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진화랑] 썰 모음 12

진화랑 2개, 진화랑라스 1개, 진화랑뎁진 1개. 2023년 11월 22일 연성.

1. 같은 고등학교의 친구로 화랑은 불량 학생, 진은 학생회장이자 모범생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실상은... (이건 나중에 살 붙여서 단편 하나로 나올지도)

진은 힘들지 않아? 화랑이랑 같이 다니는거? 그 질문에 회의 후 일지를 작성하고 있던 진이 응? 되물으며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진과 같은 학생회 소속이자 같은 학년인 부회장의 질문은 뜬금 없으면서도 정리를 위해 남아있던 소수의 다른 학생들은 속으로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진 부회장의 용기를 칭찬했다. 학교의 3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학생회장인 진과 학교 최고의 반항아이자 불량 학생이며 진과 같은 3학년인 화랑과의 관계에 모두가 궁금해하긴 했으나 노골적으로 질문을 하지 못한 것은 혹시라도 이야기가 새어나갔다가 화랑에게 폭력을 당할까 무서윘기 때문이었다. 정말 인생 최고의 용기를 냈구나... 자신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지 못하는 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시선을 일지로 돌리며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일지를 써내려갔다.

"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네. 화랑은 그냥 옛날부터 친구 사이일 뿐이야 "

" 하지만 화랑은 툭하면 싸우고... 소문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까... 아, 다른 의도는 없어. 단지 회장이 걱정되서 그런 것 뿐이니까...! "

" 음, 걱정하는건 알지만 화랑은 진짜 그런 친구가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

웃으면서 말한 진의 말에도 주변 학생들은 웃지 못한 체 그저 슬슬 눈치만 살폈다. 대체 얼마나 진을 구워 삶은걸까, 화랑은. 며칠 전만해도 학교 근처에서 다른 학교의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한대도 맞지 않고 일방적으로 복날의 개 패듯이 패버렸다는 소문이 돌았음에도 진은 그 소문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진에게는 그런 소문이 닿지 않게 미리 손을 쓴 것인지 아니면 진이 그 소문을 믿지 않는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술술 일지를 써가던 손이 멈춘 순간 학생회실의 문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렸다.

" 야, 진! 끝났냐? 집에 가자, 집에! "

" 어, 화랑. 잠깐만 검토만 하고... "

" 아아, 그런 건 꼭 네가 안해도 되잖아. 하여간에 범생이 아니랄까봐 "

노크도 없이 들어온 건 방금전까지 이야기의 화두였던 화랑이었다. 복장 검사를 하면 100% 걸릴 복장으로 아무렇지않게 학생회실에 들어온 화랑은 저를 보고는 움찔 뒷걸음질을 치거나 슬쩍 몸을 피하는 학생들을 신경도 쓰지 않은 체 진에게 다가와 책상에 걸터앉았다. 혹시 모를 잘못된 내용을 작성했거나 오탈자는 없는지 눈으로 읽어내려가는 중인 진을 바라보던 화랑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화면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학교에 반입 금지인 폰을 학생회 앞에서 당당히 꺼내는 그 행동에도 뭐라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던 학생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은 것일까, 진의 손이 일지를 닫았다.

" 응, 됐다. 그럼 화랑... 또 폰 가지고 왔어? "

" 내 폰 뺏을 생각마라. 죽어도 안줘 "

" ...부탁이니까 수업 중에는 꺼내지마 "

" 뭐... 생각해볼게. 여하튼 끝난거 맞지? 가자, 빨리 "

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막무가내로 잡아당기는 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진이 웃으며 일어섰다. 드르륵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나고 진이 화랑에게 끌려가면서 소리쳤다. 미안, 먼저 갈테니까 정리 부탁해. 부회장은 일지 선생님께 전달하고. 다급하게 외친 이야기를 용케도 알아 들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는걸 보고 나서야 안심이 된건지 진이 순순히 화랑의 뒤를 쫓아가는 걸 본 학생들은 긴장감이 풀린 숨을 내뱉으며 누군가는 의자에 앉고 다른 누군가는 그대로 벽에 기댔다. 자신들을 쳐다도 보지 않았지만 화랑에게서 건들면 가만 안둔다는 그런 아우라 같은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저 자신들이 겁을 먹어서 그렇게 느낀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서.

