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 위성도 별이다 (2)

카쿄인에게 육신의 싹이 심어진 적 없고 재단 소속으로 죠타로를 서포트했다면 AU

망망대해에서도 죠타로 일행은 안심할 수 없었다. 스탠드사는 배를 크게 만들 수도,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뒤따라오던 재단의 도움으로 가출한 소녀 앤과 함께 간신히 오른 육지에서 좀 쉴 수 있나 싶더라니 폴나레프가 홀로 스탠드사에게 당해 온데다 그가 배신자라는 정보까지 염사로 전해져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죠타로가 폴나레프로 변장한 스탠드사를 물리치고 어떻게든 소동이 일단락된 뒤에 죠타로는 한숨을 쉬며 카쿄인에게 말했다.

[지치는군.]

[나는 정말 폴나레프가 배신자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육신의 싹을 제거했다지만 뇌에 아직 세뇌가 남아있을지 어떻게 알아?]

“어이, 다 들리거든?”

[헛…!]

스탠드로 대화하면 주변의 스탠드사에게도 들린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카쿄인은 부끄러웠는지 며칠간은 죠타로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았다. 폴나레프는 누가 말했는지는 알지 못하고 ‘죠타로가 남의 뒷담이나 까고 있다’고 투덜대긴 했지만 얼마 안 가 평소대로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죠타로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여정길은 겨울에도 더운 나라들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겨울이라 이 정도인 거지, 여름에 떠났더라면 참을 수 없이 더웠을 것이다. 이 날씨에 울 100% 교복을 입는 죠타로가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지. 겨우 구한 숙소는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도 꽤 낡아서 에어컨조차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기서 침대에 털썩 눕기라도 했다간 바닥이 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죠타로는 숙소를 나와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 건조한 공기에 슬슬 짜증이 날 때쯤 새끼손가락이 쿡쿡 당겨졌다. 아, 며칠간 소식이 없어 잊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이가 있었다. 카쿄인은 촉수를 당겨 어딘가로 죠타로를 이끄는 듯했다. 죠타로는 순순히 카쿄인을 따라가기로 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지금보다 더 짜증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도착한 곳은 물이 졸졸 흐르는 시냇가였다. 도시에서 꽤 떨어져 걷는다 싶더라니 이런 곳에 개울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죠타로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다리를 물에 퐁당 담궜다. 아찔할 정도로 차가운 물이었지만 온종일 걷느라 뜨겁게 익은 죠타로의 몸에는 기분 좋게 느껴졌다. 카쿄인의 능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 적습도 몇 번 있었다. 그 유용한 능력을 오직 죠타로의 더위를 식혀주겠다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죠타로에게는 썩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디에 있을까. 죠셉이 큰 돈을 제시하고도 변변한 숙소 하나 얻지 못했는데, 카쿄인은 더 나쁜 수준의 숙소에 있지는 않을지, 죠타로는 조금 신경 쓰였다. 그래서였다. 카쿄인에게 오랜만에 말을 건 것은.

[카쿄인.]

[⋯⋯.]

답은 없었지만 촉수가 한 번 쿡 당겨졌다. 죠타로는 카쿄인의 새로운 소통 방법을 알아챘다. 부끄러움이 상당히 오래 가는 녀석이로군.

[너도 더울 것 같은데. 이 쪽으로 오는 게 어때.]

촉수가 두 번 당겨졌다.

[괜찮아. 너도 이 지역을 여행하다 우연히 마주친 걸로 하면 되잖냐.]

한동안 촉수의 움직임이 없기에 죠타로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윽고 도시 쪽 방향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긴 녹색 교복에 붉은 머리칼. 카쿄인이었다. 그는 절대 죠타로 쪽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우연히’ 발견한 것마냥 죠타로에게서 살짝 떨어진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그가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바짓단을 걷어 발을 개울물에 담궜다. 그들은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몸을 식혔다. 잠시 후 죠타로가 입을 열었다.

“스탠드.”

“네, 네?! 아니, 응?”

“하이어로팬트 그린이었지, 네 스탠드 이름.”

“아⋯, 응. 그렇지.”

“녹색 교황이라는 뜻인가.”

“⋯⋯.”

