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랑] 썰 모음 11
진화랑 2개, 진화랑뎁진 1개. 2023년 11월 7일 연성.
1. 진이 세계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으로 백두산이 죽게되자 진을 죽이기 위해 복수귀가 되어 선을 넘어버리는 화랑으로 진화랑.
...사범님...? 화랑은 쓰러져있는 제 사범이자 레지스탕스의 정신적 지주인 백두산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스멀스멀 흘러 나와 제 신발을 적실 때 쯤 정신을 차린 화랑이 황급히 그를 부르며 달려가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지만. 화랑을 맞이한 건 차갑게 식어버린 몸이었다. 아... 잠시 말이 없어진 화랑이 이를 악문 것도 잠시 그의 입에서 생전 한번도 듣지 못한 절망의 감정이 섞인 절규가 터져나왔다.
...뭐? 보고를 들은 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번에 철권중이 자신들과 대립하던 레지스탕스를 발견해 교전에 들어갔고 그 교전에서 민간인을 구하려다 휘말려 사망한 사람이 바로 자신도 아는 화랑의 사범인 백두산이라는 보고였다. 제 앞의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들을 적대하던 팀의 간부를 처치했다는 것에 칭찬을 기대하는 그들과 달리 진의 머리 속은 굉장히 복잡해진 상태였다. 자신의 행동이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거라고 알고 있고 그렇기에 모든 것이 끝난 후 대가를 치를 각오도 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 아버지나 다름없는 그 사람이... 잠시 말이 없던 진은 이내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건냈고 그것에 만족한 부하가 나가고 나서야 깊은 한숨을 쉬며 털썩 자리에 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화랑.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이름을 속삭이면서.
진이 갑작스럽게 실종된 후 그가 죽었다는 걸 부정하고 아주 작은 정보를 실마리 삼아 도착한 중동의 사막에서 화랑은 데빌 상태인 진을 발견했다. 왜 하필이면 너야?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건 괴물 상태인 네가 아니라고. 과거 진이나 데빌을 처음 봤을 때 보였던 호승심 가득한 눈이 아닌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진 인간의 눈을 한 화랑이 황망하게 중얼거리며 공중에 떠있는 데빌을 바라보았다. 데빌도 화랑을 발견하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둘은 격돌했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죽이려드는 화랑의 움직임에 데빌이 유쾌하다는 듯 웃으며 둘은 정신없이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싸움을 계속 이어나갔고 그 싸움은 갑작스레 끼어든 군인들로 인해 중단되었다.
화랑이 군인들이 던진 수류탄에 부상을 입는 것과 동시에 데빌화가 풀린 진이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린 것이었다. 군인들 중 일부는 도망친 진을 쫓고 남은 군인들이 쓰러진 화랑에게 조심스레 접근한 순간. 벌떡 몸을 일으킨 화랑의 손이 저와 가장 가까운 군인의 목을 붙잡아 힘을 줬다. 뿌드득, 소름돋는 소리와 함께 목이 부러져 즉사한 군인을 던져버리며 화랑은 제 앞에 살아 서 있는 인간이 없을 때까지 움직였다. 이내 저를 방해하는 인간이 없게되자 멈춘 화랑의 주위에 남은 것은 시체들 뿐이었다. 느릿느릿 그의 눈이 진을 찾았지만 시야에 보이지 앉자 화랑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치아에 입술의 피부가 찢어져 주륵 피가 흘렀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진...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 늦었잖아, 진. 그 누구보다 널 쳐죽이고 싶었는데 "
" 화랑 "
중동에서 라스들에게 구조된 후 6개월만에 겨우 의식을 찾은 진은 카즈야를 쫓아 움직였고 마침내 그가 있을거라 추정되는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얼굴에 피를 묻힌 체 환하게 웃고 있는 화랑이었다. 그의 주위에 널부러져 있는 라스의 반란군의 사체를 발로 차버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화랑을 보던 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최근 라스 휘하의 반란군이 하나둘 시체로 발견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카즈야의 G사 일거라고 예상했지, 화랑일 거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분명... 떨어진거다. 그리고 그를 떨어트린 건... 자신이겠지.