" 아, 배고파. 저녁에 뭐 먹을거야? "

" 결국 만드는 건 너니까 네가 먹고 싶은 걸로 해 "

" 그런 대답 나올 줄 알았다. 안그래도 고기감자 레시피 보고 있었으니까 그걸로 하자. 어디보자, 가는 길에 사가야 될 게... "

가방도 없이 폰을 들여다보며 한가롭게 사야될 재료를 훑어보는 화랑과 그런 그의 옆에 나란히 걷고 있던 진의 앞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며칠 전 화랑에게 시비를 걸어 복날의 개 패듯이 맞았던 다른 학교의 불량배들이었다. 아이고, 덜 맞았나보네. 손에 쇠파이프나 야구방망이 등을 들고 있는 불량배들이 하나둘도 아닌 10명 이상인데도 화랑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음... 화랑이 폰을 들어 빠르게 타이핑을 치더니 그대로 진에게 폰을 던지듯 건냈다. 그 폰을 가볍게 받은 진이 화면을 보자 적혀있는 건.

" 이거... 오늘 저녁 재료야? "

" 그래, 너 폰 없잖아. 어쩔 수 없이 내 폰 줘야지 "

" 어... 잠시만 "

진이 가방에서 작은 메모장과 펜을 꺼내 빠르게 옮겨적고는 다시 폰을 화랑에게 건냈다. 누가 범생이 아니랄까봐. 너무 늦지마, 화랑. 오히려 너무 빨라서 마트에서 마주 칠걸? 그 말에 웃은 진이 미련없이 자신을 두고 가버리자 그제서야 화랑이 웃으며 무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셔지지 않는 장난감으로 낙점해주마! 그리고 화랑의 말대로 카트를 끌고 장을 보던 진은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이 고른 재료를 보며 마치 주부처럼 잔소리를 퍼붓는 - 상처 있는지 좀 보고 사라고. 맨날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넣지 말고 - 화랑의 모습에 그저 빙그레 웃어버렸다.

그리고 사건은 이틀 후 벌어졌다. 방과 후 교실에서 오늘도 학생회 회의에 간 진을 기다리던 화랑은 오늘따라 더 늦는다고 생각하며 또 데리러 가야하나 싶어 반쯤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우당탕탕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화랑의 기억 속에는 없는 그 학생은 반쯤 일어난 화랑을 보더니 무섭지도 않은 건지 후다닥 다가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 크, 큰일 났어! 회장이...! "

" 회장? 진 말이야? 진이 왜? "

" 잠시 살게 있어서 학교 밖 편의점에 같이 다녀오는 길에 회장이 불량배들한테 잡혀서... "

그 학생, 그러니까 부회장의 말은 이러했다. 잠시 살게 있어 편의점에 다녀오던 두 사람 중 진에게 볼일이 있다면 다가온 다른 학교의 불량배들의 뒤를 진이 순순히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화랑한테 금방 올거라고 전해줘. 뭔가 위험한 상황임에도 진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관계없는 부회장은 학교로 돌려보냈고 부회장은 진을 구하기 위해 무서움도 이기고 화랑에게 달려온 것이었다. 흐음, 저번에 그 녀석들인가. 하여간에 그냥 얌전히 끝났으면 교실로 올것이지, 왜 편의점은 가가지고... 하여간에 그 녀석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할 줄을 몰라요, 몰라. 조금의 다급함도 없이 구하러 갈 생각은 안하고 도로 자리에 앉는 화랑을 본 부회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너, 회장의 친구라면서 왜 구할 생각을 안하는거야! 너 때문에 회장이... "

" 그래, 난 진의 친구지. 그래서 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 그러니 적어도 10분 뒤에 갈거야 "