카쿄인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죠타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죠타로가 조금 어색해질 때쯤에야 풋 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왜 웃냐고 물어도 카쿄인은 묵묵부답으로 고개를 저을 뿐 소리없는 웃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과연 조금은 열받은 죠타로, 손으로 한가득 물을 퍼서 카쿄인에게 뿌리자 상대도 물 한 바가지를 뿌려 왔다. 두 소년의 작은 물총 싸움은 이내 서로의 스탠드까지 불러내 상대에게 물을 퍼부어대는 ‘물대포 싸움’이 되었다. 하이어로팬트는 촉수를 말아 대롱처럼 만들고는 물을 힘껏 빨아들여 죠타로에게 쏘아댔다. 그리고 스타 플래티나는 빠른 속도로 수면을 쳐서 거대한 물결이 카쿄인을 덮치도록 만들었다. 웃음소리와 물소리가 끊이질 않던 싸움은 마침내 죠타로가 카쿄인을 물 위로 넘어뜨려 완전히 젖게 만든 뒤에야 끝이 났다. 둘 다 교복의 재킷은 벗어던진지 오래였지만 이렇게 온몸이 젖었으니 에어컨이 없어도 밤까지 시원할 터였다. 여전히 웃음을 실실 흘리면서 죠타로는 마찬가지로 큰 입을 벌려 웃고 있는 카쿄인에게 원하던 답을 캐물었다. 카쿄인이 눈을 이리저리 피했지만 죠타로도 봐줄 생각이 없었던지라 카쿄인의 턱을 잡아 그의 눈을 제게로 맞췄다. 카쿄인은 항복한다는 뜻으로 두 손을 들어올렸다.

“아니, 그냥⋯⋯. 죠타로는 생긴 건 굉장히 거칠게 생겼는데, 하이어로팬트의 뜻을 알고 있는 게 신기해서. 의외로 똑똑하구나 하고⋯⋯.”

카쿄인은 다시 한 번 웃음을 참지 못했고 죠타로 또한 그랬다.


죠타로와 카쿄인은 그 뒤 부쩍 가까워졌다. 죠타로는 시간이 날 때면 촉수가 묶인 손가락을 매만졌고 카쿄인도 촉수를 흔들어 답을 보냈다. 이러다가 적에게 들키면 굉장히 번거로워질 것이라는 자각은 있었지만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유가 날 때뿐, 적습이 시작되거나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등 대부분의 시간에 카쿄인은 철저히 동료에서 배제되어 서포트에만 머물러야 했다.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니고 또 카쿄인 본인이 그런 위치로 이 여행을 시작했다는 것은 알지만 죠타로는 어쩐지 그를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웠다. 그것이 바뀐 것은 얼마 뒤였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죠타로 일행이 식당에 들렀을 때 죠타로는 그만 모두가 있는 앞에서 카쿄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 메뉴는 어떻게 생각하지, 카쿄인?”

촉수가 죠타로의 눈에 보일 정도로 조금 굵어지더니 메뉴판을 훑다가 어떤 글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는 촉수를 이리저리 구부려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물고기로 만든 음식이라는 뜻일테다. 죠타로는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주변이 아주 조용해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고개를 들어 동료들을 보니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죠타로는 카쿄인이 아직 제게 촉수를 묶어두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와 이렇게 대화해 왔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카쿄인도 매우 당황스러워 하며 촉수 끝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어쩌면 그들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죠타로가 해명하려는 찰나,

“그거, 카쿄인이라는 녀석이랑 대화하고 있는 거야?! 대단한데, 촉수가 물고기 모양을 만들었어!”

“의사소통을 하는데 말이 필요 없다니, 꽤 신뢰가 두터워진 모양이군.”

“오-, 마이 갓! 손주 녀석이 친구를 만들다니—! 이 할아비는 기쁘다!”

너도나도 카쿄인과 대화해 보겠다며 앞다투는 바람에 죠타로는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카쿄인은 아직도 당황스러운지 촉수를 이리저리 흔들어 댔지만 솔직히 말해서, 꽤 기뻐 보였다. 그날 밤 모두 한 방에 모여 촉수를 통해 카쿄인과 이야기를 나눴고 모두가 잠들 때가 되어서야 죠타로는 자기 방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뒤 카쿄인은 암묵적으로 죠타로 일행의 한 인원이 되었다. 카쿄인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그 덕에 여행이 다소 쉬워지자 모두에게 카쿄인은 인정받을 수 있었다.

“모두 네 덕분이야. 고마워.”

죠타로는 자기 덕이라기보단 카쿄인을 포용해준 일행 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이 죠타로의 가슴 한 구석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기에 굳이 고쳐주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카쿄인이 모두의 것이 된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동료로 인정받은 뒤 카쿄인의 모습은 누가 봐도 기뻐 보였기에 죠타로는 그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행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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