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토우] 눈 내리는 날의 생일

2023.12.31 한 해의 마지막 날에 태어난 토우지의 생일 글

On the Road by Erida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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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커튼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남자는 인상을 쓰며 눈을 조금씩 떴다. 점차 햇빛이 눈에 익을 때쯤 되자 몸을 일으켜 세우니 이불이 바스락거리며 마른 소리를 냈다. 이상하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일 텐데 왜 오늘따라 유독 눈이 부실까. 눈은 부신데 왜 옆은 서늘할까.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생각이 점점 많아지더니 평소보다 빠르게 멍했던 눈에 생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깨달은 듯 손으로 목덜미를 매만지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아.. 그 녀석이 없었구만.”

 

매일 아침잠에서 일어날 때면 그놈은 사람을 죽부인으로 아는 건지 자신이 밀어낼 때까지 사람을 껴안고 있다. 더워 땀이 맺혀도 그마저도 좋다며 안으려고 하는 놈에 질려버린 지도 한참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놈이 없다고 허전해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니. 우습기만 했다.

어이없어하며 침대에서 나와 일어난 토우지는 하품을 쩌억- 하고는 배를 긁으며 방문을 열어 나왔다. 방에 없으니 당연히 부엌에서 이상한 요리를 하는 허여멀건 남자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방문을 열었을 때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만이 보였다. 그렇게 시끄럽던 곳이 사람 한 명 없다고 이리 조용해지는 게 신기했다.

 

“대체 얼마나 나불대고 있던 거야 그놈은..”

 

새삼스럽게 그의 수다의 존재가 컸다는 걸 체감한 토우지는 식탁에 웬 종이가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쪽지를 확인해보고는 픽- 웃어 버렸다.

 

[나 잠깐 일 생겨서 잠깐 나갔다 와야해ㅠㅅㅠ

그래도 금방 다녀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3<~!!]

 

“꼭 지 같은걸 그려놨네.”

 

내용을 확인하다 중간중간 그려져 있는 표정 그림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린 토우지는 쪽지를 다시 식탁에 놓고는 냉장고로 향했다. 안에서 물병 하나 꺼내더니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넘겼다. 물을 반 통이나 비우고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놨다. 그러고는 거실로 가 소파에 앉으며 창밖을 잠시 바라봤다. 오랜만에 혼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 마음에 들어 눈을 잠시 감았을 때였다.

 

쾅쾅쾅쾅쾅-!!!!!!

 

천둥이라도 치듯 문을 세차게 치는 소리에 감았던 눈을 다시 크게 뜨고는 소리가 난 곳을 주시했다. 올 사람도 없을 터인데 고죠가 볼일이 있다며 나가자마자 누가 온다? 너무나도 수상한 상황에 기분이 다시금 저기압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토우지는 문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문을 있는 힘껏 열어 재꼈다. 폭풍이 지나가는 것만 같은 거센소리를 내며 문을 열자 아래에서 히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내리니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놀란 건지 눈을 크게 뜨고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분홍 머리 남자가 보였다. 아, 아들놈 친구. 그리고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놀란 건지 같이 눈을 크게 뜬 단발머리 여자애도 서 있었다. 얘도 아들놈 친구. 둘을 가만히 쳐다보다 그 뒤를 보자 제일 앞에 있어야 할 거 같은 아들놈이 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곳이 보였다.

 

“별일이네. 네가 친구들까지 데리고 오고.”

 

말을 건네도 잠시 쳐다보기만 할 뿐 다시 고개를 돌리는 메구미의 모습에 혀를 차며 스쿠나의 그릇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손을 번쩍 들고는 토우지를 향해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경례하는 자세를 취하더니 토우지에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어.. 집들이 겸 놀러왔어요!!”

“우리 집에는 빈손으로는 못 들어오는데?”

“당연히 잔뜩 챙겨왔죠!!”