" 왜! "

" 그거야 당연히 "

천천히 화랑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편의점 뒤쪽의 으슥한 골목길. 평상시에도 불량배들이 자주 모여 담배를 피는 곳이기도 했다. 흐음, 흐으음... 작게 휘파람을 부르며 천천히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화랑의 시야에 마치 이정표마냥 기절한 불량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간만에 아주 신났구만, 그 녀석.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침내 화랑이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 길이 막힌 골목의 끝에 도달한 순간. 그 좁은 골목의 끝에 마치 전위 예술 마냥 널부러져있는 불량배들과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진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 간만에 충분히 즐긴 것 같네, 진 "

" 아, 화랑 "

" 하여간에 지는 좋은 역활 다 가져가고 나만 맨날 악역이지 "

개운해 보이는 얼굴에 혀를 차자 천천히 다가온 진의 얼굴에 작은 핏방울을 본 화랑이 대충 소매를 끌어당겨 그 핏방울을 닦아냈다. 역시나 상처 따위는 없었다. 주먹의 피도 이 불량배들의 것이겠지. 그렇게 감추고 싶으면 마무리도 깔끔해야지. 그 말에 진이 가볍게 웃었다. 그 미소는 분명 평상시 학생회장으로서의 진의 미소가 아닌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는 사람의 미소였다. 세간에 알려진 것 처럼 그저 착하고 바른 모습만 있을 것 같은 진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건 그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화랑과 그의 아버지와도 같은 백두산 뿐이었다.

미시마 가에 흐르는 악마의 피. 그 악마의 피가 발현된건 약 3년 전이었다. 그 피로 인해 화랑은 3일간 혼수 상태에 빠질 정도로 크게 다쳤고 그 피로 인해 진과 진심으로 싸워 이기고 그의 친구를 자처할 수 있었다. 진이 화랑을 옆에 두고 있는 건 그가 자신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악마의 피가 폭주할 때 자신을 막아줄 사람이 진에게는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진은 화랑을 그런 용도로 쓰고 싶지 않았다. 미시마 가에 흐르는 악마의 피에, 친구라고 믿었던 자신의 손에 영문도 모르고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지고 사정을 듣고 도망가기는 커녕 그딴 거에 지기 싫다며 강도를 늘려가며 훈련을 한 끝에 자신을 이기고 나서는 널 구할거라고 말하는 화랑이 진에게는 너무나도 빛나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빛을, 가지고 싶다. 옆에 두고 싶다. 검붉은 무언가에 휘감긴 자신보다 빛을 두르고 있는 화랑을 진은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손에 넣기로 했다.

" 본의 아니게 악역 떠맡겨서 미안해 "

" 됐어. 어차피 나 아니면 못하잖아. 미안하면 나중에 갚아 "

자신을 위해,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다고, 자신을 상처입히기 싫다는 이유로 이렇게 가끔 제 악명을 이용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 나쁜 인간 한정 - 악마의 피를 해방하는 진을 알기에 화랑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이 녀석은 착해 빠져서 친구라는 이유로 날 또 다시 다치게 하기 싫어서일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자, 집에나 가자. 배고프네, 오늘은 우동이나 해먹을까? 아무렇지 않게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앞서가는 화랑에 그럴까, 대답하며 뒤를 따라가는 진의 눈에 알게 모르게 검붉은 빛이 멤돌다 사라졌다.


2. 7-3에서 과거편. 화랑이 라스와 알리사를 만나게 된 과정 풀이.

