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 위성도 별이다 (3)
카쿄인에게 육신의 싹이 심어진 적 없고 어쩌고 저쩌고 AU
사막의 낮이 뜨거운 만큼 사막의 밤은 차갑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고작 모포 한 장과 교복 차림으로 버티다 보면 감히 태양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어깨 위의 모포를 더 끌어당기며 죠타로는 작게 욕을 씹었다. 아무리 작은 모닥불이 있다지만 오히려 불을 쬐지 않는 몸이 더 춥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불 위에서 뜨겁게 끓은 우유를 한 모금 들이키고 죠타로는 손가락에 매인 촉수를 흔들었다. 말이라도 좀 해야 추위가 가실 것 같았다.
[카쿄인.]
[아직 안 잤어?]
그러는 본인도 안 자고 있지 않았느냐고 물으려던 걸 멈췄다. 카쿄인은 이 여행의 서포트를 맡았다. 당연히 죠타로 일행보다 늦게 자서, 일찍 일어나야 할 것이다. 죠타로는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답했다.
[불침번이니까.]
[우연이네. 나도 불침번을 맡았거든.]
[춥지 않나?]
[춥긴 해도⋯⋯. 어쩔 수 없잖아.]
죠타로는 스타 플래티나를 불러 손가락의 마찰열로 담뱃불을 당겼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흰 막대 끝이 반짝였다.
[아, 죠타로. 담배는 몸에 안 좋아.]
[⋯⋯.]
[응, 좀 늦은 감이 있긴 한데⋯⋯. 처음에는 너한테 이런 말을 할 만큼 친하지 않았으니까.]
폐 깊은 곳까지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었다. 그러고 보면 이 여행은⋯⋯.
[그러고 보면 이 여행은 참 여러 일이 많았지. 그런 일이 있으리란 걸 알고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나는 죠스타 씨나 압둘 씨, 폴나레프, 이기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나는 같은 스탠드사인 친구가, 아니, 일반인 친구도 없긴 하네.]
생각하던 내용을 그대로 카쿄인이 말하는 것에 조금 놀라며 죠타로가 물었다.
[재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던가?]
[그렇긴 한데, 응. 재단 소속 스탠드사 분들은 좋은 동료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는 아니야.]
[다른 친구는?]
[으음⋯⋯.]
카쿄인은 조금 망설였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카쿄인은 선천적인 스탠드사였다. 그 말인 즉, 그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그와 함께했다는 뜻이고, 어린 시절의 카쿄인은 당연히 스탠드를 지금만큼 잘 제어하지 못했다. 날아다니는 물건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느껴지는 촉감, 아이에게 위험하다 생각해서 높은 곳에 치워놓은 물건을 당연하다는 듯 가지고 놀고 있는 어린 아들. 이런 일을 계속해서 겪은 카쿄인의 부모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음에는 심령학자에게 데려갔으며, 그것도 실패하자 무당이나 절, 성당과 교회를 찾아갔다. 모두 헛수고였고 어린 아이는 이젠 자동차에만 타면 가기 싫다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카쿄인 본인도 힘들었겠지만 그의 부모도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SPW 재단과 계약을 맺었던 병원에서 마침내 카쿄인의 능력을 알아보았고 이 모든 힘든 과정은 끝이 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스탠드사가 더욱 희귀했기에 재단은 카쿄인에게 친구로 붙여줄 또래 스탠드사는커녕, 그의 앞길을 이끌어줄 선배 스탠드사도 구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그의 능력을 부정하지 않는 주변환경 덕에 카쿄인은 바르게 자라났고 그의 부모의 허락 하에 재단에 입사했다. 그의 나이 열셋의 일이었다.
[재단에 발견된 게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스탠드가 무엇인지, 내 친구를 왜 아무도 볼 수 없고, 모두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자랐겠지. 스스로를 부정하며 이 세상에 정을 붙이지 못했을 거야.]
[카쿄인⋯⋯.]
[친구가 없어도 괜찮았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모두 나를 어리고 뛰어난 동료 내지는 꺼림칙한 애 정도로 보긴 했지만 언젠가는 나를 동등한 존재로 봐줄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
[그리고 봐, 널 만났잖아. 그리고 죠스타 씨, 압둘 씨, 폴나레프, 이기도.]
