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나무

인골人骨

내가 죽일 수 밖에 없던 사람

나는 꿈에 대해 작성한다. 나는 유골함에 뼈를 담는다. 모르는 여자에게 건넨다. 아이의 유골임이 역력했지만, 모르는 여자는 받아들인다.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오고 말았네.

칼리오페가 로젠을 흔들어 깨웠다. 로젠은 지나칠 정도로 놀라며 잠에서 깼다. 책을 읽다 그대로 잠이 들었나보다. 불편한 소파에서 웅크리고 잠을 잔 터라 어깨가 뻣뻣했다. 이런 일로 고스트를 부르기에는 왠지 부끄러워 어깨를 돌리며 대충 관절을 풀었다. 리오는 로젠에게 사적으로 로젠에게 임무를 의뢰한 자가 있음을 알렸다.

나한테?

로젠은 관심을 보였다. 정확히는, 임무가 아니라 수당에.

얼마 준다고 하듸?

로젠……. 로젠, 아, 당신이 그럴 때 마다 저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리오는 입을 벙긋거리다 포기했다. 대신 로젠이 관심을 보이는 수당에 대해 짧게 보고했다. 오백만 미광체.

솔직히 믿기지는 않습니다.

리오가 감상을 내뱉었다. 로젠도 리오와 같은 심경이었다. 믿기지 않는다. 수호자들이 아무리 미광체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끽해야 오십만 미광체 정도였다. 그것의 열 배가 되는 미광체다. 거금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무시무시한 거금. 이 정도가 되어야 간신히 설명할 수 있을까.

당연히 해야지.

저는 반대합니다.

일단 금액을 확인하고. 리오, 너는 물질적인 것에 큰 관심을 두진 않지만…….

네네, 압니다. 이 사회에서 살면서 물질과 정신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얘기 하려는거죠.

로젠은 리오에게서 의뢰인의 연락처를 받았다. 솔직히, 불안했다. 말도 안 되게 큰 금액을 제시한 것도 불안한데, 연락처는 일회용 채널이었다.

닭 뼈

시체 꿈은 길몽이니까.

새벽제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시체 한 구 옮겨달라는 것 치고 두둑한 금액이기는 했다. 정말로 로젠이 꾼 꿈 때문에 그런 수당이 찾아온 것일까?

뭐, 꿈이나 해석해달라고 찾아온 것은 아닐테고.

맞아. 리오는 그 의뢰 안 받겠대.

나는 받고?

너는……. 너잖아.

로젠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오백만 미광체는 깨끗한 돈이고, 문제없는 것이며, 의뢰인이 막판에 마음을 바꿔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제대로 통장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로젠은 리오에게 말했다.

깨끗하지 않은 의뢰야. 넌 빠지도록 해.

로젠은요.

나는…….

로젠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나니까. 못된 꿍꿍이라면 파고들어야지 않겠나.

저도 끼워주십시오.

리오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로젠은 거절했다. 이건 위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해야한다고. 리오와 돈을 나누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돈을 받고 싶지 않아 의뢰인에게 수당을 거절해놓기까지 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로젠은 답을 알고 있었다.

목적지가 달이야.

로젠이 새벽제비에게 말했다. 말하기 싫었지만, 어차피 화력팀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다. 새벽제비는 조용히 폐허에 난 잡초를 뽑았다.

너의 그 기이한 통찰력이 필요해.

달에 있는 시체를 회수해 의뢰인에게 준다. 둑둑, 잡초 뿌리가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에서는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매미라고 했던가. 그에 비하면 뿌리 뽑히는 소리는 조용했다. 로젠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달에 가기 싫은거라면,

새벽제비가 일어나 잡초를 멀리 던졌다. 바람이 분다. 바다의 눅진한 짠내를 한껏 머금은 바람이다. 새벽제비는 뒷짐을 지고 어슬렁 어슬렁 어디론가 갔다. 새벽제비의 의중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로젠은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바다 절벽을 따라 쭉 걸으니, 돌을 쌓아 만든 무덤 한 기가 보였다. 로젠은 소리쳤다.

안돼!

새벽제비가 발로 돌 무덤을 걷어찼다.