그래, 알았다. 통화를 끊은 라스의 옆에 나란히 걷고 있던 알리사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라스를 바라보았다. 카자마 진입니까? 그래... 알리사, 화랑을 기억하나? 그 말에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레지스탕스의 리더이자 저번 오퍼레이션 라이트닝작전에서 저희를 도와주셨던 분이지만... 진에게 묘한 감정을 지니신 것 같았습니다 "

" 뭐, 그 둘의 관계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여러 감정이 섞여 있으니까. 아니, 지금은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그 화랑이 사라졌다는군 "

" 사건입니까? 설마 G사의 잔당이? "

" 그건 아닌 것 같아. 그의 스승이자 레지스탕스의 정신적 지주 역활인 백두산씨의 반응이 뜨뜻미지근 한걸로 봐선 분명 갑자기 모습을 감춘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해주지 않아 답답하다면서 혹시 모르니 임무 수행 중 흔적이라도 발견하면 연락해 달라더군 "

" 하지만 여기는 페루인데... 한국 사람인 그를 이런 곳에서 발견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

"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

일부 복구가 된 지역에 열린 시장을 지나던 둘의 귀에 들려온 목소리. 헤에, 이거 꽤나 먹을만 하잖아? 익숙한 목소리. 둘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노을빛에 가까운 붉은 머리칼의 남자. 방금 전까지 둘의 이야기 대상이었던 화랑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방을 대충 어깨에 둘러매고 한 손에 음식을 들고 먹으면서 시장을 지나가는 그의 모습에 라스가 알리사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조용히 뒤를 밟자는 뜻에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진짜 예상을 깨시는 분이네요. 이런 곳에서 만날 확률은 분명 1% 미만이었습니다. 알리사의 말에 라스도 일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레귤러라고 표현할 만한 남자지. 예상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어. 오퍼레이션 라이트닝 작전 때 갑자기 난입한 화랑으로 상황이 얼마나 난잡하게 돌아갔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한 라스였다. 흐음. 다 먹은건지 대충 손에 든 봉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놓은 화랑이 잠시 멈춰 제 몸을 살피고 하아, 숨을 깊게 쉬더니 이내.

" 알리사, 쫓는다! "

" 알겠습니다! "

화랑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미행 당하는걸 눈치채고 있었나. 화랑의 갑작스런 돌발행동에 라스와 알리사도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빠르게 주변 지역을 스캔해줘. 몰아넣는다. 라스의 말에 알리사가 빠르게 주변을 스캔하더니 이내 스캔 완료, 작전을 실행합니다. 외치며 제트팩 기관을 꺼내 빠르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너무 거칠까봐 걱정인데. 라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중으로 날아오른 알리사는 그대로 빠르게 화랑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 그를 덮쳤다.

" 간만에 만나는데 너무 거친거 아냐, 알리사? "

" 작전대로 수행 중입니다. 당신을 몰아넣으라고 했습니다 "

" 몰아넣으라는건 어디 막다른 골목 같은 곳으로 들어가게 유도하라는거지, 다짜고짜 덮치라는게 아니잖아! "

공중에서 나타나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알리사에 혀를 찬 화랑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더니 이내 미안! 외치고는 그녀에게 초스카이를 맞춰 공중으로 밀어내고는 다시 한번 더 빠르게 달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힘이 그닥 실리지 않은, 정말 말그대로 자신을 뿌리치기 위한 공격이란 걸 파악한 알리사가 공중에서 호버링을 하며 옷을 툭툭 털었다.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군요. 혼잣말을 중얼거린 알리사의 눈에 화랑이 달리고 있는 방향의 정면에 버젓이 서있는 라스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화랑과 라스가 충돌했다.

" 그래, 왜 없나 했다. 비켜, 라스! "

"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되겠는데. 순순히 돌아갈 생각은? "

" 있었으면 도망도 안쳤거든? 아, 모르겠다. 간만에 붙어보자고! "

그 말과 동시에 화랑과 라스가 싸우기 시작했다. 뿌리치고 도망가려는 화랑과 그를 붙잡으려는 라스의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으려는 순간. 라스의 공격에 땅이 흔들리고 순간 하늘에서 동물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든 둘의 눈에 땅으로 추락 중인 폭신폭신한 무언가가 보였고 먼저 행동한건 상대적으로 추락 위치와 가까이 있던 화랑이었다. 아, 정말! 그대로 몸을 날려 추락하는 무언가를 받아내 바닥을 몇바퀴 구른 화랑이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자 그의 품 안에 있던건.