[과연 이기가 널 친구로 생각할지는 모르겠다만.]
[하하! 그것도 그렇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어⋯⋯.]
죠타로는 이 여정동안 그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죠타로 자신이 얼마나 큰 축복처럼 여겨질지도. 감사해야 할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너라고, 네가 바르게 컸기 때문에 재단이 우리에게 너를 붙여줬고, 우리를 만날 수 있었던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잠이, 무거운 눈꺼풀이 그걸 막아서⋯⋯. 죠타로는 다음 날 아침 약하게 살아있던 모닥불과 함께 아침해를 보며 깨어났다.
결전의 때가 다가왔다. 서포트를 맡고 있던 재단 인원은 3분의 2가 사망했다. 이기는 앞발을 잃었고 압둘도 두 손을 잃었다. 쇼크로 사망할 것이 염려되어 압둘과 이기는 긴급히 후방으로 보내졌고 폴나레프와 죠셉, 죠타로만이 카쿄인과 호흡을 맞춰 DIO와 싸우고 있었다. 악을 휘두르는 흡혈귀를 쫓아 여기까지 왔건만 죠타로 일행은 아직 그의 능력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DIO에게 완전히 유리한 판은 아니었다. DIO는 아직 죠타로 일행에게 카쿄인의 협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딱 한 번, 그 점을 이용해 DIO를 산산조각낼 때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상대는 알 수 없는 능력을 남발하며 모든 공격을 피하고 오히려 반격해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틈을 찾아내려고 해도 어떤 능력인지를 모르니 가까이 다가가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DIO의 능력이 무엇인지와 그의 스탠드 사정거리를 알아낼 기회를 얻을 것이냐, 혹은 이대로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면서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릴 것이냐. 전자는 소중한 동료의 목숨이 위험했고 후자는 해가 뜨기까지 너무 오래 남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죠타로의 제안에 따라 두 조로 나눠 협공하기로 한 그들은 죠셉과 죠타로, 폴나레프와 카쿄인으로 나뉘어 DIO의 앞뒤를 맡았다. 카쿄인이 무전기를 통해 죠셉에게 외쳤다.
[죠스타 씨, 제가 공격해 볼까요? 사정거리가 긴 제 스탠드라면 적어도 DIO의 스탠드 사정거리가 어느 정도인지까지는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안 된다. 너의 존재는 우리의 와일드 카드야. 섣불리 네 능력을 드러내선 안 돼. 널 DIO의 전방이 아니라 후방에 둔 것도 그걸 위해서다!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테니 너는 폴나레프와 함께 DIO를 공격할 방법을 알아내도록 해!]
[그렇지만⋯⋯.]
“카쿄인, 죠스타 씨의 말을 따르도록 해. 내가 이런 말하는 건 좀 그렇지만,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성공 확률이 높다는 건 알잖아.”
분하게 입을 다문 카쿄인은 괜히 폴나레프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갑작스런 고통에 폴나레프가 운전하는 오토바이가 좌우로 흔들렸지만 카쿄인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카쿄인이 신경쓰는 것은 DIO보다 앞서고 있는 죠타로였다. 죠타로의 스탠드 사정거리는 2m. 좀 더 사정거리가 긴 죠셉의 도움이 있다지만 도망치면서 DIO와 싸우기에는 적절치 않은 거리였다. 어떻게든, 뒤에서 DIO를 쫓아가는 그가 DIO의 틈을 만들어내야 했다. 어떻게든⋯⋯.
“무슨 짓이야!”
카쿄인이 촉수를 길에 넓게 펼친 뒤 바닥에 무단 투기된 쓰레기를 모아 DIO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경악한 폴나레프가 막아보려 했지만 운전대를 잡은 채로 그를 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계획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이런 때일수록 계획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DIO와 죠타로의 거리가 자꾸 가까워져서, 그를 이대로 잃을 것만 같아서, 카쿄인은 아주 잠깐만이라도 DIO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싶었다. 죠타로는 착하게 살아왔다. 비록 싸움을 좀 하고 무전취식을 하긴 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시절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죠타로에게 토사물보다 못한 녀석 같은 시련이 왜 찾아온단 말인가. 부아가 치민 카쿄인이 찌그러진 콜라 캔을 들어 DIO에게 던지려는 순간, DIO와 카쿄인의 눈이 마주쳤다.
