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네가 서로 죽이는 글

자르반스웨인

모 가챠겜 이벤에 나왔던 대사가 인상깊어서 '너는 나를 원망하나?'라는 키워드로 자르반과 스웨인이 서로 죽이는 글입니다

-자르반시점 경우에는 논컾인데 스웨인시점에선 스웬잘반 주의

-구 스웨인과 리그의 심판 설정 가져옴

자르반->스웨인

목을 움켜쥔 손은 단단하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손아귀를 뿌리쳐보려는 스웨인의 발톱이 박혀있었으나, 그저 얹혀진 상태로 바뀐지 오래였다. 자르반은 그 사실에 연민까지도 느꼈다. 거의 평생동안 자신을 적대해 죽이려는 시도를 마다않은 적에 대한 일종의 경애일 것이다.

후련한가.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데마시아의 걸림돌이자 자신을 공공연히 자르반 4세를 죽일 사람이라고 확언한 자. 그의 목숨이 끊어져가는 상황이다. 분명 기뻐해야 할 일임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엔 창이 박히고 목이 졸려진 채 볼썽사납게 널브러져있는 꼴이라니. 자르반은 흠칫 제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린 시절 궁인의 말을 듣지 않고 가지 말라는 감방을 방문했을 때처럼.

“집어치우지.”

자르반은 눈을 찌푸리며 스웨인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 말이 더 이어지진 않았다. 스웨인이 숨이 끊어질 듯 한 기침을 하며 입에서 피를 토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가쁜-그러나 미약한- 호흡을 내쉬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로움으로 얼굴이 잔뜩 구겨져있었으나, 눈에 품어진 독기만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자르반이 작게 혀를 찼다.

“무엇을?”

“-멍청한 놈.”

“말을 조심하는 것이 좋을거다, 스웨인.”

하, 하고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스웨인의 몸이 약하게 들썩였다. 자르반은 놀라 스웨인을 짓누르는 손에 힘을 가했다.

“아주 기분이 나쁘군. 네놈의 알량한 동정심이. 그대로 목을 비틀어버려라.”

“...다 죽어가는 적에게 쏟기엔 힘이 아깝기 때문이었다.”

“끔찍하도록 속이 보여.”

“언제는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는군.”

눈이 마주치는 것으로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었다. 자르반은 잠시 침묵했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죽여.’ 그런 뜻이리라. 하물며 가장 절친한 친구만큼이나 오래된 악연이다. 그 정도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열 두셋 정도일 때였나. 과거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절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감방. 그곳엔 자신을 석궁으로 겨냥한 불경한 암살자가 갇혀있다고 했다. 어린 왕자에겐 ‘불경’이라는 뜻이 와닿지 않았다. 그 또한 구제해야할 백성이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왕자는 간수들을 따돌리고 가볍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작은 감방 구석에 만신창이가 된 몸을 하고 웅크린 작은 소년의 기억이 선명했다. 그 때가 처음으로 스웨인을 동정한 날이었다. 그리고, 섣부른 동정의 대가로 죽을 때까지 자신을 죽이려들 괴물을 만든 날이었다.

자르반은 과거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눈 앞의 괴물을 바라보았다. 살의와 증오로 가득 찬 붉은 눈이 과거 그 소년의 증거였다. 이제는 끝내야지.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잔악무도한 녹서스의 독재자 스웨인은 여기서 죽는다. 데마시아의 왕자 자르반 라이트실드 4세의 손에.

“원하는 대로 하겠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자비를 베풀어 들어주지. 대답은 하지 않을테지만.”

명백한 비아냥거림이다. 예전이라면 말문이 막혔을 테지만, 숨을 크게 들이켰다 차분히 물었다.

“너는 나를 원망하는가?”

어째서 던졌는지도 알지 못할 질문이다. 마지막까지 멍청한 소리를 해버렸군. 자르반은 수습하려 입을 열었으나, 그것은 스웨인의 말에 가로막혔다.

“원망하지 않는다. 네놈을 죽이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한다.”

힘에 겨운지 잠시 말이 끊어지고 다시 기침소리가 이어졌다. 아까보다 더 격한 기침이었다. 자르반의 얼굴에도 핏덩이가 튀었지만, 그는 그것을 감히 닦아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굳어있었다. 심장에 무거운 바위마냥 내려앉는 대답이었다.

“-네놈을 증오한다. 그런 네놈을 ......지 못한 나도 증오한다. 나는 네녀석을...”

몇 개의 단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진 까닭이었다. 자르반은 눈을 감았다 천천히 떴다. 대답은 충분했다. 약속을 지킬 시간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던 말은 영원히 그의 기억속에 미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언젠가 울적한 날이 온다면 구멍 뚫린 문장에 복잡한 조각 맞추기를 하게 될 일이었다. 스웨인의 눈은 차분히 감겨있었다. 기다리고 있겠지. 창을 움켜쥔 자르반의 팔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창이 움직였는지 스웨인은 약한 신음을 흘렸다.