" 어... 새끼 알파카? 아, 맞다. 여기 페루지... 하아, 정말이지 "

화랑은 제 품 안에서 놀라 우는 새끼 알파카를 보고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자 움직이지 않는 제 왼팔에 눈을 가늘게 떴다. 출혈은 없고 뼈가 부러진... 기미도 없... 는 것 같고. 어깨라도 빠진건가. 하아. 어느새 풀린 제 머리를 대충 멀쩡한 손으로 쓸어올린 화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런 화랑을 보던 라스는 어깨 탈구로 고통을 느끼기는 커녕 너무나도 태연하게 구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라스가 의아함을 느끼던 말던 화랑은 빠진 어깨를 붙잡더니 그대로 움직여 억지로 어깨를 맞춰 끼웠다. 조금의 통증도 아픔도 없다는 듯 구는 기행의 끝은.

" 알리사, 어깨 잘 맞춰진 것 같아? "

" ...어긋난 곳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스스로 하는 것 보다는 병원을 찾는 걸 추천합니다 "

화랑의 외침에 어느새 라스의 곁에 있던 알리사가 저도 모르게 화랑의 상태를 스캔해 그의 처치가 다행스럽게도 완벽했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또 다른 조언을 건냈지만 화랑은 으쓱 어깨를 들어보이다 그대로 양손을 들어올렸다. 졌다, 졌어. 하나면 모르겠는데 둘을 떨치고 도망가는 건 아무래도 힘들겠네. 일단 알리사, 이 녀석 위에다 올려놓고 와. 아주 난리가 났네. 과연 새끼 알파카가 떨어진 고지대가 다른 알파카들의 울음 소리로 시끄러웠다.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알리사가 새끼 알파카를 받아 품에 안고 높게 날아오른 사이 라스가 화랑에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도망다니고 사라진 이유가 현재 몸 상태와 관계가 있나?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뜬 화랑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그 미소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어색하기 짝이없었다.


3. 화랑이 떠나는 악몽을 겪을 때 마다 데빌의 힘에 침식되어 화랑을 붙잡는 진과 그런 진의 머리를 쓰다듬는 화랑으로 진화랑 (모티브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솔직히 정신력은 화랑이 우위일 것 같다. 실제로도 그렇고)

이제 다 끝났으니까... 그만할까나. 지긋지긋한 인연이었으니까 이제 그만 엮이자고. 아, 하긴 지금까지 널 쫓아다닌건 나였지만 말이야. 그럼 잘 있어라, 진. 진은 저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는 화랑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상하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 화랑! 그렇게 외치려고 했지만 말도 나오지 않았다. 움직여. 외쳐. 붙잡아. 가지말라고 소리쳐!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거야? 어째서? 어째서...?

" 그거야 네가 약하기 때문이지 "

진의 뒤에서 검은 무언가가 마치 안개처럼 그를 휘감았다. 애시당초 네가 화랑의 관심을 받게 된 건 너의 강함 덕분이지. 하지만 지금은 어떴지? 너는 그에게 모두 졌지. 순수한 카자마 진도 데빌의 힘에 잠식된 카자마 진도, 그리고 데빌의 힘을 자유롭게 다루게 된 카자마 진도 모두 화랑에게 졌다. 너는 그에게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진거지. 그러니 더 강한 상대를 찾아 떠나는거다. 자신의 마음 속에 직접 때려박는 것 같은 목소리에 진이 이를 악물었다.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화랑은 더 이상 강함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이젠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게 될 정도로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성숙해졌으니까. 하지만 몸과 마음이 상대적으로 많이 약해진 진에게 그 말은 그를 흔들기 충분했다.