" 왜 말이 없어? 나한테 할 말이 있지 않아? "
" ...비켜줘, 화랑 "
" 하핫... 싫어 "
" 네... 사범님의 일은 유감이다. 모든 게 끝나고 나면... 나 역시 책임을 질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세상을 구하게 해줘 "
" 세상을 구해? 알바냐, 그거 "
" 화랑! "
" 네가 벌인 모든 일이 정말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치자. 근데 내가 왜 널 이해해줘야 해? 아, 네가 구세주라서? 카즈야 그 양반한테서 세상을 구하니까? 진짜... 너 말이야, 날 이해한다는 듯 구는데... 오만하기 짝이 없네 "
" 나 역시 어머니를 잃어본 경험이 있으니까 "
" 그 어머니도 결국 네 곁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 됐어 "
" 전제라고? "
" ...친구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휘두른 칼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 따위 없잖아, 너 "
화랑의 말에 진이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화랑이 레지스탕스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대항하고 말리기 위해. 자신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분명 백두산도 죽지 않았겠지. 그래, 이 모든 건 자신의 업보다. 하지만 그 업보를 등에 업고서라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 모든 건 내 업보야. 미안해, 화랑. 그런 진의 말을 막듯 화랑의 절규가 터져나왔다.
" 이미 사과따위 의미 없잖아! "
자신을 보며 절규하듯 외친 화랑의 오른쪽 눈에서 주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투명한 눈물에 피가 섞여 흐르는 건 오래걸리지 않았다. 이미 늦었다고, 타임 아웃이다. 네가 선을 넘었던 것 처럼 나 역시도 선을 넘어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변명 따위 그만하자. 화랑이 손으로 제 눈물을 대충 훔치고는 자세를 잡았다. 진 또한 눈을 질끈 감았다 천천히 뜨며 자세를 잡았다. 화랑이 한 마디를 던진 후 진에게 달려들었다.
" 이제 모든 걸 끝내자, 진 "
2. 데빌이 소멸할 때 진에게 너의 가장 소중한 인간이 산산조각 부셔져서 소멸할거라고 저주거는데 그 다음 날부터 화랑의 몸에 서서히 금이 생기는걸로 진화랑. (모티브는 FGO의 에미야 얼터)
이변은 데빌이 소멸되고 바로 다음 날부터 일어났다. 모든 것이 끝나고 간만에 정말 아무런 고민도 없이 푹 자고 일어난 아침, 화랑은 제 팔에 그어진 붉은 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장난이라도 친건가, 싶어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그 붉은 선은 흐려지거나 번지지 않았다. 뭐지...? 잠시 붉은 선을 바라보던 화랑이 이내 평상시 처럼 머리를 반묶음으로 묶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욕실로 향했다. 일단은 정신부터 차리는게 우선이었다.
이 붉은 선은 나만 보이나보네. 화랑이 속으로 생각하며 제 앞에 사범님을 바라보았다. 소매가 없는 도복 덕분에 팔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어 팔을 가로지르는 붉은 선이 보일텐데 백두산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선이라. 이거 분명 안좋은 징조일 것 같은데. 화랑의 예상대로 붉은 선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번져갔다. 조금씩 조금씩 번져가는 붉은 선을 바라보던 화랑이 그 붉은 선을 손끝에 힘을 줘 긁어내렸다. 그러자. 후두둑. 마치 돌의 파편이라도 튀듯 살점이 툭 떨어져나왔다. 와우... 피 한방울도 나지 않았는데 떨어져나간 살점을 보던 화랑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손 끝으로 붉은 선을 따라가던 그 붉은 선의 종착점이 제 머리와 심장인 것을 확인하고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건 저주다. 그것도 분명 질 나쁜 저주.
철저하게 숨기려던 화랑의 생각은 제 새끼 손가락 끝 마디가 떨어져 나간 걸 목격한 백두산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 어떠한 위험 요소도 없었음에도 과자가 부셔지듯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그대로 떨어져나간 손가락에 놀란 것도 잠시 그 장본인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떨어져나간 새끼 손가락 끝마디를 주어올리더니 이 그대로 힘을 줘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와, 나 진짜 뭐로 바뀌고 있는거야? 쿠키? 그럼 맛이라도 있으려나? 태평하게 중얼거린 그 말에 결국 참지 못한 백두산의 일갈에 화랑이 힘없이 웃어보였다.
