍이의 육체를 선택할 리가 없지...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 그나저나 돌아오긴 할까 "

" 응, 돌아올거야. 진의 기운이 서서히 커지고 있으니까... 하루 밤 자고 나면 아마 원래대로 돌아올거야 "

" 그럼 다행이고... 걱정거리는 하나 줄었네 "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 화랑은 준이 흐믓한 미소를 띄우며 자신을 바라보자 움찔 해서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항상 틱틱거리며 거친 모습을 보이는 화랑이 그래도 속으로는 진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걸 눈 앞에서 직접 목격한 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화랑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화랑군, 진을 부탁해. 그 말에 우물쭈물 거리던 화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 준씨. 준이 집을 떠나고 먹다 남은 샐러드를 모조리 다 먹어 치운 후 설거지까지 끝낸 화랑이 멍하니 거실에 앉아 제 양 옆을 점령한 두 멍멍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제 뭐하지... 솔직히 그냥 이대로 하루종일 집에서 미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도 되지만... 왠지 그건 좀 아쉽단 말이야... 잠시 생각하던 화랑이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행동에 두 멍멍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화랑에게 향했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화랑이 씨익 웃었다.

" 아하하하하! 그, 그러니까... 이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내, 내 조카님이랑 그 데빌이다 이거지? 아하하하! "

" 그만 좀 웃어, 리씨. 데빌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으니까 "

" 갑자기 개라니... 원인은? "

" 그거야 나도 모르지. 자고 일어났는데 난데없이 멍멍이 두 마리가 있었다고. 준씨도 보고 갔는데 모른다고 했고 "

" 진씨, 진씨도 원인을 모르는 겁니까? "

" 왈왈, 왈! "

" 그렇군요. 진씨도 고난이군요! "

" 뭐야, 알리사. 너 진이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듣는거야? "

화랑의 연락으로 작은 수송기를 보내준 리는 비도프니르에 화랑이 도착했다는 말에 라스, 알리사와 함께 선착장으로 향했다. 항상 진을 자가용으로 삼아서 날아오더니 오늘은 왜 수송기를 요청한거지? 그리고 그런 리의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저기 멀리서 걸어오는 화랑의 옆에 거짓말 좀 포함해서 송아지 크기의 커다란 개 2마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저 강아지 때문에 수송기를 요청했나? 근데 왜 진은 안보이지? 그리고 이 2마리의 강아지의 정체를 알게된 셋의 반응은. 리는 폭소했고 라스는 진지하게 걱정했으며 알리사는 진의 말을 통역했다. 결국 그 폭소를 버티지 못한 데빌이 리를 물기 위해 달려들었고 리가 웃음과 비명이 적당히 서린 소리를 내며 도망다니는 사이 라스는 꽤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다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을 진은 피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 그래서 원래대로 돌아오긴 하는건가? "

" 응, 준씨가 진의 기운이 커지고 있다고 자고 일어나면 원래대로 돌아와 있을거라나 뭐라나~ "

" 그럼 다행이지만... 진, 혹시 불편한 건 없나? "

" 왈... 왈왈, 왈! "

" 시야가 낮아서 불편하다고 합니다! "

" 우와, 알리사가 있으니 통역이 되서 편하긴 하네. 근데 불편한 게 낮은 시야 하나야? 갑자기 네발로 걷게 되서 불편한 건 없어? "

" 왈... 왈왈 "

" 걷는 감각은 두 발로 걷는 것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

" 그럼 다행인데... 는 슬슬 그만두게 할까 "

