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심장
율아 씨는 불쾌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결혼전문회사 이음입니다. 율아 씨는 35세의 회사원이었다. 중소기업 대리였다. 결혼은 아직 안 한 상태였다. 할 생각도 없었다. 자신의 개인정보가 불법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아 됐어요.”
개인정보 탈취범에게까지 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율아 씨는 퉁명스럽게 대꾸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문자 메시지였다. 율아 씨는 문자 메시지를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트집이라도 잡으면 소비자보호원이니 어디니 생각나는 모든 공기관에 연락하여 무분별한 고객 유치를 제제할 수 없냐고 민원을 넣을 생각이었다. 문자 내용은 이러했다. 율아 씨는 결혼전문회사 이음의 신규 회원이었다. 이 말만 해도 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데, 자신과 매칭을 희망하는 남성 분이 있어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한다. 율아 씨는 결혼전문회사 이음에 전화하려다 말았다. 대신 부모님에게 전화했다. 먼저 어머니.
“어머, 자리가 잡혔다니?”
율아 씨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왜 딸을 팔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야!”
“팔아먹다니 말 곱게 쓰지 못해? 너 하자도 없는데 왜 결혼을 못 하는거니? 주변 친구들은 다 했다면서……. 걔들에게 갖다 바친 축의금이 아깝지도 않아?”
“엄마는 무슨 결혼을 축의금……. 됐다 됐어.”
분명 아버지랑 작당하고 그러는 것일 터이다. 부모님이 범인이라는 것을 안 율아 씨는 결혼전문회사 이음에 전화했다.
“여보세요, 정율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네네. 저희 부모님이 저 몰래 이 회사에 가입했어요. 네네. 그래서 탈퇴를 하려고 하는데요.”
하지만 탈퇴는 지금 당장 어렵다고 했다. 율아 씨는 지쳐서 왜냐고 물었다. 이유는 자신과 선을 보려는 남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걸 원치 않는데요. 율아 씨는 알겠다고, 부모님과 다시 말해보고 전화드리겠다고 말했다. 핸드폰 캐이스에 달린 작은 손거울로 눈 밑을 비춰보았다. 왼쪽 눈에 주름이 하나 가있었다. 하나만 갔구나. 마음 같아선 두 개, 아니 열 개는 늘어났을 줄 알았는데. 맞다. 친구들 중 대부분은 결혼했다. 하지만 또 몇몇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원대한 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그래도 날은 맑다. 율아 씨는 청명한 하늘에서 위안을 찾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매캐한 누린내가 콧 속을 찔렀다. 율아 씨는 죽상이 된 채 기침을 토해냈다.
“그러니까, 내가 하기 싫다는데 왜 자꾸 그러느냐고.”
율아 씨는 부모님을 억지로 식탁에 앉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결혼을 해야 사람이 한 단계 크는거에요. 율아야, 네 방에 인형들 다 뭐니. 어린애도 아니고.”
“아빠! 어른이랑 내 인형이 뭔 상관인데?”
“뭔 상관이긴, 그게 바로 철이 덜 들었다는 이야기야.”
“맞아맞아. 여보 말 잘했어. 진짜 어른이 돼야 사회에 더 공헌을 하고 너도 한 발 발전하지 않겠니?”
자기가 만든 자리였지만, 율아 씨는 먼저 자리를 뜨고 싶었다. 뜨다 못해 쾅쾅 발을 구르고 식탁을 뒤엎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을 안 한다고 철이 안 든다는 것이 아니란걸 율아 씨는 보여주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자. 나는 어른이니까, 타협점을 찾는거야.
“그래 알았어. 결혼은 안 하는데, 이번에 잡힌 선 있잖아. 그것만 한번 보고, 결혼회사에 넣은 내 개인정보 싹 지워달라고 할거야. 됐지?”
부모님은 영 성에 안 차는 표정이었지만, 율아 씨가 선을 보겠단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일단은 거기에 만족하려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했다. 아버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양반 표정을 보니, 선을 본 율아 씨가 남자가 마음에 든다고 하루종일 칭얼거리다 그 남자와 손을 잡고 뽀뽀를 하고 결혼을 해서 손주 두 명을 안겼다. 율아 씨는 고개를 젓고 일어났다.
“이걸로 된거다? 나중에 딴 말 하기 없어!”
율아 씨는 방으로 들어가려다 부모님 앞에서 결혼전문회사 이음에 전화했다. 몇 번 신호음이 가고, 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반겼다.