" 보여? "
" 안보입니다. 정말 여기에 붉은 선이 있습니까? "
" 응, 이렇게 지나가고 있지 "
알리사의 질문에 화랑이 손가락을 붉은 선의 진로를 따라 움직여보였다. 실례이긴 하지만 기계인 알리사의 눈에도 붉은 선은 보이지 않나보네. 화랑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한 화랑에게 왜 진즉 이야기 하지 않은거냐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담아 외친 백두산은 곧장 리 차오랑에게 연락을 취했고 화랑은 곧바로 제페토 보소코노비치 박사의 연구실로 후송되었다. 역시 안보이는구나.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붉은 선이라니...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건 확실히 알겠어. 리가 화랑의 검사지를 보며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주사기로 찔려도 피 한방울 나지 않고 붉은 선이 서로 맞닿은 신체 부위는 조금의 충격으로도 쉽게 떨어져 나간다.
" 그나마 고통이 조금도 없다는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나 "
" 너무 태평한거 아냐, 백의 제자? "
" 음, 뭐... 현실적이지 않은 일을 너무 많이 겪을 탓일까나... 지금도 딱히 현실처럼 안느껴지니까 "
" 일단 손과 팔이라도 붕대로 감아 떨어져나가지 않게 해야겠군, 알리사 "
" 네, 박사님 "
제페토 박사의 말에 알리사가 붕대를 가져와 가장 많이 붉은 선이 그어져있는 손과 팔에 감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렇게 붕대로 감아 붙들어놓는 것 밖에 지금으로선 방도가 없었다. 붕대가 감긴 손이 제 목을 매만졌다. 붉은 선은 어느새 목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그리고 심장 부근까지. 머리와 심장까지 모두 장악되면 부셔지고 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한 체 도장으로 돌아온 화랑은 제 팔에 감긴 붕대를 보다 후, 숨을 내뱉고는 천천히 옷을 벗었다. 이내 아무것도 입지 않고 고스란히 들어난 상체에 눈이 아플 정도로 붉은 선이 고스란히 들어났다. 심장과 머리를 향해 슬금슬금 뻗쳐오는 붉은 선이 마치 죽음의 도화선처럼 보였다. 하아, 왜 하필 나야?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범님인가? 상의를 한 손으로 들며 네, 대답한 화랑의 눈에 문이 열리고 이내 들어온 사람은.
" 진? 너 돌아왔냐? "
" 화랑, 이야기 들었... "
말을 이어가려던 진은 화랑의 팔에 감긴 붕대가 아닌 가려지지 않고 들어난 몸에 집중했다. 몸에 선명하게 그어진 붉은 선. 그 선을 보는 순간 진의 심장 속에 데빌이 감기고 간 마지막 말이 두근거리며 속삭였다. 너의 가장 소중한 인간이 산산조각 부셔져서 소멸할거다. 읏, 진이 지긋이 입술을 캐물었다. 그리고 그런 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화랑이 그렇구나. 진, 너 보이지? 라고 중얼거렸다.
" 네 눈에 보인다는건... 결국 그 괴물인가. 아 진짜. 끝까지 민폐 끼치고 가네 "
" ...화랑 "
" 결국 원인은 너라는거네. 그럼... 해결해 "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아직 죽고 싶지 않고. 네놈을 때려눕히고 이길 때 까지는 안죽을 거니까. 해결할 때까지 책임지라고, 진? 해결 못하면 내가 죽을 때 네놈도 죽이고 갈거야. 진심과 농담이 반반 섞인 말을 웃으면서 내뱉은 화랑에 진이 입술을 꾹 다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널 돌려놓을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아니, 그건 내가 무서우니까 됐고. 진이 천천히 다가와 아직 번지지 않은 화랑의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 끝에서 아직 약동하고 있는 맥박이 느껴졌다.
" ...근데 왜 나야? "
" ...몰라서 물어보는거야? "
" 그냥 심술 부려본거야. 근데 진, 나 이미 왼손 새끼 손가락 한마디 정도 떨어져 나갔는데 "
" ...죽인다 "
" 이미 죽어 없어진 놈을 어떻게 죽인다는건데. 일단 진정해 "
3. 1-1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진의 안에서 분리된 데빌을 감시하는 역활을 자청한 화랑과 그런 화랑이 걱정되서 미칠 것 같은 진. 그리고 그런 화랑을 재미있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는 데빌로 진화랑뎁진.