소 뼈

로젠은 달 공세에 참여하지 않은 수호자였다. 아직 어린 수호자를 가르치고 있기에 그는 달 공세에 갈 수 없었다. 그를 아는 수호자들은 모두 손가락질을 했다. 리오는 그만하면 독립해도 된다. 로젠같은 베테랑 수호자가 달 공세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는 겁쟁이다. 인류의 황금기 유산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다. 로젠은 리오를 끌어안았다.

저는 스승님을,

아니야. 그 말이 아니란다.

리오는 자기보다 한참 작은 로젠이 자신을 끌어안은 모습을 가만히 내려보았다. 우스꽝스럽다면 우스꽝스러웠다. 리오는 지나치게 충직해서 로젠의 머리를 보듬어 안아주었다.

그럼 무슨 말을 하실겁니까?

리오가 물었다. 그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제비는 달 공세가 결정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로젠만큼 유명하지는 않았고, 로젠만큼 뛰어난 헌터도 아니었다. 로젠이 문을 열자, 익숙한 모습의 여자가 서있었다. 그 여자는 로젠의 제자였다. 그러나 로젠과 의견 차이로 연락을 끊고 독자적으로 활동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달 공세에 가지 않는다고 다들 수군거리덥니다.

리오, 들어가-,

그 때 여자가 로젠의 뺨을 때렸다.

배신자. 비겁자.

리오가 서둘러 달려와 로젠과 여자 사이를 떼어놓았다. 로젠은 뺨을 만지며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리오는 로젠대신 따지고 불청객을 쫓아냈다. 이번엔 리오가 로젠을 안아주었다. 위로의 말은 없었다. 리오도 궁금했다. 왜 로젠이 공세에 참여하지 않는지.

대체 뭐 하는거야.

로젠은 새벽제비를 온 몸으로 뜯어말렸다. 그러나 새벽제비는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작은 돌무덤 안에서 다 삭아버린 뼈를 하나 둘 꺼내고 있었다. 결국 뜯어말리다 지친 로젠은 새벽제비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구 뼈야? 아이인 것 같은데. 네 아이였나?

새벽제비는 어깨만 으쓱했다.

내가 이 곳에서 부활했을 때 부터 있던 무덤이다.

거짓말. 그럼 뼈도 다 삭아 흙이 됐겠지.

자.

새벽제비가 뼈를 담은 유골함을 건넸다. 로젠은 그걸 빤히 봤다.

이걸 의뢰인에게 전해줘.

퍽이나 속겠다.

말과 달리, 로젠은 유골함을 받았다. 달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 아마도 성인일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새벽제비는 알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얘기했다. 우리가 먹고 버린 닭 뼈, 소 뼈와 같이 우리는 인간 뼈를 건네러 가는 것일 뿐이니까. 로젠은 달 공세 내내 새벽제비를 겁쟁이, 게으름뱅이, 배신자, 비겁자라고 욕했다. 그러나 수많은 수호자들이 스러지는 그 악수에서 로젠의 편이 된 사람은 새벽제비 뿐이었다. 로젠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더더욱 새벽제비는 겁쟁이, 게으름뱅이, 배신자, 비겁자라고 욕을 먹어야했다.

내가 죽일 수 밖에 없던 사람

로젠은 여자가 자신을 모욕하게 두었다. 리오는 여자를 뜯어말리고 쫓아냈으나, 여자가 쏟아내던 말들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리오는 로젠 외에서 그러한 논리를 본 적이 없었다. 리오는 논리에 압도되었다. 리오는 이제 자랐다. 리오는 논리를 압도한다. 모르는 여자가 유골함을 받아든다. 아이 것임이 확실한 유골을 보고도 조용하다. 그리고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오고 말았네.

닭 뼈, 소 뼈처럼 모르는 여자에게 있어 유골함에 담긴 것은 그냥, 인간 뼈였다. 우리가 고기를 잘 발라먹고 남은 쓰레기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발라먹고 남은 구멍 숭숭 뚫린 쓰레기. 쓰레기가 닭 뼈인지 소 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배부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로젠은 그제사야 일회용 채널 닉네임을 보았다. 리오가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 꼼꼼한 리오는 그걸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로젠은 닉네임에 손가락을 대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모르는 여자는 유골함을 들고 바닷가에 높이 솟은 절벽으로 갔다. 그 곳에는 파헤쳐진 돌무덤이 하나 있었다. 작았는데, 아이가 누워있던 곳 같았다. 모르는 여자는 유골함에 담긴 유골을 파헤쳐진 무덤에 우르르 쏟아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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