“정율아라고 하는데요, 네네. 선을 보기로 했……. 아. 선이 아니라 주선만남이요. 아니, 그건 됐고, 이번에 그 남자랑 만나면 회사에서 탈퇴하게요. 네네. 제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회원가입이었어요. 아, 네. 네?”
율아 씨는 핸드폰을 쾅 내려놓고 스피커 폰으로 돌렸다.
“여보세요?”
직원이 놀라서 율아 씨를 찾았다.
“네, 여보세요. 아까 하셨던 말 다시 한번 들려주시겠어요?”
“네……. 주선만남 3회권으로 가입하셨기 때문에, 1회라도 만남을 가지게 되신다면 회원권은 환불이 어려우세요. 상품의 3분의 1을 썼기 때문에요.”
“어우, 25만원 썼는데 좀 아깝긴 하네.”
“25만원?”
율아 씨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았다. 직원을 가운데 두고 부끄럽게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야 회원권 25만원은 날리는 것으로 하고, 주선만남이 끝나자마자 탈퇴하는 것으로 말을 끝냈다.
“그럼 주선만남 1회 이후 전화를 주시면, 저희가 프로필을 내려드리겠습니다. 그 때 탈퇴하시면 되세요.”
“네, 네네. 제발요. 네. 끊겠습니다.”
직원이 감사하고 좋은 하루 되라는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율아 씨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25만원을 이딴 곳에 쓸 것이면 자기한테 좋은 데 쓰라고 주던가, 고급 식당에서 밥을 사주던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율아야, 우리 옷이나 사러 갈까? 선자리 가는데 입을 것 말이야.”
“그거 사주기 전에 내 양말이나 좀 사줘.”
“양말이 지금 중요하니? 선자리 가는데 점잖게 해야지!”
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다. 아무래도 이번 한 번으로 25만원을 알뜰살뜰히 써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답니다. 율아 씨는 어깨를 으쓱했다.
율아 씨가 일어난 것은 새벽 3시, 견딜 수 없이 지독한 누린내가 나서였다. 안방에서 부모님이 율아 씨의 결혼에 대해 몽실몽실한 꿈을 꾸고 있었고, 율아 씨는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토악질을 했다. 잠귀가 밝은 어머니가 깨 문을 벌컥 열었다.
“얘! 어디 아파?”
“엄마…….”
율아 씨가 울상으로 말했다.
“뭐 썩는 냄새 나지 않아?”
물론 집에 고기가 있긴 했다. 그러나 다 냉장고에 들어가있었다. 어머니는 율아 씨를 위해 냉장고에 있는 멀쩡한 고기들을 꺼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삼겹살, 차돌박이, 불고기……. 율아 씨는 오히려 냄새가 더 난다고 울먹였다. 어머니는 혹시 몰라 멸치볶음까지 싹 다 갖다버렸다. 고무장갑을 낀 어머니가 들어왔을 때 율아 씨는 코를 휴지로 막은 채 서럽게 훌쩍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도 딸이 가여운 마음에 고무장갑을 벗을 생각도 안 하고 율아 씨를 부둥켜 안고 같이 훌쩍였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누린내가 났다. 율아 씨는 다음 날 출근을 해야했기에 역겨운 냄새에도 꾹 참고 잠을 잤다. 물론 잘 자지 못했다.
“피곤해 보여, 정 대리.”
부장이 율아 씨를 걱정해줬다. 율아 씨는 반차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어서 감기 기운이라는 핑계를 댔다. 부장은 그래보였기 때문에 반차를 승인해주었다. 율아 씨는 정신과에 갔다.
“이상한 냄새가 나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기 썩는 냄새라고 했다. 너무 역해서 어제는 잠을 잘 수 없었다고. 의사는 차팅을 하더니 몇 개의 병명을 알려주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일단은 이렇게 먹어보고, 다음 주에 봅시다.”
안되면 뇌 MRI를 찍어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건 싫은데. 무엇보다 돈이 많이 깨지지 않는가.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율아 씨는 몰래 약을 먹었다. 몰래 약을 먹을 때 마다 고기 썩는 누린내가 났다. 이제는 친구처럼 정겹기까지 했다. 누린내는 생리혈에서 비린내를 뺀 냄새였다. 갓 나온 생리혈이 아니라 한 6시간 묵은, 자고 일어난 직후의 생리혈에서 나는 냄새 말이다. 그것도 여름에. 율아 씨가 세세하게 냄새를 묘사할 수 있을 때 즈음, 선 날짜가 왔다.