물... 이젠 지긋지긋한데. 물 속에서 천천히 눈을 깜박이던 화랑은 태연하게 몸을 움직여 가라앉기 편한 자세를 취했다. 어차피 꿈인 걸 잘 알고 있는 그 다운 행동이었다. 느긋하게 올라갈 생각없이 그대로 가라앉기를 선택한 화랑이 시야에 점점 멀어지는 수면의 빛이 보였다. 이대로 가라앉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결국 이 수면 아래의 어두운 부분도 그 녀석의 일부니까. 아니다, 이건 지금 내 꿈이니까... 내 어두운 부분이려나. 아... 모르겠다. 알게 뭐야. 어차피 꿈인데. 이내 화랑의 몸이 바닥에 닿았다. 잠시 그대로 물 속에 누워있던 화랑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 올라가야 꿈에서 깨려나... 귀찮은데 "
물 속이지만 꿈이기에 태연하게 숨을 쉬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화랑이 올라가기 위해 바닥을 박차고 점프를 한 순간이었다. 순간 무언가가 화랑의 발목을 붙잡았다. 위로 올라갈 수 없게 저를 붙잡은 무언가에 화랑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제 발목을 붙잡은 익숙한 누군가의 손이 보였다. 칫, 화랑이 혀를 차기가 무섭게 손이 그를 밑으로 끌어내리더니 이내 화랑을 끌어안았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그저 자신을 끌어안은 차가운 누군가에 화랑이 흠, 소리를 내뱉고는 눈을 감고 저를 끌어안은 누군가의 가슴에 툭 이마를 기댔다. 이내 화랑의 주변에 검은 무언가가 일렁거리며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조금씩조금씩 화랑의 온몸을 휘어감고 아주 조금의 희미한 빛만이 남아있을때 쯤.
" 장난은 적당히 해 "
작은 목소리와 함께 화랑이 기합을 넣으며 주먹으로 저를 끌어안은 누군가의 가슴을 힘껏 치자 화랑을 감싼 검은 무언가도, 끌어안은 누군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여간에 질리지도 않네. 하긴 이걸 받아주는 나도 제정신은 아니려나... 에휴. 잠시 제 몸을 살피던 화랑이 다시 한번 더 바닥을 박차고 점프했다. 이번에는 저를 붙잡는 누군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능숙하게 수영을 하며 환하게 빛이 비추는 수면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던 화랑의 손끝이 수면에 닿은 순간.
" ...아... "
" 일어났나, 화랑 "
" ...무거우니까 내려와... "
꿈에서 깬 화랑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탄식같은 한숨을 내쉬고는 투덜거렸다. 진짜 질리지도 않나, 매번 같은 레파토리로 뭐하는거야. 내 꿈에 들어와서 노는 짓 좀 그만해, 이 괴물 자식아. 그리고 진짜 무거우니까 내려와. 화랑의 말에 그의 배 위에 옆으로 앉아 바라보고 있던 괴물, 데빌이 작게 웃고 손 끝으로 화랑의 이마를 가볍게 매만지고는 일어섰다. 진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몸무게도 동일한 그가 일어서기 무섭게 화랑이 옆으로 몸을 돌리며 데빌에게 발차기를 날렸지만 데빌은 너무나도 간단히 그 발차기를 막아내며 그대로 화랑의 위를 다시 점령했다. 마음에 안든다는 눈빛을 하는 화랑을 가만히 바라보던 데빌이 웃으며 몸을 일으키더니 방을 나가버렸다. 그런 데빌이 나간 곳을 바라보던 화랑이 어휴, 다시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 진은... 아직 안왔겠네. 하긴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장난질이나 하고 있겠지 "
" 왜? 외롭기라도 하나? "
" 그딴 말은 그만둬. 여하튼 오늘은 일단... 모처럼의 휴가니까... 이따 한판 붙자고 "
대충 바나나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있는 화랑은 제 말에 데빌의 눈빛이 변한걸 확인하고는 속으로 전투광이냐며 조소했다. 저만큼이나 싸우는 걸 좋아하는 녀석을 싸움으로 붙잡아 둘 수 있다는건 분명 행운이지만... 덕분에 사생활 침범에 귀찮은 일이 2배로 늘었다는건 부정할 수 없었다. 소멸된 줄 알았던 데빌이 다시 나타나 자신을 붙잡아두는 방법으로 화랑 자신을 지목했을 때 화랑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수락했다. 이유는 단 하나, 겨우 평화를 되찾은 진이 이 괴물 때문에 또 다시 죄를 지게 할 수 없어서였다. 스스로의 업보 때문에 죄를 지게 된 진은 지금도 그 수습을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그런 그에게 또 다시 죄를 뒤집어씌게 할 수 없었다. 물론 진 본인은 난색을 표하긴 했지만. 여하튼 간만에 백두산에게서 휴가를 받은 - 번듯한 태권도 사범이란 직함이 있다 - 화랑은 간만에 데빌과 한판 붙을 생각이었다. 철권 대회가 다시 열리려면 멀었고 강한 자와의 싸움을 항상 갈구하는 화랑에게 있어서 데빌은 분명 훌륭한 상대였으니까.
