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바실레우스
*
“하아…, 하아…….”
여긴 어디지?
계속 쉴틈없이 달리다보니 내가 지금 어디 방향으로, 어떤 곳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일단 뛰고있던 몸을 잠시 멈춰세워 숨을 잠깐 돌렸다. 아, 갈비뼈 아파 죽겠네~~!
- 누구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렇게 뛰어댄거냐?
너 때문이요. 너. 리네. 너.
“… 뭔가 거기에 더 있었다간 내 목숨이 위험해질거 같아서…….”
- 흐음, 그 정도는 알고있었나보네?
“……”
‘이미 거기서 두 번이나 죽었는데 어떻게 모르겠어…?!’
후우.
나는 잠깐동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를 반복하며 불규칙적이였던 호흡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데에 집중했다.
…….
이제 갈비뼈 쪽도 안 아픈거 같고… 이정도면 괜찮아진거 같다.
우선, 내가 지금 어떤 장소에 와있는건지에 대략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려 확인해보았다.
보니까 여기에 사람은 없는거 같은데… 잠깐 모자 좀 벗어도 되겠지?
한 명이라도 눈에 보인다면 다시 재빠르게 쓸 생각으로, 나는 내 시야를 살짝 가리던 후드모자를 뒤로 젖혀서 벗었다.
시야를 살짝 방해하던 후드모자를 벗으니 한층 넓어진 기분이 확 느껴졌다. 이정도면 살짝이 아니라, 아주 많이였던걸까?
‘아… 다리에 힘 풀려…….’
나는 벽으로 추정되는 위치로 향해 풀썩, 등을 기대어 두 다리를 뻗고 앉았다. 마치 몸이 시체가 된 것마냥 흐물흐물해져서 앉을때 힘을 주지않고 맨바닥에 앉게되다보니 엉덩방아도 같이 찧게되버렸다.
아야야—! 아파라!
나는 잠깐의 고통을 뒤로 하고 머리와 몸을 식혔다. 그래! 명상의 시간을 갖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몸을 가만히… 가만히…….
…….
…….
나는 역시 명상 같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 체질이 아닌가보다. 차라리 여기서 자는게 내 몸이 더 건강해질거 같다.
결국 몸이 근질근질해져서 명상은 곧바로 포기하기로 했다.
“—리네.”
- ?
나는 짧게 유령의 이름을 불렀다.
사실 아까부터 묻고싶은게 있었다. 나는 죽여달라고 한적도 없는데 왜 그때, 거기서, 어머님을 죽게 만든건지. 왜 갑자기 거기서 그랬는지. 왜, 하필, 그때?
아까까지 공중에 떠다니던 리네는 내 부름에 땅에 살포시 두 발을 착지하여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 앞으로 거리를 좁혔다.
“…갑자기 왜…….”
- 갑자기 왜 죽였냐고?
“…!”
뭐지? 내가 할 질문은 예상하고 있던건가?!
- 누가봐도 얼굴에 그렇게 쓰여져있더만, 내가 모를거 같다고 생각했나봐? 흠, 오산이네.
“내 얼굴이 그렇게 생각읽기 좋은 얼굴인거야!?”
- 좋은 뜻 아니야 X신아.
“…….”
X신이 뭐지…….
리네는 나를 뚱하게 쳐다보더니 왼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 생각을 해봐. 누가봐도 너를 죽이려는 낌새가 훤히 보이는데, 어떻게 그냥 두냐? 낌새만 보인것도 모자라서 네 찻잔에 독가루까지 뿌려놨더만.
… 뭐야, 그러면 그때 몰라서 가만히 있던게 아니라… 상황파악을 하고있었던거야?
- 이미 죽이려는 의사가 보일때부터 답은 정해져있었어. 뭐, 의사가 없어도 행동에 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거네?”
- 음? 아니?
“…?”
-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였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 괴물이 집으로 초대할때부터.
뭐?
“아, 아니 왜…”
- ? 당연한거 아니야? 어떤 착한 괴물이 누가봐도 수상해보이는 놈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려할까?