 

짖꿋게 웃으며 문을 가로막는 토우지의 모습에 유지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각종 포장 봉투와 슈퍼 비닐을 양손으로 들어 보였다. 대충 살펴보니 각종 음식, 음료, 과자 등 먹을거리를 잔뜩 사온 것이 보였다. 그걸 보고 난 후 그제서야 만족한 듯 토우지가 문에서 비켜주자 유지와 노바라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며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왔다. 처음 놀러와 신기한 듯 이곳저곳 둘러보는 모습이 퍽 귀엽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메구미가 말없이 들어오면서 유지가 현관 바닥에 내려놓은 봉투들을 들더니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봉투의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스럭거리며 정리를 시작하자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이 아 맞다-! 하며 부엌으로 들어가 메구미와 함께 정리를 했다. 그 모습을 토우지는 바라보기만 하다 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진짜로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 있어야만 오나요 그냥 온건데요.”

 

토우지의 물음에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메구미가 마저 정리를 하면서 빠르게 답했다. 그에 노바라가 메구미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토우지를 향해 말했다.

 

“아까 이타도리가 말한 것처럼 집들이에요 집들이!”

“여기로 온 지 1년은 넘었다만.”

“그게 중요한가요! 저희가 오늘 집들이를 하러 왔다는 게 중요한거에요!!”

 

그에 가세해 유지도 당당하게 외치며 마지막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는 포장해온 각종 음식들을 식탁에 착착착 나열했다. 식탁에 차려진 진수성찬에 뿌듯한 모습을 보이며 두 사람은 토우지를 향해 외쳤다.

 

“자! 얼른 먹어요!!”

“배고프죠? 저희도 배고파요! 그러니까 얼른 먹어요!”

 

권하는 건지 먹자고 협박하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에 토우지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그래그래- 하며 같이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향해 뻗었다.

 

“잘 먹으마.”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너넨 안 가냐?”

“에에- 벌써 쫓아내시려고 하네!!”

“벌써 8시가 넘었는데.”

 

점심을 먹은 후로 세 사람은 바로 거실을 차지하고는 빌려온 영화를 몇 편이나 보기 시작했다. 추리물 영화로 시작하더니 그 이후로 로맨스 액션 영화를 봤다. 스쿠나의 그릇이 중간에 꺼내든 이상한 표지의 영화는 꺼내자마자 쿠기사키에 의해 바로 저지당했다. 액션 영화가 끝나자 바로 판타지 영화를 꺼내는 모습에 결국 토우지는 이제 그만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모든 장르를 섭렵하려는 거냐.”

“이게 마지막인데!!”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것 치고 가방에는 여전히 아직 보지 않은 영화들이 가득해 보였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밤새 볼 것이란 불안한 예감이 들어 토우지는 얼른 셋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돌아가서 보라는 소리에 유지와 노바라는 토우지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붙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보고 싶어요ㅠㅠㅠ”

“기숙사에는 이만큼 큰 티비가 없단 말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

 

결국 목적은 큰 화면이라는 것이 꽤나 웃겼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여기서 끝날 리도 없고 토우지는 이제 슬슬 쉬고 싶었다. 어린 애들, 특히 두 사람의 재잘거림을 하루종일 들었더니 주령과 싸울 때와는 다른 피곤함을 느꼈다. 사실 그쪽은 피곤하지도 않지..? 재미있을 때도 있고-. 생각이 옆으로 새다 토우지는 정신을 차리고는 세 사람을 내보내려고 했다. 애들이 챙겨온 가방을 들어 각자의 손에 들려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메구미가 소리 없이 새 영화를 틀었다. 그리고 토우지를 향해 몸을 살짝 돌렸다.

 

“이것만 보고 갈게요.”

 

답지 않게 끝까지 보겠다고 고집부리는 아들에 토우지는 당황했다. 그 모습에 유지와 노바라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손에 들려진 가방을 저 멀리 내팽개친 후 메구미까지 끌고 와 다시 소파에 깊숙이 들어가 앉았다.

