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 위성도 별이다 (1)
카쿄인에게 육신의 싹이 심어진 적 없었고 재단 측으로서 죠타로를 서포트했다면 AU
“Whoop whoop pull up! Whoop whoop pull up!”
계기판이 위급한 소리를 내며 극단적인 고도 하강을 알렸다. 조종석 뒤로 승객들의 비명과 승무원이 그들을 안정시키는 소리, 안전벨트를 매라는 알림 소리가 섞여 어지러웠다. 이래서 영감 하고는 낙타도 같이 타면 안 되는 거라고, 과거의 자신을 한 번 탓하고는 조종석 안을 둘러보았다. 조부 죠셉 죠스타, 그의 친구 모하메드 압둘, 그리고 자신, 쿠죠 죠타로. 이 셋 중 그 누구도 떨어지는 비행기를 만화 속 등장인물처럼 들고 날아오를 힘은 없었다. 물론 뒤에서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는 승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기적처럼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는 한⋯⋯.
“죠스타 씨!”
정말 누군가 기적처럼 나타났단 말인가? 그러나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다름아닌 작고 작은 계기판 속이었다. 이 작은 계기판에 우릴 구해줄 요정 대모라도 있을까 하고 계기판을 향해 몸을 앞으로 숙인 순간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죠스타 씨, 비행기 추락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습니다. 뒤에서 따라가고 있던 저희 기체가 앞으로 나와 유도비행을 할테니 가장 가까운 홍콩 국제공항에 비상착륙 하시죠.”
“스피드왜건 재단인가. 헌데 우리가 추락 중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비행기에 타고 있던 죠타로 일행조차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막 깨달은 참이었다. 그런데 밤이라 하늘도 어두운 데다 앞선 비행기의 기류에 영향받지 않기 위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을 재단이 어떻게 죠타로 일행과 비슷한 시기에 추락을 알아차렸을까? 아니, 그들은 추락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대체 누구에게서? 죠셉은 추락 사실을 관제탑에 알리기는커녕 조종간조차 아직 잡지 않았다.
“설명은 나중에 드리죠. 그럼!”
그리고 재단 직원의 말대로 어디선가 비행기 하나가 튀어나와 그들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죠타로는 승무원들에게 승객들의 안전 벨트를 채우고 추락에 대비할 것을 알리게 함과 동시에 죠셉에게 비행기 조종을 맡겼다. 정작 죠셉은 프로펠러기 밖에 다뤄본 적이 없다며 침음을 흘렸지만⋯⋯. 죠타로는 한숨을 쉬며 이 여행의 시작을 떠올렸다.
가문의 선조가 함께 죽음으로써 봉인한 DIO는 그야말로 악의 화신이며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생물이라고 들었다. 그 DIO가 바다에서 나와 부활하였고 결국 죠타로의 어머니인 홀리에게까지 영향이 미쳐 생사를 다투게 되니 홀리의 아버지인 죠셉, 아들인 죠타로, 죠셉의 친우 압둘이 홀리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 것이다. DIO에 대한 단서라고는 그가 이집트에 있다는 것, 단 하나 뿐이었지만 여행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길어봐야 단 50일, 죠타로가 DIO를 죽이거나 홀리가 죽어야만 이 여행이 끝난다. 그렇기에 실패란 용납되지 않는 여정이었고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을 올리기 위해 부끄럽지만 스피드왜건 재단의 도움까지 받기로 했다. 물론 재단은 죠스타 일족을 돕는 것이 그들의 임무 중 하나라며 기꺼이 도움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염치없는 행동이 아니게 된 것은 아니다. DIO가 악한 만큼, 이 여정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며 재단의 무고한 직원들 또한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가벼운 토론 끝에 홀리의 병간호를 재단이 맡기로 할 때쯤 재단은 한 소년을 죠타로 일행에게 소개했다. 교복을 좀 길게 늘이긴 했지만 그 생김새와 행동거지가 단정한 소년으로, 그 시대 남자로서는 특이하게도 구불거리는 붉은 앞머리와 동그란 귀걸이를 매달고 있었다. 이름은 카쿄인 노리아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식으로 재단에 속한 직원으로서 여태껏 해결해온 스탠드 관련 사건들만 10건을 넘어간다고 했다. 그의 나이에 이런 실적은 매우 드문 일이라 눈여겨 보고 있던 재단은 이 여행의 서포트로 카쿄인을 뽑았고 카쿄인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의 능력은 다양한 방면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적을 추적한다든가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고⋯⋯.”
