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 바람이 멈추지 않기를

여정은 끝났다. 죽을 사람은 죽었고 살 사람은 살았다. 어머니는 무사하고 흡혈귀는 죽였다. 그리고 일본행 비행기에는 나와 영감밖에 타지 않았다.

일본에 도착한 뒤 영감은 나 보고 감정을 막아두지 말라고 했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한 곳에 가둬두면 고이고 고여 썩어버린단다. 아마 카쿄인의 죽음을 안 뒤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걸 지적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그의 죽음이 슬프지 않다.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긍지 높은 그의 희생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죽으면서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기에 우리가 DIO를 죽였고 승리한 것이 아닌가? 오히려 본인으로서는 자랑스러울 것이다.

카쿄인의 유해를 그의 부모에게 전해주면서는 오히려 마음 속에서 분노가 자라났다. 당신들은 그를 한 번도 진정으로 이해한 적이 없으면서 어째서 우리에게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는 거지? 그를 외롭지 않게 한 것은 우리였다. 그들이 아니라.

목숨을 건 모험을 하고 왔다고 해서 일상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수업을 자주 빼먹고, 담배를 피다가, 방과후에는 시비 거는 놈들을 패줬다. 카쿄인의 묘에는 가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의 시쳇조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 처음으로 게임센터에 눈이 갔을 땐 내가 아니라 내 마음 속 카쿄인이 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순순히 들어갔다.

시끄러운 전자음과 번쩍이는 조명, 고함지르는 찌질이들이 짜증났다. 그래도 눈에 익혀두기나 하자 싶어서 쭉 훑어보니 대부분의 게임기는 한 대에 두 쌍의 막대기와 단추들이 있었다. 마치 두 명이 한 대를 같이 플레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눈을 끔뻑이다 우락부락한 캐릭터가 상대를 인정사정 없이 패고 있는 게임기 하나를 골라 작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동전 하나를 넣고 [시작]을 누르자 멋대로 게임이 시작됐다. 화면에서 뭔가 깜빡이는데, 잘 모르겠어서 아무 단추나 눌러보니 캐릭터가 무작위로 정해졌다.

내가 플레이하는 캐릭터는 내가 앉은 쪽에 선 캐릭터겠지. 상대 캐릭터에 비해 몸이 가늘지만 움직임이 빠르고 유연한 캐릭터였다. 단추를 하나씩 눌러보며 원리를 천천히 익히고 상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대가 움직이기 전에 단추를 빠르게 눌러가며 압도했다. 내 캐릭터가 재빨리 발을 놀려 상대 캐릭터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뒀을 땐 잠깐이나마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픽 흘리며 2라운드를 순식간에 끝내고 3라운드가 시작됐다. 이번 라운드는 마지막인 만큼 불리한 쪽이 여기서 이기면 한 쪽이 먼저 2점을 앞서나갈 때까지 계속 라운드가 진행되는 핸디캡이 있었다. 뭐, 조금 불쌍하니까 상대에게도 기회를 한 번 주자고 생각했다. 나는 단추와 막대기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상대 캐릭터가 움직일 것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상대는 무슨 생각인 건지 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포기한 건가?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놈이라니, 자존심도 없는 건⋯⋯.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깨닫고 등허리가 오싹해졌다. 상대는 3라운드 내내, 그러니까 처음에 내가 움직임을 익혀갈 때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거기 서 있었을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상대 플레이어가 없는 게임을 혼자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쿄인처럼. 게임기 화면에선 카쿄인처럼 몸이 가느다란 내 캐릭터가 우승 트로피를 쥐고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는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솟구쳐 게임센터를 박차고 나왔다. 분노? 허망함? 불쾌감? 비슷한 느낌의 이름을 나열해 보았지만 딱 들어맞지 않는 것 같았다. 빠르게 걷다보니 사람 많은 시내에 도착했는데, 여자애들이 날 향해 소리지르거나 남자애들이 날 보고 주눅들거나 하는 모든 것이 짜증났다. 이 감정을 잘 모르겠다는 것도 짜증났다. 누구 하나라도 잡고 패주고 싶었는데 마침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놈이 시비를 걸어와서 원하는대로 코뼈를 부러뜨려 줬다.

목격자도 많은 대로변에서 폭행을 했기 때문에 유치장 신세를 면할 수 없다고 말한 경찰관은 이번에는 어머니 면회도 금지할 거라고 했다. 같은 유치장 안에 있는 놈들은 이미 나를 몇 번 봤기 때문에 날 건드리지도 않았다. 잘됐다. 조용한 곳에서 조금이라도 쉬고 싶었다.

⋯나는 카쿄인을, 그의 고독을 앞으로도 절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게 고독은 흔치 않은 휴식이었고 그에게 고독은⋯⋯. 잘 모르겠다. 그 녀석이 고독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지. 한 번은 그 녀석이 "난 너를 만나기 위해 그동안 외로웠던 걸지도 몰라. 널 만나려면 그만큼의 행운이 필요했던 거지."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땐 가슴이 간질간질했었는데 –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설렘’이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 지금 생각해보니 화가 치밀었다. 내 가족들은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도 나를 만났다. 내 담임 선생이나 같은 반 놈들은 너만큼의 고독을 앓지 않고도 나를 만났을 것이다. 네가 곁에 있었다면 네게 이 말을 해줬을텐데. 네가, 곁에 있었다면⋯⋯.

나는 뼈가 시리도록 외로움을 느꼈다.

너는 죽은 뒤로 나와 마음으로 함께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죽었고, 시신은 묘지에 묻혀 있으며, 오늘 게임센터에 간 것은 네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간 것이었다. 너는 상대 플레이어가 없는 게임을 2라운드까지만 해왔을 것이다. 평생. 그리고 나는 너의 평생의 행운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행운도 앗아갔다. 너는 지금 차가운 땅 속에서, 아니 영혼 없는 신체는 네가 아니다. 너는, 없어졌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그 날 밤 나는 유치장에서 너를 조금이라도 공감해보고자 고독을 곱씹고 곱씹었다. 날이 밝아 어머니가 기다리는 밖으로 나왔을 땐 눈물이 나오기도 했던 것 같다. 앞으로 네가 내 곁에 없는 날이 내가 네 곁에 있던 날보다 많아질 것이다. 나는 50일을 붙잡고, 더는 이 세상에 없는 너에게 계속 묻겠지. 너에게 고독은 어떤 것이었냐고. 내가 정말 너를 ‘이해’한 것이 맞냐고. 너는 나를 사랑했었냐고.

네 유골이 묻힌 묘는 공동묘지였다. 너를 이해한 적도, 만나본 적도 없는 이름모를 타인 여럿과 함께 몸이 묻힌 네가 안쓰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 뼛조각 하나라도 훔쳐올 걸 그랬다. 그제서야 나는 사람들이 죽은 이의 묘를 만드는 이유를 깨달았다. 외로워지면 찾아가서 만질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직 산 사람들을 위한 장소였다, 여기는. 나는 네 이름이 적힌 묘비를 끌어안았다. 시간이 지나면 내 외로움도 파도에 깎이는 바위처럼 작아지겠지. 그러나 나는 지금 네가 살아서 내 파도를 멈춰줬으면 한다. 너는 내 안에서 영원히 바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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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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