“⋯윽!”
힘이 빠진 양팔에 모은 쓰레기가 도로에 우르르 쏟아졌다. 붉은 눈, 홍옥보다 붉은 눈이, 노려본 것도 아니었다. 카쿄인을 무심하게 쳐다본 순간, 카쿄인은 등골이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로서 본능적인 공포가 카쿄인의 뇌를 장악했다. —괴물, 저 녀석은 괴물이다! 구토감이 치밀어오르고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DIO의 앞에선 단 두 가지 행동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항하든가, 복종하든가. 과연 자신이 DIO에게 저항할 수 있을까? 밤의 제왕에게, 인간이기를 그만둔 괴물에게!
“⋯인, 카쿄인! 정신 차려! 꽉 붙잡으라고!”
“헉!”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도로에 구토를 흩뿌리고 온몸에 힘이 빠져 금방이라도 오토바이에서 떨어질 것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폴나레프가 한 쪽 팔로 카쿄인을 애써 붙잡고 있었지만 무게중심이 흐트러져 오토바이가 비틀거렸다. 카쿄인은 폴나레프의 옆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는, 이런 괴물에게 한 번 정신을 점령당하고도, 저항할 수 있단 말인가? 목숨을 바쳐 긍지를 지키겠노라고 선언할 수 있었단 말인가? 다시 자세를 고쳐잡은 카쿄인이 폴나레프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아니, 바로 지금부터 그를 다시보게 될 것이다. 앞자리에 앉은 폴나레프는 카쿄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 상태가 안 좋다면 지금이라도 내려줄테니 후방으로 빠지라며 그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아아, 그러고보니 여동생이 있었다고 했던가. 다정한 형 같은 그의 배려에 정말 기대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이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부모님이 계신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카쿄인은 대답 대신 폴나레프의 허리에 더 세게 매달렸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후퇴한다면, 죠타로는 어떻게 되지? DIO가 승리한 세상에서 그에게 복종하며 일상의 평안함을 지켜내더라도, 죠타로가 없다면, 안 될 것 같았다. 자신은 안 될 것만 같았다. 카쿄인은 애써 힘을 주어 눈을 크게 떴다. 두려움을 극복하진 못했다. 지금도 DIO가 있는 방향을 보는 것만으로 온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극복하지 못했더라도,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면 된다. 두려움이 삶을 이리저리 휘두르지 못하도록 그것의 목에 목줄을 매어 제어하면 된다. 그리고 카쿄인은 묘수를 하나 떠올렸다.
“딱 한 번이다, DIO. 네가 아직 모르는 내 스탠드 능력을 발휘해 너를 궁지에 몰아넣을 딱 한 번! 나는 그 기회를 지금 쓰도록 하겠다!”
파리 한 마리조차 지나가지 못하도록 빼곡한 결계가 DIO의 반경 20m를 감쌌다. 과연 몇백 년을 살아온 DIO도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지 경직해 있었다. 가장 큰 두려움은 미지에의 공포다. 인간이기를 스스로 그만둔 생물도 바로 1초 앞의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카쿄인은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DIO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촉수 하나를 쓸어보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으응~? 고작 이런 끈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냐? 이런 걸로 날 막을 수 있을 성 싶더냐?”
과연. 카쿄인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바이에 타서 쓰레기를 던졌을 때, 비록 직접적인 피해는 없더라도 상당히 거슬렸을 터인데 카쿄인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혹시 스탠드의 사정거리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그 당시 오토바이와 DIO의 거리 차이를 대략 계산해서 결계를 펼쳤는데, 역시나 DIO는 결계 바깥에 있는 카쿄인의 본체를 공격하지 못했다. 스탠드가 결계 바깥으로 나오질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작 이런 끈’이라고는 하지만 함부로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촉수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자, 이제 사정거리는 대충 알았다. 이제는 능력을 알아낼 차례다. 카쿄인은 팔을 쭉 뻗고 소리쳤다.