화랑이 고개를 움직여 한창 술래잡기 중인 리와 데빌을 바라보았다. 보통 개와 다르다는 듯 스피드와 움직임이 남다른 데빌에 리가 정신없이 쫓기고 있었다. 그러다 타이밍을 엿본 데빌이 그 붉은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어 리의 팔목을 덥썩 물자 리의 입에서 꽤나 깊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잠깐, 데빌? 웃은 건 미안한데 슬슬 진짜 아프니까 그만 두게나. 자, 잠깐. 이에 힘주지 말게...! 주저 앉아 데빌의 머리를 다른 팔로 밀치는 리와 그의 팔목을 문 체 으르렁 소리를 내는 데빌을 보던 화랑이 에휴, 작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데빌, 그만해. 화랑의 목소리를 들은 데빌의 귀가 쫑긋하고 움직이더니 이내 리의 팔목을 놔주고는 태연하게 어슬렁어슬렁 걸어 화랑의 발치로 다가왔다. 그리곤 마치 칭찬해 달라는 듯 다리에 몸을 비비며 히죽 웃는 데빌을 본 화랑이 다시 에휴 한숨을 쉬고는 손을 내려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야야... 치료 받아야겠군.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팔목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리가 다가왔다.

" 그래서 왜 온건가? 어차피 돌아온다면 굳이 올 필요 없을텐데 "

" 아, 별거 아니고. 혹시 댁한테는 있지 않을까 해서 "

그리고 정확히 1시간 후. 넓고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가득한 공원을 여유롭게 산책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정말 커다란 검은색 멍멍이 2마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훤칠하게 잘생긴 노을빛의 머리칼을 가진 남자에게. 멍멍이들의 붉은색 목걸이와 맞는 붉은색 목줄을 손에 쥔 체 느긋하게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화랑이었다. 화랑이 위그드라실까지 와서 리에게 찾은 물건은 무려... 개목걸이와 목줄, 그리고 입마개였다. 위그드라실에 군견이 몇마리 있다는 걸 기억한 화랑이 혹시나 싶어서 부탁한 물건을 리는 웃음을 참으면서 기꺼이 건네주었다. 근데 어차피 내일이면 돌아온다면서 이것들은 왜...? 라스의 질문에 화랑이 어깨를 으쓱 들어보이며 한마디 했다. 이렇게 된거 내가 좀 즐길까 싶어서. 그렇게 물건들을 받아 진과 데빌에게 개목걸이와 목줄을 채우고 입마개까지 씌운 화랑은 정말 자신이 말한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 답답해? 답답해도 좀 참아. 니들 정도 덩치의 멍멍이가 입마개를 안하면 사람들이 겁 먹는다고 "

불편한 건지 걷다가 가끔 고개를 흔드는 데빌을 본 화랑이 피식 웃으며 목줄을 쥐고 있지 않은 손으로 데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니들도 집에만 쳐박혀 있으면 답답하잖아. 비록 멍멍이가 되긴 했지만 가끔 이런 것도 나쁘지 않잖아. 특히 데빌 너. 맨날 진의 몸에만 있다가 비록 멍멍이의 몸이지만 따로 육체를 가지고 나왔는데 바깥 구경도 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잔잔하게 웃은 화랑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데빌과 진을 살폈다. 근데 니들 진짜 괜찮긴 해? 걷는 감각은 두발로 걷는 거랑 같다고는 하지만... 제 말에 동시에 대답하듯 터진 두 멍멍이들의 짖음에 잠시 벙찐 얼굴을 하던 화랑이 이내 안도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자신들에게 쏠린 사람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원을 가볍게 돌며 산책을 하던 화랑이 대충 깨끗해 보이는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털썩 앉아 팔을 위로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진도 그렇지만 자신도 이렇게나 유유자적한 시간은 간만이었다. 세계 복구가 한창 진행 중일 때는 잠도 줄여가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구에 신경 쓰느랴 정신이 없었고 어느 정도 완료된 후에는 진과의 관계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면서 거기에만 신경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나도 휴식이 좀 필요하긴 한가보네... 

