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가브리엘
어머님은 내 질문에 당황했는지 멀뚱히 나를 바라만 보시곤, 들고 계시던 찻잔을 탁상 위에 내려놓으면서 이 자리가 정적으로 메꾸어지기 시작했다.
“…… 갑자기,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건가요?”
! 너무 대놓고 물어봤나?!
“그, 그냥…, 궁금해서요…. 어쩌면….”
흘끗.
“살아서…… 나가지 못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디서 살아나가지 못한다는거죠?”
“이…… 집에서요.”
“…… 네?”
“…… 갑자기 이런 의심을 해서 죄송해요.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좀 위험한 일을 겪어왔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어요.”
어머님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묵묵히 들어주더니, 다시 한번 차 한모금을 홀짝, 마셨다. 그리곤 깊게 생각에 빠지신 듯 한참을 마신 찻잔을 향해 시선을 떨구고 계셨다.
나는 그런 어머님에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아이한테 방에서 나오지말라고 한 이유는, ……저를 위한게 아니라, 아이를 위했던건가요?”
심장이 터질것만 같다, 찻잔을 쥐고 있던 두 손이 살짝씩 떨려오기 시작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부턴 어머님이 어떤 행동을 하실지 예측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칫 잘못 말을 내뱉으면 또 죽을지도 모르잖아!
나는 어머님의 반응을 살폈다. 어머님의 시선은 여전히 떨구고 계신 상태였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심장박동이 점층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계속 저러시니까 말을 꺼내시지마자 나를 죽이실거 같잖아. 아, 무서워!!
“……하아.”
어머님은 크게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다시 올려 나에게 말을 건네셨다.
“…… 그렇다면요?”
“…… 그렇군요.”
““……””
말은 꺼내시자마자 죽이진 않았네. 휴.
이제 어떡해야하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재빠르게 도망가야하나?
- 야.
내 옆에 있는 유령이 고요한 정막이 흐름을 깼다. 물론 내쪽에서만.
나는 작은 소리로 유령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왜…?”
- 애 나오는지 좀 잘 지켜봐라.
“뭐?”
갑자기 리네가 나보고 아이가 문 밖에서 나오는지 지켜보라고 말을 건넸다. 왜지?
라고 생각하며 아이의 방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우광쾅쾅⸻!!!!!
내 앞쪽에서 무언가가 쓰러지고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귀 안을 크게 찔렀다.
잠만, 앞쪽?!
‘어머님!!’
나는 급하게 앞쪽으로 다시 재빠르게 시선을 옮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을 확인했다.
- ? 나말고 저쪽 애X끼나 지켜보고 있어.
“끄윽…컥…컥…윽…헉……”
리네의 한 손이, 어머님의 목을 아주 세게 조르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거야 리네?! 이, 일단 먼저 내려놓고…!”
- ? 내가 말했잖아 등신아. 어차피 죽을 놈들이라고, 빨리 보내주려는건데. 이제와서 모른 척해?
“죽을 사람이고 자시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저기 애가 있다고!”
- 그러니까 내가 애X끼 나오는 지 안 나오는지 지켜보라고 했잖아. 내 말 못 들었냐?
그러더니 리네는 허공에 S자를 그리기 시작하고선 후에 허공에 휘저이던 손가락을 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전에 챙겨왔던 식칼이 나와 유령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쥐고있던 식칼을 매섭게 내 앞에 들이내밀었다. 지금 나 찌르려…는 건 아니겠지 파트넌데…….
나는 나에게 식칼을 내미는 리네를 빤히 바라보기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보고 뭘 하라는거야?
도리도리.
일단 우선 어머님부터……!
- 안 가져가? 그럼 내가 한다?
!!!!
내가 한참을 가져가지 않자, 리네는 나에게 들이내밀던 식칼을 다시 제대로 잡아 어머님쪽으로 칼날의 방향을 돌렸다. 지금 뭐하는거야?!
나는 급하게 허둥지둥 옆으로 돌아 어머님쪽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내 옆구리가 탁상에 박았다는 사실도 1초만에 새까맣게 잊혀진 채, 리네가 들고있는 칼을 어떻게든 어머님에게서 떨어트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다.
그리고, 칼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잠만, 얘 유령인데.
수욱⸻.
아, 진짜!! 팔이 통과해버렸잖아!!!
-뭐야. 갑자기 마음 바뀌셨어?
나는 허겁지겁 칼잡이쪽으로 시선을 집중시켜 놓치지않고 한번에 잡을 수 있도록 타이밍을 노렸다.
어머님이 이제 조금씩 의식을 잃어가시는게 눈에 보이자 나는 마음이 더 급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떨어트려야한다!
“어, 그래! 마음 바꿨다! …… 그러니까 우선 카, 칼은 이리 놓고 어머님도 내려놓는게 어떨까?!”