“그럼, 죽이겠다.”


스웨인->자르반

손 안에 목숨을 쥐고 있는 기분이란 언제나 근사하다. 스웨인은 그런 기분을 자주 느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었고, 때로는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단번에 수백명의 목숨을 끊는 잔인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근사함 이상의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스웨인은 단 한번도 무언가를 죽이는 행위에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직까지는.

스웨인은 자신이 들떠있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거리고 미소를 감추기 어려우며 손가락이 덜덜 떨리는 상태. 남들과 다름없이 자신도 그러하다면 그건 들떠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는 항상 타인의 감정에 비추어 자신의 감정을 알아보아야 했다. 평상시의 무미건조하고 무채색한 삶에선 감정의 끄트머리도 찾아볼 수 없으니, 그것에 익숙해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스웨인이라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격한 감정에 휘둘리고 있노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왕자의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귀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가 생이 끝나기 직전 내놓는 모든 것을 자신이 갖고 싶었다. 그렇기에 스웨인은 숨을 죽이고 땅에 쓰러진 왕자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었다. 동시에 왕자가 죽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그의 생을 붙잡아두고 싶었다. 절대로 고귀한 선심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다. 그저 자르반 4세의 모든 것을 가지려드는 더러운 탐욕의 증거일 뿐이다. 스웨인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그리 하기 위해 이 자리까지 올라섰다. 다시는 누군가의 방해따위 받지 않고, 저 혼자만이 소유할 수 있도록.

소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 했다. 스웨인은 열띤 목소리로 말한다. 상대가 그것을 듣는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듣지 않으면, 그 말을 영혼에 새겨넣을 때까지 팔다리를 찢어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네놈을 가졌다. 어떤 이도 넘보지 못한 네놈의 죽음을, 내가 가질 것이다.”

자르반의 눈이 가늘게 뜨인다. 용맹으로 빛나던 벽안이 흐려져 시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다. 스웨인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발톱으로 자르반의 턱을 움켜쥔다. 정확히는 살에 제 발톱을 박아 넣었다는 묘사가 올바를 것이다. 그리고 강제로 시선을 자신과 맞추어둔다. 찢어진 볼과 턱에서 선혈이 흐른다. 비릿한 피냄새에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충동적으로 피투성이인 자르반에게 입맞춤한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며, 아무도 그것을 감히 손가락질 하지 못한다. 입안에 한껏 머금은 혈향이 기분좋다. 입술을 떼자, 자르반이 숨을 들이킨다.

“-역겨운... 짓을......”

자르반이 이를 드러낸다. 솔직한 경멸의 표정이다. 스웨인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자르반이 그를 바라볼 땐 항상 그런 표정이었다.

“이런 ‘역겨운’ 짓을 당해도 아무도 네놈을 구해주지 않지. 심지어, 그것보다 더한 것을 당해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자르반이 익숙해질 정도로 생명이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스웨인은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살짝 내리깐 채 왕자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따로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다. 방금의 말을 하는 것으로 모든 기운을 쏟은 모양이다. 겨우 그런 말을 하기위해 힘을 쥐어짰다니. 어리석은 일이다. 차라리 반항을 해줬으면 좋으련만.

“네놈을 버리고 도망친 병사와 장수들을 원망하나?”

대답은 이미 알고있었다. 자르반 라이트실드 4세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후퇴명령을 내린건 본인이겠지. 그리고 자신은 멍청하게 적진에 남아서 병사들이 도주할 시간을 벌어주었고. 덕분에 데마시아의 대군과 대다수의 장수들은 성공적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자르반은 자신의 죽음을 고귀한 것이라 여기고 있을테지. 스웨인에겐 쉬운 추측이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은 어떨까.

“너는 나를 원망하는가?”

긴 침묵. 자르반은 대답 대신 헛웃음을 흘린다. 그 헛웃음조차 길지는 않았다. 스웨인은 그에 마주 웃어주었다.

“그래야지. 네놈은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마지막조차 나를 실망시킬 줄 알았는데. 내 소유물 답구나.”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 자르반의 뺨을 쓸어만진다. 상처와 피, 먼지투성이에 잔뜩 부어터진 흉한 모습이다. 수차례 전장에 나선 전사임에도 자르반의 얼굴은 흉터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것은 그의 훌륭한 전투실력과 우수한 왕궁 치료사들의 공이었다. 스웨인은 언젠가 그 잘난 낯짝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생각했다. 잔뜩 자신의 흔적으로 뒤덮인 지금의 얼굴은 그에게 더할나위 없는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정말 어울리는 꼴이지. 그는 왕자의 부서진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도록 왕자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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