조금 멍하니 나무에 기대 앉아 있으려니 왼쪽에 있던 진이 끄응, 작은 소리를 내며 화랑의 어깨에 제 턱을 올리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와... 진짜 멍멍이다, 멍멍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에 걱정하는 마음이 한껏 담긴 걸 본 화랑이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으니 곧장 오른쪽 허벅지에 묵직한 무언가가 얹어졌다. 야, 데빌... 넌 날 아무렇지 않게 베개로 쓴다? 그 말에 데빌이 킁, 마치 비웃듯이 숨을 토해내더니 이내 허벅지에 제 얼굴을 비비며 정말 잘 것 처럼 자세를 잡고 눈을 감는 걸 본 화랑이 여전히 제 어깨에 턱을 올린 진을 달래며 데빌처럼 제 왼쪽 허벅지를 베고 눕게 자세를 잡아주었다. 우리 깔끔하게 30분만 자자. 나도 30분만 자고 일어날테니까. 그 말에 자신을 가만히 보던 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도 데빌처럼 자세를 잡고는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화랑도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래, 그렇게 한 사람과 두 마리는 공원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짧은 낮잠 타임을 가졌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상하게... 주변이 좀 시끄럽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에 얕은 잠을 자던 화랑이 스르륵 눈을 떴다. 이상하게 제 양 다리를 무겁게 만들어야 될 멍멍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갔어. 이 녀석들... 손으로 눈을 비비며 사태 파악을 하던 화랑의 눈에 저 멀리 공원에서 왠 남자의 뒤를 쫓고 있는... 두 녀석들이 보였다.

" ...뭔데 이거? "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일단 두 멍멍이들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한 화랑이 큰 소리로 두 멍멍이들을 불렀다. 진, 데빌! 꽤 먼 거리였지만 용케도 화랑의 목소리가 닿은 것인지 누군가의 뒤를 쫓던 두 멍멍이들이 멈추더니 곧장 화랑에게 달려왔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화랑이 마치 잘했으니 빨리 쓰다듬으라는 듯 머리를 들이미는 두 멍멍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 니들 뭐하고 있었어?니들이 쫓던 인간은 뭔데? 화랑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왈왈 거리는 둘을 보던 화랑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까 마지막으로 남자를 본 장소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남자는 그 곳에 없었다. 대체... 뭔데...? 머리를 긁적이던 화랑이 이내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두 멍멍이들의 목줄을 손에 쥐었다. 니들이 잘못 했으면 아까 니들이 쫓던 남자가 와서 따졌을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니들 잘못은 아니겠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돌아가자. 화랑의 말에 두 멍멍이들은 얌전히 화랑과 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그래, 화랑은 몰랐다. 나무에 기대 잠이 든 자신에게 접근하던 놈팽이의 인기척을 느낀 진과 데빌이 입마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울 정도로 으르렁 거리며 그 남자를 내쫓고 있었다는 것을. 뭐... 아마도 평생 모르겠지.

" 야! 아, 쫌! 가만히 있어봐! 네가 고양이도 아니고 왜 목욕을 거부하는데...! "

30분의 꿀 같은 낮잠을 끝으로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화랑의 다음 일과는 당연하게도... 두 멍멍이들의 목욕이었다. 하아, 진짜 최소 송아지급의 멍멍이를 씻겨야 한다니... 그렇다고 공원에서 그렇게 굴렀... 는데 목욕을 안시킬 수는 없지. 가벼운 반바지와 반팔로 갈아입은 화랑이 목줄과 입마개를 제거한 두 멍멍이들을 욕실로 끌고 갔고 거기서부터...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일단 욕조에 물을 반쯤 받은 후 샤워기로 먼지와 각종 흙먼지를 씻어낸 진부터 밀어넣었다. 물론 진이야 얌전히 잘 들어갔고 문제는... 데빌이었다. 마치 고양이마냥 데빌은 샤워기의 물이 제 몸에 닿자마자 바로... 날뛰기 시작했다. 야야! 아오, 이 금쪽이 자식 진짜! 이게 무슨 성수인줄 아냐! 얌전히 있어, 얌전히! 마치 자신에게 항의라도 하듯 왈왈 거리며 욕실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데빌이 순간 방심한 화랑에게 달려들었다. 우왓! 우당탕, 화랑의 손에 들려있던 샤워기가 떨어져 제멋대로 춤을 췄다. 아야야... 욕조에 머리를 부딪친 화랑이 손으로 제 부딪친 부분을 문지르며 제 위로 올라탄 데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렇게 싫으냐! 근데 적어도 몸에 묻은 먼지나 그런 건 닦아야 될 거 아냐! 그 꼬라지로 침대에 올라올 생각은 아니지? "

" ...... "

" 데빌? "