리네는 내 말을 듣더니 나와 어머님을 몇번 번갈아봤다.
- …음.
“……”
지금 고민하는거야?! 저 사이에 어머님 의식 사라지게 생겼네!
- 그래. 그럼 니가 해라.
리네는 고민 끝에 자신이 들고있는 식칼을 내 쪽으로 건넸다. 근데 어머님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은 뗄 생각이 없는거 같은데.
나는 우선 나에게 건네진 식칼을 받았다.
“…… 어머님도 내려놓으시면 안돼?”
- 아, 그래. 내려놔야지.
리네는 어머님의 목을 조르고 있던 손을 내쪽으로 위치를 옮기는가 싶더니 들고있던 손으로 어머님을 내쪽을 향해 뿌리쳤다.
“잠만…!”
내쪽으로 던져진 어머님을 어떻게든 두 손으로 받으려고 했었으나. 잠만, 나 식칼 들고 있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쥐고있는 식칼을 손에서 놓으면 리네가 또 가져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또 곤란한데!
나는 급하게 칼날 방향을 뒤쪽으로 돌려 칼잡이를 다시 잡았다. 그 상태로 나는 식칼을 들고있는 손은 한 손으로 쭉 피고있는 상태로 날라오는 큰 몸을 내 몸 전체로 받아냈다.
“커헉……!”
아주 무거운 쇳덩어리가 내 배를 강하게 내리친 느낌이였다.
나는 겨우 받아낸 어머님을 제 한 손으로 상체를 일으켜 흔들며 깨웠다.
흔들흔들흔들!
제발 일어나주세요…!!
“어머님! 어머님!”
흔들흔들……
“어머님!”
흔들……
“…어머님?”
“……”
흔들.
…… 진짜로?
나는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긴 후 내 앞에 있는 목이 축져진 몸뚱아리의 심장이 위치한 쪽으로 귀를 기댔다. 원래라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야하는데.
…… 하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박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 속. 속 울령거려.
“……웁.”
나는 급하게 헛구역질이 나올뻔한걸 제 한 손으로 입을 가려서 겨우 막아냈다.
……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되지?
너무 순식간이였다. 너무 순식간이여서 지금 어안이 벙벙하다. 갑자기? 이렇게? 나 무슨 짓을 한거야?
- 야. 빨리 떠나자.
“… 뭐, 뭐라고?”
- 이미 그 여자 죽였으니까 빨리 떠나자고.
“… 내, 내가 한다고 했잖,”
- 너 안할거였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았냐?
“…… 그래도 아, 아직 방 안에 애가 있잖아. 어떻게 그래…!”
- 하아……, 그러니까 빨리 떠나자는거잖아 이 새…
리네가 짜증이 섞인 투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하고 있던 중, 어느 한 구석에서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는 급하게 한 손에 쥐고있던 식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어. 얼구……!”
아이가 방문을 열어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내 앞에 축쳐져있는 어머님을 번갈아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이의 표정에서 나오던 화사함이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했다.
“엄마 자는거에요?”
“…아, 그. ……그.”
하…… 어떻게 해야되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되는거지. 지금이라도 아이한테 솔직하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사죄할까?
그래도 아이니까 나를 죽이지는 않겠,
나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하아.”
나 진짜 나쁘다.
어떻게 아이가 나를 죽일건지 안 죽일건지 판단하려고 한건데. 이건 나를 죽인다고 해도 내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잖아….
“…저기요…?”
나는 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고개를 숙였다.
-야. 빨리 떠나자니까? 벙어리야?
“……”
그리고 살금살금. 나한테 다가오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쇼하고 있네 진짜…….
리네는 본인 힘으로 나를 끌어서 데리고 나갈 수 있을텐데 분명, 그런데도 아직까지 나를 직접 데리고 나가기는 커녕 계속 부추기기만 하고 있다.
나는 그런 리네를 잠깐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뭔가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기분도 드는거 같기도 하고.
“… 엄,”
-야. 내가 하는 말 지금부터 따라해.
유령은 못마땅하다는 어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어머니는 잠깐 주무시고 계셔.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인가봐.
“그으, 어머니는 잠깐 주무시고 계셔.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인가봐!”
그러더니 아이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아졌다.
“아! 그렇구나! 갑자기 쓰러진 줄 알고 놀랐잖아요! 전에도 엄마가 이런 적이 있어서…….”
그러나 아이는 곧바로 뭔가 집히는게 있는듯 자신의 엄마를 뚫어지도록 쳐다보았다.
“근데 엄마는 왜 갑자기 바닥에서 자고있는거에요? 침대가 있는데…….”
- 그건,
“내가 침대로 옮겨드리고 올게.”
“네? 저기-”
“어머님 방은 어디셔?”