" 그래, 하지만 딱 하나 해보지 않은게 있군 "

너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나, 데빌이. 그를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있게 도와주지. 자, 의식을. 넘겨라. 그를 가지게 도와주지. 우리의 먹이감을 남에게 빼앗길 수는 없으니까. 천천히 시야가 어두워져갔다. 안돼, 데빌에게 주도권을 내어줘서는... 하지만 이내 진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가슴이 답답하다. 한창 잠에 빠져있던 화랑은 불쾌한 답답함에 눈은 감은 체 의식을 천천히 각성시켰다. 제 위를 누군가가 점령하고 있었다. 올라탄건 아니지만... 무언가가 제 심장 부근을 지긋이 누르고 있었다. 마치 심장의 박동을 느끼기라도 하듯 강약을 조절하며 누르던 무언가가 천천히 위로 올라와 목에 닿은 순간 화랑은 그것이 사람의 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양손이 화랑의 목을 감싸더니 그대로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숨을 쉬는게 버거울 정도로 목을 조르는가 싶더니 다시 천천히 풀어준다. 그것이 몇번 반복되자 화랑이 아주 살짝 눈을 떴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무언가에 입에서 숨소리 같은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저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 또 다시 데빌의 힘이 폭주했나. 데빌의 의식은 진의 안에서 완전히 소멸했다. 그로인해 오롯이 데빌의 힘만이 남았지만 데빌의 의식이 사라졌어도 그 힘은 가끔씩 진의 내면을 침식하곤 했다. 그리고 그 힘에 내면이 잠식되면 진은 의식이 없는 데빌이 되어 이렇게 화랑을 습격해오는 것이었다. 자신을 공격하거나 상처를 입히지는 않지만 마치 화랑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듯 목을 조르며 호흡을 조절하는 짓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놀라 반항하긴 했지만 자세에서 이미 지고 들어가고 제 손아귀를 벗어나는 짓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가차없이 목을 조르는 손길에 정말 죽음의 고비까지 몇번 들어간 후로는 반항을 포기했다. 얌전히 이 짓을 받아주면 자기 멋대로 만족하고는 제가 깨어나기 전에 - 물론 이미 깨어있긴 하지만 - 스르륵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진을 이미 몆 번은 경험 했으니까. 하지만... 화랑은 조금 궁금했다.

대체 뭐가 불안하고 초조해서 그 힘에 자신의 내면을 빼앗기고 저를 습격하는건지. 이제 모든 게 다 끝났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될텐데. 그 힘에 제 내면이 잠식되었다는 걸 아는지 아침에 깨어나면 부리나케 화랑에게 달려와 목에 남은 손자국을 보며 잔뜩 죄책감에 시달리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진을 보는 화랑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물론 이러다 언젠가 진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근데, 그래도... 지금 내가 이 녀석 곁을 떠나면 나보다 진이 먼저 죽을 것 같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화랑에게는 있었다. 그래서일까, 화랑은 저도 모르게 눈도 뜨지 않은 체 손을 천천히 들었다.

잠든 줄 알았던 화랑이 움직이자 붉은 눈동자가 그 손을 응시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던 그 손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목을 조르는 힘이 점점 더 강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이던 손이 진의 목에 닿았다. 잠시 손 끝으로 더듬던 그 손이 목을 타고 올라와 조심스럽게 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결코 부드럽다고 할 수 없는, 거칠고 딱딱한 손이 어색하지만 진심을 담아 진을 위로하듯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목을 조르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고 이내 목에서 떨어졌다. 대신 그 손이 제 얼굴을 만지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마치 절절한 고백과도 같은 목소리.

" ...가지마, 화랑 "

이 새끼가 지금까지 왜 이러나 했더니 내가 없어질까봐 이런거라고? 아니, 평상시에는 별 말도 안하던 새끼가 갑자기 야밤에 데빌의 힘에 침식되서는 목이나 조르던 이유가 진짜 이거라고? 갑자기 빡치네. 순간 울컥한 화랑이었지만 이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담백한 대답이었다.