제멋대로 춤추고 있는 샤워기가 뿜어내는 물을 정통으로 맞던 화랑이 성질을 내며 샤워기를 잡고 제 위에 올라탄 데빌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데빌의 붉은 눈을 응시하던 화랑이 에휴, 작게 한숨을 쉬고는 뭐라 말하려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욕조에 얌전히 몸을 담그고 있던 진이 순식간에 욕조에서 튀어나와 화랑의 위를 점령하던 데빌을 덮쳐 쓰러트렸다. 왈왈, 왈! 화랑의 앞을 지키고 서서 데빌을 보며 날카롭게 짖어대는 진과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곤 이를 들어내며 웃던 데빌이 서로가 서로에게 달려들어 아침 때 처럼... 개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어휴, 저 둘은 대체 왜 싸우는거야, 진짜... 하아아... 몸을 일으켜 욕조에 등을 기댄 화랑이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벌떡 일어나 그 개싸움 한복판으로 들어가 덥썩 두 멍멍이들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니들 적당히 안싸워!!! 결국 화랑의 일갈과 분노에 깨갱한 두 멍멍이들은 화랑의 손에 깨끗하게 씻겨져 각자 커다란 수건을 하나씩 뒤집어 쓴 체 욕실 밖으로 내쫓겼다. 나 씻고 나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 또 싸우면 그땐 진짜 내쫓는다. 그 말을 하며 콰앙, 닫힌 욕실의 문을 보던 데빌이 크게 하품을 하며 터벅터벅 거실로 걸어가는 걸 본 진이 입을 열었다.

" 화랑에게 이상한 짓 할 생각하지마, 데빌 "

" 하, 본인은 잘도 이상한 짓을 하면서? 이거야말로 내로남불이군 "

진이 이를 들어내며 으르렁거렸다. 욕조에서 얌전히 데빌이 벌이는 깽판을 보고있던 진이 갑자기 욕조에서 뛰쳐나와 데빌을 덮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화랑은 데빌과 얼굴을 마주하느랴 몰랐던 것 같지만 그의 위에 올라탄 데빌의 성기가... 그 불쾌했던 장면을 떠올린 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데빌이 화랑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가 데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시절 때 부터 데빌은 그 누구보다 화랑에게 큰 관심을 두었다. 그 시절 때는 아마 두려움 없이 자신에게 계속해서 싸움을 거는 화랑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진은 제가 받아들인 데빌이 제가 그 누구도 아닌 화랑과 마주하고 있을 때 유독 심상 세계에서 낮은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는 걸 느꼈다. 진은 데빌을 또 하나의 자신으로 인정하고 받아드렸다. 하지만 화랑의 소유권에 대한 건 분명 다른 이야기였다. 화랑은... 자신의 것이니까. 화랑은 내꺼야. 너라도 절대로 양보 못해. 그 말에 멈칫, 걸음을 멈춘 데빌이 진을 바라보다 이내 이를 들어내며 웃었다.

" 후암... 이제 잘거니까... 알아서 자리 잡던가 "

샤워를 끝내고 저녁을 먹은 후 취침 시간이 되자 후아암, 하품을 하며 침실로 들어가는 화랑의 뒤를 두 멍멍이가 졸졸졸 따라갔다. 두 팔을 위로 올리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화랑이 침대로 쏙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진이 화랑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그냥 내 옆이 네 자리지? 당연하다는 듯 들어오네. 화랑이 옆으로 누워 제 옆으로 다가온 진을 두 팔로 안았다. 따뜻한 온기가 꽤나 기분이 좋았다. 뭐, 걱정은 안되지만... 아주 만약에 내일이 되도 안돌아오면... 그땐 어쩌지...? 졸음으로 반쯤 뜬 눈을 깜박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던 화랑은 이내 제 등 뒤에 와닿은 온기에 고개를 들어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인 건 등을 맞대고 누운... 데빌이었다. 그런 데빌에 잠시 눈을 굴리던 화랑이 피식 웃고는 무슨 츤데레도 아니고. 속으로 생각하며 생각보다 부드러운 진의 몸에 얼굴을 묻고는 눈을 감았다. 다음 날 깨어났을 때 자신의 옆에 온전한 모습의 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 ...준씨, 원래대로 돌아온다면서? "