“그…건….”
- 그리고 어떤 착한 괴물이 집으로 초대한다는 목적이 고작 네 ‘얼굴’ 하나 본다는 이유일까? 정말 고작 그것만으로? 낯선 이방인 얼굴 하나 보겠다고 처음 보는 수상한 사람을 본인 집으로 초대한다는게 말이되냐? 심지어 애X끼도 가지고 있는 괴물인데?
“… 뭐야. 어떻게 알았어? 분명 귓속말로 하셨을텐데…….”
- 귓속말? 아, 그게 귓속말이셨어?
“뭐?”
리네는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되려 팔짱을 꼈다.
- 누가봐도 거기서 양방향 4m 거리정도까지 들릴 정도로 얘기를 했더만, 너는 그게 귓속말이라고 생각하냐?
“하지만 거기에 어머님이랑 아이 말고는 아무도….”
- 애X끼는 당연히 들었고 니들이 대화하고 있는 사이 주변에 그 마을 괴물X끼들이 몇십명 지나가고 멈춰서 엿듣고를 반복했어. 오히려 너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던거라는 말이야.
“… 하, 하지만 내가 발걸음을 떼기 시작할땐 어머님이랑 아이 밖…”
- 당연한거 아니야? 괴물들도 생각은 해. “아, 여기서 더 듣다간 괜히 의심 삼을수도 있겠구나.”, “눈치 못채게 빨리 자리를 벗어나야겠다.” 라고. 오히려 너보다 더 똑똑하게 행동한단 말이지.
저거 나쁜 말 맞지?
- 그보다, 내가 말을 안해줬던가? 여기 사는 괴물들 대부분 죄다 한명씩 괴상한 능력 가지고 있는거.
“… 아니?”
- 흠, 깜빡했네.
“뭐, 뭐어어어——?! 내가 몇번 죽을 동…, 뻔할때까지 그런 중요한 사실을 말 안해줬단 말이야?!”
- 뭐 어때, 지금까지 잘 살아있잖아? 그것도 사지 하나 빠짐없이 멀쩡하게.
당당하게 한 톨 말더듬없이 이야기를 술술 내뱉던 리네는 투명한 한 발로 내 다리 한 쪽을 툭! 툭! 쳐댔다.
“아야야!”
- 아프냐?
“…?? 아니, 당연한거 아,”
- 그럼 됐네. 사지도 멀쩡하고, 고통도 느낄 수 있고. 신체에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니까 안심해도 되는거 아니야?
…… 그런가?
“… 그럼 어머님은 무슨… 능력을 가지고 계셨던거지? 리네, 알아?”
- 너가 그거까지 알 필요는 없을거 같은데.
어? 왜지? 알아두는 편이 그래도 낫지않나? 혹시나 모르잖아,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나중에 또 만날수도 있는거 아닌가?
- 어차피 이제부터 만날 괴물놈들이 한두명이 아닐텐데. 그 녀석들이 어떤 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파악하면서 다닐건 아니잖아?
“그래도 내 안전을 위해서…….”
- 안전? 그래, 안전을 위해서 그렇다고 치자. 너, 방금 그 괴물이 썼던 능력을 알려주면 나중가서 똑같은, 아니면 비슷한 능력을 가진 괴물을 보고 바로 알아챌 수 있어?
“그…건…… 좀 어려울거 같긴 한…데에….”
- 그게 아니라면 궁금해 할 생각하지마. 애초에 능력을 알아서 뭐하게?
“그러니까 안전,”
- 안전, 안전. 아까부터 그 놈의 안전—. 쯧…. 오히려 모르는 상태로 있는게 너한테 더 안전할거라니까?
리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생각을 해봐. 너가 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표정관리도 못 해.
-그러는 네가 무슨 능력인지 아는 상태에서 오로지 네 안전을 위해 상대방을 탐색한다— 라는 명목으로 표정도 못 숨긴 탓에 상대방이 너가 능력이란거에 대해 안다는 걸 역으로 알아채게 된다면? 그래서 다른 수법으로 너를 죽이면 어떡할려고? 게다가 어떤 괴물은 능력을 바꾸는 능력을 가질수도 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지.