 

“진짜.. 진짜 이것만 보고 갈게요!! 이거만!!”

 

소파에 앉아 셋이서 팔짱까지 끼운 모습에 토우지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토우지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자 흠칫한 두 사람은 가운데에 메구미를 끼운 채 팔짱을 더욱 견고히 다졌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고는 토우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아.. 진짜 이것만 보고 가야한다.”

 

토우지의 말에 두 사람이 눈을 빛내며 네-!! 하고 외쳤다. 그리고 노바라는 바로 소파 앞의 테이블 위에 놓인 리모콘을 가져가고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유지는 봉투 안에 들어있던 새 과자를 꺼내 토우지의 품에 안겨줬다. 그리고 다시 소파로 들어가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토우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소파 밑에 다시 앉아 영화에 눈을 돌렸다. 메구미는 그런 토우지를 잠시 쳐다보다 본인 또한 영화에 집중했다.

 


 

“그럼 저희 이제 정말 가볼게요!!”

“영화 재미있었죠!?!! 보길 잘했죠?!”

“들어가보겠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정말 만족했다는 듯이 세 사람은 바로 거실을 치우더니 그 후 짐을 들고 인사하며 나갔다. 순식간에 나가버려서 토우지는 정말 손만 흔들었더니 세 사람이 사라져 있었다... 무언가 수상한 꿍꿍이가 있는건가 했지만 세 사람은 정말 밥만 먹고 영화만 보다 갔다. 허참-. 목덜미를 매만지며 토우지는 해만 졌지 아까 낮과 똑같은 풍경의 거실을 바라봤다.

셋이 떠난 후 다시금 조용해진 집에서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던 토우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아까 애들이 사왔던 음료와 과자를 하나씩 가져와 티비 앞에 다시 앉아 채널을 이리저리 옮기기 시작했다. 계속 돌아가던 채널이 멈춘 곳은 어느 한 경마 방송이었다.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한 듯 무한히 달리던 말을 쳐다보더니 아무것도 없는 손가락 사이를 매만졌다.

 

“오랜만에 다시 한번 가볼까.”

 

혼자 중얼거리며 티비를 보다 결승점에 말이 도착할 때쯤 현관문에서 삑삑- 거리는 소리났다. 눈을 그쪽으로 돌리니 문 사이로 익숙한 하얀 머리통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머리칼 사이로 빛나는 푸른 눈이 자신과 마주치자 반달로 접히며 웃는 것이 보였다. 하얀 머리 위로 내린 앉은 하얀 눈을 손으로 털어낸 후 거실로 들어오면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토우지를 향해 외쳤다.

 

“토우지 나 다녀왔어!”

 

인사를 하며 손에 든 상자를 들어 흔드니 토우지도 관심이 생긴 듯 상자를 향해 손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뭐야. 맛있는거냐?”

“엣헴- 무려 한 달 전부터 예약한 케이크란 말이지~!”

 

토우지가 상자에 관심을 가지며 물어보자 뿌듯해진 고죠는 두 손으로 케이크를 들어 보물 취급하며 말해줬다.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이 케이크를 사지도 못했을 것이다. 케이크 비싸던데 인기도 이렇게 많다니.. 다들 돈이 넘쳐나나 봐.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토우지에게 다가가 케이크를 보여줬다.

 

“무슨 케이크를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해?”

“아무래도 연말이다 보니 예약을 안 하면 못 산단 말이지.. 하지만 이 똑똑한 연하 애인은 다 예상하고 예약해놨었지!><”

 

칭찬해달라는 듯 머리통을 눈앞에 들이미는 고죠에 토우지는 어이없어하며 그 하얀 머리를 헤집어댔다. 그러고는 상자를 받아내 안에 든 케이크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봤다.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 위로 탐스럽게 익은 빨간 딸기들이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그 위로 데코레이팅 된 초코와 금빛 가루가 보였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크에 손으로 한입 먹어보려고 하자 고죠가 잽싸게 다시 가져갔다.