“안 돼. 돌려보내게.”
“예?”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답하는 조부에게 놀라 죠타로도 죠셉을 돌아보았다. 죠셉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죠타로는 제 어미를 구하기 위해 이 여행에 뛰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미성년자가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여행에 뛰어들게 할 수는 없어. 그건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니네.”
“외람된 말씀이지만, 죠스타 씨.”
가만히 어른들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카쿄인이 처음으로 말을 꺼내던 순간, 죠타로는 그의 눈에서 빛을 보았다.
“저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보가 아니에요. 이 여행에서 목숨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또, 저희가 죠스타 씨 일행에 따라붙는다는 걸 적들이 아는 순간 DIO 처치 성공 확률은 더 낮아질 겁니다. 때문에 저희는 죠스타 씨 일행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그저 서포트만 할 계획입니다. 너무 염려치 마세요. 위험한 일은 어른들에게 맡길테니까요.”
“허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과연 죠셉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말을 끝내고 다시 처음처럼 얌전한 모범생으로 돌아간 카쿄인을 보고는 죠타로도 혀를 찼다. 아무래도 대단한 놈이 우리 여행에 따라오는 모양이다.
비상 착륙에 성공했지만 죠타로의 완강한 고집으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떠날 수는 없었다. 압둘 또한 타로 카드를 섞고 몇 장 뽑는가 하더니 비행기는 안 되겠다며 선을 그었다. 죠셉만 복장이 터져 그럼 뭘 타고 갈 거냐고 호통을 치는 상황에 드디어 재단 인원이 상황 설명과 대처를 위해 도착했다. 그들은 다른 승객들에게는 대충 꾸며낸 설명을 - 납득할 만한 보상금과 함께 - 전달했다고 전했다. 죠타로에게 있어서 그런 것쯤은 어찌 되든 좋았다. 그가 궁금해서 잠도 못 이룰 것 같은 일은, 재단이 어떻게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는 걸 아느냐였다. 재단은 그 답 또한 그들에게 제시했다. 카쿄인이 나타난 것이다.
“카쿄인이 뭘 어쨌다는 거지? 일본을 떠나기 전에 들은 설명으로는 텔레파시 능력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물론입니다, 쿠죠 군. 그렇지만 눈치채지 못했나요? 왼손 새끼손가락을 보세요.”
왠지 ‘쿠죠 군’이라는 호칭이 거슬린다고 생각하며 죠타로는 제 손가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카쿄인이 말한 새끼손가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는 게 아닐 것이다. 죠타로가 스타 플래티나를 불러내어 손가락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보자 그 곳에는 아주 미세한 굵기의 녹색 실이 묶여 있었다. 너무 가늘어서 묶인 본인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굵기였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는 눈빛으로 카쿄인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그는 매끄럽게 입을 열었다.
“일본을 떠날 때부터 쿠죠 군의 손가락에 내 스탠드, 하이어로팬트 그린의 촉수를 묶어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뒤로 몇백 미터 떨어진 재단 소속 비행기에서도 쿠죠 군의 신체가 얼마나 높은 고도에 있는지 알 수 있죠. 어느 순간부터 쿠죠 군의 고도가 급격히 떨어져 동료 직원들에게 알렸습니다. 이건 추락일 수밖에 없다고요. 다행히 제 동료들은 제 나이가 어림에도 저의 능력을 믿어주는 분들이었고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겁니다.”