적당히 몸을 풀고 싸울 땐 진심으로 화끈하게 싸우는 중인 화랑이 자세를 잡고 레이저를 쏴대는 데빌을 향해 소리쳤다. 야, 임마! 레이저는 쏘지 말라고 했잖아.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어? 그런 화랑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데빌이 날개를 펴고 낮게 날듯이 달려들자 화랑이 잽싸게 그 품으로 파고들 듯 들어가 주먹을 날렸지만 그 공격을 예측한 데빌은 가볍게 막고는 그대로 팔을 붙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왓! 놀란 화랑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이내.
" 날지마, 빌어먹을 자식아!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다고! 진짜 하지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고 있네! "
" 난 이미 충분히 자제하고 있어, 화랑. 넌 날 너무 내버려뒀다고 "
" 그래서 오늘 하루 너하고 충분히 놀아주고 있잖아? 심술 좀 그만 부려라, 진짜! 그리고 내려가! "
으르렁, 저에게 팔이 붙잡힌 체 이를 가는 화랑을 보던 데빌이 코웃음을 치고는 이내. 그대로 바닥을 향해 화랑을 집어던졌다. 우앗! 공중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는 그 아찔한 기분을 맛보던 화랑이 제 시야에 들어온 데빌의 모습에 빠득 이를 갈았다. 진짜 개짜증나는 녀석...! 어떻게 떨어져야 그나마 충격과 부상을 덜 당할까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화랑이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딱딱한 바닥과 충돌할 걸 각오하던 화랑은 저를 감싸는 부드러운 무언가에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건.
" 괜찮아, 화랑? "
" 진? 언제 돌아왔어? 그나저나 저 자식... "
화랑은 떨어지는 저를 안전하게 받은 진을 바라보다 이내 여전히 날고 있는 데빌을 향해 소리쳤다. 이 자식, 너 진이 오고 있다는거 알고 던진거지? 하여간에 누가 데빌 아니랄까봐 하는 짓 하고는! 제 말에 웃으며 땅으로 내려오는 데빌을 보던 화랑이 진의 품에서 내려와 데빌에게 달려들었다. 2차전 시작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화랑의 공격을 받아주던 데빌이 입을 열었다.
" 넌 내 장난감이야. 아직은 부수고 싶지 않으니 다칠 걱정 같은건 안해도 될텐데 "
" 누가 장난감이야! 그 장난감에게 졌으면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입 다물겠다! "
진은 가만히 화랑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데빌에게 고정시켰다. 그때 제안 같은 건 거부하고 확실하게 없애버려야 했다고 진은 중얼거렸다. 화랑이 저를 생각해 데빌의 제안을 받은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데빌과 화랑 사이에 인연이라는게 생겨버린 것이 진의 입장으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물론 좋은 사이도 아니고 평상시에는 화랑도 데빌을 강 건너 불구경 취급하긴 하지만 이렇게 데빌과 싸우는 그를 볼 때면 진은 제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달래느랴 정신이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진 자신에게서 화랑을 빼앗기는 것 같은 그런... 느낌. 특히나 지금처럼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띄는 화랑을 보면 더욱 더 속이 뒤틀렸다. 화랑. 진이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를 화랑은 듣지 못했다. 그 목소리를 들은 건 저와 닮은 모습을 한 악마 뿐이었다. 악마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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