" ...알았어 "

담백했지만 오히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걸까, 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그려지고 스르륵 눈이 감긴다 싶더니 그대로 화랑의 위로 무너졌다. 그 무게에 번쩍 눈을 뜬 화랑이 황급히 상체를 일으키니 잠이 든 진이 보였다. 아이고. 한숨과도 같은 탄식이 저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지쳐있었구나, 이 멍청이. 고작 이런 대답에 만족해서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랑의 손이 진의 머리에 닿는다 싶더니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화랑이 밤을 새고 진이 깨어나기 전까지 이어졌다.


4. 10-2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4년 후 화랑을 얻기 위해 사생결단, 골육상쟁의 길을 걷는 두 쌍둥이로 진화랑뎁진. (데비: 몸만 커진 어린 아이가 힘을 얻은 컨셉)

미시마 가에서 쌍둥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후에 태어난 아이에게 데빌의 힘이 깃든다. 데비는 자신이 태어나 말을 하고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때 부터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미시마 가의 불길한 쌍둥이 동생. 데빌의 힘이라. 처음에 데비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난 아무것도 못느끼겠는데? 근데 그 데빌의 힘이 뭐길래 나한테 이래?

진과 데비가 14살 일때 카즈야와 준이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건 딱히 두 사람의 사이가 안좋다는 것이 아니라 데빌의 힘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의 차이로 인한 이혼이었다. 데비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준과 앞으로의 화근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는 카즈야의 의견 차이의 끝은 결국 데비에게서 유일한 아군과도 같았던 진과의 연결고리의 차단이었다. 있잖아, 진. 내 안의 데빌이 뭐길래 우린 이렇게 찢어져야해? 데비의 질문에 진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진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자신이 아는 제 쌍둥이 동생은 분명 평범하기 그지 없는데 오직 데빌의 힘이 깃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제 동생은 진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름부터 물질적인 것, 그리고 애정까지도. 그것만으로도 진은 데비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차가운 집에 동생을 두고 자신만이 어머니와 떠난다니. 미안해, 데비. 진의 말에 데비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건 제 처지에 대한 포기의 웃음인지 아니면 진을 안심시키기 위한 웃음인지 진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 둘은 화랑을 만났다.

첫 만남은 무섭고 시끄럽고 그저 타인이었다. 화랑도 처음엔 불청객으로 둘을 대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것도 그럴만한게 갑자기 백두산이 도장으로 데려와 일주일 간 함께 신세지게 될거라 말하며 화랑에게 둘을 맡겼기 때문이었다. 백두산은 갑자기 불똥이 튀어버린 미시마 가의 일에 신경쓰기도 바빴고 아이의 일은 아이에게 - 그는 제 제자인 화랑을 애 취급하기 일수였다. 사고를 오죽 쳐야지 - 맡기는게 나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처음의 불안한 기색은 어디가고 데비는 그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화랑에게 달라붙었고 진은 조용하지만 예의 바른 성격으로 화랑의 호감을 샀다. 무엇보다 앞뒤 사정을 알게 된 후에도 화랑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둘을 대한 게 결정타였다.

데비는 제 안의 데빌을 알면서도 평범하게 대해주는 화랑에게 전보다 더 달라붙었고 진은 너무 죄책감 같지 말고 지금도 나중에도 동생의 편이 되어주면 되는거 아니냐는 화랑의 말에 자신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게 되었다. 나중에 화랑이 둘에게 해 준 이야기를 알게 된 백두산이 화랑에게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그 답지 않게 성실한 대답이었다. 아이들한테 다 큰 어른들이 뭐하는건지 모르겠다면서. 물론 백두산의 반응은 동의를 뜻하는 웃음이었지만.

이런 화랑에게 쌍둥이들이 동경 같은 감정을 품은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데비는 제 위치로 인해 낯선 사람을 만나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어머니인 준 이후로 자신에게 호의적인 화랑의 존재는 그야말로 신을 만난 것과 다름 없었다. 그에게 가까워지고 싶어 몰래 눈대중으로만 본 풍신류를 연습하다 할아버지인 헤이하치에게 들킨 후 흥미를 느낀 헤이하치에게서 본격적으로 풍신류를 배우기 시작한 데비는 풍신류는 아니지만 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진이 화랑에게 대결을 신청하자 다급하게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마 이때부터 였을거다. 데비가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진에게도 화랑을 빼앗기기 싫다는 감정을 자각한 건. 물론 그건 진도 마찬가지였지만. 하나 간과한 건.