…… 묘하게 설득된다.
- 게다가 그 X끼들이 얼마나 머리를 잘 쓰는데. 짜증나게….
… 들어보니 맞는 말인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그래, 이 이상 알려고 하지말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뭐, 또 이해 안되는거 있어?
“아, 아니. 이해됐어. 음… 그럼… 그냥 모르는 채로 있을래.”
‘일단 내 생존이랑 탈출이 제일 우선이니까….’
그렇다기에는 이미 두번씩이나 죽은 상태인데, 염치없는 소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뭐 어때! 지금이라도 죽지않으면 되는거 아닐까?
- 그래? 그럼 됐어.
리네는 대답을 해준것만으로도 기가 빨렸나본지 어깨가 추욱 늘어진 채로 팔짱을 끼운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하나?
근데 여기에 앉아있다보니 점점 졸려오는 감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엉덩이가 쉽사리 바닥에서 떼어나지지 않았다.
나는 우물쭈물, 리네에게 작은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가면 안되나?”
- 미쳤나보지?
“아아아…….”
- 일어나 이 자식아. 바닥 더 뜨거워지기 전에.
“!!”
나는 뜨거워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 바닥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바닥이 따뜻하더니만! 하마터면 용암바닥에 엉덩이 지지는 상황이 될뻔했네!
- 계속 여기있으면 바닥이 지금보다 더 뜨거워질걸. 얼른 나가는 게 좋을거야.
사람 없어서 좋았는데….
데, 잠만. 내가 사람이 없는 장소를 선호하게 됐다고?
물론 내가 쫓기고 있는 신세이긴 하다만….
‘사람이 없는 걸 나도 모르게 선호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나는 서둘러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쫓기는 신세다보면 무의식적으로 그럴수도 있지! 나쁘게만은 생각하지 말자.
이 세계에서 나가게 된다면 모든게 해결될테니까! 그러면 나도 무의식적으로 사람이 북적북적한 장소를 선호하게 되겠지!
그렇게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발걸음을 걸어나갔다. 물론 내가 가는 방향의 출구 밖엔 어떤 장소가 있고, 어떤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부딪혀봐야되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계속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 그러나,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도 되는걸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질문에 답을 못 정할거 같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오는데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을 하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탈출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 지난 행동들에 죄책감을 가지지않고 긍정적이게 나아가야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사실은 나의 기분을 심해 끝자락까지 끌고갔다.
이렇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왜 나인거지? 도대체 왜 이런 곳에 끌려온건데? 계속 생각해보면 나는 원하지도 않은 결정이였고, 그런 행동들과 상황들 또한 원하지도 않았다고.
게다가 소녀랑 어머님 일도…
‘웁.’
- 음?
소녀만 떠올려도 토가 나올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리스트에 어머님도 추가될거 같다.
조금만 기억을 상기시키려고 해도 내 목까지 족쇄가 채워지는 갑갑함과 떨림이 느껴졌다.
따지고보면 어머님의 일은 내 잘못이 아니다. 아닌데, 아닌데 분명. 왜 이렇게까지 속이 갑갑하지?
나는, 내가 태어나고, 살고 있었던 나의 세계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 좋은 곳으로 가는 상황 이외에는 들어본 적도 없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듣게될 줄도 상상도 못했다. 나는 평생 나에게 있어 죽음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얻게되는 것. 정도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머리에 노이즈가 낀 것마냥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맞나? 더 이상 생각하면 안될거 같은데.
한순간에 기분이 업됐다가 다운될수가 있다니, 이번에 비로소 알게된거 같다.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니까 죄책감이 계속 쌓여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게 되잖아.
‘…….’
그래, 생각을 멈추자. 일단…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는거야!
게다가 정 안되면 [재설정]이라는 선택지도 있으니까…. 기회는 무한대라고.
일단 여기를 나가서… 우선 탐색부터……
- 야. 앞에.
“?”
빡————!!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