 

“이따가!! 정각 지나면 먹어야지!!”

 

케이크를 받자마자 바로 빼앗겨 입술을 살짝 삐죽 내밀던 토우지는 고죠의 손에 넘어간 케이크를 보다 연말이라는 고죠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가만히 소파에 기댄 채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있기에 고죠가 다가가 토우지- 하며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드니 그제 서야 깨달은 듯 토우지는 말을 했다.

 

“아아- 연말이라.. 그래서 걔네가 왔던건가.”

“아니 토우지 그걸 이제 깨달은거야??!”

“뭐 별로 관심이 없으니.”

“내가 작년부터 얼마나 열심히 챙겨줬는데... ㅠㅠ”

“그래봤자 올해가 두 번째야.”

 

토우지의 마지막 말에 흥-! 하며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질이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토우지는 유독 왁자지껄 했던 하루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올해는 애들 때문에 시끄럽게 넘어갔네.”

“내가 토우지 심심하지 말라고 내 제자들 보낸거 잖아~~”

“아아- 네가 보낸 거였냐. 어쩐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올 일이 없는 애들인데 뭔 일인가 했다.”

“히히 그래도 메구미가 아무 말도 없이 바로 간다고 했다구~?”

 

그건 좀 웃기네-. 토우지는 하루종일 뚱한 표정으로 계속 거실에서 자리를 차지하며 나갈 생각을 안 하던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나름 아들 노릇은 하겠다는 건가. 어울리지 않게 말이야-. 속으로 생각하며 소파에 다시 앉자 고죠도 그 옆에 딱 달라붙으면서 앉았다. 안은 건지 안긴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토우지는 익숙한 듯 가만히 있었다. 자신을 내치지 않는 토우지에 고죠는 기분이 좋아져 홍조를 띄우며 오늘도 여느 때처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번에 다녀온 임무에 대해 끝없이 말하는 고죠의 말을 반쯤 흘려듣던 토우지는 귀를 한 번 후벼 파더니 고개를 다시 티비를 향해 돌렸다. 그에 고죠 또한 티비를 잠시 쳐다봤다가 눈을 크게 뜨더니 시계를 바라봤다. 11시 59분. 그리고 초침은 막 20초를 지나가고 있었다.

 

30초..

 

40초..

 

50초..

 

55초.. 56초..

 

57초..... 58초.... . 59초...

 

.. 60초!!

 

시계 바늘이 딸각- 소리를 내며 정각에 도달했다. 그걸 보자마자 고죠가 고개를 토우지를 향해 돌리고는 환하게 웃었다.

 

“토우지 생일 축하해!!”

 

그 모습에 토우지가 피식 웃으며 오냐-라고 말했다.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를 하며 고죠는 방으로 호다닥 달려가면서 여전히 소파에 앉아있는 토우지에게 외쳤다.

 

“잠시만 기다려봐!!”

 

그렇게 방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손 가득 무언갈 들고 온 고죠는 온갖 상자를 토우지 앞에 들이밀었다. 이번에도 선물을 잔뜩 들고 온 고죠의 모습에 토우지는 혀를 차며 질린다는 듯이 쳐다봤다.

 

“짠! 이건 내가 준비한 생일 선물~!”

“또 뭔 커플 케이스 이런거면 치워라.”

“아아니 그런 거랑은 다른 거야!! 이건 힘들게 구한 주구라고! 무려 특급!”