" 데빌은 무언가에 대한 집착심 같은 걸 먹고 사는 것 같아. 그때부터였어. 내가 내 안의 데빌의 힘을 자각한 건. 있잖아, 진. 너에게 난 아직도 너의 쌍둥이 동생이야? 아니면... 눈 앞의 모든 걸 부셔버리려는 악마야? "

진은 이를 악 문체 공중에 떠 자신을 바라보는 데비와 마주했다. 머리에 생긴 뿔과 붉은 눈동자, 등에 돋아난 커다란 날개. 그래, 더 이상 데비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악마, 데빌 그 자체였다. 데빌의 힘을 자각한 데비는 주저없이 그 힘에 제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그대로 그 힘에 먹힐 줄 알았던 데비는 반대로 그 힘을 먹어치우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다. 모든 것은 단 한 명을 손에 넣기 위해서.

" 진. 너는 항상 나한테 미안해했지. 하긴 넌 모든 걸 다가졌으니까. 쌍둥이의 동생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나에게는 주어진건 없었지. 사실... 말은 안했지만 난 그게 진짜 억울했어.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왜 나에겐 그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는건지. 그럴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일 때 죽여주면 좋았을텐데 "

" 데비... "

" 그래도 말이야, 진. 화랑은 이런 모습의 나를 보고도 단번에 나로 알아보더라고! 다른 사람들은 괴물이니 이러면서 도망다니던데. 그때 깨달았어. 화랑이라면 이 상태의 나도 받아줄거라고. 그러니까... "

" 그건 안돼 "

단호한 그 말이 데비의 말을 단박에 자르고 들어왔다. 자신의 말을 자른 진에 잠시 말이 없던 데비가 하하, 작게 웃었다. 항상... 너는 그런 식이지. 나한테 항상 죄책감을 가진다고 말하면서도... 넌 한번도 나에게 무언가를 양보한 적이 없었어. 어째서...? 너는... 너는 모든 것을 가졌잖아! 부모의 애정도, 물질적인 것도, 그 외 모든 것을 다 가졌잖아! 그런 주제에... 내가 원하는 단 하나마저 주지 않을거야? 하하... 그래, 좋아. 그럼 처음으로 너에게, 진에게서 빼앗아줄게. 널 이기고 죽이면 그는 나를 봐주겠지? 그때 말했던대로...

" 화랑은 강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

" 그래서 화랑을 다치게 한거냐? "

그 말에 굳은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데비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화랑이 덤벼들었으니까... 그래도 있지, 진. 내 손에 잡혀 망가진 화랑도... 마음에 드니까. 어떤 형태로든 내 옆에만 있어주면 되니까. 그러니... 너만 없으면 되는거야. 그래, 죽일게. 그 말을 끝으로 데비가 진에게 덤벼들었다. 이곳에서 쌍둥이 형제는 서로가 원하는 한 사람을 얻기 위해 골육상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 아야... 젠장, 드럽게 쳐아프네... "

데비에게 습격을 당해 3일간의 혼수상태 끝에 겨우 의식을 찾은 화랑은 절대로 안된다는 백두산의 감시를 피해 병원을 탈출해 지금 이곳 미시마 가의 사유지인 숲에 와있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이곳에 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것. 진짜 4년 전에 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다니. 진짜... 4년 전으로 돌아가서 내 자신을 한대 패주고 싶네. 후우, 나무를 붙잡고 숨을 천천히 내쉬던 화랑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 안남았다. 그래, 얼마 안남았지. 화랑이 비명을 지르는 몸을 억지로 독려하며 걸었다. 빌어먹을 꼬맹이들... 진. 화랑이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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