" 음... 이상하네... 하지만 안에서 진의 기는 온전하게 느껴져. 데빌의 기도 "

" 근데... 왜 말도 못하고 데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거야? "

다음 날 준은 다급히 자신을 호출한 화랑에 빠르게 두 사람의 집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데빌과 화랑을 목격했다. 어째서 데빌이? 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싶어 다급하게 자세를 잡은 준이었지만 이상하게 데빌은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화랑이 데빌을 지키 듯 앞을 가로막고 나서자 준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이내 자세를 풀었다. 진? 준의 부름에도 진은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결국 화랑이 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두 멍멍이는 사라졌다. 하지만 진이 데빌의 모습을 유지한 체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마치... 멍멍이처럼 행동한다고. 준이 데빌 특유의 붉은 눈이 아닌 평상 시 진의 눈동자를 한 데빌을 바라보았다. 데빌의 모습을 한 진은 그저 준과 화랑을 번갈아가며 보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그 날카로운 손톱으로 어깨를 붙잡더니 그대로 입을 열어...

" 야야! 아오, 이거 또 물려고 그러네 "

화랑이 다급하게 진의 머리를 밀며 저지했다. 아야, 아파... 어깨 다 긁어놓는 것도 그런데 진짜 개처럼 물려고 하더라고. 준씨도 일단 혹시 모르니까 너무 접근하지마, 이 녀석 돌변 할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 준이 흐음, 소리를 흘리더니 진을 이리저리 살폈다. 음... 화랑군, 아무래도 분리되었던 진과 데빌이 다시 합쳐지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그래도... 둘의 기운이 서로 충돌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아마 조만간 원상태로 돌아올거야. 그 말에 화랑이 하아,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제 발치에 앉아 정말 얌전한 멍멍이마냥 기다리고 있는 진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바라보았다. 데빌 특유의 뿔과 문신은 정말 데빌 그 자체인데 눈만 붉은색이 아닌 진의 눈색이라 되게 어색하다고 화랑이 작게 중얼거렸다.

" 진, 내 말 들려? "

" ...... "

" 어제 멍멍이로 변했을 땐 그래도 의사소통이라도 제대로 됐는데 오늘은... 그것마저 안되네... "

" ...... "

" 뭐, 그래도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줄테니까 "

화랑의 말을 알아 들은 건지 아니면 알아듣지는 못해도 뉘앙스를 이해한 건지 눈을 깜박이던 진이 벌떡 일어나더니 덥썩 화랑을 껴안았다. 우앗...! 자신보다 묵직한 무게가 그대로 저를 덮치자 화랑이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서는 저도 손을 들어 진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근데... 진은 그렇다치고 데빌은 왜 안나오지...? 진짜 둘이 섞이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긴건가... 음, 부르면... 나오지 않을까...? 혹시... 데빌은 안에 있어...? 야, 데빌. 데빌...? 화랑이 제가 아닌 데빌을 부르자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진이 고개를 들어 화랑을 바라보았고 이내.

" 야, 떨어져! 또, 또 물려고! 네가 무슨 개야? 아니 어제 멍멍이 일때는 입질 한번 안하더니 왜 데빌의 모습으로 자꾸 입질을 하려고 그러냐! 너 자꾸 이러면 진짜 입마개 한다? "

" ...... "

" 떨어져, 떨어져! 허리에 팔 두르지마!!! 준씨, 준씨 좀 도와줘요! "

" ...... "

" 어라, 준씨...? 준씨! 왜 말도 없이 간건데!!! "

화랑이 다급히 준을 찾았지만 이미 그녀는 진이 그를 껴안았을 때 집을 나간 상태였다.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저와 카즈야의 집으로 돌아가던 준이 검지로 턱을 받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좀 이상하지, 진도 데빌도 둘이 서로 거부하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왜 서로 융화되는 건 거부하는걸까...? 둘이 서로 의견이라도 맞지 않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원인은 아마... 잠시 화랑을 떠올린 준이 이내 작게 웃으며 괜찮겠지, 라고 작게 중얼거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저 멀리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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