아이는 갑자기 제 말이 잘리자 의기소침해진듯 쥐 죽은듯이 손가락을 한 방으로 향하며 가리켰다.
“…… 리네, 잠깐만 힘 좀 실어주라.”
나는 옆에 있는 유령에게 소곤소곤, 아이한테 들리지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 …허.
리네는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축 늘어진 제 앞에 있는 몸을 일으켜세워 한쪽 팔을 내 어깨에 겨우 부축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분명히 어깨에 커다란 팔을 들쳐맸는데도 불구하고 한껏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리네가 뒤에서 살짝 들어주고 있구나.
이럴때는 화 안내고 내 말을 들어주네……. 이거 고맙다고 해야하는건가.
나는 리네의 도움을 받으며 쓰러진 몸을 부축한 채 아이가 가리키는 방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중요한 걸 잊은 느낌이…….
“어? 이게 뭐지?”
- …… 아, X발.
아이의 의문 가득한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의문 가득한 목소리를 못 들은척 무시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 축 늘어진 커다란 몸뚱아리를 침대 위에 간신히 눕혔다.
- 야. 이번엔 진짜로 빨리 나가야된다. 또 꾸물거리다가 뒤져, 너.
리네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다급해져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본 광경에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식칼을 발견한 채로.
아이는 내 쪽으로 로봇마냥 천천히, 조금씩,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나와 시선을 맞춘 아이는 마치 범죄 용의자를 바라보는듯한 얼굴이였다. 누가봐도 나를 의심하는 얼굴이잖아!
근데 이번엔 내가 안했는데. 나, 나. 나 진짜 아무것도 안했는데…….
“─응? 왜 그래?”
그래! 당당하게 말하자. 솔직히 따지자면 내가 아니라 리네가…… 한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말씀이지.
물론 의심을 피하간다는 건 어려워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거겠지……?
“… 아. 아, 아니, 에요….”
으아아아아아. 겁 먹지말아줘! 내가 안했다고!!
“아. 아까 일어나면서 떨어트렸나보다! 미안해, 무서웠지?”
“이, …걸로 아무것도 안했…, 어요?”
나는 눈을 꿈벅였다. 아무런 의도도 없었음을 어필하기 위해 잠깐 뚱~ 하게 아이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아. 혹시 내가 저걸로 어머님…한테 나쁜짓을… 했다고 생각하는거야?”
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뭔가 오해가 있는거 같은데?! 그런 나쁜 짓은 절대한 적 없으니까 걱정 마!”
나는 머리를 굴렸다. 어떤 말을 해야지 아이를 단번에 설득시킬 수 있지?
나는 골똘히 머리 속에서 말을 쥐어짜내보았다. ……아!
“영웅은 항상 주변에 악당이 많거든! 그래서 항상 수시로 악당을 물리쳐 줄 도구가 필요하잖아?”
아이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니까 걱정 마! 영웅은 선량한 사람을 해치지 않으니까~”
… 이정도면 되겠지?
물론, 아이는 여전히 나를 의심하는듯 보였다.
“어머님 깨지않게 나는 조용히 나갈게. 고마웠다고 전해줘.”
나는 슬그머니 아이 앞으로 다가가 바로 밑에 떨어져있는 식칼을 주웠다. 김에 무서워하지않도록 아이가 보는 앞에서 칼을 넣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이정도면 되지않을까?
살금살금, 이라기에는 연기지만. 현관문 앞까지 걸어가서 문고리를 잡았다. 아차! 이거 말해야되는데!
“아, 큼큼. 오늘 내 얼굴은 잊어줘. 영웅의 비밀은 알려지면 안되니까, 그래줄 수 있지?”
- …아니 빨리 나가자니까.
아, 깜짝이야!! 속으로 비명을 크게 질러버렸다.
너무 말이 없어서 순간 같이 있다는 사실도 까먹었었네!
옆에 있는 유령 때문에 놀란 와중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 거리는 아이를 확인했다.
뒤로 젖혀있던 고양이후드모자를 다시 둘러써 얼굴 전체를 안 보이게 가린 채로 문고기를 내려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안색을 확인할까, 했지만 그냥 안 보기로 했다. 볼 자격도 없지않을까.
나는 현관문 밖으로 나와 문이 닫혀 잠기는 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 일단 여기를 나가자.’
나는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은 채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일단, 일단 여기를 벗어나자.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자.
사실 마음이 졸였다. 그래서 우선 여기를 나가자라는 생각부터 들게됐다.
어머님이 숨을 쉬지 않는걸 알게 된 아이가 혹여나 나를 쫓아오지않을까. 그런 생각이 내 머리 속을 가득히 채웠다.
채워지고 쌓여갈수록 마음이 조급해져 한시라도 빨리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다.
빨리.
-뭐야. 너 어디로 가게?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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