 

특급 주구라는 말에 눈을 빛내며 가까이 와서는 달라며 손을 뻗는 토우지에 고죠는 웃어버렸다. 매사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뭐든 관심 없다는 듯이 굴더니 비싼 주구라는 말에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 마냥 바로 다가오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이걸 실제로 말하면 맞겠지? 고죠는 속으로 생각하며 웃으면서 주구가 들어있는 상자를 토우지한테 건넸다. 상자를 바로 받아가 주구를 꺼낸 토우지는 만족스럽다는 듯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가볍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차가운 바람과 살벌한 기운이 거실을 채우는 것이 느껴진 고죠는 재빨리 다른 상자들도 꺼내 본인이 열기 시작했다.

 

“또 준비한 게 잔뜩 있지! 커플 만년필! 이거 나나미가 추천 해준거야! 이쁘지! 토우지꺼는 파란색이고 내 것도 파란색이야!>< 그리고 커플 향수! 이건 두 개가 세트래~ 같이 쓰면 너어어무 좋을 거 같아. 그리고 이건 커플 타월! 자수가 귀엽지? 그리고 이건 커플 슬리퍼! 요즘 신고 있는 거 좀 많이 닳은 거 같아서 새로 사왔어! 그리고 이건 내가 직접 주문제작 넣은 커플 머그컵, 이것도 내가 직접 주문 넣은 커플 키링, 새해 맞아 잠옷도 바꾸면 좋을 거 같아서 커플 잠옷도 샀어! 그리고 커플 운동화, 커플 시계! 시계도 나나미한테 추천받았어! 제일 비싸고 좋은 거래! 그리고 커플 커플 커플 커플 커플커플 ㅋㅍㅋㅍㅋㅍㅋㅍㅋㅍ...... .. .. . ..............”

 

끝없이 나오는 커플 용품에 토우지는 다시금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다르긴 뭐가 달라 이게 커플 케이스랑 뭐가 다르냔 말이야-. 처음 받은 주구를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참을 인 자를 3개쯤 새기다 결국 폭발하기 직전 낌새를 눈치챈 고죠가 토우지의 머리 위로 무언갈 씌웠다. 갑자기 새하얀 것이 눈에 보이자 멈칫한 토우지는 이리저리 만져지는 손길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죠가 하는 대로 따라줬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구멍 사이로 빼고 난 후 토우지는 자신이 처음 보는 하얀 니트를 입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고죠를 쳐다보니 자신을 향해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건~~ 커플 니트~!!!”

 

그 말에 그동안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고죠의 옷이 본인과 같은 니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 무늬도 없지만 고급스럽게 짜여진 하얀 니트였다. 이미 입혀진 거라 그런지 생각 없이 살펴보고 있으니 고죠가 기쁜 표정으로 토우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토우지라니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오늘 내 생일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러고는 상자에서 마지막 선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또 무언갈 꺼내려고 하는 고죠의 모습에 기겁하며 토우지가 작작 꺼내라고 뭐라고 하려고 할 때쯤 상자에서 큰 리본을 꺼내더니 순식간에 자기 머리 위로 리본을 묶었다. 자기 머리보다 큰 리본을 다 묶은 후 토우지를 향해 양팔을 벌리며 외쳤다.

 

“짜잔! 마지막 선물은 나랍니다~! 미모의 세계 최강 연하 남친!! 고죠 사토루~!!”

 

당당하게 자신이 선물이라며 외치는 고죠의 모습에 토우지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쳐다봤다. 그래 맞다. 세계최강. 육안과 무하한의 주술을 둘 다 가진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최강의 주술사. 그게 바로 본인의 눈앞에 있는 고죠 사토루이다. 그런 인간이 자기 앞에서는 리본을 묶어가며 애교를 부리고 있는데 누가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을까. 토우지는 의외로 마음에 든 듯 계속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안아달라는 듯 양팔을 벌린 채 계속 자기를 향해 방긋방긋 웃고 있는 고죠의 모습에 한 번 웃고는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한 대 맞을 각오도 했건만 의외로 좋아하는 듯한 토우지의 모습에 고죠는 기분이 좋다가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 거렸다. 분명 좋아하는 거 같긴 한데 왜 보고 있기만 하지? 애교를 더 부려야 하나? 더 방긋방긋 웃으며, 토우지 생일 선물은 나라니까 나나-!! 하면서 팔을 더 크게 벌려봐도 그 모습에 한 번 더 웃기만 하고 여전히 요지부동인 토우지에 결국 에잇-! 하며 고죠가 직접 토우지에게 달려가서 안겼다.