“우리 딸, 파이팅!”
“점잖게만 굴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문 앞까지 나와 응원해주었다. 율아 씨는 그 모습이 애잔했다. 결혼전문회사 이음이 마련해준 공간은 회사 내부에 있는 커다란 홀이었다. 내부에 입점한 카페와 음식점에는 선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음식점 3번 테이블. 율아 씨는 남자 한 명만 앉아있는 테이블로 갔다. 남자가 어색하게 일어나 율아 씨에게 인사했다.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남자였다. 율아 씨 보다 나이는 많아 보였다. 5살 정도.
“서른 다섯 살 이시라고요.”
음식을 시키고, 남자가 운을 뗐다.
“중소기업 회사원이시라는데, 하하……. 결혼하고 많이 어려우시지 않으시겠어요?”
방금 두 마디 해놓고 결혼부터 생각하네, 아이고 새끼야 김칫국 그만 마시고 네 머리나 챙기세요 콱!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율아 씨는 얌전하게 하하 웃고 말았다.
“연애는 해보신 적 있나요?”
“예. 세 번 정도인가.”
율아 씨는 또 그 누린내를 맡았다. 냄새의 근원을 찾다가 문득 눈을 들었을 때 율아 씨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 자신을 육우처럼 부위별로 나눠보는 그 눈빛. 골반은 넓고, 가슴은 좀 작고, 연애는 해본 적 있다면 성관계도 했다는 것인가? 율아 씨는 당황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그러했다. 네 팔뚝은 어떤지 보자. 눈은 어떤가? 네 내장이 병들었단 얘길 들었어, 그걸 꺼내봐. 다리가 너무 굵구나.
“이봐요!”
남자가 소리쳤다. 율아 씨는 겁먹은 미소를 지었다.
“이봐요, 웨이터! 음식에 이물질이…….”
남자는 꿍시렁거리며 이것도 상품의 일부인데 이러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환불을 받아야한다고 말했다.
“아........ 환불 받아야죠, 당연히.”
율아 씨는 음식을 살짝 밀었다.
“정율아 씨, 많이 안 좋으신가요?”
남자가 매너있게 물어보았다. 율아 씨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끄덕였다. 남자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만남 뒤 30분 이후는 헤어지는게 가능하다 하니까, 어쩔 수 없네요.”
다행이다. 율아는 환불 대상이 아니다. 율아 씨는 정말 미안하다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나왔다. 밤이 된 길거리에서 율아 씨는 누린내에 시달렸다. 마음 같아선 전봇대를 붙들고 토악질을 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았다. 힐끗 보지도 못했다. 핸드폰 거울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시선이 자꾸 자신을 따라왔다. 두려움에 율아 씨는 뛰기 시작했다. 아니, 뛰려고 했다. 율아 씨는 7cm 굽을 신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율아 씨는 육우였다. 상품화의 틀에 갇혀 고운 마블링을 위해 뛰는 법을 배운 적 없었다. 율아 씨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머니가 체크박스에 해당 사항을 체크하자 율아 씨의 몸이 한꺼풀 벗겨진다. 왼팔이 벗겨나간다. 남자가 클릭하자 그 사람 집으로 배달된다. 이번엔 다리살. 엉덩이. 가슴. 내장. 율아 씨는 엄마를 불러본다.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서 율아 씨에게 말을 한다. 음머. 음머, 음머어-. 커다란 젖소가 율아 씨를 울망한 눈망울로 쳐다본다. 난 그러려는게 아니었어. 하지만 결혼을 해야……. 엄마는 어디로 끌려간다. 젖을 짜이러 가는 것이다. 율아 씨는 뛰어야하는 근육도, 근육을 보조해줄 지방도, 내장도, 뼈도 다 빼앗긴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두려웠다.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살아야 한다는 강한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심장 만은 빼앗길 수 없었다. 왜였을까? 율아 씨는 너덜너덜해진 몸을 애써 모아 둥근 공처럼 변했다. 심장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다. 그 몸은 노상에 버려져 6일은 방치되었고, 7일 째 되는 날 심장에서는 지독한 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코를 휴지로 막은 사람들이 와 둥근 살점을 해체하고 심장을 들어 중학생 해부교실에 납품하기 위해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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