“받아라! 반경 20m 에메랄드⋯”
“카쿄인!”
죠타로가 왜 여기에?
“⋯스플래시!”
살면서 꽃집이란 곳에 가본 적이라곤 어렸을 때 심부름 연습을 한다고 멋대로 어머니의 카드를 가져가 꽃 한 바구니를 샀던 때뿐이었다. 그 때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혼냈더라, 그저 웃어주셨더라.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손님, 꽃에 영향이 가니 담배는 바깥에서 피워주시겠어요?”
“⋯아아.”
불도 채 붙이지 못한 담배를 그냥 주머니에 우겨넣었다. 그 녀석이 담배는 몸에 안 좋다고 했었지. 꽃집 직원은 그가 담배를 집어넣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흰 포장에 꽃을 싸기 시작했다. 꽃 값을 지불하고 나오면 하늘이 어두웠다. 곧 비라도 올 것인가. 우산을 챙겨나오지 않았기에 죠타로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젖어서 돌아온 것을 보면 어머니가 슬퍼할테니까. ‘그 죠죠’가 꽃을 들고 가는 것을 누군가가 보았더라면 다음 날 학교의 큰 화제가 되었겠지만 이 곳은 죠타로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도쿄가 아니었다. 죠타로는 그 점만은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을 위한 꽃인데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기는 원치 않았다.
어머니의 병은 완치되었다. 조부와 함께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왔으며 폴나레프와 압둘, 이기도 목숨을 부지하고 저마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DIO의 일기를 불태웠고 시체는 아침 햇볕 속에 산산히 부서졌다. 희생은 있었지만 승리한 전투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죠타로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펴고는 꽃다발을 내밀었다.
“줄게.”
“응? 나한테?”
“너 말고 여기 누가 있지?”
카쿄인은 얼떨떨하게 풍성한 꽃다발을 받아 끌어안았다. 남자가 남자에게 주긴 좀 화려한 색조합이어서 부담스러운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향기만은 좋았다. 붉고 푸른 꽃다발에서 향기를 맡던 카쿄인은 침대 옆 탁자에 꽃다발을 올려놓았다.
“중환자실 탈출 축하한다.”
“탈출이라고 할 것까지야⋯⋯. 뭐, 그만큼 힘들긴 했지만.”
마지막 에메랄드 스플래시 이후 DIO의 더 월드에게 배가 뚫린 카쿄인은 물탱크에 쳐박히기 직전 스타 플래티나가 받아내어 더 큰 충격은 피할 수 있었다. 카쿄인이 온 힘을 짜내 작게 속삭인 더 월드의 비밀은 스타 플래티나의 청력으로 확실히 잡아냈고 죠타로는 이내 시간 정지 능력을 개화해냈다. DIO의 피를 반으로 나누어 카쿄인과 죠셉에게 주입했고 그 결과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용케 막고 있던 상처가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었다. 그래도 중환자실 신세는 면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얼굴 마주보는 건 엄청 오랜만인 것 같네.”
“홍콩 공항에서 본 뒤로 처음이니까.”
“응⋯, 그래서 신기해. 네 얼굴은 이렇게 생겼었지, 하고.”
손가락을 내밀어 죠타로의 얼굴을 더듬던 카쿄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가만히 앉아 손길을 받는 게 개 같다는데, 칭찬인가? 죠타로는 알 수 없었다. 칭찬이 아니더라도 죠타로는 그저 기쁘기만 했다. 아무리 흡혈귀의 피가 잃어버린 장기를 회복시켰다지만 대출혈과 근육 파열, 척추 골절 등은 심각한 피해였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오늘에야말로 카쿄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는 않을지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렇게 앉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의식을 회복해서 죠타로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래, 행복이다, 이 감정은. 상대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순수한 감정. 죠타로는 늦게나마, 혹은 늦지 않게 이 감정을 알아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쿄인 또한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손가락에 매인 촉수 끝으로부터 알 수 있었다.
“죠타로.”
“카쿄인.”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어 말한 단어는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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