뒤에 있는 소파로 밀면서 안기자 토우지는 소파에 앉은 채, 고죠는 바닥에 무릎이 닿은 채 토우지의 다리 사이로 몸을 끼워 넣으며 얼굴을 가슴 사이에 묻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토우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크게 묶은 리본이 토우지의 목을 간지럽혔다. 간지러움에 토우지가 고개를 위로 들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자 고죠도 몸을 들더니 더욱 가까이 밀착시켰다. 결국 리본을 피할 수 없어 토우지는 고죠를 손으로 살짝 밀어내려고 했다.

 

“리본 때문에 간지러우니까 좀 비켜 읍-”

 

토우지는 고죠를 밀며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손을 가져다 대자마자 고죠는 그 손을 마주 잡고 남은 한 손으로는 토우지의 얼굴을 감쌌다. 얼굴에 느껴지는 온기에 토우지가 멈칫하자 고죠는 웃으며 몸을 더 들어 올려 두 얼굴을 마주해 겹쳤다. 자연스럽게 두 입술이 맞닿았다. 그렇게 몇 분간 닿은 입술이 떨어지자 입매 사이로 뜨거운 숨이 내뱉어졌다. 어느새 티비가 꺼진 채 집 안에서는 두 사람의 소리만 들렸다. 작은 움직임도 조용한 거실에서는 크게 들렸다. 밖에서는 조용히 눈만이 내렸다. 세상에 둘만이 존재한 기분에 토우지는 결국 양 손을 들어 고죠의 목을 감쌌다. 목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고죠는 입이 닿은 채로 푸스스 웃었다. 그렇게 또 몇 분간 입을 계속 맞춘 후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그에 아쉬웠지만 지금 당장만 시간은 아니니까- 하며 고죠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토우지를 바라봤다.

 

“토우지 케이크 조금이라도 먹을래?”

“아니 지금 선물 맛보다 기운 다 빠질 거 같으니까 일어나서 먹을란다.”

“꺄아 토우지 변태!!”

 

손으로 몸을 감싸며 변태라고 말하지만 기분이 좋은 듯 고죠는 날아가듯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토우지는 웃으면서 따라 들어가려 했다. 그때 토우지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전화는 아닌지 짧게 몇 번 울리고는 멈췄다. 토우지가 다가가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자 하핫-! 하고 짧게 웃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번호는 후시구로한테 물어봐서 얻었어요!! -추신 이타도리 유지 입니다!]

[생일 축하 드립니다~~~ - 아까 놀러온 미모의 여성]

[생일 축하드려요.. by 메구미]

 

마지막에 보낸 아들의 메시지에 토우지는 계속 핸드폰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듯 계속 소리내며 웃어댔다. 그 소리에 고죠가 무슨 일이냐며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토우지의 핸드폰을 바라보자 고죠 또한 가볍게 웃었다. 메구미찡 오늘 아들 노릇 제대로 했네!

 

“그래도 축하는 내가 제일 먼저 한 거야!! 까먹으면 안돼! 처음도 내가 해줄거고 마지막도 내가 해줄거야! 토우지 생일 축하해~~>

“참나- 그래 고맙다.”

 

문자 메시지에 웃다가도 자신에게 다시금 엉겨 붙어오는 고죠의 머리통을 쓰다듬어댔다. 그에 만족한 듯 고죠는 떨어지더니 그럼 얼른 들어와! 라고 말하더니 먼저 방으로 다시 쏙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토우지는 문자를 한 번 더 보고는 내려놨다. 그리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이번 생일은 나쁘지 않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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