명쾌한 설명에 죠타로 일행은 일제히 감탄했다. 과연 스타 플래티나로 봐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가느다란 촉수라면 비행기의 문틈으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고 적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카쿄인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레이 플라이를 물리친 쿠죠 군도 대단합니다. 스타 플래티나의 빠른 속도와 정확도로 그레이 플라이를 천천히 구석으로 몰아내서 잡아냈죠? 스탠드를 얻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사용이 그렇게 능숙하다니 감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상대를 추켜세우며 이야기의 주제를 돌리는 것까지. 겸손하고 능란하다. 죠타로는 카쿄인 노리아키라는 인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카쿄인은 인사를 하고는 다시 정해진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그가 서포트만 하는 재단 측 인물이 아니라 여행에 같이 참여하는 동료였다면 자연스럽게 대화도 더 할 수 있었을텐데. 죠타로는 하이어로팬트 그린의 촉수가 아직 그와 카쿄인을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할 뿐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흡혈귀 잡이도 식후경이다. 비행기 추락으로 긴장을 놓칠 수 없던 압둘과 죠타로는 죠셉의 제안으로 한 음식점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음식을 주문하려 메뉴판을 볼 때 은발을 높이 세운 한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를 대신해 음식을 같이 주문하고 죠타로가 손가락을 움직여 촉수를 툭툭 당기자 카쿄인 또한 경계하고 있다는 뜻으로 촉수를 툭툭 당겼다. 그 사내가 육신의 싹에 지배당했지만 사실 DIO의 수하에게 여동생을 빼앗긴 피해자란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폴나레프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압둘에게 패배한 뒤 자연스레 동료가 되었다. 하지만 카쿄인은 그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촉수를 계속 퉁명스럽게 툭툭 당겨댔다.
재단이 죠타로 일행의 다음 이동 수단으로 제안한 것은 작은 배였다. 평소에는 고깃배로나 쓰일까 싶은 크기에 죠타로가 혀를 찼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장 시간이 급한데다 크기가 작을수록 적에게 들킬 확률도 적으니까. 홍콩의 항구가 작아져 마침내 보이지 않을 시점에 이르자 그제서야 죠타로는 한숨을 내쉬고 선베드를 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언제 또 이렇게 한가한 시간이 올지 몰랐다. 다만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카쿄인은 어떻게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촉수가 묶인 손가락을 매만지던 죠타로는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요, 쿠죠 군?]
“무슨⋯!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스탠드를 이용하면 남에게 들리지 않고도 대화할 수 있어요. 저도 재단에 입사하기 전까진 몰랐던 사실이지만요.]
“⋯⋯.”
스탠드라는 건 생각보다 유용한 것인가 보았다. 죠타로는 다시 선베드에 누워 정신을 집중시켰다. 보라색 거인이 무표정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새끼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 번 인식한 것을 끝까지 따라가는 성격은 죠타로 자신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스타 플래티나에게 가느다란 촉수를 살짝 붙잡게 하고는 말을 시켜봤다.
[⋯이렇게 하는 건가?]
[학습이 빠르군요.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우시겠어요.]
[그럴 지도.]
[후후, 분명 그럴 겁니다.]
카쿄인의 목소리가 딱 듣기 좋은 정도의 크기로 죠타로의 머릿속에 울려왔다. 죠셉은 폴나레프, 압둘과 함께 어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일광욕에도 질린 죠타로는 심심하니까, 라는 이유로 카쿄인에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지?]
[저 말인가요? ⋯열일곱입니다.]
[나이 차이도 안 나는데 존대인가?]
[어⋯ 그렇지만, 어쨌든 쿠죠 군은 죠스타 일족이고, 저는 그들을 지원하는 스피드왜건에 속한 사람인걸요. 경어를 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내가 싫다. 그 ‘쿠죠 군’이라는 호칭도 집어치우고.]
[아⋯ 음⋯ 어⋯⋯.]
[‘지원’한다는 건 불편함이 없게 한다는 것 아닌가?]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어.]
죠타로가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면 카쿄인이 불만족스러운 소리로 답했다. 이 소년에게 격식과 예의라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사안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격식과 예의라는 벽을 깬 것이 죠타로로서는 꽤 기뻤다. 그들은 이후로도 여러 대화를 나눠가며 서서히 친밀해져 갔다. 폴나레프의 머리 모양에 대해서라든가 압둘의 타로 점, 죠셉의 이상한 말장난 등 찾아보면 이야깃거리는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쉬고 싶은 타이밍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화를 멈추는 것이 편안했다. 카쿄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도쿄와는 거리가 있는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며 선천적인 스탠드사인데다 재단에 입사한 것도 아주 어렸을 적이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깊이 말하는 것을 조금 꺼려 하기에 죠타로는 더 묻지 않았다. 배려라기보다는, 카쿄인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었다. 아무리 그가 죠타로의 서포트라지만 카쿄인의 촉수가 없으면 사정거리가 2m인 스타 플래티나로는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카쿄인에게 닿고 싶어하는 것인지는 죠타로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자신보다는 카쿄인에 대해 더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실 전화기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처럼 킬킬대며 웃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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